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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72

EP.471 18. 만우절 (13)

원더스타인이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회의는 어느새 종료되었다.

클라라는 자신을 주목하는 단원들의 시선에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은 너무나 완벽하게 단장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특히, 여자 단원들과는 사적으로 거리를 두면서도 업무적으로 완벽하게 그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길들이기지.’

그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면 자신이 충분히 이곳의 단장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어찌 보면 플라스크 안에 갇혀 있을 때의 꿈을 이뤘다고 봐야 했다. 그 당시 그의 목표는 바로 검은 마도사의 자리를 차지하는 거였으니까.

“자, 그럼 흩어져서 클라라 양이 말한 단서의 인물을 수색합시다.”

다들 그가 짝지어준 대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움직일 준비를 했다. 그런데 레이나만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홀로 회의실을 걸어 나갔다.

“레이나 양은 저랑 움직이기로 했을 텐데요?”

클라라가 오늘 점찍은 목표는 바로 그녀였다. 어제 마야, 아나이스, 니카, 엘라를 처리했으니 이제 그녀와 유라크네만이 남았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레이나는 통제가 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데다가 언제나 홀로 서도록 교육받은 탓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간섭받는 것을 싫어했다. 아마 아버지 밑에서 뛰쳐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 그녀를 철저하게 애 취급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마치 그녀의 아빠라도 된 듯 이리저리 간섭하고, 그녀가 혼자서는 세수도 못 하는 어린애라도 되는 것처럼 대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레이나는 애초에 그와 같이 다닐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녀는 그를 날카롭게 한 번 노려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 혼자서 수색하겠어요.”

그녀의 말투뿐만 아니라 눈빛까지 싸늘했다. 단원들은 다들 그녀와 클라라의 눈치를 살폈다. 어쩐지 최근 그녀는 상당히 저기압이었다. 클라라 역시 그녀의 얼음 같은 대꾸에 속으로 겁을 집어먹고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클라라는 레이나에 대해서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제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윗사람과 같이 다니고 싶어 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게 당연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죠. 그러면 저는 자작님 그룹에 합류할까요?”

클라라는 그냥 오늘은 아나이스를 희롱하는 것이나 마저 하기로 했다. 다른 단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몰래 몸을 더듬거나 음란한 말을 속삭이면 혐오감을 좀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더스타인은 쌀쌀맞은 태도로 클라라의 제안을 거절하는 레이나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인형의 집 사건 이후로 그녀는 니카처럼 자신과 마주치는 것을 계속 피하고 있었다. 가면을 벗겨 달라는 요구도 하지 않았고, 뭔가 단단히 화가 난 사람처럼 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 이유가 뭔지 알고 있었기에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레이나 쟤 말인데…… 아무래도 옛날 기억을 조금 떠올린 것 같아. 내가 누군지 알아보더라고.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아직 완벽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조만간 다 떠오르겠지?

-그러면 어떻게 하죠?

-뭐, 네 업보니까 네가 알아서 수습해. 상당한 원망을 들을 각오는 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라테나에게서 레이나의 상태에 전해 들은 원더스타인은 그녀와의 관계는 이제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인생을 조작한 원흉 주제에 그동안 모른 척하며 그녀를 잘도 이용했으니까 말이다. 그녀의 가짜 아버지 노릇을 한 것도 그녀가 보기에 자신을 데리고 장난친 거라고 여길 확률이 높았다.

인형의 집을 떠난 이후로 2주 동안 둘 사이는 서먹서먹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아, 이걸 안 들고 나갔네.”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그녀 몫으로 배부된 지도와 자료를 챙기지 않은 것을 깨닫고 급히 따라나섰다. 평소였다면 그녀와 마주치는 게 껄끄러워 다른 단원을 시켜서 전달했겠지만, 지금은 클라라의 몸이니 괜찮겠지 싶었다.

“레이나! 지도 가져가야지!”

레이나는 숙소를 막 나서던 참이었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인 내민 지도를 빤히 바라봤다. 거기에는 오늘 새벽부터 그녀가 작성한 정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다 외웠거든요.”

“아, 그래? 어느새?”

“오늘 아침에 선배님……의 방에 들렀어요. 책상 앞에 엎드려 주무시고 있길래 그 위에 놓인 자료를 심심풀이 삼아 읽었어요.”

“아, 그때 말이지.”

원더스타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레이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더니 그녀의 발목이 퉁퉁 부은 것을 확인하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숙소에서 쉬세요.”

“응. 안 그래도 그러기로 했어. 고마워.”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먼저 등을 돌린 사람은 원더스타인이었다. 레이나는 그녀가 문을 닫고 들어갈 때까지 그녀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목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클라라가 짠 수색 작전은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게임에 나온 단편적인 정보만 알고 있는 원더스타인과 달리 그는 프라빈의 사회적, 경제적, 인문학적 지리에 훤했다. 그는 원더스타인이 던져준 단서들을 통해 가면 배우들이 누군지 빠르게 좁혀 나갔다.

“분홍빛 벽돌에 원통형의 금속 굴뚝, 녹색 울타리라……. 그건 현재 프라빈 시 당국이 진행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 사업 중에서도 북동쪽 지구에서 채택된 디자인이군요. 가면 하나는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분증의 색이 청색이라는 건 행정직 계층이라는 의미고, 귀걸이를 교차해서 엮는 관습으로 봤을 때, 제국 서부 출신의…….”

원더스타인은 클라라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각종 지식에 혀를 내둘렀다. 게임에 나왔던 그 장소만 찾으려고 무작정 뛰어다녔던 자신과 대비되었다.

“찾았다!”

그의 적확한 지시 덕분에 그들은 점심이 지났을 무렵 한 명의 배우를 찾아낼 수 있었다. 클라라는 획득한 가면을 보란 듯이 숙소 중앙에 걸어두었다.

‘확실히 나보다 클라라가 단장 자리에 더 어울리는 건가.’

원더스타인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갔다. 클라라의 수완과는 별개로 퀘스트 창이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게 그녀는 신경 쓰였다.

시스템은 지금까지 서커스단의 운영에 유리한 방향으로 언제나 퀘스트를 제시했었다. 그런데 이번 일에는 전혀 신호가 없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순히 생각하면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켰을 수도 있다. 지금도 몇 가지 기능은 자신과 클라라를 혼동하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었다. 바로 몸이 뒤바뀐 현 상황이 서커스단에 더 도움이 된다고 키르쿠스는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자격 박탈인가?

이상하게 클라라의 몸에 있으니 누군가 귀에다 우울한 소리를 속삭이는 것 같았다. 차라리 바쁘게 돌아다니면 엉뚱한 생각은 안 들 텐데…….

방에 누워 있는 것이 지겨운 것을 넘어 무서워지기까지 한 원더스타인은 침대에서 일어나 숙소 안을 살펴보기로 했다. 숙소에는 어제 같은 날이 아니면 보통 몇 명의 단원이 상주해 있었다.

과연 식당에 내려가 보니 유라크네가 식재료를 손질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유라크네 씨?”

“어머, 클라라. 무슨 일이에요?”

“그냥 심심해서요. 뭔가 도울 일 없어요?”

“도울 일이라……. 일이 많기는 한데……. 차라리 그냥 안 하고 돈을 더 쓰는 게 나을 수도…….”

“왜요? 무슨 일인데요?”

“어휴, 그게 그러니까…… 그게……. 여기 와서 이것 좀 보세요.”

유라크네는 기다렸다는 듯 주방 구석에 있는 상자를 열어 보였다. 그곳에는 어제 장을 봐온 서커스단의 일주일 치 식재료가 담겨 있었다.

“아.”

원더스타인은 상자 안의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식재료들은 하나 같이 시장에서 떨이로 줘도 받기 싫은 품질의 것들이었다. 채소, 과일, 고기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어제 산 거죠? 누가 샀죠?”

“단장님이요! 마야 양이랑 장 보는 게 일정이었는데, 평소 예산의 절반 이하로 썼다고 우쭐대셔서 보니까 죄다 이런 걸 샀지 뭐예요. 제가 오늘 새벽에 열어보고 얼마나 기가 찼는지……. 이것들을 먹을 만할 정도로 손질하는데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아세요? 솔직한 마음으로 다 갖다버리고 그냥 새로 사고 싶어요. 단원들에게 이런 걸 먹일 바에 말이죠.”

원더스트인은 유라크네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는 싹이 돋은 감자와 잔털 처리도 안 된 돼지고기, 손을 대자마자 물풍선처럼 퍽 하고 터지는 토마토를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면은 또 클라라답다고 해야 하나. 일 처리가 대충 대충이었다.

“크아악, 그 인간 서류 작업 안 하고 튀었어!”

그렇게 유라크네 옆에서 식재료 손질을 하는 것을 돕고 있는데 갑자기 도스빌 남작이 고함을 지르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는 일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더니 곧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도스빌은 주방에 비치된 주전자에서 차를 한 잔 따라 마시더니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것 역시 클라라에 대한 것이었다.

“분명 어젯밤에 관련 서류 다 처리해놓고 자라고 했는데 오늘 가보니 하나도 손을 안 댄 거 아닙니까! 우리가 대여한 숙소는 호텔이 아니라 법적으로는 일반주거용이라고 전에 설명했죠? 그래서 전입 절차를 안 밟으면 벌금을 왕창 문단 말입니다! 재수 없으면 퇴거를 당할 수도 있어요!”

도스빌은 클라라가 몇 번 끄적이다 귀찮아서 던져준 서류 뭉치를 손에 들고 열변을 토했다. 식재료 손질을 대강 마친 원더스타인은 흥분한 그를 달래며 그가 서류 작성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어차피 거기에 써넣어야 할 내용은 모두 그가 숙지하고 있는 것들이기에 일을 처리하는 데 아무 문제 없었다.

“됐다! 관공서 문 닫기 전까지 다녀올 수 있겠어! 고맙다, 클라라!”

도스빌은 원더스타인에게 키스라도 할 기세로 그녀를 몇 번이나 끌어안고는 완성된 서류를 들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가 나가자마자 이번에는 마당 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것은 나이 든 남자의 것이었다.

“다 썩어서 죽어버렸잖아. 이 망할 제자 놈이! 일부러 이런 건가?”

마당에 나가본 원더스타인은 가스통이 화분들을 앞에 두고 씩씩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간 원더스타인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화분들에는 물이 말 그대로 한가득 담겨 있었다. 화분마다 담겨 있는 양이 일정한 것으로 보아 실수로 쏟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화분에 담긴 조경수 묘목들은 모두 원예용으로 특별히 개량된 종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녀석들이었다. 이것들은 어릴 때 마시는 물도 가려서 특정한 약품으로 이틀 정도 정화해서 주지 않으면 그대로 죽어버렸다. 그런데 꼴을 보아하니 클라라는 귀찮아서 그랬는지 정화 중인 물 1주일 치를 한 번에 화분에 다 부은 모양이었다.

“설마 대회에 출전하기 싫다는 의사 표시인가?”

가스통은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마련한 조경수 묘목은 프라빈의 도시재생사업 중 하나인 가로수 경연대회에 출품할 물건들이었다. 그가 예테린푸르크에서부터 이곳까지 군말 없이-아니, 엄청 많이 투덜거렸지만-따라온 이유는 원더스타인을 그곳에 출전시킬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로수 경연대회가 열리는 것은 앞으로 2달 뒤. 가스통은 그때까지 원더스타인을 한 명의 어엿한 정원사로 만들겠다는 야망에 불타 있었다. 이곳까지 열차를 타고 오는 내내 끈덕지게 설득했기에 원더스타인도 어쩔 수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참이었다. 그런데 비싼 돈 들여서 마련한 교보재를 클라라가 하루아침에 다 썩게 해버린 것이다.

원더스타인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구르는 가스통을 보니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하!”

“뭐가 우습냐, 이 녀석아!”

“하, 하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원더스타인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갑자기 클라라 문제로 고민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녀도 이렇게 실수투성이인데 자신이 고작 몇 가지 분야에서 밀렸다고 냅다 단장 자리를 포기할 생각을 했다니. 스스로가 한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스통은 그런 그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도 힘든 일이 많은가 보구나.”

“뭐, 약간요.”

“그래. 하지만 그래도…… 쑥은 태우지 마라.”

“……네?”

원더스타인은 그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해골바가지가 단원마다 붙잡고 클라라 양을 도와줘야 한다고 떠들어대더구나. 아, 안심해라. 약속대로 원더스타인 녀석에게는 말 안 한 모양이니까.”

원더스타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스벤의 떠버리 기질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았다.

한껏 진지한 어른 행세를 하길래 믿어준 건데……. 어쩐지 오늘 아침 회의 때 자신이 한마디 할 때마다 과도한 격려와 응원이 쏟아진다 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만 방으로 돌아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원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한 궁리를 할 때였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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