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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85

EP.484 18. 만우절 (26)

그것은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절 스벤이 어느 항구에서 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이 소각되는 장면을 보고 지은 노래였다. 가사도 곡조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것을 지었을 때, 그는 아내에게 무지하게 욕을 들어먹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그 노래를 딸을 위한 자장가로 기획했기 때문이다.

-내용이 너무 무섭잖아! 그게 애한테 들려줄 노래야?

-핫핫, 자장가는 자고로 가사가 으스스해야 해! 유명한 자장가들을 봐. 다 그런걸. 잠이란 곧 죽음에 대한 은유라는 걸…….

-헛소리! 애가 경기를 일으키겠어. 어, 잠시만, 잠들었잖아? 에스메랄다…….

-핫핫, 우리 딸은 명곡을 알아보는군.

-……듣다가 기절한 게 아닐까?

-기절은 너무하잖아, 여보! 어이, 매즈! 반주를 좀 붙여주겠나? 이왕 흥이 붙었는데 제대로 완성해보고 싶군. 응? 당연히 신나는 것으로!

가사에 어울리지 않게 노래의 가락은 제법 유쾌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해골 머리 아가씨…… 어찌하여 금빛 머리카락만 남으셨소?”

특히 바퀴의 서커스 쪽에 그런 사람이 많았다. 승부가 이미 결정되었다는 생각에 분위기가 느슨해진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스벤의 노래가 그들 부족에 전해 내려오는 노래들과 분위기가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익숙한 건가? 아닌데…… 분명 같은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응? 형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오? 나도 솔직히 한 번 들은 적 있는 것 같소.”

특히 원로들이 스벤의 노래에서 기시감을 많이 느꼈다. 가수의 정체를 파악한 그들은 본격적으로 그가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상당히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부족에서 유래한 노래인가?”

“내용만 보면 100년은 된 거 같은데. 흑사병 시절 아냐?”

부족에서 오직 한 명만이 그 시절을 살아왔다. 원로들은 푸리 다이를 돌아보며 노래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없는지 여쭤보려 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그들은 입을 딱 다물고 말았다.

“거기 춤추는…… 해골 머리 아가씨…….”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스벤을 따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속도는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빨랐다. 그녀는 거의 스벤과 같은 속도로 아니, 가끔은 그를 앞지르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마치 원래부터 이 노래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제야 원로들은 이 노래를 언제 들었는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수십 년 전, 푸리 다이의 생일날, 조르주의 딸이 잔치 도중에 울기 시작했고 아무리 달래도 그칠 줄을 몰랐다. 그때, 푸리 다이가 그녀를 품에 안고 저 노래를 불렀고, 아이는 금방 울음을 멈추고 잠들고 말았다.

“그랬군. 맞아. 그때 어머니께서 부르셨던 그 자장가야.”

“그 뒤로는 한 번도 부르신 적 없지?”

“언급 자체를 싫어하셨지.”

“그래도 예전에는 몇 번 언급됐던 것 같은데…….”

“그 아이가 부족에서 쫓겨나 버리면서 그만 아무도 안 꺼내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

원로들은 괴물서커스단의 가수가 어째서 그 노래를 알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몇몇 원로는 클라라가 제 아버지에게 전해 들어서 단원에게 가르쳤을지도 모를 거라고 말했다. 그럴듯한 추론이었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푸리 다이와 가까이 서 있던 원로 한 명은 그녀 앞에 놓인 스피커 위의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녀가 늘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었다.

사람 눈알의 모양을 한 장식품. 그것이 제자리에서 팽그르르 돌고 있었다.

그것은 실린더 레코드의 공명 현상이었다. 실린더 레코드의 원리는 원통의 내부를 밀랍으로 채우고 축음기의 바늘을 통해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밀랍에 기록하면, 재생기의 바늘이 밀랍의 홈을 따라 움직이며 녹음한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었다.

실리던 레코드는 원통형 구조를 하고 있었기에 바닥에 놓고 수직으로 세워둔 상태에서 녹음할 때와 똑같은 진동이 전해진다면 실린더 레코드의 내부에 새겨진 홈이 그 소리에 반응해 스스로 회전하곤 했다. 그것이 바로 실린더 레코드의 공명 현상이었다.

그것은 유리잔의 고유진동수에 맞춰 소리를 가한다면 깨지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실린더 레코드에 있어서 고유진동수란 곧 내부에 새겨진 소리의 홈이었다.

“이게 무슨…….”

“귀신이 들렸나.”

푸리 다이 근처에 있는 사람 중에 실린더 레코드가 그러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음반의 시대였고 구시대의 유물인 실린더 레코드의 원리는커녕 그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사실 실린더 레코드가 유행하던 시절에도 공명 현상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늙어서 귀가 어두운 푸리 다이를 위해 스피커를 그녀 앞에 가져다 둔 것과 그녀가 목에 걸고 다니는 장식품을 하필 그 위에 얹어둔 것이 합쳐서 벌어지는 우연한 현상이었다.

아니, 그중 가장 큰 우연의 존재를 꼽자면 스벤의 존재였다. 그는 100년도 더 전에 기록된 노래와 똑같은 노래를 똑같은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끼이익. 계속되는 공진 현상에 실린더 레코드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금이 가 버렸다. 안에 든 밀랍도 증폭된 에너지 때문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깨진 눈알에서 흘러내리는 붉은색 밀랍 때문에 마치 눈이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아.”

그것을 본 푸리 다이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그녀가 매번 버린다고 버렸지만, 주변 사람이 자꾸 주워주는 탓에 100년 넘게 품어왔던 물건이었다.

아빠와의 추억이 깃든 하나뿐인 유품. 그것이 망가져 버렸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자신의 믿음도 배신했던 아빠.

푸리 다이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눈알은 공진 현상의 영향 때문에 따끈따끈했다. 방금 막 사람의 눈에서 뽑아낸 것처럼.

-으악, 내 눈! 내 눈!

-꺄악, 아빠! 매즈 삼촌, 크, 큰일 났어요! 아빠가!

-에스메랄다, 너 또 속은 거야. 저거 가짜야.

-뭐, 뭐라고요? 아이, 씨, 아빠! 무슨 짓이에요?

-아이고, 우리 딸 또 속았지? 이번에 새로 들어온 녀석 손재주가 좋더라. 실린더 레코드에 장식을 좀 덧붙여 달라고 했더니…….

-제 어릴 때 추억이 담긴 자장가라면서요! 거기에 이딴 걸 붙여요?

그녀는 망가진 눈알을 손에 꼭 쥐었다. 눈알에서 전해지는 온기 때문일까. 마치 아빠가 살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자, 흥겨운 노래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 선택의 시간입니다.”

노래가 끝났다. 장막 뒤의 가수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녀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번호표를 단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푸리 다이의 눈은 그중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조르주와 집시 권법을 나누었다던, 귀에 익은 웃음소리를 내던 남자에게.

“가마를 앞으로 몰아라.”

그녀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젊은 부족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만 바라봤다.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원로는 당장이라도 일어설 것처럼 몸을 들썩이는 그녀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했다.

“어머니, 위험합니다. 앉아 계세요.”

“시간이 없다. 가마를 앞으로 몰아!”

그녀는 초조한 듯 가마 바닥을 붙잡고 몸을 흔들었다. 지금 가지 않는다면 영영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아빠가 남긴 마지막 유품도 망가진 지금 그녀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저기로!”

“알겠습니다.”

원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마를 쥔 젊은 애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녀는 당장이라도 땅바닥에 몸을 던질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태운 가마가 인파를 헤치며 앞으로 나오고 있을 때, 클로팽은 무대 위에 올라 처음 그랬던 것처럼 경기를 해설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어떻게 가면 가수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는지 말이다.

“자, 그러면 말해주시죠! 가수의 정체는 과연 누구입니까?”

“네. 그건 말입니다. 바로…….”

그가 막 밴딕의 번호를 말하려는 그때, 가마가 마침내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왔다. 푸리 다이는 무대 위를 향해 악을 쓰듯 소리쳤다.

“스벤!”

“어머니?”

클로팽은 당황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쏠리는 이목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한 사람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자, 바퀴의 서커스에서 단장이 아닌 분이 나와서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물론 이래도 유효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정답은 번호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푸리 다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스벤과 눈을 마주쳤다. 가면 뒤로 보이는 것은 해골의 텅 비고 공허한 눈이었지만, 그녀는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4번. 키르쿠스의 눈 부족의…… 스벤.”

그녀의 선언에 클로팽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이 정답으로 생각하던 번호와 다른 번호를 말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키르쿠스의 눈 부족?”

“그건 또 어디지?”

웅성대는 단원들 사이에서 몇몇 장로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도저히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키르쿠스의 눈 부족이라니? 그럴 리가…….”

“그건 어느 부족입니까, 원로님?”

단원들의 질문에 원로는 잠시 푸리 다이와 무대 쪽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그들에게 반문했다.

“우리 부족의 상징이 뭔지 아냐?”

“바퀴잖아요. 룸니는 유랑민족이니까 바퀴를 깃발에 그려 넣은 것 아니에요?”

“그건 깃발을 만든 다음에 나중에 그럴듯한 해석을 붙인 것이다. 원래 그건 바퀴가 아니라 ‘눈알’이다.”

“눈알이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

단원은 깃발에 그려진 그림을 떠올렸다. 붉은 원 안에 중심을 향해 뻗친 몇 개의 살이 중앙에 점이 박혀 있었다. 바퀴의 서커스라니까 당연히 그것을 볼 때 바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눈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키르쿠스의 눈 부족은 우리 부족의 원래 이름이다. 키르쿠스의 눈 부족의 부족장이신 푸리 다이께서 곡예를 하는 유랑민들을 끌어모아 바퀴의 서커스라는 서커스단을 만든 거지. 그리고 서커스단과 부족이 사실상 일체화된 이후, 어머니께서는 그냥 부족과 서커스단의 이름을 통일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려 85년 전의 일이다. 지금 단장인 조르주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란 말이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 중에 키르쿠스의 눈 부족 출신은 푸리 다이 본인밖에 없다.”

“푸리 다이께서 말실수하신 것 아닐까요? 어른들은 원래 새로운 이름이 생겨도 옛날 이름으로 많이 부르곤 하시잖아요. 룸니도 계속 집시라고 하시는 것도 그렇고…….”

젊은 단원들의 말에 원로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한 번도! 푸리 다이께서는 그 둘을 혼용하신 적이 없다. 저분은 언제나 바퀴의 서커스 시절과 키르쿠스의 눈 시절을 따로 취급했어.”

“네? 하지만 분명 저 사람 보고는…… 엇?”

단원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푸리 다이가 지목한 사람이 가면을 벗었기 때문이다. 해골 가면 뒤에는 진짜 텅 빈 해골이 있었다. 그제야 몇몇 단원은 괴물서커스단에 저런 특징을 가진 인물이 있음을 떠올렸다.

“해골 광대?”

“맞아. 그런 단원이 있다고 했어.”

“잡지에서 봤어. 그 이름이 분명…….”

해골 광대는 무대 위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 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단 하루도 그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늙고 쭈글쭈글해졌지만, 그는 그녀의 눈, 그녀의 귀, 그녀의 코, 그녀의 입. 그녀의 모든 곳에서 그가 기억하는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에스메랄다?”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지 108년이 흘러 스벤은 딸 앞에 서게 됐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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