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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97

EP.496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2)

프라빈 대학은 세계적인 명문 대학 중 하나로 인문, 예술 쪽 분야에서 특히 위상이 높았다. 그런 프라빈 대학에서 극문학과 교수로 재임 중인 오스카르 한트케는 업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었다.

교수라는 점잖은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과격함과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그가 최초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30여 년 전, 사회주의 열풍이 프라빈을 휩쓸고 다녔을 때였다.

그 당시 사회운동가들은 기존의 극 문화를 배격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중 가장 과격한 부류는 극장 파괴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공연만이 올바르다고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공연이 펼쳐지는 극장으로 몰려가 공연을 방해하고 무대를 때려 부수곤 했다.

당시 프라빈 대학의 많은 대학생이 이러한 세태를 환영했다. 사회주의에 강하게 매료된 그들은 대학 내에서 극장 파괴 운동과 비슷한 일을 벌이기도 했다. ‘고상한’ 문화와 예술을 가르치는 교수의 강의실을 찾아가 단체로 교수를 조롱하고 강의를 훼방 놓는 것이었다.

그들의 위세가 워낙 대단해서 아무도 그들의 폭거에 반대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당시 신입생이었던 한트케가 그들의 행태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사회주의 과격파들을 비난하는 장문의 벽보를 써서 학내 게시판에 걸었다. 그리고 그들이 숭상하는 사회주의 사상가들을 조롱하는 풍자극 대본을 쓰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했다.

그 일로 한트케는 복고주의자로 낙인찍혀 하마터면 대학 사회에서 매장될 뻔했다. 그러나 다행히 얼마 안 가 과격파들이 결국 아테레나 노천극장을 파괴하는 짓거리를 저질러 버렸고, 그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는 대대적인 탄압을 받음으로써 한트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의 파격적인 행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학부 졸업 논문을 대신해서 쓴 극본인 <사람이 사람이어야 사람인가>는 지금도 업계에서 말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과 연출을 담고 있었고, 그의 대표작인 <시렝게티 해변에서 저물다>의 초본은 프라빈 대학도서관의 영구소장도서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그가 교황청으로부터 경고를 듣게 만든 <악마 찬가>는 1년에 한 달, 오직 프라빈 대학의 소극장에서만 공연해 그 희소성으로 이름이 높았다.

원더스타인은 엘라의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게임에서 한트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와 관련된 퀘스트도 몇 가지 해결했었다. 물론 그때는 그저 대학교수로만 알았지 이런 역사가 있는 인물인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말인데요. 한트케와 크리스티앙. 둘 중 누가 더 뛰어난가요?”

그의 질문에 엘라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설마 이런 몰상식한 질문을 하는 인간이 한 서커스단의 단장인가 싶은 눈빛을 그에게 던졌다.

“루엘로도 비웃을 질문이네! 그 둘은 비교하기 힘들지! 둘 다 극작가이긴 하지만 분야가 꽤 다르니까. 크리스티앙은 음악과 곡예를 연극과 세련되게 조합해내는 데 뛰어나다면, 한트케는 능수능란한 연출과 파격적인 내용 진행으로 이름 높으니까. 물론 둘 다 같은 세대의 인물이라서 비교가 자주 됐지만 말이야.”

그렇게 그는 그녀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연극의 시작을 기다렸다. 그들이 자리에 앉은 지 30분쯤 지났을까. 웅성거리던 극장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극장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들어와 무대 앞에 설치된 종으로 다가갔기 때문이다.

아마 직원이 저 종을 치면 연극이 시작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나 그가 종에 달린 줄을 잡아당기자 그의 몸은 줄을 타고 천장으로 휙 빨려들어 가듯 솟구쳐 버렸다.

사람들이 그를 쫓아 시선을 위로 옮기는 순간, 극장의 모든 불이 꺼져버렸다. 사람들은 극장 측에서 뭔가 실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극장의 문이 하나도 닫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깜깜한 극장 안으로 사방에 뚫린 문들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무대는 밝게, 주변은 어둡게’라는 연극의 기초 원칙도 지켜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과장되게 키운 듯한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극장으로 들어오는 빛 하나가 차단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미처 그에 대해 반응하기도 전에 같은 현상이 연이어 일어나더니 이윽고 극장으로 들어오는 빛은 2층 정중앙의 문에서 들어오는 것 하나만 남게 되었다.

관객들은 그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은 무대 높은 곳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아까 종을 치려는 순간 밧줄을 타고 천장으로 끌어 올려진 직원의 그림자 같았다.

그는 마치 밧줄에 목을 맨 듯한 형상으로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그 움직임에 맞춰 극장 안을 울렸다.

얼마 안 있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를 비추던 빛마저 차단되면서 극장은 완전한 암흑의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독백과 함께 무대 위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악마 찬가>는 인간과 신, 그리고 도덕과 진리에 관한 내용을 독특한 연출로 풀어낸 풍자극이었다. 도입부에서 나온 빛과 종소리, 밧줄과 목매단 시체의 은유에서부터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충격적인 연출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원더스타인은 특히 단순히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 여겨졌던 것이 극 중반부를 넘어서며 핵심적인 질문에 대한 답으로 기능하는 것을 보고 감탄을 참지 못했다. 단순히 내용이 정교한 것을 넘어서 서서히 쌓여가던 질문에서부터 답을 끌어내는 연출이 무척 놀라웠다.

그렇게 정신없이 몰입해 연극을 관람하다 보니 어느새 극도 마무리로 접어들었다. 그것은 주인공과 세계의 창조주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두 사람이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괴성을 질렀다.

“아, 진짜 지겨워 죽겠네!”

그것은 술에 취해 꼬부라진 것 같은 목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돌아본 사람들은 웬 부랑자 같은 인물이 술 냄새를 풀풀 풍긴 채 좌석 사이 통로에 엉덩이를 깔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극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멀리서 분장을 채 지우지 못한 배우들이 그를 쫓아내기 위해 황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때, 원더스타인 앞에 퀘스트 알림이 떴다. 그 내용은 간단했다. 저 부랑자를 그가 직접 제지하라는 것이었다.

보상으로 꽤 많은 양의 데볼루트가 걸려 있었기에 원더스타인은 고민할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부랑자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던 엘라는 원더스타인이 그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봐!”

그녀는 놀라서 그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전에 원더스타인은 부랑자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그만하시죠.”

“큭, 네놈은 또 뭐야!”

“일개 관객입니다.”

“일개 관객이라고? 이것 놔! 이 자식아! 내가 누군 줄 아는 거냐!”

부랑자는 그를 향해 마구 주먹을 휘둘러댔다. 술에 취해서 그런지 세 살 어린애도 때려눕히기 힘들 정도로 비실비실한 주먹이었다.

부랑자를 끌어내기 위해 달려오던 배우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속도를 더 냈다. 퀘스트를 직접 깨야만 했던 원더스타인은 그들이 오기 전에 결판을 내기로 했다.

“이것 놔! 나는 공연을 볼 권리가 있어!”

“당신은 모두에게 방해가 됩니다.”

그는 버둥거리는 부랑자를 객석 뒤까지 끌고 가서 문을 열고 극장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뒤에서 관객들의 환호와 비명이 뒤섞여 들려왔다. 동시에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뿌듯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본 원더스타인이 엘라가 미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저러지? 그가 그녀의 표정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 쪽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그가 서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창조주시여!”

원더스타인은 그가 자신을 부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자신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극장 안으로 방금 그가 내던진 부랑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방금까지 꽥꽥 고함을 지르던 태도는 어디 가고 상당히 침착하고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극장 안으로 다시 들어옴과 동시에 그를 쫓아내기 위해 달려오던 배우들이 그의 앞에 부복했다. 원더스타인은 그러고 보니 그들이 모두 앞선 장면에서 ‘천사’ 역할로 나왔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모두 부랑자를 ‘신’이라고 칭했다. 지금까지 극 중에 등장하지는 않으면서 내내 실마리만 나왔던 존재였다.

“어휴, 뭐해. 어서 자리에 앉아.”

원더스타인은 엘라가 음향실을 통해 자신의 귀에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자신을 보며 조소하는 주변 관객들의 시선을 보고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부랑자는 단순한 훼방꾼이 아니라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아니, 지금 보니 단순한 배우도 아니었다. 부랑자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본 원더스타인은 그를 어디서 본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바로 이번 연극의 극작가이면서도 연출가인 오스카르 한트케 본인이었다.

그제야 그는 이번 무대의 창조주를 연기하는 역할에 그만한 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금 그가 무대를 향해 던졌던 불평불만들도 돌이켜 보면 단순히 술 취한 사람의 헛소리가 아니라 극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물리는 것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이딴 퀘스트를 내건 키르쿠스를 저주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엘라의 옆으로 후다닥 가서 앉은 그는 어서 연극이 끝나기만을 빌었다.

원더스타인은 어째서 키르쿠스가 무대를 망치는 퀘스트를 내준 건지 궁금했다. 그는 지금까지 서커스단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퀘스트를 내걸었지만, 한 번도 남의 무대를 방해하도록 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그의 의문은 결말에 가서야 해결되었다. <악마 찬가>의 주인공은 원더스타인이 있는 좌석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일개 관객은 말했다! 신에게. 당신은 모두에게 방해될 뿐이라고. 세상에 불평불만 많던 신은 그렇게 객석 밖으로 내동댕이쳐졌지. 그 또한 하나의 결론일 수 있지 않을까?”

놀랍게도 한트케는 관객의 난입도 예상해서 극본을 짜둔 듯했다. 즉, 누가 어떻게 행동하든 그것이 주인공이 결론을 내는 과정에서 한 번 언급하도록 해둔 것이다. 아마 어떤 관객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주인공은 그것에 대해서도 지적했을 것이다.

커튼콜이 진행될 때, 엘라가 설명하기로는 <악마 찬가>는 매년 공연될 때마다 ‘신’ 역할의 한트케가 난입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비록 그가 어떻게 등장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때마침 등장한 부랑자를 보고 그가 한트케인 걸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방금 그가 치른 퀘스트는 참으로 키르쿠스답다고 할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아까의 난처한 기분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차를 탄 그들은 오늘 본 공연에 대해 감상을 나누며 돌아왔다. 확실히 연출이 가지는 힘은 대단했다. 그것을 보고 나니 원더스타인은 자신들의 무대가 너무 평면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쓴 대본은 어디까지나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었다. 게임은 시점을 360도 전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었지만, 무대는 관객이 보는 방향과 넓이가 고정되어 있으니 게임 안에서 나온 연출을 표현하기에 무리가 많았다.

솔직히 어제까지만 해도 전문 연출가가 필요하다는 엘라의 말이 크게 와닿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공연을 보고 나니 연출가의 존재가 그들 공연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고민은 길게 할 수 없었다. 당장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예선전을 준비하기 위한 체제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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