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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80

EP.479 18. 만우절 (21)

고작 맥주 몇 잔에 불과했지만, 햇빛 아래에서 연거푸 들이켜다 보니 알딸딸한 기운이 빠르게 올라왔다. 취기라는 것은 그녀가 원더스타인의 육체에 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것이었다.

그의 몸은 독이 들어오는 즉시 자동으로 분해 중화했었다. 그래서 그는 술을 마시는 것을 어디까지나 향과 맛을 즐기는 선에서 그쳤었다.

‘몸이 붕 뜨는 것 같고 기분이 좋군. 웃는 남자랑 비슷한 느낌이야.’

원더스타인은 테라스 아래로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의 풍경을 내려다봤다. 아마 단원들은 지금 클라라의 지시에 따라 바쁘게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원더스타인의 몸에 있을 때 그녀는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단원들의 요구를 확인하고 서커스단의 운영에 필요한 퀘스트를 수행하느라 바빴다. 웃는 남자 때문에 힘든 것도 모르고 잘도 일에 일만 반복했었다.

“이게 가진 사람의 여유지! 여러분! 열심히 일하세요!”

원더스타인은 취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지껄이며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카렌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미치도록 예쁘다.’

술에 취해 얼굴이 발그레해진 원더스타인의 얼굴에는 묘한 색기가 흘렀다. 나사 풀린 듯한 미소와 눈빛에는 사람을 홀리는 듯한 마력이 서려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이제 맥주로는 취하지 않는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조금 독한 술을 시켜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점점 혀 꼬인 발음으로 변했고, 갑작스레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잦아졌다.

옆에서 그녀를 말려야 할 카렌은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관찰하기에 바빴다. 원래 동료 아저씨들의 술주정을 거들어주는 것도 성가셔하는 그녀였지만, 원더스타인이 그러는 것은 하나도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귀엽기만 했다.

“뭐, 뭘…… 그렇게 빤히 바라보냐……?”

“선배가 너무 예뻐서요.”

“내가? 아핫, 아하하! 자식이 눈은 높은데……? 딸꾹, 고, 고마워! 우리 카렌한테 그런 말 들으니 기분 좋네. 카렌 너도 무지무지 예쁘고, 음, 멋있어.”

“제가 멋있어요?”

“응! 아까 내가 그놈들에게 붙잡혀 있을 때 있잖아……. 카렌 네가 짠 나타나서 카리스마 쫙 내뿜는 게…… 무지 멋있었어. 하마터면 반할 뻔했지 뭐야……. 왕자님 같았어.”

왕자님. 카렌은 그 단어가 기쁘면서도 동시에 슬펐다. 남자답다는 말을 아무리 듣는다고 해도 자신이 진짜 남자가 될 수는 없었다.

“선배는 원더스타인 단장님을 좋아하나요?”

그녀의 뜬금없는 질문에 원더스타인은 입에 머금은 술을 조금 내뿜었다.

“풉, 뭐, 뭐? 내, 내가?”

“노출을 많이 했던 게 단장님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라면서요.”

원더스타인은 골목에서 있었던 대화를 떠올리고는 스스로 주먹으로 머리를 콩 찧었다.

“아, 그거! 완전 내 실수! 그건 다른 의미였어. 네가 생각하는…… 그, 그런 거 아니야…….”

“정말인가요?”

“웅웅! 아무리 그래도 내가…… 나, 남자를 좋아할 리 없잖아?”

“네?”

작은 잔으로 독주를 홀짝이던 원더스타인은 이제 술을 따르는 것도 귀찮다는 듯 커다란 컵에 콸콸 들이붓고 마시기 시작했다. 카렌은 그것을 보고 말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보다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게 있다.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선배의 말을 자신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카렌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선배는 여자를 좋아하나요?”

“그, 그래! 나는 여자가…… 좋아…….”

카렌은 하마터면 기뻐서 함성을 내지를 뻔했다. 설마 그녀도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지녔을 줄은 꿈에도 상상도 못 했다.

“그럼 키스 안 할래요, 우리?”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카렌 본인도 말을 내뱉고 급하게 입을 다물었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말을 듣고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곧 손등으로 턱을 비스듬하게 괴고는 나른한 눈으로 카렌을 바라봤다.

“너랑 나랑? 헤헤, 카렌 너처럼 예쁜 애랑 하면 나는 좋지. 하지만 너는…… 읍.”

원더스타인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카렌이 강제로 그녀를 끌어안고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하아, 하압.”

“힉, 흐읍.”

입술과 입술이 포개지고 혀와 혀가 얽어 들어갔다. 알코올의 쓴맛과 달콤한 향기가 녹아 뜨거운 숨결을 타고 흘렀다. 두 사람은 숨 한 번 고르지 않고 미친 듯이 서로의 입안을 탐했다.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은 술집 테라스에서도 가장 구석진 자리였다. 낮이라 사람도 많지 않아서 근처에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 또한 없었다. 덕분에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만 신경쓸 수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원더스타인은 입술에서 흘러내린 타액을 손으로 닦으려 했다. 하지만 카렌이 그전에 그녀의 손목을 붙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녀는 그것을 닦는 대신 직접 핥아 마셨다.

“으응, 카, 카렌…….”

“사랑해요. 사랑해요, 클라라 선배.”

카렌은 원더스타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 그녀는 술에 취해 발음이 꼬부라지는 일 없도록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저랑 사귀어 주세요.”

정적이 흘렀다. 카렌은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의 심정으로 원더스타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던 상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상대는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쌕쌕거리는 그녀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어느새 곯아떨어지고 만 것이다.

‘타이밍 죽이네.’

카렌은 잠든 원더스타인의 몸을 안아 그녀를 뒤편의 소파에 눕혀 주었다. 선배가 자신의 고백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일어나서는 키스했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이전부터 제법 취했던 것 같으니까.

‘반은 내 책임이지 뭐.’

카렌은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선배가 만취하도록 내버려 둔 자신을 탓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렇게 많이 마시게 두지 않는 건데. 그래도 덕분에 선배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만족하기로 했다.

‘또 키스하고 싶다.’

카렌은 잠든 원더스타인의 얼굴을 관찰했다. 이렇게 평화롭게 잠든 모습을 보니 학교에서 처음 봤을 때의 단정한 모범생 느낌이 났다.

단장님 앞에서 어리광을 피우거나 다른 서커스단과 당당히 맞설 때의 모습은 이와 달랐었다. 선배는 또 어떤 모습을 이 안에 숨기고 있을까. 침대 위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이 미친년아! 망상 좀 그만해!’

아직 사귀는 게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침대 위에서의 일을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녀는 그렇게 의자에 앉아 소파 위에 웅크려 자는 클라라의 모습을 계속 관찰했다. 몇 시간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을 넘겨 오후가 되었을 때, 그녀는 이만 클라라를 숙소에 데려다주기로 했다. 조금만 있으면 저녁 시간이었고 서커스단 사람들이 오늘의 수색을 마치고 돌아올 것이었다.

“선배, 자, 집에 갈까요?”

“아우, 여긴 또 어디야? 아구, 머리야, 머리가 깨질 것 같아…….”

“하하, 독한 술을 너무 급하게 드셔서 그래요.”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괴물서커스단의 숙소로 향했다. 원더스타인은 가는 내내 꾸벅꾸벅 졸거나 두통을 호소하는 등 여전히 숙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침내 그들이 숙소에 도착했을 때, 그 앞에는 단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앗, 저기 있다!”

“발견했어!”

“클라라!”

단원들은 마차에서 비틀거리며 내리는 그녀를 조심히 받아주었다. 카렌은 어째서인지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곱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면은 잘들 찾았어요?”

“뭐? 누구 놀리는 거야?”

“가면을 잘 찾았냐고요? 누나가 할 질문은 아니지 않아요?”

미키와 우몬은 평소 카렌을 가장 반겨주던 동생들이었다. 그런데 둘의 얼굴에는 현재 적대감이 가득했다. 카렌은 그들이 왜 그렇게 날 선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래? 끅,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원더스타인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질문했다. 미노바는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쏟아지는 알코올 냄새에 혀를 찼다.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이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신 거야?”

“우, 우웅? 나? 카렌이랑 조금 마신 것밖에 없는데?”

“조금은 무슨. 네가 취할 때까지 저 애가 먹인 거겠지.”

도스빌 남작의 말에 다른 단원들이 호응을 보냈다. 카렌은 그들의 그런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자신에게 클라라 선배를 일부러 취하게 만들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너의 의문에 답해준 것은 엘라였다. 그녀는 원더스타인과 카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파파엘 서커스가 우리가 찾던 가면을 손에 넣었어.”

“뭐라고? 어떻게?”

“가면의 단서가 적힌 자료의 원본을 그들이 가지고 있었어. 선배가 직접 작성한 것을 말이야.”

“뭐, 뭐라고?”

원더스타인은 재빨리 품을 뒤져 보았다. 그러고 보니 가지고 다니던 수첩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충격받은 얼굴로 카렌을 돌아봤다.

“카렌, 너?”

“아, 아니에요. 저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 오빠가 인터뷰에서 동생의 공이 절반 이상이라고 밝혔는데! 아예 우리 앞에서 클라라의 수첩을 딱 펼쳐서 보여주기까지 하더라!”

“아, 아니, 그, 그건…….”

카렌은 자신을 쏘아보는 십여 쌍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급격히 주눅이 들었다. 다들 그녀가 원더스타인을 취하게 만들고는 그녀에게서 수첩을 훔쳐 다른 팀원에게 전했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카렌.”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요!”

카렌은 자신을 붙들려고 하는 원더스타인의 손을 뿌리치고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선배 역시 자신을 저들과 같은 눈으로 바라보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범죄자가 도망가고 있다!”

“잡아다 족쳐라!”

트라이머리가 괜히 달아나는 그녀의 등을 향해 짓궂은 말을 던져댔다. 단원 중 가장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엘라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만 좀 해! 이건 경쟁이라고. 당한 우리도 잘못이 있는 거야.”

“하지만 쟤들은 우리 정보를 훔쳐서…….”

“우리도 클라라 선배가 문제를 풀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못했다면 비슷한 방식을 썼겠지. 누굴 원망하고 자시고 할 거 없어.”

잠시 후, 원더스타인과 마야를 비롯한 후발대가 숙소에 도착했다. 그들은 극장에 가서 오늘의 현황을 알아보고 돌아온 참이었다.

“바퀴의 서커스가 3번째 가면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2번째 가면을 발견한 팀은 우리 말고 또 없습니다.”

만우절 행사는 내일 정오까지였다. 가면을 계속 찾고 싶어도 그들에게는 더는 가면을 추적할 단서가 없었다. 클라라는 단원들에게 수고했다고 치하한 다음 이만 쉬도록 했다.

원더스타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방으로 올라왔다. 현재 복도 밖은 소란스러웠다. 다들 뜨거운 물로 씻기 위해 공용 목욕탕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숙취 때문에 차가운 물로 씻고 싶었던 그녀는 방으로 올라왔다.

술을 마신 것은 결국 악수였다. 서커스단의 활동에 해를 끼친 것은 물론,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찾지 못했으며 귀한 시간만 흘러가 버렸다.

“삐에엑.”

원더스타인은 창가에 앉아 있는 매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는 원더랜드의 주민 출신인 첸 호크였다. 그녀는 그를 향해 반갑게 인사하려다가 클라라는 그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을 기억하고 손을 내리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가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직 늦지 않았군. 혼이 몸에 완전히 정착하지 않았어.”

“호크?”

원더스타인은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다른 단원들 앞에서는 사람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만 입을 열었다.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그래. 겉모습이 바뀌었다고 해도 알아볼 수 있지. 우리는 반 영체인 데다가, 우리는 너의 혼과 직접 접촉하기까지 했었으니까 말이야.”

“그런……. 아니, 잠깐, ‘우리’라고요?”

그때, 창가에 사람의 형체를 한 누군가가 내려섰다. 채 10살도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뭐야, 너! 호크가 말하던 게 사실이었잖아. 꼴이 그게 뭐야?”

바로 은막의 서커스 단장인 루미였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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