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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91

EP.490 18. 만우절 (32)

“당신은……?”

원더스타인은 카렌의 부축을 받아 일어서며 노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너머로 저 멀리서 클라라와 레이나가 달려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는 순간, 이고르의 길고 날카로운 손가락이 그녀를 가리켰다.

“자, 이리 오너라.”

“이봐, 영감탱이, 다짜고짜 칼을 날리고 그게 무슨…… 컥!”

카렌은 복부를 때리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배를 감싸고 주저앉으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바라봤다.

“크, 클라라 선배?”

카렌은 원더스타인을 향해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카렌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이고르를 향해 걸어갔다.

“이봐, 무슨 일이야?”

“저 노인은 누구지?”

“정지! 여기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이오!”

비명을 듣고 달려온 바퀴의 서커스 측 사람들이 이고르를 둘러쌌다. 다들 기본적으로 곡예를 익힌 사람들답게 움직임이 민첩하고 날렵했다.

“이런. 키르쿠스의 신도들을 해치기는 싫은데.”

이고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등에서 끈적한 점액질이 흘러내린 촉수들을 뽑아냈다. 그가 그것들을 채찍처럼 휘두르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주변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보통 훈련받은 곡예사가 휘두르는 채찍의 끝은 음속의 2배에 달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방금 이고르가 휘두른 촉수의 속도는 그보다 몇 배는 더 빨랐다.

“꺄악!”

“빠, 빠르다!”

“크헉!”

바퀴의 서커스 사람들은 미처 낙법을 펼칠 새도 없이 채찍에 얻어맞고 튕겨 나갔다. 다행히 촉수에 흐르는 점액질 덕분에 크게 다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사방에서 비명이 터지고 사람들이 나뒹구는 상황에서도 원더스타인은 멍한 얼굴로 이고르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그의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마침내 이고르의 옆에 섰을 때, 클라라와 레이나도 현장에 도착했다. 클라라는 오라버니를 옆에 끼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넌 누구, 아, 아니,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장 오라버니, 아니, 클라라 양에게서 떨어져 주시죠!”

“아, 원더스타인의 몸을 차지한 자군?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그래. 내 이름은 이고르라고 한다네.”

“이고르?”

클라라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그녀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까마귀 마녀가 알려줬다. 원더스타인의 적이자 또 한 명의 바이오맨서라고.

“내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

“약간.”

클라라는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상대였다. 하지만 자신이 능력을 잘 갈고닦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오라버니보다 반 수 아래로 여겨지는 상대였으니까.

하지만 설마 몸을 바꾼 지 며칠도 안 되어서 난입할 줄은 몰랐다.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은 가야 마주치겠다고 생각했는데…….

“왜 지금 나타난 거지?”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지. 원더스타인을 차지하기에 말이야.”

이고르는 옆에 무릎 꿇고 앉은 원더스타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녀는 세상에 더 없을 정도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안겨들었다.

“주인님, 주인님. 헤헤, 좋아요. 더 예뻐해 주세요!”

그것을 본 순간 클라라의 눈이 돌아갔다. 감히 자신 앞에서 오라버니를!

“그분에게서 떨어져, 이 늙은이야!”

클라라가 주변의 식물들을 조작해 꽃봉오리를 터트리며 씨앗을 총알처럼 쏘아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고르가 손을 한 번 까딱하자 민들레 꽃씨가 되어 바람에 흩어져 버렸다.

“형편없는 솜씨군. 그 몸을 가지고서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이익! 이걸로 끝이 아니야!”

클라라는 이번에는 근처의 아름드리나무를 고무처럼 휘게 해서 이고르를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손댄 나무는 갑자기 끝이 나팔처럼 쩍 하고 갈라지더니 ‘빰빠람!’ 하는 소리를 내고는 웅장한 행진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이거 왜 이래?”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조작된 나무의 모습에 클라라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고르는 그것을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입에 조소를 띠었다.

“역시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군. 이거 일이 너무 쉽게 풀리겠는데.”

“자, 잠시 실수한 거야!”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처음에 씨앗을 총알처럼 쏴댔던 꽃들이 갑자기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뿌리를 다리처럼 이용해 땅을 헤집고 나오더니 줄기와 이파리를 흔들며 자기네들끼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분명 방금 무대 위에서 무희들이 보였던 플라멩코였다.

“쯧쯧, 머릿속의 단편적인 이미지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 모양이군.”

이고르는 그를 보며 혀를 찼다. 그 순간, 레이나가 캐비닛에서 작두를 꺼내 그에게 달려들었다.

“클라라 선배!”

위세 좋게 달려든 그녀였으나 이고르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그가 손을 한 번 까딱이자 그녀는 비명을 내지르며 십수 미터 떨어진 천막에 날아가 처박혔다.

“레, 레이나까지?”

클라라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레이나가 가면을 썼을 때, 원더스타인의 육체적 힘을 빌려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한 방에 나가떨어지다니? 단순히 인스피라를 사용하지 않고 덤벼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이 오라버니의 육체를 차지한 부작용 때문에 힘을 끌어쓰지 못했던 것일까?

“걱정하지 마라. 죽은 사람도, 크게 다친 사람도 없으니까.”

“주인님은 참 상냥하세요.”

원더스타인은 여전히 몽롱한 미소를 지으며 이고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아양을 떨어댔다. 클라라는 그 모습에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오라버니를 어떻게 한 거지?”

“나 역시 이 녀석처럼 데볼루트를 종속시킬 수 있는 키르쿠스의 사도. 육체라는 보호막이 없는 원더스타인은 이처럼 쉽게 굴복시킬 수 있지. 자, 귀여운 나의 노예야. 고양이 흉내라도 내보지 않으련?”

“네, 주인님. 야옹.”

원더스타인은 네 발로 걷는 시늉을 하더니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의 볼을 혀로 핥았다. 클라라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이고르와 원더스타인을 번갈아 바라봤다.

“오라버니를 어떻게 하려는 거지?”

“응? 원더스타인? 크하핫, 나는 솔직히 이 녀석의 혼에는 관심이 없어. 필요한 건 네가 차지하고 있는 그 육체지. 내게는 그게 필요하거든.”

그 말에 클라라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자신에게는 이 몸을 지킬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도망치자니 오라버니가 인질로 붙잡혀 있었다. 오라버니에게 원래 육체만 있었다면…….

클라라가 어떤 생각을 떠올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이고르와 원더스타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아악! 선배에게서 떨어져!”

그것은 바로 카렌이었다. 기절한 줄 알았던 그녀는 그동안 가만히 바닥에 엎드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서 몸을 날렸다.

“크헉!”

그녀에게 걷어차인 이고르는 공처럼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카렌은 네발로 기고 있던 원더스타인의 몸을 위에서 짓눌러 그녀가 꼼짝 못 하도록 만들었다.

“카, 카렌? 무슨 짓이야? 이거 놔!”

“선배 정신 차려요! 선배는 지금 저 늙은이의 마법 같은 거에 당한 거예요!”

“다, 당한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원더스타인은 몸을 버둥거렸으나 위에 선 카렌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다. 카렌은 땅재주의 달인. 그라운드 기술은 그녀의 특기였다.

“선배는 내 거야, 이 영감탱이! 선배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크, 이거 자꾸 일이 꼬이는데…….”

무릎을 짚고 일어선 이고르는 촉수를 다시 일으켰다. 카렌을 원더스타인에게서 떼어놓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둘의 몸은 엉겨 있어서 조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순간, 가까이 있는 천막 하나의 입구가 걷혔다.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클로팽이었다. 공교롭게도 푸리 다이의 천막은 VIP 좌석과 무대의 딱 중간 지점에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클로팽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부족민들을 둘러보며 경계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뒤따라 나오려던 스벤과 에스메랄다에게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위험합니다, 어머니! 거기 계세요!”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냐?”

“핫핫, 저건 클라라 양과 카렌 양…… 응? 단장님까지?”

스벤은 에스메랄다를 등에 업은 채 천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일행들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가 중간에 선 땅딸막한 노인네에게 시선을 멈춰 세웠다.

만약 평소에 길에서 그를 마주쳤다면 그는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몇 분, 몇 시간을 걷다가 한참 지나서야 가까스로 뭔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하필 스벤은 방금 에스메랄다에게 과거 이야기를 해주다가 나온 참이었다. 돈을 들고 도망친 줄 알았던 그의 친구가 사실 부족의 다른 배신자에게 죽었고, 그 배신자가 성자 빅터의 등을 찌르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벤은 노인을 보고 누군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비록 그가 알던 것과 상당히 변해버렸기는 했지만, 저 특이한 용모를 잊기란 쉽지 않았다. 이미 늙어버린 딸을 만난 덕에 100년의 세월이 주는 노화에 대한 이미지가 쉽게 보강되었다.

에스메랄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망가진 눈알 장식품을 만지작거렸다. 저곳에 서 있는 노인은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만든 사람이었다.

“이고르?”

“이고르 아저씨?”

스벤과 에스메랄다는 동시에 그의 이름을 외쳤다. 이고르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거 여기서 또 이 몸을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는 이만 이곳을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었다가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었다.

그는 촉수를 이용해 카렌과 원더스타인을 동시에 감싸 안았다. 두 사람을 떼어놓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었다. 카렌이 거칠게 저항했으나 그녀의 목 뒤에 마취 성분이 담긴 침을 찌르니 금방 몸을 늘어뜨리며 얌전해졌다.

“이들을 돌려받고 싶으면 ‘원더스타인’ 네놈 혼자 ‘밤이 피어나는 둔덕’으로 찾아와라.”

“큭, 거기서!”

클라라는 팔을 늘려 그들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늘어난 그의 팔은 갑자기 급격히 수축하더니 본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렸다.

“으앙!”

“반드시 혼자서 찾아와라!”

이고르가 등 뒤로 박쥐의 것과 같은 날개를 펼쳤다. 카렌과 원더스타인을 촉수 끝에 매단 그는 번쩍하더니 어두운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우아아악!”

클라라는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스벤이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었으나 그는 주먹이 으깨질 때까지 미친 듯이 바닥만 때려댔다.

자신의 멍청함 때문에 오라버니를 뺏겨 버리고 말았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은 구멍투성이였다. 완벽히 터득했다고 생각했던 능력 역시 진짜배기에 한참 모자랐다. 자신이 조금만 더 철저했더라면…….

이고르는 그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날개를 접었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척했던 그는 사실 투명화 마법을 걸고 근처 수풀에 엎드려 있었다.

애초에 그는 그렇게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빠르게 하늘을 날 수 없었다. 위로 솟구치는 척하면서 재빨리 몸을 숨긴 것이다.

이고르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안에서 더듬이를 바짝 세운 은빛 머리의 어린아이가 나타났다. 그녀는 가루가 든 병을 손에 쥐고 데볼루트를 조작하는 주문을 외었다. 그러자 촉수가 조심스럽게 원더스타인과 카렌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원더스타인은 카렌이 기절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꽉 붙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팔과 다리는 쉽게 풀 수 없도록 자신의 관절을 얽어매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를 강제로 뿌리치고 가는 건 힘들 것 같았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기는 했지만 일단은…….”

“작전이 먹혀든 것 같군요.”

루미와 원더스타인은 주먹이 피로 물들 때까지 바닥을 내리치며 울부짖는 클라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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