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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88

EP.487 18. 만우절 (29)

프라빈의 구시가지를 감싸는 순환도로는 원래 성벽이 서 있던 자리에 만들어졌다. 산업혁명 이후로 계속 커지는 도시의 구조를 재편하기 위하여 성벽을 해체하고 도로를 깐 것이다.

그것은 구도심 재개발 사업의 가장 중요한 작업이었다. 현재 링 슈트라세라고 불리는 이 순환도로에서 더는 성벽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로의 바닥을 촘촘히 채운 거대한 돌들에서 성벽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프라빈의 핵심 도로인 링 슈트라세였지만 현재 그곳의 주변은 황량했다. 도로 자체의 통행량은 많았지만, 도로의 양옆은 건물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재개발 사업은 한창 진행 중인 이야기였고, 도로 근처에 지어질 각종 관청과 시설들은 아직 첫 삽도 안 뜬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바퀴의 서커스가 빌린 공터는 그중 4시에서 7시 사이의 구역이었다. 폭 88m 길이 2.1km 도로 양옆의 10만 평 가까이 되는 공터를 대여받은 것이다.

바퀴의 서커스는 해당 공터를 이용하기 위해 상당한 사용료를 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상설 공연장을 운영해 손님들을 받아들였다. 6천 명이나 되는 대인원이 밥을 먹고 살려면 일할 기회가 있을 때 일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은 어떤 서커스를 보러 갈까?”

“불놀이 어때?”

“날씨가 좀 덥잖아. 파충류 쇼를 보고 싶은데.”

“난 그런 거 못 봐. 그러면 이건? 만우절 축제 종료 기념으로 무희들의 군무가 있다는데.”

“그거 괜찮아 보이는데?”

바퀴의 서커스의 야영장 근처에는 입장객들이 오늘 예정된 공연의 목록을 보며 일정을 짜고 있었다. 바퀴의 서커스는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와 같은 곳이었고 언제나 종합 선물 세트와 같은 다양한 구성의 볼거리를 돌아가며 제공했기에 매일 와도 질릴 일이 없었다.

서커스단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링 슈트라세를 따라 여러 곳에 나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곳으로 노인 한 명이 다리를 절뚝이며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은 돌아볼 정도로 특이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낙타처럼 등에 솟은 거대한 혹,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긴 구부정한 코, 공처럼 통통한 형태의 몸, 그리고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과 다리까지.

사람들이 그 정도로 힐끔거리면 제법 불쾌할 법도 한데도 그는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만 걸었다. 이윽고 서커스단 울타리 안에 들어선 그는 오늘의 메인 공연이 열리는 무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몸이 바뀌다니. 참 재밌는 상황이야.”

노인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에 놀라 주변 사람들이 그를 돌아봤고, 그는 곧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줄였다.

평소처럼 무대에 섰다고 생각하고 소리를 너무 키우고 말았다. 지금 자신은 공연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사실상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기회는 지금밖에 없겠군.”

그는 서커스단의 어느 지점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리고 음산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의 발아래에서 검은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일어섰다. 데볼루트는 연습한 대로 잘 움직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기다려라. 원더스타인. 내가 간다.”

이고르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무대가 있는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

괴물서커스단 사람들은 약속된 시간에 맞춰 바퀴의 서커스에 도착했다. 유랑민들의 야영장은 공연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이 클라라 선배에게 무슨 짓을 한 건 아니겠죠?”

“핫핫, 그럴 일은 적습니다. 유랑민들은 손님 접대를 중시하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스벤 씨입니다. 거래를 깰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세 사람은 입구의 경비에게 초대장을 내밀고 전용 통로로 안내받았다. 천막과 울타리 뒤편에는 바퀴의 서커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그들은 세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적대적인 눈빛을 그들에게 던져댔다.

“아무래도 미운털이 박힌 모양인데요?”

“핫핫, 뭐 어짜피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요.”

“그건 또 그렇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의 메인 스테이지를 바로 앞에서 지켜볼 수 있는 VIP 전용 객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서커스 그랑프리 관계자를 비롯하여 프라빈 시의 저명한 인사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우리를 왜 이런 곳으로 데려온 걸까요?”

“클라라 양이 무사한지부터 확인하고 싶은데.”

그들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어느새 그들의 뒤에 나타난 클로팽이었다.

“클라라는 지금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소.”

“무대라고요?”

“그렇다네. 곧 있을 플라멩코 공연에 무희 중 한 명으로 나가기로 했지.”

그의 말에 스벤이 펄쩍 뛰었다.

“이건 또 무슨 수작입니까? 설마 그 애를 망신 주려는 겁니까? 갑자기 플라멩코라니요?”

플라멩코는 집시 고유의 공연 예술 중 하나였다. 기타의 반주와 가수의 노래에 맞춰 춤꾼이 춤을 추는 것이었다.

보통 춤이라고 하면 노래의 내용을 표현하거나 연주의 감각을 보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플라멩코는 그와 다르게 춤꾼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중시했다. 즉, 무대 위에서 주역은 어디까지나 춤꾼이었다.

어찌 보면 이것은 공연이라기보다 춤꾼 개인의 흥을 발산하는 것에 가까웠다. 플라멩코는 관객들에게 일정한 형태의 무언가를 제공해주는 것보다 춤꾼이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는 것을 더욱 중시했다.

그렇다고 그건 막춤을 춰도 된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춤꾼이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는 건 자신의 감정뿐이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방식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플라멩코를 익히는 건 쉽지 않았다. 플라멩코에 사용되는 춤은 현존하는 무용 중에서 최고난도의 기교가 요구되었다.

군무로 들어가면 춤꾼들이 감정을 발산하는 방향도 제한되었다. 한 명의 메인 댄서를 축으로 움직이는 ‘에헤’, 두 명의 메인 댄서를 따라 편을 나누는 ‘보헤미안’, 둘씩 짝을 이루는 ‘파’ 등 다양한 형태를 띠었다.

“그래서 방식은 어떻게 됩니까?”

스벤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질문했다. 클로팽은 잠시 주저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보헤미안이오. 물론 메인 댄서를 맡게 됐소.”

“당신!”

스벤은 클로팽의 멱살을 붙잡았다. 보헤미안은 두 명의 주역 춤꾼이 보조 춤꾼들을 이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두 주역의 기량에 따라 보조 춤꾼들의 감정 표현이 서로 팽팽히 맞서기도 하고 한쪽으로 쏠리기도 했다.

클라라는 플라멩코를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배웠다고 해도 피상적인 면에서 그쳤을 것이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최소 10년은 플라멩코를 전문적으로 익혔을 것이고, 그동안 함께 호흡을 맞춘 사이였다. 그 자리에 클라라가 오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했다.

아마 무대는 사실상 한 명의 무희를 축으로 돌아가는 ‘에헤’가 될 것이다. 그리고 클라라는 혼자서 그 무리에서 겉도는 바보가 될 확률이 높았다.

아마 상대는 그녀에게 선택하게 할 것이다. 혼자 무대를 망치는 멍청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을 중심으로 보조 춤꾼이 되어서 에페를 형성하든지.

“그 아이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야겠나?”

스벤이 드물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그는 클로팽이 클라라를 데리고 또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벤의 생각을 짐작했는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결정한 일이 아니오.”

“그럼 어떤 식으로 압박한 거지?”

“우리 젊은이 중 하나가 그 아이를 도발했고, 그녀가 받아들인 것이오.”

“그걸 네가 사주한 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

레이나가 스벤을 말리고 나섰다. 그는 한참을 클로팽을 노려보다가 마지못해 그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클로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복장을 정리하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스벤을 바라봤다.

“그러면 나머지 분들은 이곳에서 클라라를 기다렸다가 공연이 마치면 그녀를 데려가시오. 당신은 부족장님을 뵈러 가시겠소? 지금 출발하면 딱 클라라의 공연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그분에게 도착할 수 있을 거요.”

“칼 같군.”

“그래야 정확한 거래 아니겠소?”

스벤은 무대를 한 번 바라봤다가 원더스타인과 레이나를 돌아봤다. 그들은 어서 가보라고 그에게 손짓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클라라의 무대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자신은 괴물서커스단의 단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딸과 만나는 것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좋습니다. 갑시다.”

그가 자리를 떠나고 잠시 후, 화려한 치마를 입은 무희들이 무대 위로 올랐다.

***

원더스타인에게 있어서 플라멩코는 상당히 익숙한 것이었다. TT1의 보스 중 한 명인 해골 광대 스테이지의 공략에 사용되는 방식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스벤의 보스전에 들어가자마자 캐릭터들에게 ‘감정 표현-춤’을 지시한다면, 스벤은 갑자기 기존의 보스전 대신 다른 보스전을 꺼내 들었다.

-핫핫핫, 감히 저와 춤 대결을 하겠다는 겁니까? 좋습니다! 덤벼 보시죠!

그것은 일종의 리듬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는 기타 소리와 노래에 맞춰 스벤이 춤을 추고 사방에서 괴물들이 쏟아졌다.

스벤이 춤추는 동작에 따라 쏟아지는 적들의 등장 위치, 구성, 속도가 달라졌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직접 머리를 굴려서 그 수천, 수만의 적을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플레이어는 그저 기타, 노래, 춤 세 가지에 맞춰 키를 누르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3명의 용사와 6명의 보조 캐릭터들이 적들의 등장에 맞춰 각자의 방식으로 공격을 날려 그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스벤의 숨겨진 공략법에 나오는 노래의 종류는 매번 달라졌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그것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벤이 그때마다 어떤 식으로 춤을 췄는지도.

그녀는 스킬북에 ‘춤’을 끼워 넣은 다음에 스벤이 게임에서 보였던 동작들을 재현해 보았다. 거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춤추는 흐름에서 박자가 끊길 때, 어떻게 동작을 전환하느냐였다.

플라멩코에서 박자의 맺고 끊김을 구성하는 것은 총 네 가지였다. 박수, 발 구르기, 손가락 튕기기, 그리고 관객들의 함성. 그녀는 스킬북의 힘과 원작의 지식 덕분에 어떤 동작에서도 자연스럽게 맺고 끊는 형태를 취할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등이 훤히 드러나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무대 위에 올랐다. 어깨를 지탱하는 끈이 얇고 길어서 등, 겨드랑이, 가슴골이 훤히 드러났다.

‘이거 좀 민망하네.’

플라멩코를 출 때 입는 주름치마는 허리와 골반에는 착 달라붙어 있으면서도 끝으로 갈수록 통이 커지고 천장식이 늘어났다. 이 옷을 입고 춤을 추면 허리와 골반의 움직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그 움직임에 따라 치마가 이리저리 휘날리는 게 보였다. 이는 춤을 더욱 정열적이고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클라라를 도발하기 위해 여러 번 민망한 차림새를 하기는 했으나 이렇게나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춤을 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자신의 옆에 선 카르멘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매는 클라라 이상으로 육감적이었다. 진홍색의 머리카락에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푸른색 머리카락에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자신과 대비되었다.

사회자의 소개말과 함께 막이 걷히며 그들은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관객들은 가장 앞에 선 카르멘과 원더스타인을 보며 함성을 내질렀다.

기타 반주와 함께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됐다. 그것은 다행히 원더스타인이 알고 있는 곡이었다.

‘L 축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동그라미, 세모, 세모, 네모, 가위, R1 길게, 네모, R3, 네모, R3.’

그녀는 키를 누르던 박자 감각을 떠올리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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