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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01

EP.500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6)

다음 날, 아침 식사 자리의 공기는 제법 싸늘했다. 평소에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던 엘라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원인이 되는 사람이 식당으로 내려오면서 그녀의 얼굴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제의 논쟁 때문인지 레이나는 보란 듯이 가면을 벗고 사람들 앞에 섰다.

단원들은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얼굴이 반가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녀 특유의 도도하고 차가운 표정은 사람들이 쉽게 말을 붙이기 힘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차라리 가면을 썼을 때가 분위기가 더 부드러웠던 것 같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찬 바람이 부는 두 사람 사이에서 식사하려니 단원들은 소화불량에 걸릴 것만 같았다. 평소 남들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식사를 하던 루엘로조차 느릿하게 숟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그러는 것은 주변 눈치를 봐서라기보다 동화책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엘로 양, 책 읽는 게 재미있나 보군요.”

바텔의 말에 루엘로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네, 네! 재밌어요!”

“그렇군요. 하지만 루엘로 양의 행동은 식사를 마련한 분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요. 유라크네 씨도 그 책을 쓴 사람처럼 당신이 즐겨주길 바라면서 요리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아, 그런…… 죄, 죄송해요…….”

놀란 루엘로는 재빨리 동화책을 등 뒤에 숨겼다. 그리고 그녀는 건너편에 앉은 유라크네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 사이 바텔은 루엘로가 좋아하는 달걀 감자 범벅을 그녀의 앞접시에 한가득 덜어주었다. 잠시 주춤했던 그녀는 그것을 보고 크게 반색하더니 양 볼이 가득 찰 정도로 열심히 퍼먹기 시작했다.

“바텔 선생님은 볼 때마다 대단하세요. 어떻게 그렇게 조곤조곤하게 애들을 잘 다룰 수 있죠?”

유라크네는 그의 노련함에 감탄했다. 사실 그녀는 방금 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책을 읽는 루엘로를 막연히 야단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늙은 집사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고 먼저 나서서 일을 처리해버린 것이다. 그는 맞은편에 앉은 녹색 머리카락의 여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말괄량이를 다루는 일에 익숙해서 말이지요. 제가 모시던 분은 아예 식탁 위에 책을 쌓아두고 읽곤 했어요. 그러다가 한번은 피자 조각을 손수건으로 착각해서 손을 닦는 일도…….”

“윽, 고용주의 비밀을 함부로 팔지 마세요!”

귀족답게 우아한 자세로 식사를 하던 아나이스는 그가 푸는 옛이야기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언제나 품위를 지키는 그녀였지만 집사 앞에서만은 예외적으로 애처럼 굴곤 했다.

바텔은 주인의 만류를 못 들은 척하며 그 어린 시절 소녀에 관한 몇 가지 추억을 단원들에게 들려주었다. 지금의 아나이스를 보면 상상이 안 가는 엉뚱하고 웃긴 이야기들이 많았다. 덕분에 식사 자리는 아까보다 한결 부드러워졌다.

바텔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한 번씩 엘라와 레이나에게 은근한 눈빛을 던졌다. 두 사람은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망친 식사 자리를 바텔이 수습한 셈이 됐다.

‘<울펜슈타인 백작>의 집사 역할을 바텔 씨가 맡아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쉽군.’

원더스타인은 단원들을 둘러보며 조용히 누가 어떤 역할에 어울릴지 검토해 나갔다. 그들의 개성적인 외모는 보통의 연극을 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래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한정적이었기에 역할 배분은 쉬었다.

문제는 주인공인 울펜슈타인 백작, 하녀 로지, 아자티 공주, 떠돌이 광대 에다를 누가 맡을지였다. 극을 이끌어 가는 4명의 중심인물인 만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맡는 게 좋았다.

“보통 연극을 준비하는 데 밑 작업과 회의만 1주일씩 걸린다고들 해.”

식사를 끝낸 엘라는 토라진 티를 내던 것을 그만두고 다시 부단장으로서 역할에 임했다. 바텔의 말 없는 훈계 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시간은 이제 딱 39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급한 시기에 자신들끼리 싸우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1주일 걸린다는 건 일반적인 극장의 이야기지요?”

“그렇지. 우리로서는 1주일도 모자라. 다른 서커스단도 대부분 그럴 거야. 다들 평소에 하던 거랑 다르니까.”

“하지만 우리 상대가 저 황금 카니발과 바퀴의 서커스라는 게 문제죠.”

“그래. 그들은 3일이면 모든 준비를 끝마칠 거야. 여러 모로 우리는 불리한 출발선에 있다고.”

“어제 일을 보니 확실히 교통 정리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더군요.”

남 일처럼 말하는 원더스타인의 태도에 엘라는 울컥해서 소리쳤다.

“그건 원래 단장인 당신의 역할이잖아!”

“최소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면 안 되죠.”

레이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그를 찌릿 노려봤다. 원더스타인은 할 말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정말 모르겠는걸요. 차라리 이참에 연출가를 한 명 구해보는 게 어때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떨어질 리가 없잖아. 이미 어지간한 사람은 다 자기 무대 꾸리고 있을 텐데. 굳이 우리 같은 서커스단에 누가 들어오려 하겠어?”

그때, 식당 문을 열고 초췌한 안색의 도스빌 남작이 들어왔다. 그는 어제 친구들을 보러 외출했다가 밤늦게 술에 취한 채 귀가했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아침 식사 시간에도 깨질 못하다가 이제 겨우 일어난 참이었다.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그는 거실의 빈자리를 살피다가 루엘로가 자기 자리를 양보하자 거기로 가서 앉았다. 루엘로는 자연스럽게 그의 무릎 위에 올라탔다.

“어제 제비뽑기 결과에 대해서는 들었나?”

옆에 앉은 미노바의 질문에 도스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과 술 마시다 중간에 도박장에 들렀습니다. 도박판만큼 돈 걸린 일에 소식이 빠른 곳이 없죠. 우리 서커스단의 배당을 확인해보니 500배더군요.”

“500배! 그렇다면 승률이 0.2%란 말인가?”

“고배당에 던지고 보는 도박사들이 많으니. 실제로는 그 이하일 겁니다. 그래서 회의는 어디까지 진행된 겁니까? 배역 배분은 끝났습니까?”

도스빌 남작은 극문학 전공자였다. 어쩌면 꽤 유용한 조언을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노바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그에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연출가라…… 확실히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중구난방이었죠. 지금의 서커스도 바닥부터 시작해서 계속 보수와 개선을 거듭해서 만들어낸 거지 않습니까? 이제는 연출가가 필요해요. 적어도 이번 시험 같은 경우는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어디 쉽게 구할 수 있는 곳 없나?”

“글쎄요. 부단장 말대로 다들 자기 일하느라 바빠서……. 게다가 명성 있는 연출가는 체면 때문에 이런 무명 서커스단에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겁니다.”

“꼭 안 유명한 사람이라도 돼. 연극대학 다녔다며. 아는 사람 없어?”

엘라의 말에 도스빌 남작은 어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세간의 이목이 서커스 그랑프리에만 집중되느라 일이 없어서 노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잠시만요. 그러면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죠. 어디 노는 연출가 한 명 없는지…….”

그 순간 도스빌 남작이 멈칫했다. 노는 연출가. 그러고 보니 딱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아주 유명한 인물로…….

“프라빈 대학의 연극대학 교수면 어떨까요?”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었다. 분명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조건은 다 갖추고 있는 남자였지만, 과연 그 정도 되는 인물이 자신들의 일에 협력해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엘라는 교수라는 말에 딱 고개를 내저었다. 어제 극장 측에서 나눠준 시험의 규칙을 그녀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교수는 힘들어. 예선전 관련자들은 시험에 개입하면 안 되잖아? 연극대학 교수들은 모두 심사위원으로서 비밀 유지 계약을 비롯해 몇 가지 서류에 서명했다고 들었어.”

도스빌 남작의 입에 불안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모험을 준비하는 어린애처럼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딱 한 사람 빼고.”

***

도스빌 남작은 한때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현실적인 사정 때문에 졸업 후 로스쿨로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그가 도박에 빠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꿈이 한 번 좌절되고 나니 엉뚱한 곳에서 스트레스를 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괴물서커스단에 들어오고 나서 그는 다시 작가로서의 걷게 됐다. 루엘로의 동화책을 만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서커스단의 대본을 조정하는 일도 도왔다. 문학과 법학으로 단련된 그의 언어 능력은 대사를 더 맛깔나게 살리는 일에 특히 뛰어났다.

프라빈에 온 그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이전이었다면 그들 앞에 서기 왠지 민망해서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을 택한 그로서는 가난해도 여전히 꿈을 좇아가는 친구들 앞에 서기 왠지 민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로서 자존감을 다시 찾은 그는 자격지심을 떨치고 친구들 앞에 나설 수 있었다.

도스빌이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그보다 2살씩 적은 그의 후배들이었다. 그들은 졸업 후 한트케 교수 밑으로 들어가서 현재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뭐요, 서커스 그랑프리? 푸하핫, 이것 참. 우리 교수님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혼자 심사위원 안 하겠다고 이사회 권고도 무시하신 분이에요. 그런데 아예 대회에 참가해 달라고요?”

“도지 선배, 어제 술은 잘 얻어 마셨지만, 이런 청은 들어드릴 수 없군요.”

프란츠와 랄프는 신입생 때부터 외골수적인 기질로 유명했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저명한 연출가의 무대나 돈벌이가 잘 되는 무대를 맛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쓸 때, 그들은 실험적이고 독특한 무대만을 골라 도전했다.

물론 연극대학 학생들은 한 번씩 그런 무대를 경험하기는 했다. 그러나 다들 몇 번 하다가 더는 그런 무대를 찾지 않았다. 가뜩이나 생계가 불안한 연극판에서 예술을 하겠답시고 굶어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란츠와 랄프는 처음의 뜻을 꺾지 않고 졸업할 때까지 그런 무대만을 쫓아다녔다. 그 덕분일까. 그들은 한트케 교수의 눈에 들어 그의 학생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연구실은 한 학기에 한 명 받아줄까 말까 할 정도로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 곳에 두 사람은 나란히 들어가게 됐다.

한트케 교수를 향한 두 사람의 충성심은 대단해서 그가 정직당한 상황에서도 둘은 그의 연구실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대부분 그의 추천장을 받아 다른 대학의 교수 밑으로 간 상황인데 말이다.

“보수는 충분히 지급할 거야. 원한다면 너희들도 끼워주지. 그러니 교수님 좀 만나게 해줄 수 없을까? 너희들 돈 궁하지 않아?”

도스빌 남작의 말에 프란츠와 랄프는 분개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 자신들을 어떻게 보고?

“보수라고? 선배, 진짜 너무하는군.”

“감히 돈으로 우릴 살 생각인가? 연기를 모독하는 건가?”

프란츠와 랄프는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두 사람은 만류하는 도스빌의 손길을 뿌리치고 카페를 나가려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동안 구석 자리에서 두 사람을 관찰하던 원더스타인이었다.

프란츠와 랄프는 그가 도스빌이 말하던 서커스단의 단장임을 알아채고 호통을 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두 사람은 경악하고 말았다.

“엇, 다, 당신은?”

“헉! 어, 어째서 이곳에…….”

원더스타인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띤 채 그들을 바라봤다. 그를 따라 일어선 클라라는 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놀라서 소리쳤다.

“앗, 당신들은?”

원더스타인과 클라라는 프란츠와 랄프를 알고 있었다. 둘은 바로 그녀에게서 돈을 받고 깡패 연기를 했던 자들이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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