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494

EP.493 18. 만우절 (35)

클라라, 루미, 스벤 세 사람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와 살점을 흩뿌리며 바닥에 쓰러지는 원더스타인의 모습이 세 사람의 눈에는 비현실적으로 느릿느릿하게 보였다.

이윽고 그녀의 몸이 땅에 눕고 피를 왈칵 쏟아내자 그제야 시간이 다시 정상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스벤이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질렀고, 클라라는 자신이 한 짓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넋 놓은 표정을 지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루미였다. 그녀는 원더스타인 바로 뒤에 서 있었기에 그녀의 피를 그대로 뒤집어썼다. 그녀는 별빛이 든 유리병을 들고 데볼루트를 이용해 원더스타인을 치료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고개를 슬쩍 든 원더스타인과 눈을 마주쳤다. 원더스타인은 고통 속에서도 간신히 의식을 붙든 채 루미를 향해 고개를 젓고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그녀만이 간신히 포착할 수 있는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그것이 다른 두 사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함인지 아니면 정말로 겨우 그 정도밖에 움직일 수 없는 건지 루미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는 확실히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계획의 마무리 단계로 연결하자는 말일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기에 그녀의 상태는 너무 위태로웠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그녀가 원래 몸으로 돌아갈 기회가 없다는 것을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루미는 원더스타인의 무모함에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자기가 목숨이 몇 개라도 되는 줄 아나. 좋아. 그래. 마음대로 하라고. 아마 괜찮겠지. 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던 녀석이잖아? 몸을 되찾으면 이 정도 상처는 순식간에 치료할 수 있을 거야. 원래 몸을 되찾기만 한다면…….

“인질을 제 손으로 죽이다니. 후후, 협박은 이제 통하지 않을 것 같군. 어쩔 수 없지. 일단 후퇴할까?”

이고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현장에서 사라졌다. 루미는 그곳을 벗어나 먼 곳에 몸을 숨겼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옆에서 투명화를 걸고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클라라가 알아차릴지도 몰랐다.

“어으, 어, 아, 안 돼. 아, 안 돼…….”

클라라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땅바닥을 마구 기어 원더스타인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가슴에 사람 주먹 하나는 그냥 통과할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이 사태를 초래한 범인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자신이 오라버니를 이꼴로 만들었다.

원더스타인의 몸을 받든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도움을 요청할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 봐도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옥상에 있던 스벤은 폐건물을 돌아서 내려오고 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그녀는 몇 분 안 가서 소생 불가능 지점을 넘길 것이다. 비통한 울음소리가 그의 입 사이로 새어 나왔다.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하지만 최후의 망설임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때, 원더스타인의 눈이 살며시 떠졌다. 클라라는 그녀가 의식이 있는 것을 보고 반색했다.

“오라버니.”

“클라라…… 클라라니?”

애처롭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클라라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네. 저예요.”

“무, 무사했구나……. 다행이네…….”

이 지경이 되고도 자신을 걱정하는 원더스타인의 모습에 클라라는 죄책감에 몸부림쳤다. 오라버니는 이렇게 자신을 아껴주는데 자신은…….

“오, 오라버니, 죄송해요……. 다 저 때문이에요……. 저 사실 거짓말을 했어요. 제가…… 제가…….”

“알고 있어.”

원더스타인은 간신히 팔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그를 보고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었어.”

“오라버니.”

“이해한단다. 너로서는 마음먹기 쉽지 않았겠지.”

원더스타인의 말에 클라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모두 꿰뚫고 있었다. 모두.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그를 완전히 속여 넘겼다고 좋아했다. 그야말로 철부지 여동생을 지켜보는 오빠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저, 저 두려웠어요. 이대로 가면 오라버니랑 영영 헤어지게 될까 봐.”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바퀴의 서커스 일로 얼마나 고민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피와 은원으로 묶인 사슬을 끊어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로 5일간을 살아보면서 원더스타인은 이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헤어지다니.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저, 정말요?”

“그래.”

클라라는 그 말에 주저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라버니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을 달래기 위함인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을 그친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약속해줄 수 있어요?”

“물론이지. 약속할게.”

그녀의 눈빛을 본 클라라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아마 오라버니에게는 자신과 언니들이 감히 떠올리지 못했던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자신들에게 털어놓지 못한 데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클라라는 원더스타인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좋아해요.”

그는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밝혔다. 자신이 그에게 단순히 남매로서 애정을 품은 게 아니라는 것을. 그 마음은 그가 그녀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던 시절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저 오라버니를 좋아해요.”

금발의 남자는 피에 물든 여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녀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혀과 부드럽게 섞임과 동시에 퀘스트가 해결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서브 퀘스트-만우절’이 달성되었습니다. 보상으로…….]

원더스타인이 해당 알림을 읽은 것은 알림창이 뜨고 몇 초 지나서였다. 그는 클라라가 입맞춤하기 전에 이미 정신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을 뜬 그는 자신이 품에 클라라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푸른 머리의 여인은 바로 자신이 지난 5일 동안 살아왔던 몸이었다. 죽음의 문턱 직전에 가서야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놓을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원더스타인은 바로 그녀의 육체를 수복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막 아래층에 도착한 스벤은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이고르가 바퀴의 서커스에 침입해 클라라를 납치한 일은 푸리 다이가 잘 무마시켜 주었다. 신문에는 클라라의 정열적인 춤을 보고 흥분한 관객이 그녀에게 달려들어 소동을 피웠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갔다.

“이걸로 됐나요?”

“그래. 단장님이 고맙다고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구나.”

“뭘요. 클라라는 그때 우리 부족의 손님이었어요. 손님을 구해다 준 분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거기다 이번 건은 우리랑 무관한 일도 아니잖아요?”

에스메랄다의 말에 스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1년 반 전 원더스타인의 입단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단순히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스벤 씨라고 하셨죠? ‘집시의 배신’의 주인공. 빅터의 등을 찌른 당신이 백골이 되어 부활했군요.

-집시의 배신이라…… 핫핫, 세상 모두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아,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빅터의 등을 찌르지 않았어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지금 답하기는 조금 이르군요. 하지만 저랑 같이 여행을 하다 보면 아마 품고 있는 의문에 대한 답도 풀릴 겁니다.

원더스타인은 스벤의 앞에 손을 펼쳐 보였다. 스벤은 그곳에 상대가 지금까지 손안에 굴리던 호두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호두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근육과 핏줄이 도드라진 꿈틀대는 무언가가 맥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100년 전, 그가 역병 군주와의 사투를 겪었던 저택에서 봤던 것과 상당히 유사했다.

-어떤가요? 저와 함께 가지 않겠어요?

스벤은 원더스타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를 따라 박물관을 나섰다.

처음에는 그가 성자 빅터의 후손쯤 되는 줄 알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아름다운 금발 남성이라는 이미지는 그와 딱 알맞았다. 서커스를 준비하는 이유도 그의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나름대로 짐작이 갔다.

그러나 몇 개월 뒤, 그가 일으킨 참극을 본 뒤로는 그가 역병 군주의 환생은 아닐까 의심했다. 그가 저지른 짓은 그만큼 그 악마의 악행과 상당히 유사했다.

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 또한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벤은 그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저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기에 그를 믿고 1년이 넘는 여정을 함께 해온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잡게 되었다. 이고르의 등장과 그가 지껄인 말들을 통해 충분히 진실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100년 전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닌 것 같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24시간이 끝나네요.”

“에스메랄다.”

스벤은 늙은 딸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를 토했다. 100년 만에 만나게 된 딸이었다. 만약 딸이 원한다면 그는 이곳에 계속 남아 있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방금 그녀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빠는 꼭 가야 할 곳이 있잖아요.”

“꼭 가지 않아도 돼. 네 옆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 단장님의 허락도 맡아뒀어.”

“제가 걱정되는 건가요?”

에스메랄다는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의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래. 내가 없는 네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모두 들었으니까.”

“조르주 그 아이가 입을 놀렸나 보군요. 고생을 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요.”

“에스미.”

“허세 부리는 게 아니에요. 그동안 저는 아빠를 원망했어요. 아빠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아빠가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 들었을 때, 아빠가 평소 제 앞에서 보였던 모습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랬구나.”

스벤은 안타까운 한숨을 토했다. 클로팽에게 들은 내용이었지만,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더 죄책감이 몰려왔다. 에스메랄다는 눈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빠는 결국 돌아와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품고 있던 오해도 풀어주셨고요. 그걸로 충분해요.”

“하지만…….”

“이제 제가 아빠에게 받고 싶은 선물은 하나예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그 진실을 알게 되는 거죠.”

스벤은 서글픈 눈빛으로 딸을 바라봤다. 단순히 옆에서 노래를 불러 주고 농담을 던지는 것으로 아빠 노릇을 하기에는 딸이 너무 커버렸다.

“이고르가 휘두르던 힘이 분명 100년 전의 역병 군주와 같다고 아빠가 말했죠? 그가 무슨 짓을 꾸미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를 막는 데는 아빠가 도움이 될 거예요.”

“내 얘기를 제대로 들은 거니? 100년 전, 나는 그저 바보 같은 농담을 하나 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게 세상을 구했죠. 어쩌면 이번에도 아빠의 힘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약속해줘요, 아빠.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멀리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24시간의 대여 시간이 끝났다. 그는 각오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약속할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그 순간, 딸을 돌아본 스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방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던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얼어붙은 듯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은 깜빡이지 않았고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에스미?”

“…….”

딸은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마침내 아빠와 만나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그녀의 삶을 팽팽하게 지탱해오던 무언가를 끊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방금 아빠와의 만남을 끝내는 종소리가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생명의 불을 꺼트린 것일 수도 있었다.

“에스미!”

스벤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딸의 몸을 붙잡았다. 그 순간, 그녀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왁!”

“끄아악!”

스벤의 턱이 최대한으로 벌어지며 두개골이 뒤로 굴러떨어졌다. 죽은 줄 알았던 딸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머리통을 수습한 그는 곧 딸이 배를 붙잡고 깔깔 웃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아하핫, 까, 깜짝 놀랐죠? 아, 아빠가…… 풋, 어, 언젠가 돌아오면 한 번 보여주겠다고…… 여, 연습한 건데, 드디어 써먹네요! 아, 진짜 웃겨!”

“그, 그런…….”

어린애처럼 웃는 딸을 보고 스벤은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설마 이 순간에 이런 농담을 하다니. 그는 100년 만에 비로소 자신의 장난에 질겁했던 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보통의 부모였다면 여기서 딸을 야단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광대였기 때문이다.

“푸핫핫, 이거 한 방 먹었네! 이거 내 주특기로 당하다니!”

“아하하, 아빠 머리통 떨어지는 것도 웃겼어요!”

비명을 듣고 놀라서 달려온 클로팽은 서로 마주 웃는 두 부녀의 모습을 보고 픽 웃음을 흘렸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