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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89

EP.488 18. 만우절 (30)

바퀴의 서커스 측에서 준비한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곡은 수십 년 전 1세대 부족민 중 한 명이 지은 것으로 카르멘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곡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이 곡을 보헤미안으로 추면서 몇 명의 경쟁자들에게 망신을 주곤 했었다.

검은 치마를 입은 30명은 카르멘과 원더스타인 진영으로 15명씩 나뉘었다. 32명의 무희가 음악에 맞춰 만들어내는 무대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했다.

당연히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선두에 선 카르멘과 원더스타인이었다. 두 사람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정열적이고 관능적인 모습을 한껏 발산했다.

‘레카체프 수석이라는 이름이 허세는 아니군.’

카르멘은 그래도 원더스타인이 첫 번째 구간을 끝내기 전에 한 번은 실수할 줄 알았다. 박자를 놓치거나 혹은 상대역인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고 버벅대거나.

그런데 그녀는 약간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았다. 완벽한 박자와 속도로 곡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치마를 흔드는 솜씨나 감정을 표현하는 동작들 역시 완벽했다.

그녀가 허리를 돌리고 엉덩이를 튕기고 가슴을 흔들 때마다 사람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심지어 아까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적대심을 불태웠던 젊은이들조차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온전히 관객들의 시선을 독점할 줄 알았던 카르멘은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다. 상대는 단장님의 손녀이자 엘리트 명문 학교의 수석이었다. 이 정도 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긴. 상대를 죽이는 작업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기량 부족으로 자멸하면 그것도 시시하지.’

카르멘은 원더스타인이 지닌 예상외의 실력에 놀랐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질 것이라곤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제 곧 있으면 첫 번째 구간이 끝났다.

플로멩코에는 반주와 노래가 잠시 끊기는 ‘정적’이라는 구간이 있었다. 플라멩코의 주역은 가수나 연주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춤꾼이었기에 그들이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는 것이다.

보통의 플라멩코에서 정적 구간은 춤꾼이 손뼉, 발 구르기, 손 튕기기, 함성 유도 등으로 흐름을 다잡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군무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보헤미안에는 다른 군무와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보조 무희들은 따르는 주역 무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각자가 보유한 무희 중 바깥쪽에 선 9명은 거리상 진영을 바꾸기 불가능했다. 그리고 주역 무희 바로 뒤에 선 3명은 실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이상 진영을 바꾸기 힘들었다. 하지만 안쪽에 선 3명은 정적 구간에서 진영을 바꿀 수 있었다.

정적 구간이 오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선 6명의 보조 무희는 다음 구간이 시작될 때, 어느 진영으로 넘어갈지 선택할 수 있었다. 거기가 바로 주역 무희의 기량이 겨루어지는 지점이었다.

누구의 춤이 더 흡입력 있는가, 누구의 박자감이 더 자신을 흥겹게 하는가, 누구의 지휘가 더 자신들을 잘 이끄는가. 고작 3초밖에 안 되는 정적 구간에 보조 무희들은 선택해야 했다.

보통은 관성 때문에 자신이 원래 따르던 진영으로 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주역 무희의 역량에 따라 상대 진영의 무희를 뺏어오기도 했다. 누가 무대를 주도하는지가 바로 여기서 결정되었다.

물론 무희도 사람인 만큼 선택에 사심이 개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일류 무희였고, 대부분 자연스럽게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카르멘이 자신 있다고 말한 것은 30명의 무희에게 명령을 내려 조종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그들의 호흡과 선호를 모두 꿰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안쪽에 선 6명의 무희를 슬쩍 보는 것만으로 어떤 동작이 최적값인지 바로 도출해낼 수 있었다.

기타의 마지막 현이 튕기며 반주가 멈추고 가수의 노래도 멎었다. 마침내 첫번째 구간이 끝났다.

주어지는 정적 구간은 고작 3초. 카르멘은 이 지점에서 어떤 무희들이 안쪽에 서는지 모두 파악을 끝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끌어들일 만한 동작을 취했다.

짝. 한 번 손뼉을 치고. 딱. 구두로 발을 구른 뒤. 두 팔을 직각이 되게 펼치고는 내뻗은 다리를 끌어당기며 고개를 클라라가 서 있는 반대 방향으로 휙 돌렸다. 관객들의 갈채와 함성이 쏟아졌다.

카르멘은 4명, 아니, 5명. 어쩌면 운이 좋아서 6명 모두 끌어오지는 않았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반주가 다시 깔리고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뒤에 선 무희 1명이 안쪽으로 이동하는 기척을 느꼈다.

그녀는 순간 자신의 방향 감각에 혼란이 생긴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안쪽에 3명보다 많은 무희가 들어왔다면 3명을 넘는 인원은 자신의 뒤로 오고 자신의 뒤에 있던 인원은 바깥쪽으로 나가야 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뒤에 있던 인원이 안쪽으로 이동했다니? 불안한 예감을 느낀 그녀는 몇 초 후, 고개를 뒤로 돌리는 동작을 취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바깥쪽 무희는 9명에서 8명으로 줄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선 3명 중 1명은 원래 바깥쪽에서 춤추는 무희였다. 말할 것도 없이 그녀의 안쪽에 선 3명 중 1명은 원래 그녀의 뒤에 있던 무희였다.

‘내, 내가 뺏겼어?’

현재 카르멘의 진영에 선 무희는 14명이었다. 반면, 원더스타인의 진영에 선 무희는 16명이었다. 방금 정적 구간에서 그녀는 6명 중 2명밖에 데려오지 못한 것이었다.

‘어째서?’

그녀는 방금 원더스타인이 어떤 춤을 췄는지 보지 못했다. 안쪽에 선 무희들을 끌어들일 최적값에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는 동작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멘은 도대체 첫 번째 정적 구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알고 싶었다. 눈을 마주친 무희들이 다들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을 보니 원더스타인 뭔가 한 것은 틀림없었다.

‘제길! 말도 안 돼! 나는 장로님의 후계자라고!’

카르멘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그녀의 동작을 쫓았다. 그리고 마침내 2번째 정적 구간이 왔을 때, 그녀는 그게 최적값이 아닌 줄 알면서도 고개만은 억지로 원더스타인을 향해 돌렸다.

“아.”

그녀는 순간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석양을 배경으로 땀방울이 반짝이는 빛을 흩뿌리며 허공을 날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의 겨드랑이가 수줍게 보조개를 드러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교차한 채 붉은 치마를 흔들며 온몸으로 정열을 표현하는 푸른 머리 여인의 모습은 한 명의 무희로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카르멘은 일류 무희답게 금방 평정을 회복했다. 그러나 방금 무리하게 동작을 바꾼 것 하며 순간적으로 원더스타인의 춤에 시선을 뺏겨 박자를 놓친 것 때문에 안쪽에 선 6명의 무희 모두 원더스타인 쪽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로써 카르멘의 진영은 11명, 원더스타인의 진영은 19명이 됐다.

‘이대로 끝날 수 없어.’

이제 카르멘의 마음속에 상대를 골려주겠다는 의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뛰어난 상대를 만나게 되면서 무희로서 순수한 경쟁심에 불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집중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그녀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기량을 펼쳤다. 그녀의 열정 가득한 춤은 무대의 열기를 다시 반반으로 가르기 충분했다.

그 육체적 정신적 고양감 속에서 그녀는 어쩌면 이것이 스승님이 말씀하시던 다음 경지로 넘어가는 단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정적 구간이 왔을 때, 그녀는 6명의 무희를 끌어낸다는 의도도 잊고 심지어 상대인 원더스타인에 대해서도 잊고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에 몰입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발산했다.

그녀가 원더스타인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은 그러한 연속적인 동작에서 자연스럽게 도달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원더스타인을 본 순간, 몰입에서 확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보인 충격적인 동작 때문이었다.

장미. 원더스타인은 머리에 비녀 대신 꽂아 넣은 장미 한 송이를 뽑아서 입에 물었다. 그것은 플라멩코에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동작 중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동작이 해당 구간에 어떤 동작보다 잘 어울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읏.”

원더스타인의 입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나왔다. 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장미 줄기 끝에 남겨 놓은 가시가 그녀의 입 안쪽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 덕에 그녀는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칫해 버렸고, 이번 정적 구간에서 중간에 있던 6명 중 5명이 카르멘 쪽으로 향하고 말았다.

그러나 카르멘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완패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녀의 바로 뒤에 서 있던 무희 중 1명이 원더스타인 진영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보통 두 무희의 실력 차이가 크지 않다면 서로의 안쪽에 있는 무희들 사이의 교환만 일어날 뿐이지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바로 뒤의 무희를 뺏기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 벽이 방금 무너지고 말았다. 원더스타인의 파격적이라 할 수 있던 동작이 끌어낸 결과였다.

“비녀인 꽃을 뽑아 입에 물다니. 신기원이라고 해야 할까요? 놀라운 해석이군요.”

공연을 지켜보던 원로 한 명이 감탄해서 소리쳤다. 그러자 그녀 앞에 앉아 있던 푸리 다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100년 전에는 입에 장미를 물고 춤을 추는 일이 많았어.”

“그랬습니까? 그게 왜 사라진 거죠?”

“집시들이 하도 쑥이니 대마니 하는 이파리들을 팔아대니 입에 뭔 풀때기를 물고 있으면 마약을 유통하는 놈들로 오해받았지. 그래서 장미를 무는 대신 머리에 꽂는 것으로 바뀐 거야.”

“아하, 그런 일이……. 그렇다면 방금 장미를 입에 무는 일은 저 아이 스스로 생각한 걸까요?”

그녀의 질문에 푸리 다이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누군가 가르쳐줬겠지. 뭐, 누가 가르쳤는지는 물어볼 것도 없겠지만.”

에스메랄다는 클라라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아버지의 손길이 배여 있음을 느꼈다. 그녀의 춤은 아버지가 평소에 추던 것과 빼다 박았다.

아버지는 저 아이가 자신의 현손녀인 것을 알고 가르친 것일까? 그녀는 아버지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한 가지 늘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가 앉아 있는 천막 안쪽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클로팽과 스벤이었다. 그녀는 목에 단단히 힘을 주고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사람처럼 가만히 무대만 바라봤다.

“어머니, 위에 안 계시고 왜?”

“이 무대를 멀리서 보기 아까워서 말이지.”

에스메랄다는 마치 행사 상품을 쓰기 전까지 스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듯 그를 못 본 척하며 오직 무대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스벤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섭섭함보다는 그리움을 느꼈다.

그녀는 그에게 섭섭한 일이 있으면 예전에도 저런 식으로 행동하곤 했었다. 팔짱을 끼고 사람 말이 안 들리는 척 무시하면서 자신의 삐침을 표현했었다.

“에스메랄다.”

스벤은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클로팽이 다른 장로들을 모두 물린 덕에 현재 천막 안에는 세 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스벤을 모르는 척했다.

그때, 무대 위는 이제 4번째 정적을 맞았다. 카르멘이 정신을 다잡고 필사적으로 춤추는 덕분에 이제 두 진영은 누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일 없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스벤은 무대 위를 바라보며 한 가지 추억을 떠올렸다. 그도 예전에 부족 사람들과 플라멩코를 추곤 했었다.

그때, 딸아이는 꼭 자신과 파트너를 하려 했었다. 물론 그녀가 먼저 요구하지는 않았다. 항상 아빠가 먼저 신청해주기를 바랐다.

“혹시 이 곡을 출 때, 남녀 둘이면 어떻게 출 수 있는지 기억하나요, 아가씨?”

스벤은 에스메랄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전에도 그는 춤을 신청할 때,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스벤은 키가 큰 편이었고 그녀는 아직 어렸었기 때문이다.

늙고 쪼그라든 덕에 그녀는 이제 어릴 때와 키가 비슷했다. 아빠와 헤어졌던 시절과.

“키르쿠스 눈 부족의 초대 부족장 스벤이 바퀴의 서커스 부족장님께 춤을 청합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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