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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90

EP.489 18. 만우절 (31)

뇌에 한 번 축적된 기억은 물리적인 충격으로 망가지지 않은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보통 무엇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해당 기억을 자극하는 방법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노인들이 치매에 걸리기 쉬운 것은 그들이 일평생 익숙하게 여겼던 것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사라져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곧 수십 년 치의 기억을 자극하는 방법을 잃는 것과 같았다.

누적된 기억은 그 사람의 삶 그 자체였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잃는다는 것과 같았다.

에스메랄다는 그런 의미에서 어린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는 항상 아빠가 존재했었고 아빠를 잊기 위해서 그녀는 어린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려 100여 년 전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빠가 자신 앞에 무릎 꿇고 춤을 신청하는 순간, 에스메랄다는 강렬한 전류가 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집으로 가는 길. 비록 가사는 수십 년 전에 붙여진 것이었지만, 반주로 나오는 음악은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듣던 것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저와 춤이라도 한 곡 추겠습니까, 아가씨?

아버지의 유품을 손에 굴려 가며 막연한 증오만을 되새기기를 100여 년. 그녀는 마치 해일처럼 덮쳐오는 과거의 추억과 마주했다.

아빠와 장을 보며 고생했던 기억, 아빠와 다음 공연을 준비하며 고심했던 기억, 아빠의 농담에 웃었던 기억, 웃었던 기억, 웃었던 기억, 웃었던 기억…….

어린 에스메랄다는 웃고 있었다. 아빠와 함께하던 시간 대부분을.

의자의 손잡이를 붙잡은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체하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아, 아빠…….”

“에스미.”

스벤은 우는 그녀를 품에 조심히 안아주었다. 이미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기도, 누군가에게 온기를 나눠주기도 힘든 몸이 됐지만, 마음만은 전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에스메랄다는 분명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아빠! 아빠! 아빠!”

에스메랄다는 그의 품에 안겨 울부짖었다. 밀려드는 추억에 잠겨 그녀는 한순간이지만 어렸을 적의 그녀로 돌아갔다. 그것은 퇴행이 아닌, 잃었던 자기 자신을 채워 넣는 망각의 역류였다.

스벤은 소매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늙을 대로 늙은 그녀였지만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작은 공주님일 뿐이었다.

그동안 노래는 여섯 번째 구간을 거쳐 일곱 번째 구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스벤은 그녀가 상당히 진정된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몸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떨어진다면 아빠가 다시 사라져버리기라도 할까 봐.

스벤은 그런 딸의 불안감을 느꼈는지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노래는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가사는 처음 듣는 것이었지만 곡조는 이제 익숙했다. 이미 여섯 번의 구간을 거쳐 귀에 익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스벤이 예전에 춤추기 위해 만들었던 곡과 선율이 흡사했기 때문이다.

스벤은 옛 추억을 살려 다시 한번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 그럼 이 떠돌이 광대와 함께 춤을 추실까요, 아가씨?”

에스메랄다는 눈물로 퉁퉁 부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어머니!”

클로팽은 그녀가 의자 위에서 일어서려 하자 놀라서 달려왔다. 그녀는 현재 혼자서는 걷기 힘든 몸이었다. 일어서려고 해도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몸을 일으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스벤은 그런 그녀를 훌쩍 잡아당긴 것이다. 그는 그녀가 스벤의 팔에 이끌려 나와 땅바닥에 질질 끌릴 거라고 예상했다.

“아.”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에게 달려가다 말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는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5년 전부터는 가만히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하던 어머니가 뛰어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저기 보이는 것은 고향의 불빛일까?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노래는 어느 남자가 가족들을 두고 여행을 떠났다가 고생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총 7구간으로 나누어진 노래는 이제 막 마무리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익숙한 풀냄새가 마중을 나왔네. 정겨운 새소리가 그를 반기네.

“어머니…….”

부족 내에서 철인으로 이름 높던 클로팽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땅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어머니의 발놀림을 바라봤다.

그것은 춤추는 자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지금 그녀는 스벤의 손에 매달려 있었다.

스벤은 해골의 몸으로 18년을 살아왔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진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게 움직이는 데 익숙했다. 딸을 춤추게 만들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의 손을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에스메랄다는 마치 정말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노련한 클로팽이 처음 그녀를 봤을 때, 진짜 걷는 줄 알고 놀랐을 정도로 그의 기술은 뛰어났다.

-문을 두드리고 다가오는 발소리.

스벤의 춤은 단순히 그렇게 보이기만 하는 게 다가 아니었다.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해서 상대의 의도를 읽고 상대가 정말 자신의 몸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수 있었다.

에스메랄다는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다시는 아빠랑 춤출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시는 예전처럼 뛰어다니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에스메랄다는 정말 자신이 직접 몸을 움직여 춤을 추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팔을 뻗으려 하면 정말 팔이 뻗어지고, 이렇게 발을 디디려 하면 정말로 다리가 내밀어졌다.

둘을 지켜보던 클로팽은 살아있던 시절의 스벤과 어린 에스메랄다의 환영을 보았다. 행복하게 춤추는 두 부녀의 모습이.

-마침내 문을 그대를 맞이한 건…….

불과 1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늙은 에스메랄다는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금방 기력이 떨어졌고, 사람 하나를 매달고 움직이던 스벤의 관절도 끊어지려는 듯 딱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발을 멈춰선 두 사람. 노래의 마지막 소절이 뒤따라 붙었다.

-그의 딸이었다네.

가수의 노래가 끝났지만, 반주는 조금 더 이어졌다. 기타 현은 이제 플라멩코의 마무리를 위해 현란한 곡선을 그리며 아래위로 오갔다.

“아빠.”

“에스미.”

두 부녀는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클로팽은 더는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는 눈물을 쥐어 짜내려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 몸을 떨어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하나도 빼놓지 말고.”

딸의 요구에 스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무희들의 춤이 끝났다. 환호와 갈채가 무대 위로 쏟아졌다.

***

퀘스트의 성공 알림이 떴다.

“하아, 하아.”

원더스타인은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몸을 아끼지 않고 격하게 움직인 탓에 숨이 차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사방에서 박수와 환호가 들려왔다. 그녀는 그 소음 속에서 묘한 현기증을 느꼈다. 전신의 피부에서 뜨거운 열기가 화끈화끈 올라왔다.

그녀는 입에 문 장미를 뱉어냈다. 그녀는 그것을 바닥에 던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사방에서 그녀를 향해 뻗어오는 손을 보았다.

“이리 주시오!”

“클라라! 클라라!”

“제게 던져주세요!”

원더스타인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곧 씩 웃으며 허공을 향해 장미를 던졌다. 그녀의 피가 묻은 장미를 잡기 위해 앞 객석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무대 앞으로 나갔다. 사회자가 연신 자신의 춤을 극찬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노래가 시작되고 15분 동안 꿈을 꾸다 온 것 같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오랜만에 게임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전투나 공연 준비는 어디까지나 원작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스벤의 플라멩코 보스전은 기본이 리듬 게임이었다. 박자에 맞춰 준비한 동작을 딱딱 내보내는 것은 진짜 게임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더스타인은 그 사실에 안도감과 동시에 불안감을 느꼈다. 원래 자신은 클라라의 몸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삐걱댔다.

그런데 방금은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몸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어제부터 몸을 움직이는 일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것은 자신이 클라라의 몸에 완벽히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신호일까? 퀘스트의 마감은 이제 5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전에 자신은 원더스타인의 몸으로 돌아가야 했다. 완전히 클라라가 되기 전에.

“졌어. 정말 훌륭한 무대였어.”

“감사합니다. 카르멘 씨야말로 훌륭했어요.”

“지금 패자를 동정하는 거야?”

카르멘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패자라뇨? 뭐가요?”

“당연히 보헤미안에서 이렇게나 무희 차이가 나면…… 아니, 잠깐만! 너 설마…… 방금 우리가 무슨 승부를 했는지 모르는 거야?”

“승부요?”

반문하는 원더스타인의 표정은 정말로 몰라서 되묻는 사람의 것이었다. 카르멘은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자신이 7구간 중 한 구간 동안 경험했던 무아의 춤을 그녀는 일곱 구간 내내 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그 춤은 설명되지 않지.’

주변의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한 춤. 완벽한 플라멩코.

카르멘은 오늘 또 하나의 벽을 보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싫지는 않았다. 상대는 언젠가 자신이 모셔야 할 사람이었기에.

“앞으로 잘 부탁해. 차기 부족장.”

“네? 아, 아니, 잠깐만요. 그건 너무 성급한…… 저는 아직 부족으로의 복귀도 결정하지 않았는데…….”

“그래. 아직 넘어야 할 장벽이 많지.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난 널 지지하겠어. 너 외에 누구도 난 차기 부족장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

원더스타인은 멍청한 표정으로 그녀가 맹세하는 것을 바라봤다. 정신없이 흐르는 음악에 맞춰 춤 버튼을 누르는 감각에 취해 있다 보니 주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상대의 오해를 풀어줄까 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어차피 먹히지도 않을 것 같았고, 그녀가 자신을 인정해준 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라라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은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선배!”

무대 뒤로 내려온 그녀는 카렌이 상기된 얼굴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껴안고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정말 정말 멋있었어요! 아름답고! 당당하고! 아아! 선배 최고!”

“윽, 카, 카렌? 나 땀 많이 흘렸는데…….”

“괜찮아요! 저는 선배의 땀 냄새도 좋은걸요! 헤헷, 킁킁.”

“겨, 겨드랑이에 얼굴 밀어 넣지 마!”

원더스타인은 징그럽게 달라붙는 카렌을 떼어내며 대기실을 나왔다. 그녀는 아까 VIP 객석 쪽에 클라라와 레이나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쪽으로 가면 되는 걸까? 하지만 그러면 루미의 작전은 도대체 언제 실행할 수 있을까? 스벤의 문제도 있고 축제 뒤풀이에도 손님으로 참석해야 하던데. 아무리 봐도 남은 시간 안에 작전을 실행할 기회를 잡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녀가 고민에 잠겨 있는 그때, 그녀는 자신의 몸을 확 잡아당기는 힘을 느꼈다. 카렌이 그녀의 몸을 붙든 것이다.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또 엉겨 붙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카렌의 어깨 근처를 스치고 지나갔다.

“선배! 괜찮으세요?”

주변에서 비명이 들렸다. 원더스타인은 다음 무대를 준비하던 바퀴의 서커스 관계자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그들을 따라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땅딸막하고 뚱뚱한 노인이 검은 정장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 서 있었다. 그는 모자를 벗으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군, 원더스타인.”

이고르가 마침내 그녀 앞에 나타났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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