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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02

EP.501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7)

프란츠와 랄프는 몇 년 전부터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었다. 아무리 연극이 좋다고 하지만 갈수록 빈곤해지는 주머니 사정 때문에 돈이 궁했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그들이 프라빈 대학의 학생일 줄 모르고 고용했다. 그냥 인력 사무소에 가서 필요한 사람을 말했더니 그들을 보내준 것이었다.

그들의 차림새만 보면 확실히 뒷골목 불량배들을 연상케 했다. 거칠게 올려세운 머리카락과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옷들에 몸 여기저기 달아놓은 금속 장식들은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프란츠는 호리호리하고 키가 컸으며 툭 불거진 광대뼈 때문에 다소 신경질적인 인상을 풍겼다. 그리고 랄프는 삭발에 가까울 정도로 짧게 깎은 머리에 거대한 몸집을 지녀서 상당히 위압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연기자의 가면을 벗어던진 그들에게서 일전의 불량배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클라라를 보고 쩔쩔매는 그들의 모습은 동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청년들과 같았다.

“잠깐. 그렇게 사정이 힘들면 아르바이트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돈 되는 극단에서 일하면 되잖아. 너희 경력이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을 텐데?”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던 도스빌 남작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마디 했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존심 상하잖아요.”

“지금까지 떠들고 다닌 게 있는데.”

“이것 참…….”

도스빌 남작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정이 너무 구차해서 그런지 쉽게 공감되는 게 또 우스웠다.

“단순히 자존심 때문에만 그런 건 또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돈 되는 무대를 찾아가서 알랑방귀를 떨고 돌아다녀 봐요. 한트케 교수님 체면이 어떻게 되겠어요?”

“제자로서 스승님 명예에 먹칠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들의 진지한 변론에 사람들은 그래도 교수에 대한 충성심 하나는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니카만은 그들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맥락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러니까…… 교수님에게 혼나는 게 두려웠다는 거군요.”

“엇!”

“그, 그건…….”

두 사람은 속내를 들켜 당황스러웠는지 허둥거렸다. 원더스타인은 둘을 보며 그때는 잘도 연기했구나 싶었다.

“그럼 이제 우리를 한트케 교수님께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니카는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 싫었다. 그녀는 뛰어난 업무 처리 능력 덕분에 서커스단의 행정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한 나라를 이끌었던 그녀에게는 하품이 나올 만큼 쉬운 일이었다.

그녀는 지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 시간임을 알고 있었다. 오늘 당장 연출가의 섭외에 성공한다고 해도 38일밖에 남지 않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빨리 승부를 보는 게 중요했다.

그녀의 요청에 두 사람은 급히 정색했다.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어 잠시 놀랐지만, 그렇다고 교수님의 명령을 거스를 순 없었다. 그분은 오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하셨다.

“아, 안 됩니다! 지금은 교수님의 사색 시간입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자기 소재를 가르쳐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맞아요. 어제 점심쯤에는 황금 카니발의 단장님이 찾아오셨는데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우왓, 그 콧수염!”

“과연. 빠르군요. 로드 판타스틱은.”

원더스타인은 감탄했다. 어제 점심이라면 제비뽑기 직후였다. 황금 카니발은 프라빈에 도착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한트케 교수의 소식을 접하고는 재빨리 섭외에 들어갔던 것이었다.

도스빌 남작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지몬은 인성과 별개로 실력과 명성은 높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황금 카니발은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이었다. 그런 그도 교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자신들이 그를 설득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일단 교수님에게 안내해 주세요. 설득은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아, 그러니까 안 된다니까요.”

“어제도 괜히 방문 앞까지 데려갔다가 혼만 났습니다.”

그들의 단호한 태도에 원더스타인, 도스빌 남작, 클라라, 니카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은 눈빛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묻었다.

그들은 대화 나누는 대신 미소를 지었다. 의견이 통일됐다고 생각한 원더스타인이 대표로 나서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못하겠다면 당신들이 어떤 짓을 하고 다니는지 떠들고 다닐 수밖에요.”

“자, 잠깐만요! 다, 당신이 고용해놓고…….“

”도, 도의가 아닙니다! 이 비겁한……!“

그의 협박에 두 사람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분했지만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

연극대학의 교수들도 다른 대학의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7년마다 안식년을 가졌다. 6년 동안 통상적인 대학 업무를 수행하다가 한 해는 개인적인 연구에 집중하거나 대학 밖으로 탐방을 떠나는 식으로 학자로서 자신을 갈고닦는 것이었다.

한트케 교수는 원래 올해 안식년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니까 2년의 정직은 어떻게 보면 1년의 안식년에 더해 1년의 정직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정직 상태에서는 월급과 연구지원비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돈 나올 구석이 많았다. 오랜만에 회계사 사무실을 들러 그동안 쌓인 저작권료를 찾아와도 되고, 후원자 몇을 쥐어짜서 돈을 타내도 됐다.

어쩌면 그의 팬들에게 있어서 그의 정직은 반가운 소식일지도 몰랐다. 그는 안식년마다 매번 획기적인 작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에는 2년 쉬게 되었으니 두 작품을 써내는 건 아닌가 기대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한트케 교수에게는 작품을 쓸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은 회색의 점토를 주물러 작품에 쓸 만한 아이디어를 빚어내 쭉 늘어놓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는 그것을 ‘색이 칠해진다.’라고 표현했다. 회색의 점토로 조형된 세상에 갑자기 색이 번져 나가면서 조형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직 색이 칠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일단 그동안 미뤄왔던 연구를 해보고 싶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학에 묶여 있는 동안에는 함부로 시도할 수 없는 것들을 본격적으로 파헤쳐볼 생각이었다.

다만 일을 하려고 해도 수족과도 같은 대학원생들이 모두 사라진 게 문제였다. 안 그래도 그의 연구실은 사람이 적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그나마 있던 유능한 친구들은 모두 졸업을 위해 떠나 버렸다.

그들은 모두 앞날이 창창한 인재들이었다. 2년 동안 한량처럼 지낼 자신 밑에서 같이 시간을 버려 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트케는 친분이 있던 교수들에게 제자들의 마무리 지도를 맡겼다. 그리고 그들의 박사 후 진로까지 모두 모색해주었다. 외부에는 괴팍하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사실 그는 프라빈 대학의 교수 중에서 학생들을 가장 잘 챙겨주는 편에 속했다.

세간의 편견과 달리 한트케 교수는 사회에서 말하는 ‘상식인’에 속했다. 그는 언제나 합리적으로 생각했고 일반적인 관념 안에서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건축가인 아버지와 요리사인 어머니의 밑에서 자랐다. 그의 연출가로서 지도력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그의 무대는 철저한 기초 토대를 바탕으로 한 장 한 장 벽돌처럼 쌓아 올린 합리적 결과였다.

그의 작가로서 창의성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의 극본은 꾸준한 사색과 검증 끝에 도달하는 변증법적 결론이었다. 그에게 연극은 과학과 논리의 영역이었다.

직관을 중요시하고 감정이 풍부한 업계 사람들이 눈에는 그런 그가 천재 혹은 별종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트케 교수는 자신이야말로 미친 인간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정상인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디어 노트를 뒤적거리던 한트케 교수는 특정 부분에서 손을 멈췄다. 그곳에는 ‘크리스티앙’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오래된 추억을 떠올렸다. 20여 년 전 업계에서 가장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던 극작가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크리스티앙과 한트케 자신이었다.

그때, 그는 역사상 최연소로 연극대학의 정교수가 된 것으로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티앙 역시 매년 흥행 신기록을 세우는 작품들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일부 호사가들은 둘을 멋대로 호적수로 맞붙이곤 했다. 한쪽은 반항아적 기질이 다분한 엘리트, 다른 한쪽은 업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넘치는 무명의 기고가. 게다가 둘의 작품 성향도 완전히 반대니 지지층이 극명하게 갈렸다.

그러나 정작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조금도 적대감이나 경쟁심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둘은 서로의 작품을 좋아했다. 심지어 서로 편지를 교환하며 아이디어나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트케는 크리스티앙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그것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세상은 크리스티앙의 정체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나마 최근에 많은 연구 끝에 그가 제국 출신이며 신분이 높은 편이고 여자일 확률이 높다는 주장이 신빙성 높다고 여겨질 뿐이었다.

한트케가 크리스티앙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공개한다면 그 주장은 사실로 확정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것이 죽은 그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트케는 내친김에 서랍 속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편지들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모두 그가 그녀와 주고받았던 것들이었다.

편지들을 읽으며 추억을 되새기던 한트케 교수는 크리스티앙이 누군가의 이름을 짓는 것으로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을 떠올렸다. 한트케는 그것이 그녀가 구상 중인 극본의 등장인물의 것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해당 인물이 그녀가 지어주는 이름들을 계속 거부한다고 말했다. 한트케는 그것을 인물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찾는 작가의 고민쯤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 문제로 몇 년을 끌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트케는 물음표 하나 적힌 편지를 그녀에게 보냈다. 이제 이름 짓는 일이 어떻게 되어가냐고 질문하기도 귀찮다는 문학적 은유를 곁들인 장난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가 보내온 답장에는 긍정적인 답변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적절한 이름을 고안해내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해당 인물이 그 이름을 받아들였다고 말이다.

그 시점에서 한트케는 그녀가 단순히 극 중 등장인물 이름을 짓는 일 때문에 고민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이름을 붙인 대상은 실존하고 있었다.

설마 자식의 이름을 짓는데? 아니다. 자식 이름을 가지고 몇 년이나 고민할 리 없었다. 갓난애가 이름을 거부했다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그렇다고 다 큰 성인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이상했다. 혹시 요정이나 마귀 같은 것과 엮인 것일까?

그는 크리스티앙에게 그 인물인지 누구인지 물었다. 원래 그녀의 신상에 대해 캐묻는 일은 자제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몇 년이나 말이 나온 사람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괜찮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의 편지는 그녀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바로 그날 서커스 그랑프리 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보를 치는 직원이 건너편 전신국에서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부터 그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하늘섬의 원더 스테이지가 추락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녀가 머무르고 있다고 했던 장소였다.

한트케 교수는 크리스티앙의 발자취를 밝혀내고 싶었다. 그녀가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에게는 그녀와 몇 년 동안 나눈 편지들이 있었다. 이것들을 단서 삼아 연구하다 보면 분명 무언가를 더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회색빛 점토로 여자 비슷한 형태를 대충 주물러서 머릿속 창고에 세워두고는 크리스티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녀가 쓴 극본과 편지들이 점토의 실을 사방으로 뻗은 채 그녀 주위를 떠다녔다.

아직은 모르겠다. 무언가 영감이 떠오르면 이곳에 색이 칠해질 것이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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