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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8

48화 마술사 여왕 베아트리체

스페로 왕국의 마술사 여왕 베아트리체 알리기에리 스페로는 이름난 성군이었다.

시조 때부터 융성한 왕국은 풍족하고 평화롭다. 이 태평성대가 영원할 것만 같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악마들의 침공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저 멀리 서쪽에서부터 몰려온다는 검은 무리들은, 처음에는 오랑캐의 한 무리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악명과 그 강력함만큼은 무성하다. 저 머나먼 왕국에서 발호한 추잡한 색욕의 무리들이 눈깜짝할 사이에 여러 왕국들을 멸망시켰노라고.

검은 무리가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여왕은 몰려드는 난민과 목격증언으로 상대가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 발칙한 것들의 기세가 결구에는 이 스페로 왕국에까지 뻗을 것임을.

물론 여왕에 충성하는 명예로운 기사들과 충성스러운 병사들은 침략에 마땅히 맞설 것이다.

그들은 기어코 다가온 악의 무리에 맞서 싸웠다.

승리. 승리. 승리.

마술사 여왕이 몸소 군세를 이끌고 출격한 군세는 오로지 승리를 반복하며 영광을 드높였다.

패퇴를 반복하며 끝내 멸망한 왕국의 난민들은 패잔병까지 규합해 악을 격퇴하는 여왕을 보며 희망을 품었다.

그 희망이 점차 무너지기까지 채 삼십 년이 걸리지 않았다.

전쟁에 능숙한 무리는 아니다. 약하고, 난잡하며 군율조차 없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사기만은 높다. 기이할 정도로 기세가 넘친다.

신의도 대의도 없이 오로지 추잡한 쾌락만을 쫓는 오합지졸의 군세일 터인데, 격렬하게 몸을 던져온다.

그것들이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들이란 걸 깨달은 건 3년 전, 쓰러뜨렸을 터인 대악마가 멀쩡한 모습으로 재강림했을 때였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승산이 없었구나.’

죽어도 부활하는 무리다.

죽을 리가 없기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것들이다.

이쪽의 인구는 착실히 깎여나가는데, 저것들은 끝도 없이 몰려온다.

아무리 대승을 거둬도, 아무리 많은 악마들을 죽여도, 결국에는 돌아온다.

이 얼마나 불합리한 싸움인가.

전쟁은 끝없이 이어졌다.

수만의 악마를 격퇴하고도 고작 혼잡한 전장에서 끌려간 수백 명의 병사들이 끔찍한 고문과 쾌락으로 타락한다.

인간의 가죽을 쓰고 왕성에 잠입한 악마들이 시녀들을 타락시켜 난교장을 만든다.

거리에 가득한 사이비 교단은 무한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구원이라 외쳤다.

왕국이 무너져간다.

강철 같았던 기사들이 타락하고, 조국을 지키던 병사들이 제 가족에게 창을 겨눈다.

언젠가 보았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제 조국의 풍경이 기억나질 않는다.

거리에 시민들이 웃고 즐기며 내일을 기약했던 날이 언제까지였는지…….

파멸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왕이여, 나와 거래를 하자.]

최고위 대악마가 그녀에게 제안했다.

[타락의 정수를 심고 백년을 버텨낸다면, 이 세계를 침공하는 걸 멈추고 원래대로 돌려주마.]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질문할 필요조차 없었다.

왕국은 이미 궤멸했고, 남은 건 성 하나뿐. 결국에는 자신의 백성, 병사, 기사들… 그들 모두가 멸망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대악마의 제안은 자신들에게 철저히 유리한 거겠지.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악마의 거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지킬 유일한 방법이기에.

* * * *

악마의 함정은 악랄했다.

그들은 1년 동안 왕국의 멸망을 반복했다.

왕국이 멸망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멸망의 과정을 반복한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왕국민들도, 병사들도 버텨봤을 것이다. 누군가는 여왕과 함께했을 것이다.

하지만 쾌락과 타락의 악마들은 왕국민들을 쉽게 죽이지 않았다.

그들의 교태스러운 타락의 장에서 끝없이 능욕하고 고문했으며 살아있는 생물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들을 경험시켰다.

죽음조차도 구원이 되지 못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끝없이 구천을 떠도는 망령이 된다.

결국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직 하나.

스스로 타락하여 악의 군세에 합류하는 것.

끝없는 쾌락과 불멸성을 약속하며 타락의 속삭임이 긍지 높았던 왕국민들을 현혹했다.

아아, 나는 실패했구나.

왕국을 구하기 위해 했던 선택이 도리어 왕국민들을 악에 물들였다.

긍지 높은 여왕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반복되는 멸망을 지켜보면서 끝내 자신이 무너져갈 것을 직감했다.

쾌락의 대악마가 이토록 성가신 조건을 내면서까지 자신을 타락시키려고 한 것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다.

스스로조차 무서울 정도로 타고난 교태. 그 색(色)이 명예로운 기사들마저 타락시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제 기사들마저 악으로 타락하리라.

여왕은 남은 기사들만이라도 구원하고자 했다. 스스로 계약을 어기고 타락해, 그 대가로 남은 기사들만큼은 구하고자 했다.

“여왕이시여. 불충을 용서하소서.”

끝내 한 기사가 여왕의 침실을 덮치는 지경에 이르자 대장군은 제 여왕을 지하에 봉인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타락하지 않는 망령이 되었다.

「내가… 당신들을 이렇게 만들었군요.」

후회와 피폐의 10년.

서로가 끝을 앎에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멸망의 운명.

여왕은 이 악몽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기를 바랬다.

* * * *

[히든 퀘스트 : 여왕과 왕국을 구하시오.]

안드로진을 죽이고 귀환한 왕성. 실체가 드러난 스페로 왕국의 왕성에는 더이상 희망을 노래하는 주민들 따위 없다.

“이미 모두가 타락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리카르도 번즈의 긍정에 레온은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수많은 타락자들을 지켜보았다. 평범한 범인들에게 악마의 유혹은 이겨내기 어렵다.

하물며 백년 동안이나 반복될 끔찍한 죽음은 더욱이 타락을 종용했겠지.

“짐이 벤 악마 중에 왕국의 백성들도 있었겠군.”

“…….”

“그들을 동정하나 용서해서는 안 된다. 타락자에겐 오직 죽음뿐이다. 이것은 불변의 정의다.”

레온의 무정한 말에도 데스나이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또 하나 따져야 할 것이 있다.

“망자-로 영락한-저희들은… 어찌-하시렵니까.”

데스나이트… 언데드들은 어디에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당연한 것이다.

마땅한 생을 버리고 불사를 추구하는 언데드는 삿된 존재이니까.

이 기사가 자신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저항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짐이 정할 일이 아니다. 먼저 여왕과 함께해야겠지.”

레온은 데스나이트들과 함께 여왕이 안치된 지하공동으로 향했다.

타락의 진행을 최대한 막기 위해 봉인까지 한 베아트리체 여왕. 그마저도 끝내 막아내지 못했다.

레온은 숨소리만 내쉬며 잠든 여왕을 내려다봤다.

“플르시여. 어떻습니까.”

그의 말에 신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안과 자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꿈과 죽음의 여신. 그녀는 감탄한 듯 보인다.

[타고난 재능이다. 그 추잡한 악성들이 탐낼 만 하구나. 실로 무서운 악마군주가 탄생할 뻔했어.]

경국지색. 외모와 교태만으로 나라를 기울이게 한다는 망국의 악재였다.

[타락의 정수가 심어져 그 악재가 더욱 증폭되었다. 이미 반 이상의 타락이 진행되었어.]

“허나, 타락하지는 않았지요. 그녀는 색욕의 악성을 지닌 채로 제게 기사들의 죽음을 바랐습니다.”

자신을 가둔 기사들을 증오해서가 아니다. 그들을 죽여 영혼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다.

여왕도 기사들도,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서로가 가장 바라지 않는 일을 행했다.

이 애민을, 이 충정을 왕족된 자, 기사된 자가 어찌 감복하지 않으랴.

[레온, 이 아해에게 본녀의 문양을 새겨라. 그녀가 나의 의식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타락의 정수를 몰아낼 신성을 발산하겠지.]

“마땅히 그럴 자격이 있는 ‘왕’이니 기꺼이 받들겠습니다.”

레온은 여왕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 또한 악에 맞서 이백 년을 싸워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것들이 내미는 유혹과 속삭임이 얼마나 달콤한 지를.

레온이 여왕의 몸에 손을 대자, 그를 중심으로 신성이 통하였다.

사자심장 속 만신전에서 꿈과 죽음의 여신이 그녀를 향해 들어서는 것이 느껴진다.

다음 순간, 그녀의 눈이 떠지며 자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꿈에서 깨었는가, 베아트리체 여왕.”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의 ‘오염저항’이 강화됩니다.

-갈망의 왕관을 획득하셨습니다.

-영혼의 박도를 획득하셨습니다.

* * * *

전투가 끝났다.

쾌락의 대악마 안드로진이 소멸하고 수많은 악마들이 도살되었으며, 또한 대부분의 악마들은 데몬 게이트를 통해 도주했다.

레온 측에도 피해는 있었다.

여섯 명의 헌터들이 전사한 탓이다. 한 달여 동안 동고동락한 전우들을 잃은 헌터들이 침울해했지만, 그들의 영혼이 낙원으로 향한 메시지를 읽고 안심했다.

‘그럼 우리 죽어도… 천국 가는 거야?;’

‘따흐흑…! 사자심왕 폐하, 충성하겠습니다!’

‘와… 충성충성.’

레온과 그 신들은 구름 위에 숨지 않는다.

자신이 존재함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며 믿음을 권유했다.

신성과는 거래하려 들어선 안 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성들이 알아서 제 신자들을 보듬기에 있을 수 있는 일.

심지어 사자심왕의 보증이 있다면 설령 그것이 기계라도, 죽은 망령들이라도, 믿음 없는 자라 할지라도 프리패스다.

“폐하, 전리품이옵니다.”

김진수 과장과 헌터들은 직업 헌터들이다. 당연히 게이트를 클리어했으면 전리품부터 챙겼다.

“그 악마가 사용하던 왕관과 박도인가.”

왕관과 박도라. 악에 물든 물건인 만큼, 당장 소멸시켜야──

-끼룩!

그때였다. 야크트 스피너가 여덟 개의 다리로 지면을 다각다각 밟으며 다가오더니 박도를 와이어로 묶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것인가.”

-고강도 금속물질. 유용함.

“허나, 악에 물든 물건이다. 그 박도는 아무래도 영혼을 가두는 물건이다만.”

레온은 안드로진이 남긴 박도의 본질을 꿰뚫었다.

악마들조차 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혼을 가두는 박도. 저 박도 안에는 수없이 많은 악마들의 영혼이 가두어져 있다.

-그이에에에에엑!

-용서를, 용서를…!

-저주한다. 저주한다아아!

보아라. 저 박도의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그 사념이 주변을 침식한다. 실제로 박도를 만졌던 헌터들은 성배의 회복이 아니었다면 진작 오염됐을 것이다.

-본기가 처리 가능.

“흠…….”

다름 아닌 성배기사 야피가 하는 말이다. 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처리하기를 허락했다.

그리고──

[라이온하트.]

꿈과 죽음의 신성 플르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어어?”

갑자기 나타난 여신에 얼 타는 헌터들. 레온이 호통쳤다.

“무릎을 꿇어라, 천한 것들아!”

“아예옙!”

데스나이트들은 진작 무릎을 꿇었다. 헌터들도 허겁지겁 꿇는다.

오직 라이온하트만이 여신 앞에서 당당히 서 있었다. 그는 그래도 되니까.

“말씀하십시오, 여신이시여.”

[그 악종을 쓰러뜨리고 손에 넣은 왕관을 본녀에게 보이거라.]

“삿된 물건이라 여신의 눈을 더럽힐까 두렵습니다.”

[괜찮다.]

레온은 갈망의 왕관을 들었다. 여신은 그것을 유심히 살핀다.

“내재된 힘이 범상치 않은 왕관입니다. 좀 더 힘을 회복하면 부수려 했습니다만.”

[네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 왕관, 본녀에게 맡겨보지 않겠느냐.]

레온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싱긋 미소 짓는 플르.

[이 왕관, 그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대가 목을 잘라낸 쾌락의 대악마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왕관이다.]

“그렇습니까?”

레온에게는 죄 같은 모가지였을 뿐이다. 벌레들의 목을 따는데, 그것들이 머리에 씐 것이 무에 중요한가.

[그 추악한 색욕의 악마들은 무의미한 환몽으로 아해들을 현혹하지. 이 왕관에는 그러한 힘이 압축되어 있어. 본녀라면 무언가를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소멸시킬 사특한 물건이었습니다. 플르께서 원하신다면 기꺼이 내어 드리지요.”

레온은 별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플르에게 넘겼다.

[고맙구나. 그리고 이번에도 수고하였다. 네 영광과 명예에 만신전이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노라. 전쟁도 인사나 하고 가거라.]

[인사는 무슨.]

그때였다. 타오르는 것 같은 적발의 사내. 이글거리는 시선이 두려울 정도로 강렬한 남신이 플르 옆에 강림한다.

전쟁과 불꽃의 신성 페토스. 플르에 이은 그 사나운 신성의 등장에 헌터들과 데스나이트들은 존재가 짓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으, 으아아아…….”

“크-음…!”

범인들에게 신성의 존재란 영체나마 이 정도 압박감이다.

이런 압박 속에서도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사자심왕은 대체 무엇인가?

“꿈과 전쟁이시여, 한 가지 청하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았거늘, 느닷없이 청부터 하는 것이냐.]

“송구합니다.”

[무엇이냐.]

레온은 데스나이트들을 힐끗거렸다. 그들 사이에서 아직 잠들어 있는 여왕을 보았다.

“청컨대, 이들의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신들은 사자심왕의 청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시쳇것들의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하란 말이냐. 저들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저버렸다.]

[딱딱하군, 전쟁. 죽음의 권능은 본녀의 권한. 그대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

[언데드를 대체 어느 신성이 윤허한단 말인가!]

[그건 그렇지.]

꿈과 죽음은 데스나이트들을 바라봤다. 본래라면 그녀야말로 저 존재를 용납해선 안 되기에.

[죽음을 거스른 기사들은 본디 본녀가 벌해야 하는 검은 존재다. 저들은 죽음의 순환을 벗어났어.]

“부디… 용서해 주세요.”

그때, 힘겹게 눈을 뜨는 여왕. 그녀는 제 몸안에서 날뛰는 타락의 정수와 이를 몰아내려는 플르의 신성 속에서 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여왕-전하…!”

“옥체를-보중… 하십시오.”

데스나이트들이 여왕 앞에 무릎 꿇었다. 이 충절의 기사들은 자신들의 처분이 결정되는 이 순간에도 여왕의 안위를 걱정했다.

이 고매한 정신을 베아트리체는 외면할 수 없다.

“외계의 신성이시여… 비천한 망국의 여왕이 염치를 무릅 쓰고 부탁드립니다…….”

여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충직한 자들. 95년 간 여왕을 수호한 충절의 기사들.

여왕은 기사들의 평안을 위해 그 어떤 자존심도 굽힐 수 있었다.

[흠…….]

플르는 여왕과 기사들의 딱한 사정과 라이온하트의 청 사이에 고뇌했다.

언데드는 죽음을 거스른 모독적인 존재다. 그들을 낙원에 들이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

[여왕의 충성스러운 기사들이여. 만신전의 누구도 너희들의 영혼을 낙원에 들일 수는 없느니라.]

“……그렇-습니까.”

리카르도 번즈를 비롯한 데스나이트들은 이미 각오한 바였다. 그들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여왕의 안위뿐.

[허나. 너희들의 공이 과를 덮는다. 너희들의 충절은 신들을 감복게 하고, 무엇보다 사자심왕이 너희들의 영혼을 본녀에게 간청했으니.]

하여, 플르는 대안을 말했다.

[너희들을 낙원으로는 들일 수 없으나, 윤회의 기회를 주겠다. 그 더럽혀진 영혼을 정화하고 새로이 탄생할 기회를 주겠노라.]

그것은 낙원에 들 자격이 못 되는 영혼들을 위한 장치였다.

설사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 영혼을 정화하고 다시 태어날 기회를 가진다. 죄의 깊이가 깊을수록 정화 과정에서 소멸하는 일도 잦다.

허나, 데스나이트들의 죄과는 무겁지 않으므로 능히 견뎌낼 것이다.

[허나, 여왕과 기사들이여. 본녀의 관할인 저승은 윤회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이 땅의 신성이 부족한 탓이다.]

현재 만신전과 그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오직 레온의 사자심장에 의해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윤회는 땅에 충만한 신앙이 있어야만 기능함이다.

[여왕이여, 본녀의 제사장이 되어라. 사자심왕을 도와 이 땅에 신앙을 퍼뜨려라. 그것이 너의 기사들의 영혼에 안식을 줄 유일한 방도이니.]

베아트리체는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 * * *

“그럼 폐하, 저희들은 베아트리체 여왕전하의 정식수속을 밟겠습니다.”

변동 게이트라는 초유의 사태에서 헌터협회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헌터들을 결집시키고 던전 브레이크에 대비했다.

그렇게 일주일. 레온은 끝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귀환했다.

“와…….”

“야크트 스피너에 이어 또 생존자야.”

“예쁘다…….”

본디 게이트에서 생존자가 귀환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오강혁 협회장은 레온의 요구에 따라 베아트리체를 생존자로 등록하며 사망한 헌터들에 대한 조의도 표했다.

“헌터들의 희생에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여섯 명의 헌터들이 죽었다. 일반적인 사건이라면 레온의 수료식은 대실패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변동 게이트에 대악마까지 출현한 적색 게이트였습니다. 이정도 피해로 끝냈건 만도 가히 기적입니다.”

“자세한 영상은 스피너 경을 통해 확인했겠지. 또한 전사들의 가족들도 만나봐야겠어.”

“직접 만나시렵니까?”

“몇 안 되는 짐의 병사였다. 그 정도는 해야지.”

“……좋지 못한 꼴을 당할 수 있습니다.”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는 언제나 감정적인 법이다. 협회장은 전사자들의 가족이 혹 레온에게 해꼬지를 하려다 되레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죽은 아내와 부모자식들을 이해 못 할 정도로 꽉 막히진 않았다. 허나, 그들도 짐의 이야기를 들으면 안도할 것이야.”

레온이 직접 축복하고 인도한 영혼이었다. 그들이 죽어간 이들의 낙원에서 받을 대우를 생각하면 마땅히 그들도 안도할 것이다.

가족을 잃은 이들은 레온의 만신전이 보살필 것이니 이것이 전사자를 향한 라이온하트 왕국의 예법이다.

“영상을 공개하고 헌터들을 더욱 소집하라. 악종들은 끝내 너희 세계를 침공할 것이니 그때를 위한 병사와 기사들이 필요함이다.”

“…….”

오강혁 협회장은 게이트 내부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미 영상으로 확인했다.

쾌락과 타락의 대악마. 그들은 남미 멕시코 등지에서도 출몰이 목격된 악마들이다.

안 그래도 치안이 엉망인 남미 국가에서 그들이 타락시킨 도시가 끝내 핵공격으로 증발했다.

그 추잡한 색욕의 악마들이 자행하는 짓거리는 오강혁도 기록물로 몇 번이고 본 바가 있었으니.

“폐하, 폐하의 힘은 악마들을 상대하기에 최적이지요?”

“그렇다.”

“그렇다면…….”

오강혁은 곧 있을 협회 차원의 일정을 말했고 레온은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주평야의 만신전 사옥.

변동 게이트 사건과 훈련병들의 수료식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레온은 시급히 ‘도움’을 청해야 할 곳을 찾았다.

이 세계의 이들로는 돕지 못할 곳. 지금까지 충실히 쌓이고 있는 신앙의 힘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

레온이 눈을 감고 스스로를 코마 상태에 이르게 한다.

영적인 상태에 놓인 그는 저를 응시하는 자색의 여신을 보았다.

[본녀의 손을 잡으려무나.]

영광된 신의 옥체와 맞닿는 것은 사자심왕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여신에게 이끌려 그가 향한 곳은 자신의 심장.

유일하게 스스로 성력을 생산하는 사자심장에 안치된 만신들의 신전.

신들의 시대가 시작된 태초 이래 필멸자 중에선 오직 레온에게만 허락된 장소.

신들의 낙원.

그 웅장한 신전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폐하.”

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면사포를 쓴 여인. 평범한 인간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신성한 광채가 그녀와 함께한다.

“아냑.”

“미천한 신의 종이 신들의 대리인을 뵙습니다.”

레온은 무릎 꿇은 성녀의 등 뒤로 펼쳐진 수많은 사람들을 응시했다.

그들 한명한명이 인간으로서 정점에 도달한 신들의 종이자 만신전에서 신들과 만찬을 즐기는 자격 있는 자들.

선대 사자심왕들과 위대한 성배기사들. 숲의 현자들과 신들의 챔피언들.

“”어서 오십시오, 가장 위대한 성배 수호자여.””

신들이 필멸자들을 위해 만들어낸 낙원.

그 신전의 중심에서 만마의 영웅들과 백성들이 그를 향해 엎드렸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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