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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8

48화 새로운 여정 (2)

48화 새로운 여정 (2)

“이렇게 함께하게 되는군. 데미안.”

나는 물끄러미 카인을 마주 보다가, 쿠훌린에게 눈을 돌렸다.

“얘가 왜 여기 있어요?”

“아, 짐승 꼬마도 우리와 함께 가기로 했다. 어때. 깜짝 놀랐냐?”

······짐승 꼬마?

나는 다시 카인을 바라봤다. 세실의 숨소리가 조금 빨라진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전처럼 내 뒤에 숨지는 않았다.

“음? 친구가 함께하는데 기쁘지 않은 거냐?”

“친구라고요?”

“짐승 꼬마 말로는 너와 절친한 사이라던데. 그래서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다고, 함께 떠나는 걸 마지막까지 비밀로 해달라고.”

그렇게 말하며 쿠가 카인을 돌아봤다.

카인은 맞는다는 듯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와, 표정 연기하는 거 봐라.

“잘 부탁한다. 데미안.”

카인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빌어먹을 능구렁이 같은 녀석.

나는 찜찜한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이어 카인이 세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한다. 세실.”

“······.”

머뭇거리던 세실이 귀를 발갛게 붉히며 카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나는 조금은 심통이 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자, 출발하자!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지난 영지전에서 한 팀으로 움직였던 사이 아니냐! 하하하하!”

.

.

.

카인이 우리와 함께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카인이 왜 서둘러 용병단을 만들고, 마르셀을 부단장으로 세워 우리 잡화점과 계약을 맺었는지 알 것 같았다.

‘빈틈없는 녀석.’

카인과 함께하는 것이 내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일은 벌어졌다.

게다가 카인을 데려가기로 한 것은 쿠.

나는 카인을 믿지는 않지만, 은월의 소드마스터 ‘쿠훌린 아르테미스’의 선택은 믿었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

세실은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원래 말이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유독 더했다.

그러나 세실의 표정을 보건대 불안해하면서도 내심 안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유는 알만했다. 카인을 떠나려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희석된 거겠지.

머릿속 생각과 별개로 나는 오랜만에 평온을 만끽했다. 지금껏 겪어온 수많은 위험과 전투, 그리고 바쁜 격무에서 벗어나 휴식기를 갖는 기분이었다.

“예뻐.”

세실의 말에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푸른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그 아래로는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솨아아아.

나는 살갗을 간지럽히는 듯한 여름의 바람을 느꼈다. 오후의 햇빛을 반사하는 자그만 연못에서는 개구리들이 뛰어놀았다. 그러고 보니 카론 늪지에서 족제비가 세실을 개구리 사냥꾼이라고 불렀었지.

나는 앞장서는 쿠의 뒷모습을 봤다. 그의 새치 가득한 검은 머리카락과 스트라이더의 어두운 갈기가 잘 어울리는 한 쌍처럼 바람에 나부꼈다. 문득 생각했다. 혹시 나는 쿠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있는 걸까.

그렇게 나는, 현실 세계에서 채우지 못한 결핍을 메우고 싶은 것일까.

“날이 좋구나! 한바탕 달려볼까? 꼬마들아!”

쿠가 씩 어금니를 드러내며 우리를 돌아봤다.

나는 저 웃음을 기억했다.

쿠가 보였던 여러 웃음 중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졌던 미소.

‘다 큰 어른이 위험에 처한 아이를 돕는 것에 이유가 필요하다는 거냐?’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저것이 쿠의 본래 얼굴이고, 미소다.

“가자! 스트라이더! 하하하하!”

이히힝! 스트라이더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우리도 쿠를 따라 말을 달렸다.

***

“이 숲에서는 몬스터가 나온다! 어흥!”

마치 한여름 밤에 어린아이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처럼, 쿠가 양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그러고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는데 혼자 낄낄대며 웃었다.

“놀랐지 꼬마들아! 하하하하!”

페르디나를 떠나고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쿠가 묘하게 들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몬스터?”

착한 세실이 반응해 주자, 쿠가 기다렸다는 듯 으스댔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라 예쁜 꼬마! 혹시 몬스터가 나타나더라도 내가 지켜줄 테니까!”

그러나 여기서 노숙하자는 것을 보니, 몬스터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장난인 듯했다. 우리는 말에서 내렸다. 지난 영지전에서의 경험으로 나는 노숙을 준비하는 일이 익숙했다.

나뭇잎이 부딪치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종종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곤충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귀찮은 녀석이 왔군.”

쿠의 나직한 음성과 함께, 구름 뒤에 숨어있던 달이 얼굴을 내밀며 숲에 엷은 은빛이 드리워졌다. 내리는 빛의 틈새로 기묘한 이질감이 흘렀다. 그것은 숲에 그려진 모든 풍경 속에서 유일하게 달빛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였다.

화지에 뿌려진 먹물처럼 제멋대로의 형상을 드러내던 그것이 서서히 형태를 갖췄다. 그제야 보였다.

우리의 열 걸음 정도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빨간 눈깔이 그새 달려가서 이른 거냐?”

쿠가 넉살 좋은 목소리로 물었다.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쿠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렸다.

“줄곧 따라다니던 잔챙이들이 사라졌다 했더니, ‘알파’께서 몸소 찾아오셨다는 건가.”

내 눈이 부릅떠진 것과 카인이 뛰쳐나간 것은 동시였다. 그런 카인을 쿠가 붙잡았다. 카인은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쿠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나는 카인의 모습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지난번에 미스트를 조우했을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카인을 이해할 수 있다. 일루산 블레오파드가 나타났으니까.

“으아아아아!”

카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짐승처럼 쿠의 팔을 할퀴며 일루산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카인은 쿠의 완력을 당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콰직!

일루산이 서 있던 자리의 지면이 움푹 파이며 갈라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한발 앞서 그 자리를 벗어난 일루산이 무심한 얼굴로 그것을 돌아봤다.

콰직! 콰지직! 콰직······!

또 다른 지면이 연속해서 붕괴했다. 모두 일루산이 서 있던 자리였고, 마찬가지로 그는 한발 빠르게 회피했다.

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광경을 봤다. 지면이 붕괴하는 이유는 뻔했다.

카인이다.

카인이 소서러의 힘을 각성하고 있는 거다!

퍼엉!

낮은 폭발음과 함께, 카인을 붙잡고 있던 쿠가 크게 뒤로 밀려났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나 카인은 쿠의 구속에서 해방됐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카인의 눈동자가 새파란 빛으로 번득이는 것을.

검을 뽑아 든 카인이 일루산에게 달려들었다. 일루산의 오른손에서 블레이드가 발현됐다. 그 순간 눈부신 빛이 두 사람 사이로 쇄도했다. 쿠였다.

카아앙!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오러를 발현한 검과 블레이드가 서로를 물어뜯었다. 그 너머로 카인의 몸이 튕겨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때, 나는 세실의 비명을 들었다.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니,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쓰러진 세실이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울부짖고 있었다.

“아으······! 아으으아아······!”

세실은 두 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발작했다. 빌어먹을. 카인에게 정신이 쏠린 탓에 잠시 잊었다. 지금 카인 못지않게 정신적 타격을 입은 이는 세실이다.

“아으으······. 잘못. 했어······! 잘못. 카인. 어머니······!”

세실의 눈에서 주룩주룩 눈물이 흘렀다.

“제발. 아으으······. 아으. 레이븐······!”

세실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나는 무작정 세실을 끌어안았다. 세실이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팔에 힘을 주어 버티며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세실. 괜찮아.

은월검을 발현한 쿠는 은빛으로 변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일루산과 싸우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몰랐다. 자연 감응을 발현해도, 관찰력을 발현해도 그들의 움직임을 좇을 수 없었다.

카앙! 검과 블레이드가 크게 부딪친 뒤, 두 사람이 거리를 벌렸다.

“너를 죽이려면, 나도 각오를 해야겠지.”

표정 없는 목소리로 일루산이 말했다.

쿠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언제라도 좋다. 일루산.”

일루산이 저만치 쓰러진 카인을 보고, 나를 봤다. 아니, 나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이 향한 것은 세실이었다.

나는 혹여 세실이 일루산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일루산이 내게로 눈길을 돌렸고, 순간적이지만 그의 눈동자에 희미한 이채가 스쳤다.

“지금은 물러나지.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그 말이 끝이었다.

엷은 바람 소리와 함께, 일루산은 연기처럼 자취를 감췄다.

***

세실의 외모는 어머니를 닮았다. 그래서일까. 혈족의 살수들은 세실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걸음마를 떼기 무섭게 세실은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은 지독했다. 혈족에서 누구보다 강한 살수였던 아버지는 세실에게는 누구보다도 냉혹했다.

그런 세실의 유일한 위안은 어머니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만남을 금했고, 그래서 세실은 아버지가 자리에 계시지 않을 때만 몰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기나긴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어젯밤 아버지는 갑작스레 세실을 방으로 불렀다. 물끄러미 세실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아버지는 ‘그림자 망토’를 건넸다. 착용하지는 말고, 항상 몸에 지니고 있으라는 당부와 함께.

세실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자 망토는 영력을 처음 익힐 때 사용하는 훈련 장비였으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별다른 설명 없이 방을 나섰고, 소수의 블레이드와 함께 그림자 성을 떠난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세실은 달리는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에 뛸 듯이 기뻤다. 어서 어머니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방문 앞에 도착한 세실은 환히 웃으며 문고리를 쥐었다.

창문 너머에서 비치는 석양빛으로 어머니의 방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환히 웃는 얼굴로 세실을 맞아 주곤 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는 세실을 보고 있지 않았다. 웃는 얼굴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뚝. 뚝······.

아버지의 손에는 블레이드가 뽑혀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가슴을 뚫고 등 밖으로 길게 삐져나와 있었다.

어머니가 세실을 돌아봤다. 점점 흐려지는 그녀의 눈동자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츄우우우······!

블레이드가 빠져나오자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아났다. 어머니의 몸이 망가진 인형처럼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세실은 달아났다. 사실은 어머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두려움이 더욱 강했다. 아버지는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고 있었다.

쨍그랑! 복도의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세실!’

창을 깨고 들어온 이는 레이븐이었다. 레이븐은 세실의 몸을 끌어안고 다시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스쳐 가는 풍경 속에서 세실은 언뜻 붉은 눈의 그림자를 봤다.

세실은 멍하니 레이븐을 올려다봤다. 외숙부는 어머니와 닮았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따뜻했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떨어져 내려 세실의 얼굴을 적셨다.

세실의 눈에도 같은 것이 맺히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목소리만이 부연 세상을 두드리듯 아득하게 들려왔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세실. 아니스를 위해서라도.’

그날따라 유독 진했던 석양은 차가운 핏빛이었다.

.

.

.

꿈을 타고 넘어온 듯한 피 냄새가 세실의 의식을 깨웠다.

세실은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환각을 보는 듯이 몽롱한 기분이었다.

피이. 피이이.

새소리가 들렸다.

뭉실한 구름의 틈새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태양은 잠시 구름 뒤에 숨었는지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하늘은 느릿느릿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깨어난 거냐? 예쁜 꼬마.”

쿠의 목소리.

“세실. 괜찮아?”

고개를 돌리니, 데미안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내 세실은 자신이 은빛의 망토에 감싸인 채, 쿠의 등에 업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쉬고 있거라 예쁜 꼬마. 오늘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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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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