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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82

EP.481 18. 만우절 (23)

“괴물 서커스 따위나 하는 놈에게 한 방 먹다니. 이 녀석들 날 잡아서 한 번 기강을 다져야겠군.”

푸리 다이는 가볍게 혀를 한 번 차고는 가마에 몸을 눕히더니 품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연초를 태우는 것만 한 게 없었다.

“어머니, 건강을 위해서 연초는…….”

“꾸준히 피워줘야지.”

그녀는 자신을 만류하는 원로 한 명에게 연기를 후하고 내뿜어 보였다. 그녀는 가마에 삐딱한 자세로 앉아 못마땅한 표정으로 무대 위에 올라서는 스벤을 노려봤다. 나이든 업계 사람답게 그녀는 괴물 서커스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서커스 업계의 계보는 보통 3종류로 나뉘었다. 첫째는 마술사, 음악가, 전문 배우같이 상류층을 고객으로 해온 ‘극장’ 사람들이었고, 둘째는 재주꾼, 무희, 광대같이 하층민들을 손님으로 삼은 ‘길거리’ 사람들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늦게 등장한 부류가 동물 조련사, 차력사, 기인과 같은 ‘전시회’ 사람들이었다.

수백 년 전 어비스는 지금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비스는 곧 인간이 미지에 가지는 두려움과 경외심이 구현된 장소로 보통 ‘지도 밖’을 의미했다.

인간이 어떤 지형에 이름을 붙이고 방위적으로 그곳에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집단으로 인식하는 이상 그곳에 어비스는 존재할 수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비스는 그 인식 바깥의 지역 전체를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항해시대 이전의 인류에게 ‘먼바다’는 곧 어비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바다야말로 인류의 가장 부정적인 상상력이 활보하기 좋은 땅이었다. 바다는 인간의 거주지로부터 물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으면서 인간의 인식이 닿지 않는 장소였다. 괜히 옛날 사람들이 심해를 마신들이 잠들어 있는 공간으로 묘사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도 인류가 인지하지 못한 ‘바다 너머의 세계’는 지도 위에 한계선을 그려두고 ‘어비스’라고 이름 붙였다. 실제로 배를 몰고 지도의 그 지점까지 가보면 인류의 지혜로 측량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인류가 처음 보는 존재들이 세상을 거닐곤 했다.

옛 탐험가들은 용감하게 그런 미지의 세계를 뚫고 새로운 땅을 발견해 뿌리를 내리고 지도에 그 위치를 새겨 사람들에게 널리 알림으로써 인류가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나갔다. 오늘날 흔히 유통되는 타원형의 세계 지도는 그렇게 작은 발견들이 첩첩이 쌓여 형성된 것이었다.

대항해시대는 그러한 지도의 확장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였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외해를 향한 각국의 식민주의 열풍이 더해져 그동안 미지의 땅으로 알려져 있던 곳들이 속속들이 개척되고 발견되었다.

‘전시회’란 그러한 대항해시대 말기에 탐험가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외해의 진귀한 동물, 식물, 유물 따위를 약탈해 본국에 가져와 구경거리로 내놓거나 수집품으로 파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탐험가들이 직접 전시회를 열었지만, 나중에는 그것들을 모아 각 도시를 순회하며 구경거리로 제공하고 전문적으로 돈을 버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것이 바로 현대적인 서커스의 기원이었다.

전시회가 번성하면서 동물들에게 재주를 가르치는 조련사가 육성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소개하는 일에 차력사가 동원되었으며, 다른 문화권의 ‘기예’를 특별한 무언가로 포장해서 재주를 펼치는 기인이 주로 그때 많이 등장했었다. 괴물 서커스도 그런 전시회 계통의 서커스로 볼 수 있었다.

물론 각 분야의 곡예들이 그렇게 딱딱 칼로 자르듯이 계통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동물 조련사가 전시회 열풍 이전에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보통의 곡예사들도 자신의 재주를 특별한 무언가로 포장했다는 점에서 기인이라 할 수 있었으며, 차력사처럼 새로운 기술과 상품의 소개를 재주에 이용하는 일은 이전에도 흔했고, 굳이 괴물 서커스가 아니더라도 특이한 외모를 흥행에 활용하는 일은 업계에 언제나 만연했다.

푸리 다이가 괴물 서커스를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도덕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 한때 그들 때문에 서커스단 운영에 고생한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노력한 재주꾼이 단지 특이하게 생겼을 뿐인 인간들에게 흥행에서 밀리는 굴욕을 겪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푸리 다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울컥 솟는 불쾌감이 단순히 괴물 서커스에 대한 반감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감정은 그리움인 동시에 원망이었고 또한 질투심이기도 했다.

스벤의 웃음소리는 기억 속의 누군가가 내는 것과 닮아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녀는 기억 저편에 묻어둔 인물을 자꾸 떠올리게 됐다.

푸리 다이는 목에 단 눈알 모양의 장식품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내려온 스벤이 클라라 옆에 다가가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가벼운 장난을 치는 것을 보았다.

푸리 다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어렵지 않게 어느 부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자신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때면 저런 식으로 옆에 다가와 기분을 풀어주곤 했었다.

‘나도 죽을 때가 다 되었나 보군.’

수십 년 동안 떠올리지 못했던 추억이 고작 며칠 전의 일처럼 자연스럽게 눈앞을 어른거렸다. 죽기 직전의 주마등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이 추억이라는 것이 그녀가 애써 외면해 왔을 뿐 언제나 그녀가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면서 항상 그녀 옆에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어째서 저 괴물서커스단의 광대가 그것을 떠올리는 계기가 된 것일까?

푸리 다이는 자신을 옆에서 보좌하는 원로에게 저 남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당연한 소리였지만 저 남자와 기억 속의 그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구태여 이름을 캐물어 무엇하겠는가 싶었다.

스벤의 등장 때문에 잠시 지체되기는 했지만,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사회자는 바퀴의 서커스와 괴물서커스단의 동점을 선언했다. 이로써 공동 1위가 2명, 공동 3위가 3명이 되어 버렸다.

“동점일 경우 상품은 어떻게 됩니까?”

“대결을 통해 상품의 행방을 결정해야 합니다.”

노천극장 측에서는 동점자들끼리 맞붙을 종목을 소개했다. 서커스단별로 대표를 10명씩 뽑아 그중 3명이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불러서 그 가면 뒤의 인물이 10명 중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것이었다.

“너무 특이한 체형을 가진 단원은 안 되겠어. 실루엣만으로 들킬 수 있잖아.”

“아니, 잠깐. 그걸 역으로 이용해서 함정을 팔 수도 있지 않을까?”

우선 공동 3위를 한 3개 팀이 나와서 대결에 들어갔다. 그중에는 카렌이 속한 파파엘 서커스도 있었다.

“세 팀 다 우리에게서 정보를 훔쳤는데.”

“그래도 우리는 파파엘을 응원해야겠지?”

“이래저래 힘을 빌려준 적이 많잖아.”

그렇게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은 파파엘을 응원하고 나섰다. 카렌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그들을 돌아보았다가 원더스타인이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선배는 아직도 어제 일로 화나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원더스타인은 카렌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현재 원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한 계획을 생각하는 것만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설마 스벤이 막판에 그렇게 가면을 들고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그녀는 루미가 바뀐 상황에 맞춰 어떻게 계획을 수정할지 알지 못했다. 갑자기 행사 도중에 난입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사방에 귀를 기울이고 언제든 루미의 움직임에 맞춰 대응할 준비를 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핫핫, 다 잘 될 겁니다. 우리 단원들을 믿고 있으세요.”

스벤은 그런 그녀의 속도 모르고 그녀를 위로하고 나섰다. 그를 포함한 다른 단원들은 다들 그녀가 바퀴의 서커스로 넘어가는 문제 때문에 심란해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기는 것만 생각하자고.”

“클라라 누나의 거취 문제는 나중에 고민하면 돼.”

“맞아요. 만약 클라라 양이 그쪽으로 간다면 위풍당당한 정복자가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고, 가지 않는다고 해도 3성 서커스단을 꺾었다는 자부심을 안고 가는 거잖아요? 엘라 말이 맞아요. 당장 이기는 것만 생각하죠.”

괴물서커스단 사람들은 마음이 복잡해 보이는 클라라를 내버려 두고 자기네들끼리 누가 10명에 속할 것인지, 또 그중 노래를 부를 3명은 누구로 할 것인지 의견을 나눴다. 회의는 평소처럼 단원들의 기량에 대해서는 엘라와 레이나가 도맡아서 정리했고, 정석적인 전략은 아나이스와 니카가 마련해주었으며, 야바위 같은 속임수는 도스빌 남작이 간간이 의견을 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대결을 준비하는 동안 3위 결정전은 어느새 끝나 버렸다. 그들의 승부는 카렌에 의해서 갈렸다.

파파엘 서커스가 내보낸 마지막 가수는 누가 들어도 여자애처럼 새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다른 두 서커스단은 파파엘이 내보낸 10명의 후보 중에 카렌과 다른 곱상한 남자애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에 각각 다른 사람을 골랐다.

그런데 그 목소리의 주인은 두 사람 다 아니었다. 10명 단원 중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중년 남성이 자신을 가면의 주인으로 밝히고 나섰다.

“말도 안 돼!”

“난 당연히 파파엘의 미소녀인 줄 알았는데?”

털보 단원은 반발하는 상대 팀 앞에서 직접 간드러진 목소리로 노래를 해 보임으로써 그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설마 저런 산적 같은 생김새의 단원이 저렇게 여자 목소리를 잘 낼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파파엘 서커스가 앞선 두 번의 차례에서 실루엣으로 동물 흉내를 낸다든가 기묘한 사물의 그림자를 만드는 등 시각적인 속임수를 먼저 시도했기에 더 효과적일 수 있었던 작전이었다. 앞선 시도들 덕에 사람들은 3번째로 나온 배 나온 아저씨 같은 실루엣이 정말로 배 나온 아저씨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것으로 만우절 행사의 3위는 파파엘 서커스로 결정되었다. 검은 쫄쫄이를 입은 수십 명의 사람이 무대 위에서 몸을 엮어 몇 가지 실루엣을 만들어 보이고는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자, 이제 우리 차례군.”

사회자가 신호를 내림에 따라 바퀴의 서커스와 괴물 서커스 진영에서 10명의 대표가 나와 무대 위로 올랐다. 그들 모두 각각 1부터 10까지의 번호를 달고 있었다.

“아니, 잠깐! 저기는 한 사람 아닌가요?”

바퀴의 서커스에서 이번 대결의 총지휘를 맡은 중년의 단원이 항의하고 나섰다. 그는 트라이머리 형제가 한 번에 3개 분량의 번호를 몸에 달고 있는 것을 지적했다.

“뭐야? 이 인간이 우릴 뭘로 보는 거야? 우리는 각각 개별적인 인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래. 그래. 대회에 등록할 때도 각각 한 명씩 했는데?”

“그런 지적은…… 차별이다! 차별!”

극장 측은 운영진끼리 잠시 논의를 거치더니 셋이 독립적으로 소리를 내는 게 가능한 이상 이번 게임에 참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에 따라 바퀴의 서커스 쪽 대표는 난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괴물 서커스 쪽은 대회 규정상 무대 위에 오를 수 있는 곡예사의 수가 트라이머리 형제를 포함해 10명 조금 넘었다. 그들이 쓸 수 있는 카드의 수는 한정된 데다가 그들 대부분 개성 강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가면 가수의 정체를 알아맞히는 이번 게임은 자신들이 100%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라이머리 형제가 3명으로 인정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의 기우는 현실이 되었다. 괴물 서커스 측에서 올려보낸 첫 번째 가수의 실루엣은 3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자, 확률은 3분의 1.”

“잘 맞춰 보라고.”

“우리 중 누구일까?”

반주와 함께 트라이머리 형제는 발을 구르더니 머리 중 하나가 과제로 나온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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