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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92

EP.491 18. 만우절 (33)

루미가 제시한 작전은 바로 클라라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클라라가 널 미워해서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아니잖아? 아니, 그녀는 오히려 널 좋아하고 있지. 의남매도 맺었다며? 그러니까 그 마음을 자극해보자고. 널 죽을 위기에 몰아넣으면 걔가 몸을 안 돌려주고 배기겠어?”

“죽을 위기라고요? 어떻게요?”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설마 내가 너보다 네 인생에 대해 잘 알겠니?”

원더스타인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루미의 제안은 오늘 오전에 클라라가 연극부원들을 고용해 벌이려던 일과 비슷했다.

하지만 갑자기 없던 적이 나타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최소한의 개연성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원작의 지식을 활용하려고 해도 그들은 모두 현존하는 사람들이었다. 함부로 그들의 신상을 이용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아무 적이나 만들어낼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클라라가 위화감을 눈치챌지 몰랐다.

개연성이 있으면서도 현실에 영향을 주지 않을 만한 인물.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마침 만우절 축제 첫날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 단장님 책을 좀 꺼내 보고 있었어요. 단장님의 힘을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첫날 오전, 클라라의 방을 찾아간 원더스타인은 그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연구서를 읽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책들 사이에 숨겨둔 것을 그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물론 클라라는 처음부터 이 책을 찾기 위해 방을 뒤진 것이었다. 저번에 연구서를 읽었을 때는 데볼루트를 다루는 방법을 대충 넘기고 말았다. 어차피 그녀에겐 데볼루트도, 그걸 다룰 별빛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오맨서의 육체를 얻은 지금은 달랐다. 그는 지금 데볼루트를 조작할 수 있었고 몸에는 그것들이 들끓고 있었다. 오라버니 행세를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데볼루트의 활용법을 좀 더 확실하게 익힐 필요가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마땅히 그를 제지할 명분이 없었기에 그가 책을 읽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자신의 해부도에 관련한 페이지는 진즉에 찢어 둔 데다가 그가 데볼루트를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우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잘못 사용하면 데볼루트만큼 위험한 물건도 없었으니까.

그는 연구서를 펼쳐서 그곳에 나오는 데볼루트 활용 예시들을 따라 했다. 그는 무리 없이 그곳에 나오는 생체 조작을 차례차례 해내었다. 가장 어려운 생물 창조 항목까지 끝내는 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연구서를 읽는 종종 웃음을 흘렸다. 원더스타인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연구서 곳곳에 남겨진 각주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두 사람이 서로의 의견을 지적하고 반박하는 모습이 웃겨요. 박사와 조수 사이죠?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이고르. 원더스타인도 연구서를 읽을 때, 두 사람의 만담이 나올 때마다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들은 TTT의 숨은 흑막이었지만 서로에게는 다정한 사제 사이였다. 저 둘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까마귀 마녀와 뱀 마녀에게 옛날 추억을 떠올리는 척 은근슬쩍 둘의 행방에 대해 떠봤다. 그러나 그들은 두 사람 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클라라는 그때 연구서의 저자 두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그는 그 둘이 데볼루트를 다루고 실험하던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 중 하나라면 클라라에게도 충분히 개연성 있는 악당이 될 수 있었다.

“이고르.”

“이고르?”

루미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자신을 노예처럼 붙잡고 부렸던 괴물서커스단의 단장 아닌가?

“현존하지 않는 인간 중에서 제일 그럴듯한 배경을 가진 인물입니다.”

원더스타인은 루미에게 자신이 꾸며낸 설정을 들려주었다. 연구서의 내용에 더해 지금까지 그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게임의 설정을 적당히 버무리니 괜찮은 악당이 한 명 탄생했다.

루미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묘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다.

“단순히 꾸민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사실을 조금 섞었습니다.”

루미는 원더스타인과 처음 만났던 25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때 이고르와 원더스타인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대했었다.

-실험체 24601호?

-오랜만입니다. 이고르.

루미는 그때 일을 언젠가 원더스타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자신이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인정해야 했다.

“혹시 뭔가 아는 게 있습니까?”

원더스타인은 이고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녀의 안색이 변한 것을 확인하고 물었다. 물론 그녀의 질문은 그저 통상적인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미 입장에서는 그녀가 은근히 자신을 떠보는 것이라고 느꼈다. 혹시 자신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는 거냐고.

-자, 요정 아가씨, 이제 아픈 곳은 없죠? 어서 동료들 곁으로 가세요.

루미는 자신을 지켜주던 단단한 등과 자신을 부드럽게 감싸던 남자의 손길을 떠올렸다. 그녀는 지난 25년 동안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마야의 아버지인 레오나르도인 줄 알았다.

하지만 2개월 전, 칼디르에서 그녀는 원더스타인에게 또다시 목숨을 구원받으면서 25년 전의 진실을 깨닫게 됐다. 희미한 기억 속의 첫사랑은 레오가 아닌 바로 그라는 것을.

그러나 그때 그녀는 그 사실을 차마 그에게 밝힐 수 없었다.

비록 베티에게 조종당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칼디르에서 벌어진 소동에 한몫 거들었었다. 그 때문에 은막 서커스단 전체가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첫사랑과의 해후를 나누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하지만 다시 만난 그는 황당하게도 여자의 몸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첫사랑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이번에도 그때의 기억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25년 만의 극적인 재회를 이렇게 얼렁뚱땅 치르기 싫었다.

“이고르? 잘 모르겠는데? 아, 맞다. 내가 예전에 있던 서커스단의 단장이 그런 이름이던가?”

루미는 그렇게 말하며 원더스타인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그러나 그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았다.

상대가 실망한 건지 아닌지 도통 알기 힘들었다. 잠시 우물대던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 그래도 그 악당의 모습은 내가 잘 꾸며낼 수 있을 것 같아. 아주 그럴듯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나 보군요. 그러면 잘 부탁합니다. 설정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악당을 연기해주세요.”

“맡겨만 둬! 환상 연기 경력만 20년이라고!”

루미는 자신감 있게 외쳤다. 자신이 이고르 그 영감탱이 흉내를 못 낼 리가 없었다. 그는 아직도 가끔 악몽을 꾸면 나오곤 했다. 실제 인물을 묘사하는 것이 조금 켕기기는 했지만, 원더스타인이 현존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네 설정대로라면 나도 그 데볼루트를 다룰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환상만으로는 속이기 힘들지 않겠어?”

원더스타인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별빛 가루가 담긴 병을 내밀어 보였다. 이것만큼은 그녀가 미리 첫날에 빼돌려 두었다. 클라라가 연구서를 보고 데볼루트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는 척하면서 몰래 방안에 숨겨둔 별빛을 가지고 나왔다.

거기에 더해 그녀에게는 지난 며칠간 수집한 데볼루트가 있었다. 그녀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클라라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퀘스트를 열심히 해결하고 다녔다.

퀘스트를 통해 주어진 데볼루트는 완벽하게 그녀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그것은 클라라의 것과 달리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정확하게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징그러워! 뭔가 마구 꿈틀대는 느낌!”

별빛을 손에 쥔 루미는 원더스타인이 시키는 대로 데볼루트를 조종해 봤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연구서에 나온 대로 주문을 외우고 마음속으로 명령을 내리자 그녀는 그것들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카드순 지하에서 봤던 그 ‘잠든 혼돈’의 몸체와 비슷한 것 같은데?”

“제 능력은 키르쿠스로부터 받은 것이니까요.”

“아, 그렇게 되나? 그런데 내가 이걸 하루 만에 너만큼 잘 다룰 수 있을까?”

“실제로 데볼루트로 뭘 만들 필요는 없어요. 그저 환상 주위에 흩뿌려서 바이오맨서 같은 ‘느낌’만 주는 것으로 충분해요. 자, 제가 도와드릴게요. 천천히 이렇게.”

원더스타인은 루미를 뒤에서 안고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치 도자기를 빚는 것처럼 그녀가 데볼루트 다루는 것을 도와주었다.

루미는 반은 영적인 세계에 발을 걸친 존재였다. 그녀는 원더스타인과 몸을 맞대면서 원더랜드에서 마주했던 그의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허수아비, 오즈. 자신만이 알고 있는 그의 또 다른 이름.

루미는 갑자기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원더스타인 옆에 알짱대는 다른 애들은 그의 비밀을 자신만큼 몰랐다. 자신이 가장 먼저 그를 알았고, 가장 먼저 그를 좋아했으며, 자신이 그의 가장 깊은 비밀까지도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이야말로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아마 다음에 만났을 때, 자신과 그는…….

“루미 씨?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되죠.”

루미가 움직이던 데볼루트가 통제에서 벗어나 멋대로 생체 물질을 만들어냈다. 진분홍색의 꿈틀대는 한 쌍의 달팽이와 같은 것은 마치 사람의 혀를 닮아 있었다. 둘은 끈적한 점액질을 내뿜으며 서로 몸을 섞기 시작했다.

“뭘 떠올린 겁니까?”

원더스타인의 질문에 루미는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그것들은 퍽 하고 터트려 과일잼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 그냥 어렸을 때 봤던 지렁이?”

“갑자기 딴 생각하면 안 되죠.”

“미, 미안……. 아, 아니, 근데 잠깐. 근데 나보다 클라라가 이걸 더 잘 다루는 것 아니야? 걔는 네 몸을 가지고 있잖아.”

그녀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첫날에 클라라가 만든 연습 표본들이 모두 어떤 꼴이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멀쩡하게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그것들은 괴상한 형태로 변형되어 움직였다. 그녀가 그것들을 발견한 것은 3일째 오전이었다.

클라라의 수치심을 자극하기 위해 이런저런 밑 준비를 하고 있던 원더스타인은 그의 방을 찾았다가 클라라가 만든 생물들이 방을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있는 장면과 마주쳤다.

그들은 원더스타인이 들어온 것을 보고는 재빨리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마 그동안 이렇게 클라라가 없으면 이렇게 자기네들끼리 설치고 놀았던 모양이었다.

원더스타인은 별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금방 무해한 형태로 바꿀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눈에는 클라라가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데볼루트를 다루는 데도 서툰 데다 생체 신호를 감지하는 힘조차 형편없었다. 손으로 가리고 있으면 그 뒤에 뭐가 있는지조차 읽지 못했다.

루미에게 바이오맨서 연기를 시킬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환상 주변에 데볼루트를 둘러쳐 두는 것만으로 충분히 클라라의 감각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때 클라라를 불러 꾸짖고 싶었다. 그러나 괜히 그랬다간 그의 반항심과 도전 욕구만 자극할지 몰랐다. 무사히 원래 몸을 넘겨받아야 하는 그녀로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 그가 마지막 날까지 데볼루트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녀가 가진 데볼루트를 모두 소진하도록 해야 해요. 괜히 남겨 뒀다가 엉뚱한 일을 벌일 수 있으니까요. 제가 클라라의 상태를 보고 있을 테니 신호하면 철수하기로 합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밤새 내일 있을 계획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원래 계획을 실행할 시간은 만우절 행사가 끝난 직후였다. 하지만 스벤이 세 번째 가면을 찾아오면서부터 일이 꼬였다.

거기에 더해 클로팽의 갑작스러운 승부 제안과 푸리 다이와 스벤 사이의 일까지 겹쳤다. 여러모로 처음 세웠던 계획과는 상당히 멀어져 버렸다.

자정까지는 몇 시간 남지 않았고, 루미는 이만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플라멩코 무대 직후에 난입해 원더스타인을 클라라 눈앞에서 납치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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