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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5화 신성(1)

호남 평야. 대한민국의 쌀 생산량을 책임지는 이곳에 게이트가 나타난 건 일주일 전이었다.

평균 공략 난이도 A급이라는 주홍색 게이트는 불새 길드가 낙찰받으면서 무난하게 클리어가 예정됐다.

불새 길드가 제대로 공략만 했더라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김진수 과장과 한하리 대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곧장 호남 평야로 날아왔다. 그곳에서 불새 길드의 길드장 이용완을 만날 수 있었다.

“아, 김 과장님. 우리 루키 한하리 양도 있네?”

그는 사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유를 부렸다. 그 표정을 보고 두 사람은 직감했다.

‘이 새끼… 일부러!’

틀림없다. 불새 길드는 일부러 게이트 공략을 부진하게 하여 던전 브레이크를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다!

‘면제 혜택을 줄기차게 요구하더니 그렇다고 이따위 짓을 벌여?’

최근 협회와 불새 길드의 마찰이 잦았다.

불새 길드는 올해 내내 지속적으로 국내 10대 길드 중 하나인 자신들에게 면제 혜택을 요구했다.

게이트에서 얻는 부산물, 마정석 수입, 몬스터의 소재 등에서 생겨나는 소득에 대해 1조원까지 면제혜택을 요구한 것이다.

명목은 후진 양성과 길드원들의 치료비 증가였다.

이미 국내 대형길드들에 대해 갖가지 혜택을 주고 있는 정부는 난색을 표하며 이용완 길드장의 요구를 거부했다.

무언가 수를 쓰긴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설마 13년 만에 출몰한 흑색 게이트로 소란인 와중에 이따위 수작질을 벌이다니!

‘빌어먹을 개자식들! 호남 평야가 어떤 땅인데! 나주 평야의 정화작업도 완료가 안 된 마당에 어떻게 이런 짓을!’

게이트 사태 이후로 세계의 식량 무역로는 꽝꽝 얼어붙었다.

초기 게이트 사태에 대처가 늦은 드넓은 대평야들이 마소에 오염되었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의 내로라 하는 곡창지대가 오염되어 그 정화용 시약을 마탑에게서 구입한 금액만 천문학적!

당장 호남 평야의 올해 농사를 망치면 아직까지 어찌어찌 유지하던 식량 자급률이 반토막이 날 것이다.

다급해진 한하리 대리가 요청했다.

“이용완 헌터님! 지금 당장 게이트를 클로징해야 합니다! 오늘로 일주일 째예요! 그 이상 지나면──”

“압니다, 알아요. 낙찰된 게이트에 대한 권한은 넘어간다는 거. 그런데 어쩌죠?”

이용완 길드장은 비열한 미소로 두 사람을 조롱했다.

“우리 길드원들이 많이 다쳐서요. 이 상태로는 공략이 어려울 거 같네요. 저희 불새 길드는 호남 게이트 공략권을 포기해야 할 거 같습니다.”

“……!”

김진수 과장과 한하리 대리의 얼굴이 시뻘겋게 끓어올랐다. 두 사람은 당장 눈앞의 개자식에게 쌍욕을 박고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그는 S급 헌터였다.

고작 B급 헌터인 김진수는 물론이고 A급 헌터인 한하리도 그의 부하 정도나 맞상대가 가능했으니.

‘개자식들! A급이 이렇게 많은데, 게이트 공략이 불가능하다고?’

“어쩌시겠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당장 1차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협회가 어떻게 처리를 하셨네요? 그런데 아직 게이트가 완전히 터지진 않은 거 아시죠?”

흑색 게이트 때문에 투입되었던 직원들이 상하지 않은 덕에 협회는 지금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내부가 몬스터로 꽉꽉 찬 게이트가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건 7일 차부터 10일 차까지.

다시 말해 호남 평야의 주홍색 게이트는 아직 완벽히 터진 게 아니다.

“지금 당장 게이트의 공략권을──”

“안 되죠. 김 과장님 왜 이러실까. 헌터법에 따르면 8일까지는 공략권을 낙찰받은 길드가 유지하는 거 아시잖아요.”

아무리 협회라 해도 이미 낙찰받은 게이트의 공략권을 강제로 뺏을 수는 없었다. 불새 길드장은 바로 그것을 악용하고 있었고.

“내일까진 저희들도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워낙 상한 친구들이 많아서 공략이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개자식…….”

한하리가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의 발언에 이용완은 피식 웃으며 여유를 부렸고.

“그러게 서로 좋게좋게 합의했으면 좋잖아. 우리만 그랬어요? 청성하고 무진, 상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영웅들이 아주 작은 혜택 하나 요구 못해요?”

“이미… 이미 그렇게나 지원금과 세제 혜택을 받았으면서…….”

정부가 대형 길드들에 주는 혜택은 결코 적지 않다. 문제는 이들이 만족할 줄 모르는 돼지들이라는 것이다.

“일본으로 갈까? 그쪽에서 우리 거지 같은 대한민국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해준다고 약속했는데요?”

“……!”

그래, 이게 문제였다.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생존자와 각성자 쟁탈전.

돈 많은 국가일 수록 자국의 안전을 위해 고위 헌터들을 포섭하려 들었고, 외교 마찰을 감수하고 공작을 벌였다.

그나마 있는 전력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막대한 혜택으로 대형 길드들을 묶어두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달했다.

“당신은… 최소한의 애국심도 없나요?”

약자멸시, 강자독식이 이 세계의 미덕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최소한의 양심과 정의는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애국심? 정의? 그런 거 유행 지난지 오래야. 유치하게 왜 이래? 우리 하리 양, 작년 드래프트 때 내가 말했었죠? 세상은 돈과 힘이 곧 정의라고.”

하리는 파르르 떨며 분노를 삼켰다. 이래서였다. 그녀가 헌터 협회에 입사한 이유.

돈과 리스크만 생각하며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들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현 한국 헌터들의 작태.

인간성은 결여되고 정의는 곤두박질치며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작금의 시대가.

영웅을 동경하고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던 어린 소녀에겐 너무나 혐오스러운 현실이었다.

하지만 인정해야 하는 걸까? 세상은 돈과 힘만이 전부라는 것을? 그런 비참한 현실을 인정해버리면 대체 어디서 정의를 찾지?

“참으로 천박하고 고루한 작자들이로구나.”

그때였다. 저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레, 레온 폐하?”

“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우먼. 존칭만이 네게 허락된 것이다.”

다급히 움직이는 두 사람에게 세상 구경을 하겠다며 따라왔던 남자. 그는 이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던 듯 두 간극 사이에 섰다.

“뭡니까, 당신은? 유럽인인 모양인데──”

“왕의 어전이다! 어찌 천것이 가벼운 혓바닥을 놀리는가!”

“엑?”

S급 딜러 이용완. 그는 대한민국의 20명뿐인 S급 헌터이자 10대 길드로 대표되는 불새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헌터로서의 힘이 곧 권력이자 재력으로 치환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누구도 감히 그의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했다. 그런데…….

‘뭐야, 이 새낀?’

10대 길드의 길드장이자 20명 뿐인 S급 헌터인 자신에게 천것이라고? 왕의 어전은 또 무슨 헛소리야?

“죽고 싶은──”

“멈추십시오, 이용완 헌터! 그는 생존자입니다!”

“생존자?”

그 말에 이용완은 끌어올리던 마력을 가라앉혔다. 그래, 생존자. 그들은 지구와는 다른 문화에서 찾아온 이방인들이다.

그들의 문화적 차이는 둘째 치고 생존자는 그 자체로 커다란 가치를 가진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용완은 생존자를 바로 적대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았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저는 불새 길드의 이용완이라고 합니다. 생존자라… 설마 그 흑색 게이트에서──”

“왕은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바로 그를 닥치게 만든 레온은 한하리와 김진수에게 물었다.

“문제를 말하라.”

“예?”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짐은 게이트라는 것에 대해 소상히 알지 못한다.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해 대령하라.”

그 말에 두 사람은 화색이 돌았다. 생존자인 그가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던전 브레이크입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마소가 대량으로 발산하면서 토지가 오염됩니다! 그렇게 되면 호남평야 전체가 오염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지금도 이미 퍼진 마소가 땅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해결 방법은?”

“제염을 통해 오염을 정화하고 하루라도 빨리 던전을 클리어 해 던전 그 자체를 없애야 합니다!”

“이해했다. 오염된 토지와 게이트란 것이 팽창하는 문제인가. 전력을 소집해라. 내일까지 저 잡새인지 뭔가 하는 것들의 공략기한이 끝나는 순간 본왕이 직접 나서겠다.”

“저, 정말이십니까?”

레온은 최소로 잡아도 S급 헌터였다. 그런 강자가 조력을 해주겠다는데, 거부할 멍청이는 없다.

“허나, 그전에…….”

“그전에?”

두 사람은 그가 원하는 거라면 어떤 것이든 맞춰줄 요량이다. 일단 무기부터 맞춰야 할까? 아니, 그는 이미 자신의 검을 가지고 있다.

방어구는 없는 모양인데, 급하게 옥션이라도 가서 물건을 대령해야 하려나?

하지만 레온이 요구한 것은 전혀 생뚱맞은 것이었다.

“타국의 왕이 남의 영지에서 멋대로 군사행동을 벌일 순 없는 법. 일단 이 나라의 왕에게서 직접 허가를 받아야겠다.”

“예? 아니, 괘, 괜찮은…….”

“모든 일에는 적법한 절차와 격이 존재하는 법이다. 어서 그대 왕에게 파발을 보내지 못할까.”

“”…….””

천하의 10대 길드도 대통령보고 얼굴 좀 들이밀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용완은 순간 생각했다.

‘이 새끼, 나보다 더한 새끼 아니야?’

* * * *

「……대통령입니다.」

다행히 해외 순방 중이던 대통령이 호남 평야까지 날아오는 일은 없었다.

레온은 그가 흑색 게이트 관련으로 지원을 요청하러 간 사실을 듣자 납득했고, 귀환길을 축복하며 가벼운 전화통화로 만족했다.

“폐하! 헌터 협회 예하 공략대 50인 전원 준비를 마쳤습니다!”

게이트의 정식 공략인수인 50명을 채운 한하리와 김진수 과장은 무장한 채로 그의 앞에 섰다.

“좋다. 내일로 잡새들의 법적인 기한이 끝난다 했는가.”

“아, 네…….”

하리는 의외라는 듯 레온을 응시했다. 신분제를 내세우는 그라면 법적 절차 따위 무시하고 당장이라도 게이트에 쳐들어갈 것 같았는데, 그의 행동이 너무나 의외였던 탓이다.

“그대는 짐을 야만인으로 보는가?”

“예? 그, 그럴 리가요!”

“문명에는 적법한 절차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국가의 권위가 깃든 법을 지키지 않고서야 어찌 명예로운 기사라 할 수 있겠는가.”

“오오…….”

감탄하는 협회 직원들. 레온은 그들을 단번에 휘어잡으며 타고난 지휘력을 발휘했다.

“그보다 준비하란 것은 준비해왔느냐?”

그 말에 하리를 비롯한 협회 직원들은 의뭉스러운 시선을 떨쳐내지 못했다.

“저… 폐하.”

“말하라.”

“준비하라 하시기에 준비는 했사옵니다만… 대체 이것들은 어디에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레온이 명령한 것은 활과 화살, 장신구로 장식되어 있는 호박 해골이었다. 거기에 볏짚으로 만든 인형 따위를 만들어오라 명했고.

“소중한 토지가 오염됐잖느냐. 땅의 오염을 정화해야지.”

“예에?”

족히 100개가 넘는 볏짚 인형은 협회 직원들이 허겁지겁 도시를 돌아다니며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들’에게 다급히 만들어달라 부탁한 것이다.

“저들이 인형들을 만든 부인들인가?”

“그, 그렇사옵니다.”

꼭두새벽에 협회 직원들과 동사무소 직원들의 다급한 부탁을 받고 끌려온 100여명의 여성들이 줄지어 서있다.

젊은 여성부터 중년, 환갑을 넘은 노인까지 그 연령대가 워낙 다양했다.

“각자 자신이 만들어온 인형을 보여라.”

한없이 명령조에 궁시렁 거리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협회가 제시한 보상은 그들에게 너그러움을 부여했다.

레온은 부인들이 만들어온 볏짚 인형들을 살피며 검수하기 시작했다.

“흠… 말도 안 되는군.”

“……예?”

“이딴 형이상학적인 괴형체를 인형이라고 부를 생각을 하다니.”

“흐윽…!”

첫 번째 볏짚 인형이 내동댕이쳐졌다.

“호오, 이건?”

“마, 마음에 드시우, 총각?”

“마치 살아있는 인형 같군.”

“그 정도로 잘 만든 건 아닌 거 같은──”

“이런 추한 모습으로 살아가느니 곧 자결을 선택하겠지만.”

“…….”

두 번째, 세 번째, 스무 번째 인형도 내동댕이쳐졌다. 한하리의 차례였다.

“흠? 그대도 참가했나?”

“아, 예! 저 손재주가 있어서 인형 같은 건 잘 만드옵니다!”

확실히 하리가 만든 인형은 그럴 듯했다. 볏짚으로 만들었음에도 형태가 앙증맞게 잡혀 있었고 장식도 잘 달려있다.

“출산경험이 있다니 의외로군.”

“네? 아, 저 결혼… 안 했사옵니다. 여자면 다 괜찮은 거 아니었… 나요?”

“아니다, 어리석은 것.”

-부욱! 부욱!

“어어! 볏돌아!”

잔혹하게 찢겨져 나간 볏짚 인형은 바람에 휘날려 허망하게 사라졌다.

그렇게 가혹한 기준 끝에 레온의 눈에 들어온 건 여든아홉 번째였던 노부인이었다.

“훌륭하다! 부인께선 아이를 몇이나 낳으셨소?”

“열둘이라우.”

“흠, 젊은 나이에 실로 애국자요 살아있는 생명의 원천이시오. 앞으로도 자녀계획이 있으신가?”

“영감이 뒤졌는디?”

“허허, 부인처럼 생명력이 풍족한 이라면 재혼도 능히 가능하겠지. 아직 젊으니 10년 정도 찬찬히 생각해보시게.”

“나가 먼저 뒤지것구먼.”

“본디 아이를 열 이상 낳은 부인에게는 기사를 파견해 직접 상패와 선물을 전달하오만,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용서하시게.”

레온은 노부인의 손등에 입 맞추며 볏짚 인형을 제단 위에 올렸다.

“조건은 갖춰졌다.”

레온은 준비해둔 물건들 앞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공간이 열리며 그의 손바닥 위에 잔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색 바랜, 여기저기가 금이 간 낡은 잔이었으나 누구도 그 잔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그것에 신묘한 기운이라도 흐르는 것처럼.

“그대는 풍요로운 땅의 어머니일진저. 지상의 자식들이 그대에게 바친 풍작의 인형 안에 깃드소서.”

잔에 물이 채워졌다. 스스로 채워진 잔이 제단 앞에 놓이자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잔 안에 담긴 물이 펄펄 끓더니 마치 역류하듯 솟구쳐 볏짚 인형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협회의 직원들도, 볏짚 인형을 만든 부인들도, 불새 길드의 길드원들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석양이 떠오른다.

붉은 빛이 구름에 색을 입히고 반복되는 하루가 시작되려 한다.

하지만 이날, 2032년 5월 24일의 석양은… 온 세계에 특별한 시작이 되리라.

「라이온하트, 내 아이야.」

볏짚 인형이 일어난다. 신성이 깃든 인형은 자애로운 음성을 흘리며 스스로를 증거한다.

“대지모신께 인사드립니다. 생명과 풍요의 신성, 데메라시여.”

이 땅에 신성이 강림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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