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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6화 증명

6화 증명

카인의 눈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 보던 나는 미니맵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일단 숨어. 병사들이 온다.”

나는 카인의 손목을 움켜잡고 가까운 수풀로 뛰어들었다.

얼떨결에 끌려온 카인은 내 말을 의심하는 눈초리였지만, 발소리가 들리자 다시 한번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아 글쎄, 따라와 보라니까.”

“잘못 들은 거 아냐?”

“아니야. 분명 소리가 났다고. 뭐가 부딪히는 소리랑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우리는 숨을 죽인 채 병사들을 주시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살피던 병사 하나가 돌연 외쳤다.

“앗! 저거 아스트라 열매잖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엇! 진짜네!”

열매를 손에 넣은 병사들이 시시덕대며 돌아갔다.

카인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병사들이 온다는 걸.”

“내가 감이 조금 좋거든.”

“대답해라.”

“무엇을.”

“그 격투술. 누구에게 배웠지?”

카인과 동기화한 순간부터 기다렸던 질문이었다.

“이름은 몰라. 내 눈에는 그냥 평범한 용병처럼 보였어. 다만······.”

“다만?”

“그 용병은 북쪽에서 왔다고 했어.”

카인은 내 말을 믿을 것이다.

이 격투술을 만든 ‘하센베르크 가문’은 멸망했다.

그 과정에 가문의 기사들은 대부분 죽었고, 살아남은 소수만이 대륙 각지로 흩어졌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용병을 제외하면 없을 것이다.

“그래. 용병이란 말이지······.”

나직이 중얼거리던 카인이 고개를 들었다.

카인은 열매가 사라진 덩굴을 보고 있었다.

“하나만 더 묻지.”

녀석이 무얼 물어볼지는 짐작하고 있다.

“너는 아스트라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했다.”

“맞아.”

“고작 열매 하나를 구경하러 여기까지 왔다고? 감독관과 병사들에게 발각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지금 나에게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나는 광산을 탈출할 거야.”

대담한 나의 발언에 카인의 눈빛이 변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주변을 돌며 정보를 모으고 있었어.”

“계속해라.”

“원래 이쪽은 며칠 뒤에나 와볼 생각이었어. 그런데 불침번을 서던 감독관들이 아스트라에 대해 말하는 게 들렸지. 그들의 반응이 조금 전의 병사들처럼 유별났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와본 거야. 혹시 그 열매가 내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너에게 도움이 된다고? 아스트라가?”

카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역시 카인은 아스트라의 효능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물론 잘못 알려진 것이지만.

“요 근래 나는 제대로 먹지 못했어. 어제는 광산에서 쓰러지기까지 했지. 나는 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어. 그래서 우연히 알게 된 저 열매가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 거야.”

물끄러미 나를 보던 카인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원기 회복’이라는 말에서 신빙성을 느낀 거겠지.

“나의 이름은 카인이다.”

뜬금없이 카인이 자기소개를 했다.

나도 이름을 말했다.

“데미안.”

“탈출할 거라면 가급적 빨리 시도하는 게 좋을 거다. 데미안.”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왜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

달빛 아래, 카인의 머리칼은 깊은 바다의 물결처럼 푸르고 은은하게 반짝였다.

카인은 데미안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대부분의 의심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한 줄기 의문이 남아 있었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저 소년은 지나치게 침착하다.

심지어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까지도.

실제로 카인은 데미안을 죽이려 했다. 녀석의 대답에서 빈틈이 발견됐다면 서슴없이 숨통을 끊었을 거다.

그러나 데미안이 내놓은 답은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없었다.

‘아스트라까지.’

카인은 아스트라의 불가사의함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광산에서 여러 차례 회귀했고, 그때마다 아스트라 열매가 임의로 형성되는 것을 봤다.

오직 그것만이 회귀 후 반복되는 일상의 예측 불가능한 변수였다.

하지만.

‘너무 이야기가 잘 들어맞는다. 짜인 각본처럼.’

카인은 데미안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하나, 데미안이 하센베르크 격투술을 익혔기 때문이다.

‘하센베르크의 기사는 결코 아무에게나 가문의 전투법을 전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카인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하센베르크의 기사 중 누군가가 데미안에게 가문의 기술을 전수했다.

그 말은 즉.

‘그는 데미안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데미안은 이제 하센베르크의 일원이다.

하센베르크는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다.

‘아니. 나는 규율에 얽매이지 않아.’

카인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날 가문을 습격한 자들과, 그들의 배후를 찾아 복수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데미안은 자신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카인은 앞으로의 자신이 계속해서 데미안과 얽히게 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카인은 데미안에게 호감과 미심을 동시에 가졌다.

그래서 말했다.

“이틀 뒤, 나를 포함한 C조 전원은 광산을 탈출할 거다.”

***

예상했던 이야기였다.

카인은 사흘 뒤 그 괴물들이 광산을 습격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너는 놀라지 않는군. 데미안.”

카인의 말에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까 말했을 텐데. 나도 탈출할 생각이라고.”

“혼자 힘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혼자라고 한 적은 없어.”

나는 테오를 두고 탈출하지 않을 것이다.

테오는 내가 이 세계에서 만난 인물 중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녀석이다.

“과연. 너도 나름의 무리를 이끌고 있다는 건가.”

카인이 묘하게 눈을 빛냈다.

“이틀 뒤 우리가 탈출에 성공하면 광산의 경계는 더욱 강화될 거다. 그렇게 되면 데미안, 네 기회는 영영 사라질지도 모르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 내가 감독관에게 알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상관없다.”

카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건 그것대로 내게 좋은 정보가 될 테니까.”

나는 카인이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데미안. 너에게 제안하지.”

무엇을.

“너희도 탈출에 동참해라.”

***

이튿날 아침, 나는 조원들과 광산을 향하고 있었다.

‘너희도 탈출에 동참해라.’

카인의 제안은 거절했다.

나는 녀석이 온전치 못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카인은 회귀를 반복할수록 정신이 침식된다.’

카인은 이미 열 번 이상의 회귀를 했다.

지금의 카인이 소설 초반의 정신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그는 우리를 버리는 패로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될까 보냐.’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탈출에 관한 명확한 계획이 없다.

어제는 카인과 투덕거린 탓에 조사를 마치지 못했다.

‘오늘 밤에 탈출을 시도하는 것은 너무 리스크가 커.’

나는 이곳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더욱이 광산 너머의 숲에 대해서는 조금도 아는 바가 없다.

그렇다면 결행은 내일 밤.

‘결국 카인의 결행일과 겹치는 건가.’

나는 이 상황을 영리하게 판단해야 한다.

카인은 나를 이용하려 할 테지만, 반대로 내가 녀석을 이용할 수 있도록.

“오늘 아침은 고깃국 줬으면 좋겠다. 제발.”

“저거 또 고깃국 타령이네.”

“아서라 아서. 여기 들어오는 고기는 전부 감독관 뱃속으로 들어간다고.”

나는 걸음을 빨리해 테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족제비가 험상궂은 얼굴로 내 앞을 막았다.

“뭐야 금발 약골. 건방지게 앞장서기라도 하려고?”

“테오에게 할 말이 있어.”

그 말이 족제비를 더욱 화나게 한 모양이다.

“네깟 게 뭔데 자꾸 테오와 엮이려는 거야! 테오가 조금 잘해줬다고 단단히 착각한 모양인데! 흥! 어림도 없지! 나는 아직도 네가 벌인 패악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망할 족제비 녀석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빙의하기 전의 데미안이 생각보다 많은 민폐를 끼친 모양인데.

내가 알 바는 아니지.

“비켜. 족제비.”

“이, 이 약골 새끼가······!”

족제비가 주먹을 휘두르려 했지만 테오가 막았다.

가볍게 한숨을 쉰 테오가 족제비에게 조원들과 먼저 가라고 말했다.

역시나 족제비는 투덜거리면서도 테오의 말을 따랐다.

“할 말이 뭔데. 데미안.”

“내일 밤 광산을 탈출할 거야.”

테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나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표정은 아니다.

‘테오 역시 탈출할 생각이니까.’

나는 그간 손에 넣은 정보를 바탕으로 테오의 의중을 가늠했었다.

첫째, 테오는 남몰래 마석 무기를 만들어왔다.

내가 이 세계에 들어왔던 첫날밤.

그러니까 갱도에서 먼지를 발견하고 쓰러진 뒤 숙소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테오는 상의를 벗은 채 창가에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테오는 창밖을 경계하며 날붙이를 만들고 있었다. 만들어진 무기는 바닥에 묻혔고, 나는 지난밤 숙소를 나가기 전에 그것을 확인했다.

테오가 위험을 감수하며 무기를 만들 이유는 탈출 말고는 없다.

둘째, 테오는 털북숭이 감독관으로부터 나를 구했다.

즉, 테오도 그날 밤 광산을 탐색하고 있었다는 거다.

어쩌면 숙소를 벗어나는 나를 발견하고 뒤쫓아 온 것일 수도 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날의 테오는 죽었으니까.

셋째, 테오는 진심으로 조원들을 챙긴다.

팀워크를 향상시켜 할당량을 채우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게 주목적은 아니다.

확인한 바로 테오가 숨겨둔 마석 무기는 열 자루에 가까웠다.

테오는 조원들과 함께 탈출하려는 거다.

“너도 탈출할 생각이잖아, 테오.”

그 순간 테오가 나의 멱살을 쥐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나운 눈을 뜨며.

“데미안. 너는 또······ 감독관에게 고자질하려는 거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빌어먹을 데미안 자식. 설마 테오의 탈출 계획을 감독관에게 일러바쳤던 건가? 그래서 유독 테오의 몸에 흉터가 가득했던 거고?

“협박할 생각이라면 그만둬라 데미안. 이번에는 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아.”

테오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낌새를 느낀 족제비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테오!”

“돌아가. 조.”

족제비는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다 슬금슬금 되돌아갔다. 물론 그전에 나를 향해 눈을 부라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저 자식 이름이 조였어? 이름부터가 아주 제대로 족제비잖아.

“네가 그런 짓을 벌였어도 나는 너를 조원으로 인정했다. 다른 조원들에게 알리지도 않았어. 어쩔 수 없이 알게 된 몇 명을 제외하고는.”

테오의 슬픈 눈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테오에게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감독관에게 알릴 생각은 없어. 나는 정말로 내일 밤 탈출할 거야.”

“그걸 내게 말하는 이유가 뭐지?”

“네가 여러모로 준비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시간이 없어. 우리는 반드시 내일 이곳을 떠나야 해.”

“시간이 없다니. 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 물음은 나로 하여금 또다시 테오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이틀 뒤, 광산에서 큰일이 벌어질 거야.”

“뭐라고?”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려워. 하지만 내 말을 믿어야 해. 너는 알잖아. 내가 어제 갱도에서 단번에 마석을 찾아냈다는 걸.”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일과, 광산에서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네 주장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나에겐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직감이 있어. 그 감각이 알려줬어. 이곳에 위험이 닥칠 거라고.”

테오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만두자 데미안. 네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어.”

테오가 성큼성큼 발을 움직였다.

나는 테오를 쫓아가 덥석 손목을 붙잡았다.

“데미안. 너는······!”

뒤돌아보는 테오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증명할게. 나의 직감이 ‘진짜’라는걸.”

.

.

.

“고깃국이다. 고깃국이야!”

광산에 도착한 소년들이 조식을 보자마자 난리를 쳤다.

“이, 이게 얼마 만의 큼직한 고기냐!”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숲에서 죽은 짐승이라도 뛰어 들어온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죽은 짐승이 어떻게 뛰어 들어와!”

나는 피식 입가를 올리며 조원들을 봤다.

그런 나를 보는 테오의 눈은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 오늘 고깃국이 나온다는 걸.”

“말했잖아. 나의 직감은 ‘진짜’라고.”

테오는 허겁지겁 고기를 흡입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우연이겠지. 암. 그럴 거야. 이런 고깃국은 두어 달에 한 번은 나오곤 했으니까.

“빨리빨리 처먹고 들어가! 이 빌어먹을 돼지 새끼들아!”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키던 테오의 눈은 갱도에 들어선 뒤 더욱 커졌다.

내가 무려 다섯 개에 달하는 마석을 연달아 채굴했기 때문이다.

“너, 너, 너 대체 어떻게······!”

“말했잖아. 나의 직감은 진짜라고.”

거기에 더해, 나는 미니맵을 이용해 감독관이 등장할 타이밍을 여러 차례 예언했다.

경악한 표정을 짓던 테오가 돌연 얼굴을 굳혔다.

“서, 설마 데미안 너······ 지난번에 감독관에게 고자질했던 것도······?”

나는 물끄러미 테오를 마주 봤다.

그러고는 담배 연기를 뿜듯 긴 한숨을 뱉은 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네 짐작이 맞아 테오. 그때도 나는 이번처럼 위험을 감지했었어.”

“······!”

“하지만 말해도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의 직감은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게 아니고, 또 갑작스레 흩어져 버리니까. 아쉽게도 그때는 지금처럼 내 감각을 증명할 수 없는 상태였어.”

테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어. 너와 조원들이 위험해지는 것을 볼 수 없었으니까. 미안하다 테오.”

“크흑······! 나야말로 미안하다!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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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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