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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86

EP.485 18. 만우절 (27)

에스메랄다는 경기라도 일어난 것처럼 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는 불신 가득한 눈으로 그녀 앞에 선 남자의 용모를 살폈다.

살점 하나 보기 힘든 깨끗한 백골이었다. 생전의 그가 지녔던 모습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그녀가 평생 그리워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스벤. 키르쿠스의 눈 부족의 초대 부족장이자 그녀의 아빠.

그녀는 혹시나 자신이 환상을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눈을 깜빡이거나 볼을 꼬집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의 지각력을 시험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정말로 눈앞의 남자가 사라져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참을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 그녀는 말라붙은 입을 간신히 떼어 소리를 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대 근처에 선 사람들밖에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힘이 없었다.

“……왜?”

“에스미.”

그녀는 삽시간에 수십 년은 늙어버린 사람처럼 피부가 창백하고 푸석푸석하게 변했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만은 근 수십 년 만에 가장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마지막으로 자신의 남은 생명을 태우는 숯 같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이제야 나타난 거예요? 왜 이제야…….”

“진정하렴.”

스벤은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어떻게든 그녀의 격정을 가라앉히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에 그는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왜…… 나를 버린 거예요?”

“그건…….”

스벤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의 질문에 도저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변명도 그녀가 기다린 세월에 대한 답이 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녀에 대한 그의 죄책감을 덜 수 없을 것 같았다.

“왜! 왜! 왜! 왜! 왜! 왜!”

에스메랄다는 피를 토할 기세로 소리쳤다. 그러다 그녀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풀썩 쓰러지고 말했다. 기력을 모두 소진해버린 것이다.

“에스메랄다!”

스벤이 놀라서 그녀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그녀를 보좌하던 바퀴의 서커스 단원들이 먼저 달려나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사이 객석에 있던 모든 부족민이 뛰어나와 그녀를 에워쌌다.

“부족장님! 부족장님!”

“의사를 불러라, 어서!”

“모두 물러서시오!”

만우절 행사는 바퀴의 서커스 측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러나 현재 노천극장 안에 그에 대해 기뻐하거나 실망하고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양쪽 진영 사람들 모두 승패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더 충격을 받았다.

혼란스러워하는 단원들 사이에서 클로팽은 말없이 해골 광대를 바라봤다.

“비켜! 비키라고! 나는…… 나는 약속을 지켜야 해…….”

스벤은 에스메랄다가 있는 가마 근처로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썼다. 그러나 바퀴의 서커스 쪽 단원들의 강경한 제지에 그는 다가가기는커녕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에스메랄다! 에스메랄다!”

그는 필사적으로 푸리 다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은 소수의 부족민만이 알고 있는 그녀의 본명이었다.

부족 내에서도 그녀와 함께 서커스단을 세웠던 1세대 부족민만이 그녀를 그렇게 불렀었다. 그래서 마지막 1세대 부족민이 20여 년 전 세상을 떠나고 난 이후로 그녀는 거의 본명을 불리지 않았다.

혹시 저 해골 광대가 어머니와 동 세대의 사람은 아닐까? 몇몇 원로들의 생각이 거기에 닿았을 무렵, 클로팽은 전혀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무대 위에 서 있었기에 두 사람이 나누던 대화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거기다 그는 어머니가 가장 신뢰하는 아들인 동시에 그녀의 장남이었고, 그녀의 과거에 대해 그녀 자신을 제외하면 제일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부족민 중 그만이 스벤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어머니의 반응으로 봤을 때, 그는 스벤을 그 외의 다른 존재로 생각할 수 없었다.

“에스미! 제길! 비켜!”

“우리 부족장님이오! 당신은 도대체 누군데 그러오?”

“나는…… 나는…… 에스미의…… 에스메랄다의……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달려들던 와중에 또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받은 스벤은 그만 몸에서 힘이 빠지고 말았다. 그는 결국 뒤로 넘어져 몸이 와장창 흩어졌다. 하필 다리뼈를 다른 사람 것으로 교체한 터라 몸의 결합이 평소보다 더 약했다.

그가 몸을 다시 이어붙이는 사이 에스메랄다를 실은 가마는 극장을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클로팽은 어머니가 기절하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물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평생을 애지중지했던 눈알 모양의 장식품이었다. 그것은 현재 깨져버렸고 틈 사이로 흘러내린 붉은 밀랍은 굳어 있었다.

어머니 근처에 있던 단원들이 그러길 눈알은 노래에 반응해 저절로 뱅글뱅글 돌았다고 했다. 클로팽은 한때 실린더 레코드에 대해 깊게 연구한 적이 있었기에 그것이 공명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벤? 괜찮아요?”

“아.”

멍하니 바닥에 앉아 딸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스벤은 그제야 옆에 원더스타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클라라 양? 하핫…… 핫핫핫! 이, 이거 면목이 없군요……. 그렇게 자신했는데…… 결국 정체를 들키고 말았습니다…….”

스벤은 자신을 둘러싼 단원들을 둘러보며 사죄의 동작을 취해 보였다. 그러나 그중에 그를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그의 과거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그가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의 말투는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거기다 그 내용 역시 강렬했기에 다들 잊어버리기도 쉽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에스메랄다라니? 당신…… 설마?”

“…….”

엘라의 추궁에 스벤은 아무 말 없이 가마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그의 진중한 모습에 아무도 대답을 재촉하지 못했다. 스벤의 과거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방금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 다들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헤어진 아빠와 딸이 무려 100년 만에 재회한 것이었다. 아무도 감히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에스메랄다? 그게 누구야?”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물론 단원 중에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형의 집 사건 당시 납치당했던 사람들과 원더스타인 거기에 속했다.

스벤이 자기 과거 이야기를 한 것은 인형의 집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였다. 그때, 원더스타인은 미노바와 싸우고 차량 밖으로 나가 있었다.

비록 음향실을 통해 귀를 터놓기는 했었지만, 인형의 집 공략을 준비하느라 미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원더스타인 본인 이야기가 나올 때만 그는 간간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었다.

“아, 맞다. 클라라 선배는 그 자리에 없었지. 루엘로, 니카도?”

자신이 스벤의 과거를 그들에게 말해 줘도 되나 엘라가 고민할 때, 바퀴의 서커스 측에서 일군의 무리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단장인 클로팽과 그를 보좌하는 단원들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가 발생해서 혼란이 조금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스벤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를 마주 보고 섰다.

“우리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과정이 어쨌든 우리가 이기긴 이겼다. 약속한 대로라면 우리가 받은 권리를 집행해야겠지.”

“클라라 언니를 강제로 데려가겠다는 소리예요?”

루엘로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섰다. 클로팽의 뒤에 선 곡예사들은 그런 그녀를 보며 조소했지만, 그녀의 동료들은 놀라서 그녀를 제지했다.

“너희들이 받아들인 조건이다.”

“네. 알고 있어요. 당신들이 영입 제안을 하면 거절하지 않기로 했었죠……?”

원더스타인은 굳은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 클로팽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더니 곧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래. 우리가 제안하면 네가 거절하지 않는다. 그것이 조건이었지. 하지만 우리가 제안하지 않았는데 네가 스스로 우리 서커스단으로 올 의무는 없다.”

“그게…… 무슨 말이죠?”

클로팽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방금 밖에서 연락이 왔다. 푸리 다이께서 정신을 차리셨다.”

“괘, 괜찮은 겁니까, 에스메랄다는?”

스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클로팽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놀라서 잠시 기절하신 것일 뿐이오.”

“그거 다행이군요. 에스메랄다…… 그러니까 족장님은 많이 놀라셨습니까?”

“무척 놀라셨지. 죽은 줄 알았던 인간이 100년 만에 나타났으니 오죽하겠소.”

클로팽의 말에 스벤은 입을 딱 다물었다. 그제야 그는 상대가 에스메랄다의 아들이라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그는 그에게 있어서 손자라는 말이 됐다. 상대의 말투로 봤을 때, 그 역시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클로팽은 이 자리에서 그에 대해 길게 말을 나눌 생각은 없었다. 그의 앞에 가족으로서 서는 일은 누구보다 어머니에게 우선권이 있었다. 그는 서둘러 본론으로 넘어갔다.

“부족장님께서는 권리 행사의 대상을 바꾸길 원하셨소. 클라라 대신 스벤이라는 남자를 데려오라고 하더군.”

원더스타인은 아직 두 사람의 관계를 몰랐기에 그녀가 왜 스벤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클로팽과 스벤의 대화를 통해 오래된 인연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만우절 행사의 상품으로 곡예사의 이적은 요구할 수 없어요.”

“그렇지.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이적이 아니오. 대여지. 그건 가능하지 않소. 2등 상품으로?”

그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우절 행사의 2등 상품. 그것은 다른 서커스단의 곡예사를 24시간 동안 빌릴 수 있는 것이었다.

“방금 대결로 순위는 결정되었소. 우리가 1등, 그대들이 2등이지. 하지만 우리는 2등의 상품을 사용하길 원하오. 그대들은 1등의 권리 행사를 막길 원하고. 서로 상품을 교환하는 게 어떻겠소?”

“우리로서는 나쁠 게 없지만…… 그러면 스벤이 하루 동안 당신들 쪽으로 가 있어야 하네요. 괜찮겠어요?”

스벤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군요.”

“어머니는 당신을 당장 데려오라고 하셨소만?”

“에스메랄다가 많이 놀랐다고 들었습니다. 그녀가 꿀물을 한 잔 마신 다음 박하를 태운 향을 들이키며 즐거운 노래 몇 곡을 부르게 한 다음에 보고 싶습니다.”

스벤의 말에 클로팽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어머니가 어린 자신을 달래줄 때마다 권하곤 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2세대 부족민들에게는 추억과도 같은 의식이었다.

그것의 효과는 상당히 좋았다. 클로팽도 종종 마음의 정리가 필요할 때, 혼자 천막에 앉아 그 의식을 행하곤 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어디서 배운 민간요법인지 물었고, 그녀는 그때마다 계속 대답을 회피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그는 그것이 누구로부터 유래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나도 그것을 양해받고 싶었소. 어머니의 심신이 조금 진정된 다음 두 분을 뵙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이오. 당신의 그 치료법대로라면 아마 몇 시간 안 걸릴 거요.”

”역시 그런가 보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엘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작 꿀물을 마시고 노래 몇 곡 부르는데 무슨 몇 시간이나?”

그녀의 질문에 클로팽과 스벤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어머니를 그렇게 하도록 설득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말일세.”

“그녀가 당장 대령하라고 했으니 일이 그렇게 흘러가겠죠. 그녀는 쇠고집이니까요. 하지만 조금 실망이군요. 저는 30분이면 설득했을 텐데요.”

“100년이면 사람이 더 고집스럽게 변하기 충분한 시간이오.”

클로팽과 스벤은 서로 가벼운 조소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두 서커스단 사이의 거래는 성립되었다. 바퀴의 서커스 쪽은 일단 인질로 원더스타인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원더스타인, 당신이 저 남자를 데리고 저녁 시간에 맞춰서 우리 부족을 찾아와 주시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클라라는 원더스타인에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그녀는 이 문제보다 점점 꼬여가는 상황이 더 걱정이었다. 과연 오늘 안에 클라라가 자기 몸으로 돌아가길 원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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