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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87

EP.486 18. 만우절 (28)

“단장님, 반드시 데리러 와주셔야 해요.”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클라라 양. 이건 단지 사소한 이벤트일 뿐입니다.”

“그냥 조금 불안해서요…….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요.”

바퀴의 서커스로 떠나기 전에 원더스타인은 클라라의 품에 달려들어 불안에 떠는 연기를 했다. 그는 오라버니가 자신을 의지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녀가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단원들은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무려 15년 만의 귀향이었다. 게다가 그녀에게 있어서 그곳은 단순한 고향이 아니라 그동안 원한을 쌓아두었던 복수의 대상이었다. 그런 곳에 포로 신세로 끌려가니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스벤은 조용히 클라라에게 다가가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클라라 양은 제 과거 이야기를 못 들으셨죠?”

“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스벤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어린 단원들에게 언제나 친구의 위치로 다가갔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연장자 행세를 하는 일은 없던 그였다.

원더스타인은 그가 이러는 것은 처음 봤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스벤?”

“아, 실례했습니다. 기분 나쁘셨나요?”

“아뇨. 그냥…… 낯설어서 그래요.”

스벤은 이제 클라라를 단순한 동료로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클로팽의 손녀였고, 그렇다면 자신에게 현손녀가 됐다.

그는 그녀를 좀 더 격려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고 그녀에게서 물러났다. 지금 자신이 그녀에게 베풀려는 친절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없었다.

딸에 대한 죄책감을 클라라에게 투영해 해소하려는 것일 뿐이었다. 자신은 그런 식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서는 안 됐다.

“나중에 둘이서 얘기하죠. 부디 가서 엉뚱한 짓만 하지 말아주세요.”

“알겠어요.”

원더스타인은 단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괴물서커스단 사람들은 다들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사실 그녀는 조금도 긴장하거나 떨고 있지 않았다.

방금까지 그녀가 보인 모습은 모두 연기였다. 루미의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기다릴게요.”

그녀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최대한 처연한 표정을 클라라에게 지어 보이며 마차에 올랐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 다른 서커스단에서 누군가 이쪽으로 달려 나왔다.

“잠깐만요! 저도 같이 가도 되죠?”

그건 바로 카렌이었다. 그녀는 3등 상품으로 받은 것을 그들 앞에 내밀어 보였다.

“24시간 동안 다른 서커스단을 손님으로서 견학할 수 있는 권리예요. 지금 사용하겠어요.”

“카렌? 괜찮겠어? 너희 오빠랑 상의한 거야?”

엘라의 질문에 그녀는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해 보였다.

“어차피 우리가 3등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너희들 정보를 훔쳤기 때문이잖아. 오빠가 나보고 마음대로 하라고 했어.”

“굳이 안 따라와도 되는데…….”

원더스타인은 괜히 그녀가 따라옴으로써 루미의 작전이 틀어질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카렌은 오히려 그녀 옆에 딱 달라붙더니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적지에 혼자 갔다가 무슨 일을 당하려고요? 제가 옆에서 지켜드릴게요. 어제의 빚도 갚을 겸.”

“안 갚아도 되는데…….”

원더스타인은 카렌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되려 다른 단원들이 그녀의 등을 떠밀고 나섰다. 아무래도 원더스타인이 방금 너무 열연을 펼친 탓에 다들 그녀가 그곳에 가면 무슨 일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된 것이다.

“카렌이 있으면 안심이지.”

“클라라를 옆에서 잘 다독여 줘.”

“꼭 데리러 갈 테니, 얌전히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마차를 타고 바퀴의 서커스로 떠나게 됐다. 1시간 정도 마차를 달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마차와 천막들이 즐비한 거대한 공터였다.

프라빈은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기 위한 재개발 사업이 한창이었고 도시 곳곳에 이처럼 기존의 거리를 싹 밀어버리고 텅텅 비어 있는 땅이 많았다. 그 덕에 바퀴의 서커스는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야영장을 구할 수 있었다.

“저 여자가 클라라인가?”

“단장님의 숨겨진 외손녀라는.”

“푸리 다이 자리를 노린다면서?”

부족 안으로 들어서자 원더스타인은 곳곳에서 자신을 향한 수군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를 보는 시선들은 그렇게 곱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아테레나 극장에서 있었던 일이 전해져서 부족 안에 쫙 퍼진 참이었다. 그런데 푸리 다이가 쓰러졌다는 사태까지 일어나자 괴물서커스단이 그분에게 무슨 수를 쓴 것은 아닐까 하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다.

젊은 부족민들이 특히나 그녀를 경계했다. 고작 수십 명의 어중이떠중이를 이끌고 자신들과 대등하게 싸운 그녀의 솜씨는 탄복과 시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클로팽의 총애를 받고 후계자로 낙점되었다는 소식은 그들의 질투심에 더욱 불을 지폈다. 그래서 그들은 있는 소문 없는 소문 다 부풀려 그녀를 비방했다.

“만우절 행사도 알고 보면 짜고 친 거 아니야? 단장님이 클라라 쟤를 후계자로 밀고 있으니까 아마 물밑에서 이런저런 거래가 오가지 않았을까?”

“그럴 확률이 높지. 레카체프에 친구가 있어서 들은 건데, 쟤 수석을 유지하려고 교수님에게 몸을 팔거나 악마랑 거래도 하고 그랬대.”

평소 클라라에 대한 반발심이 컸기에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은 금방 퍼져나갔다. 원더스타인은 주변에서 들리는 자신을 향한 속삭임들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너희들은?”

원더스타인은 클로팽의 명령을 받은 부족민을 따라 손님용 천막으로 안내받았다. 그러나 정작 천막 앞은 수십 명의 젊은 단원들이 길을 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다들 경멸을 한껏 담은 표정을 지은 채 도전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레카체프 수석이라.”

“네가 정말 단장님의 후계자야?”

“그건 부족에서 나고 자란 우리가 앉을 자리야. 외부인이 설치는 꼴은 못 보지.”

그들 중에는 클라라의 나이 절반 되는 이도 있었고 2배 되는 이도 있었다. 그들 모두 클라라와 같은 항렬의 4세대 부족민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들을 보니 기가 찼다. 정작 클라라는 부족으로 돌아갈 생각 따위 눈곱만큼도 없는데. 진짜 그녀가 이곳에 왔다면 얼마나 고립되고 힘들었을까.

원더스타인은 그녀에 대해 동정심이 울컥 솟았으나 재빨리 표정을 냉정하게 고쳤다. 사정이야 어쨌든 지금의 클라라는 바로 자신이었다. 괴물서커스단의 명성을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결코 이들에게 얕보일 수 없었다.

“실력도 없는 것들이 주절주절 떠들어대기는.”

“뭐, 뭐라고!”

그녀는 팔짱을 끼고 젊은 단원들을 고압적인 자세로 바라봤다. 물결치는 푸른색 머리카락에 똑 부러지는 인상의 얼굴, 단정하게 차려입은 학교 제복에서 레카체프의 학생회장다운 품격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서커스단이라길래 어느 정도일까 했는데, 고작 이 정도란 말이지? 내가 손에 넣을 가치도 없겠는데?”

그녀는 그들을 향해 노골적인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도발적인 태도에 몇몇 단원이 분개한 표정을 짓고 나서려 했다. 다들 자신의 실력에 자신 있는 자들이었다. 안 그래도 그들은 클라라에게 덤비겠다고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레카체프 수석이라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군.”

“그럼 우리에게 그 실력이라는 것 좀 가르쳐 주겠나?”

수십 명의 곡예사가 클라라를 둘러싸고 섰다. 그동안 그녀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카렌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덤벼봐! 선배를 대신해 내가 네놈들을 다 때려눕혀 줄 테니까.”

“넌 또 뭐냐?”

“이제는 별것도 아닌 것들이 우리 바퀴의 서커스를 우습게 보는군.”

“지랄! 그래서 너희는 떼로 몰려와서 여자 한 명을 겁박하냐?”

팽팽한 긴장감이 그들 사이에 흘렀다. 언제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무슨 짓들이야, 손님들에게!”

그들을 제지하고 나선 것은 푸른색 주름치마를 입고 있는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진홍색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그들 앞에 섰다. 그녀는 젊은 단원 중에서도 발언권이 높은지 단원들 대다수가 그녀의 눈치를 보더니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개중에는 그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홍색 머리칼의 여인과 같은 부족 내 각 파벌의 후계자들이었다.

“카르멘. 네가 왜 우리를 막고 나서는 거지?”

“그래. 상대는 레카체프 수석이라고. 한낱 무희 따위가 낄 자리가 아닐 텐데.”

“넌 만우절 축하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들의 항의에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어깨너머의 거대한 천막을 가리켰다.

“방금 원로 회의가 끝났어. 푸리 다이께서 이 애를 귀빈으로 대접하라는 명령을 내렸어.”

그녀의 말에 다른 후계자들의 낯빛이 변했다. 유랑민에게 있어서 손님 대접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손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족민들의 죽음도 불사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그들은 손님을 모시는 일에 민감했다.

물론 그래놓고 속이고 뒤통수치는 일도 비일비재했지만, 적어도 바퀴의 서커스에서는 그 원칙이 칼같이 지켜졌다. 그런데 그 ‘푸리 다이’가 ‘귀빈’으로 대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었다. 곡예 대결 따위의 시비를 거는 일이 허용될 리 없었다.

원더스타인을 압박하던 젊은이들은 얼마 전에 부족의 법을 어겼다가 손목이 잘려 추방된 동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기겁하며 바로 길을 터주었다. 카르멘은 그것을 보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바퀴의 서커스의 젊은 무희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곡예 실력이 모자라서 푸리 다이의 후계자 자리는 노리지 못하지만, 한 파벌의 대표 자리는 충분히 물려받을 능력은 됐다.

“미안해. 다들 5일 동안 상당히 예민해져서 말이야. 네가 워낙 뛰어나서 질투하는 거야.”

카르멘의 등장에 카렌은 재빨리 원더스타인의 뒤로 숨었다. 그녀는 그런 카렌을 못 말리겠다는 듯 한 번 바라보고는 카르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천만에. 나는 그냥 축제를 망치는 게 싫었을 뿐이야.”

“축제?”

“응. 저녁에 행사가 끝난 걸 축하하는 자리가 있거든. 우리 무희들은 그 무대를 준비하고 있어. 네가 귀빈이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게 예의지. 우리 부족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도 마찬가지겠고. 그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플라멩코라도 추는 거 어때? 설마 플라멩코를 모르지는 않겠지? 단장님의 후계자라면서.”

그녀의 말에 불만을 참고 있던 주변의 젊은 곡예사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기대감이 섞인 눈으로 카르멘을 바라봤다.

그녀는 부족 내에서도 독사와 같기로 유명한 여자였다. 그녀가 정말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막으려고 끼어들었을 리 없다는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쳤다.

플라멩코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그들의 머릿속에는 동시에 어떤 그림이 그려졌다. 카르멘이 중요한 순간마다 경쟁자들을 엿 먹일 때 썼던 방법이 있었다. 그건 젊은 무희들을 장악하고 있는 그녀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주변의 분위기가 변하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상당한 보상이 걸린 서브 퀘스트가 떴다. 그냥 무대 위에 올라 성공적으로 춤을 추면 퀘스트 달성이었다.

이것이 부족의 관습이라면 참가하는 게 좋아 보였다. 게다가 플라멩코라면 그녀도 알고 있는 바가 있었다.

“좋습니다. 함께 무대에 오를게요.”

원더스타인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카르멘은 웃음을 터트리지 않게 꾹 참았다. 역시 그녀 나름대로 조사했던 게 맞았다.

클라라의 날카롭고 빈틈없는 모습은 모두 연기에 불과하고 사실 실수투성이에 허당이 그녀의 본모습이라는 것이다. 플라멩코에 숨겨진 함정도 눈치채지 못하고 선뜻 제의를 받아들인 것을 보면 확실했다.

“좋아. 그러면 레카체프 수석의 실력을 기대할게.”

카르멘은 무대 위에서 그녀를 망신시킬 생각에 떠오르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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