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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00

EP.499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5)

원더스타인은 <울펜슈타인 백작>을 한 번 관람한 적이 있었다. 1년 전, 루즈의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 엘라가 잠시 대타로 올랐었던 무대가 바로 그것이었다.

엘라는 10살 때 이미 크리스티앙의 대본을 모두 외었다고 했다. 실제로 연기력도 뛰어나서 그녀는 업계에서 저명한 연출가였던 장미 풍차 카바레의 총감독 유그 마로이네로부터 놀라운 재능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원더스타인을 비롯한 괴물서커스단 단원들의 위로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이것이 두 번째 시험이거나 네 번째로 치를 시험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기가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와 크리스티앙 기념관의 시험은 뛰어난 곡예사 한둘이 전국을 좌우할 수 있는 무대였으니까.

그러나 이번 시험은 서커스단의 역량 전체가 심사받는 자리였다. 한두 사람의 천재로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테레나 노천극장 측은 ‘연기력’을 보겠다고 했지만, 애초에 연기라는 것은 저울에 무게를 다는 것처럼 측정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적절한 배경, 음악, 소품, 분장, 의상 등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하던 서커스와 완전히 다른 무대를 준비하기에 한 달은 상당히 촉박한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괴물서커스단은 제대로 된 분업 체계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단원들 개개인의 뛰어난 실력과 단장과 부단장의 초인적인 능력으로 계속 조금씩 개선하고 수습해왔을 뿐이었다.

“하필 <울펜슈타인 백작>이라니? 이건 우리가 이긴 거나 다름없군. 우리 서커스단에는 크리스티앙 기념관 출신 배우들이 10명이나 있거든.”

지몬이 무대를 내려가면서 우쭐대며 한 말을 원더스타인은 단원들에게 전했다. 그러자 그들은 이전보다 더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크리스티앙 기념관은 6대 극장 중 하나로 그들이 이곳 다음으로 들릴 예정인 곳이었다. 그곳은 극작가 크리스티앙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둔 박물관일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원본’을 상시 공연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크리스티앙의 모든 극본은 세계 곳곳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연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널리 사랑받고 있었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는 연극들 대부분은 다른 극작가의 수정을 거친 각색판이었다. 그의 작품 원본은 연기자가 노래, 연기, 곡예를 모두 할 줄 알아야 했기에 그것을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다행히 교수들이 제시한 대본은 연극에 맞춰 곡예 부분이 간소화된 일명 연극대학 버전이었다. 적어도 괴물서커스단 단원들이 소화해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곡예는 없었다.

거기다 그들이 공연을 펼칠 차례는 맨 마지막 날이었다. 경쟁자들보다 이틀에서 사흘은 더 번 셈이었다.

그러나 그걸로 즐거워하기에는 그들이 상대해야 할 두 서커스단과 그들과의 실력 차는 터무니 없이 컸다. 단원들 사이에서는 벌써 자포자기하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냥 기권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 우승 후보 둘 사이에 끼면 창피만 당할 거야.”

“다음 기회를 노리자.”

원더스타인은 그들의 반응을 들으며 가만히 상태창을 바라봤다. 매 시험 그랬듯이 이번에도 키르쿠스로부터 시험을 통과하라는 퀘스트를 받았다.

이것이 뜬 이상 자신들이 시험을 통과할 확률은 결코 0%가 아니라는 말이 됐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설마 상대의 무대를 망치는 식으로 가야 하나?

아니다. 그랬다간 키르쿠스로부터 벌이 떨어질지 몰랐다. 그는 인스피라를 이용해 무대를 망치는 일을 반복했다가 세상에서 퇴장하는 형벌을 받은 카바레의 유령을 잊지 않았다.

“시끄러워! 왜들 그래? 포기는 무슨! 짧고 긴 건 대봐야 아는 거지!”

그가 고민하는 사이 엘라가 단원들을 독려하고 나섰다. 물론 그녀도 이번에는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단장으로서 그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6월 시험에서 떨어지면 7월이나 8월 시험에 재도전하면 그만이잖아!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연기력을 갈고닦아야지! 만약 그때 충분히 승리를 노려볼 만한 상대를 만났는데, 실력이 반 뼘 모자라서 떨어지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퀘스트는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을 통과하라고 했지 반드시 6월에 통과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더 실력을 키워서 다음번에라도 합격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해온 것이 어쩌면 그들의 실력에 비해 과분한 성과였을지도 몰랐다.

“좋습니다. 이제 황금 카니발이나 바퀴의 서커스는 제쳐두고 우리 일 얘기나 해봅시다.”

서커스 그랑프리는 대회가 시작되고 새로운 인원이 들어오는 것을 강하게 제한했다. 서커스단끼리 부정한 거래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이번 시험에도 괴물서커스단은 모든 단원이 배역을 맡을 수는 없었다. 원더스타인, 엘라, 마야, 스벤, 밴딕, 유라크네, 트라이머리, 우몬, 미노바, 루엘로, 알렌, 조에 더해 만우절 행사의 1등 상품으로 무대에 다시 설 수 있게 된 레이나까지 해서 15명이 다였다.

그나마도 트라이머리는 하나의 몸을 공유하고 있으니 한 번에 13개의 배역을 맡는 게 그들의 한계였다. 다행히 <울펜슈타인 백작>에는 그 정도 대인원이 한 번에 무대에 오를 일은 없었다.

“엑스트라들은 마야 양의 환상으로 대체하면 되겠죠?”

“아니면 형편에 따라서 중복 배역을 소화하면 될 거고요.”

“가장 중요한 건 주요 배역들을 누가 맡느냐는 거 아냐?”

“맞아. 일단 주인공인 울펜슈타인 백작은…… 내가 하면 되겠지?”

엘라는 볼 것도 없다는 듯 칠판에 적어둔 배역 명 옆에 자신의 이름을 쓰려했다. 그녀가 실력이 가장 뛰어났기에 아무도 그녀의 의견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을 빼고는.

“잠깐, 기다려.”

레이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엘라를 제지했다. 그녀는 엘라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왜 네가 주인공을 맡겠다는 거야?”

“뭐? 그야 맡을 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잖아. 대사량도 많고 감정 변화도 심한 역할이란 말이야. 연기력이 제일 뛰어난 내가 해야지.”

“나도 할 수 있는데?”

레이나의 반박에 회의실에 모여 있던 단원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괴물서커스단에 들어온 뒤로 무대에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던 그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서커스 그랑프리가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의 추가에 제한을 두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험을 치를 때뿐이었다. 그녀는 철도 서커스를 하는 동안 무대에 오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 사양했다.

실력과 별개로 그녀는 서커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몬의 강요로 인해 억지로 걸어온 곡예사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원들 모두가 그걸 알고 있었다.

“레이나, 넌 무대에 서기 싫어했잖아.”

“이번에는 서고 싶어졌어.”

레이나는 그렇게 말하며 원더스타인을 흘끗 바라봤다. 한때 그녀는 원더스타인의 진짜 딸이었었다. 물론 그가 누군가와 결혼해 배 아파 나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를 아빠라고 불렀고, 그도 자신을 딸이라고 여겼었다.

그런 그녀가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삶’을 살게 된 것 또한 아빠의 결정이었다. 역병 군주가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그가 그녀를 가지고 무슨 일을 벌이기 전에 그녀를 숨기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의 그런 결정에 반대했었다. 그녀는 죽어도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나마 그녀에게 어떤 가정으로 들어가고 싶은지 선택권을 준 것이 그가 그녀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그때, 레이나는 한 나라의 왕위계승권자나 세도가의 고명딸 같은 자리를 포기하고 어느 마술사와 곡예사 부부의 딸 자리를 택했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이 서커스 그랑프리를 다시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라도 그를 다시 만날 확률을 높이기 위해 그녀는 곡예사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지몬이 요구한 주문서를 봤을 때, 그는 딸을 자신의 후계자로 키울 마음인 게 분명했다.

그렇게 13년의 세월이 지나 그녀는 다시 원더스타인과 만나게 됐다. 바라던 만남이었고 마침 일이 잘 풀려 지몬에게서 벗어나 그녀는 자신의 진짜 아빠와 함께할 수 있었다.

인형의 집 이후, 자신의 과거 기억을 서서히 되찾고 있던 그녀는 이제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아빠에게 당당히 한 명의 곡예사로 인정받고 싶었다. 지몬의 강요로 억지로 끌려온 길이 아니라 자신이 당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선택한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번 만우절 행사의 특권을 사용해서 비 곡예사 단원 중 한 명을 곡예사로 바꿀 수 있을 때,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한 것이었다. 평소의 공연에는 그동안 서커스단 안에서의 해온 역할이 있어서 나서지 않았지만, 이런 무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무대 위에 올라 아빠의 눈에 띄는 활약을 하고 싶었다.

“난 주인공을 하고 싶어.”

레이나의 선언에 엘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자리를 뺏기는 것이었다. 그녀가 원더스타인을 공공연히 미워하고 다닐 때도 그의 옆자리만은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지키려 했을 정도로 그녀는 그 문제에 민감했다. 그런데 감히 레이나가 방금 그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엘라는 함부로 상대에게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레이나의 실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구차하지만, 현실적인 지적을 하기로 했다.

“연기를 하려면 가면을 벗어야 하지 않아?”

“벗을 수 있어.”

레이나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그녀의 그림자 나이는 한 달 사이에 2살 더 올라 이제 15살이었다. 그녀의 사회적 나이는 18살이니 고작 3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이제 가면을 벗고 다닌다고 해도 가면을 썼을 때와 그렇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함을 삼킨 엘라는 마지막으로 권위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레이나가 잘나봤자 어차피 서커스단 안에서의 입지는 자신이 높았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을 돌아보며 질문했다.

“이봐, 단장! 당신이 결정해줘. 누가 백작 역할에 더 어울려?”

“네?”

두 사람의 대결을 흥미로운 눈으로 관전하던 원더스타인은 갑자기 불똥이 자신 쪽으로 뛰자 깜짝 놀랐다. 당황해하며 아무 말도 못 하는 그를 향해 레이나도 날카로운 기세로 돌아봤다.

“누가 주인공에 더 어울리냐고요!”

레이나까지 이렇게 성내는 것은 다들 처음 봤다. 단원들은 엘라와 레이나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최종적으로 원더스타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 저기, 그게…….”

원더스타인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머뭇거렸다. 마침 단원 퀘스트가 둘 다 떠버렸다. 엘라와 레이나 모두 자신을 주인공으로 발탁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그가 선택하는 순간, 강력한 실패 페널티가 뒤따랐다. 원더스타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대답을 재촉하는 그들의 눈빛에 결국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맥이 빠질 정도로 허무한 대답이었다. 엘라와 레이나는 그를 지그시 노려보다가 곧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두 사람 다 그에게 잔뜩 화가 난 것이었다.

‘흥! 맨날 부단장이 최고다. 나만 믿고 간다고 하더니. 결국 레이나가 무대에 서겠다고 나서니 태도가 달라지는군.’

‘쳇, 상식적으로 딸 편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부단장 체면 살려주려고 그러는 건가요? 못된 아빠.’

결국에 그날 밤의 회의는 주인공 역할도 누구로 할지 정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물론 그 외에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잔뜩 있었다. 시험까지 남은 40일 중에 하루가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렸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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