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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05

EP.504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10)

그렇게 대본 읽기를 한 차례 마치고 나니 어느새 창밖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대사만 주고받았을 뿐인데 실제로 공연을 하는 것보다 더 오래 걸렸다.

이는 중간중간 한트케 교수의 지시에 따라 여러 가지 시도를 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제법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그는 누가 어떤 배역을 맡는 게 좋을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마야는 울펜슈타인 백작의 여동생인 ‘리아’의 역할을 맡게 됐다. 리아는 극 시작 전에 사망했지만, 백작이 흑마법사와 계약을 맺고 되살린 인물이었다.

극의 설정상 부활한 그녀는 감정 표현에 문제가 있어서 웃지를 못했다. 즉, 리아의 캐릭터를 살리는 일은 극 중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무표정함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 역할에는 마야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는 데에 모두 동의했다.

‘떠돌이 광대 에다’의 역할은 스벤이 맡았다. 에다는 신체 일부가 멋대로 움직이는 ‘무도병’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원래 있던 일자리에서 쫓겨나 세상을 떠돌며 광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여동생을 웃게 해준다면 큰 상금을 주겠다는 백작의 포고령을 듣고 영지를 방문하게 됐다.

<울펜슈타인 백작>의 에다 역은 크리스티앙의 작품 속 배역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편에 속했다.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무도병이라는 증상을 구현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몇 주 동안 혹사에 가까운 훈련을 받아 가까스로 무대에 오르곤 했는데, 연극이 끝나고도 몸에 버릇이 남아서 떼어 내는 데도 고생한다는 악명 높은 배역이었다.

그런데 스벤은 그런 무도병 증상을 단번에 성공시켰다. 팔다리를 몸통에서 떼어 내도 원격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몸 일부를 따로 움직이게 하는 건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물론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연습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최소 한 달은 걸린다는 기초 훈련을 그냥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에다의 몇몇 장면은 설사 황금 카이발과 바퀴의 서커스라고 해도 쉽게 흉내 내기 힘들 겁니다. 표정 연기야 에다는 가면을 쓰고 있으니 문제없겠고……. 스벤 씨의 발성이나 노래도 중견 배우 이상이니…… 이거 수십 년 동안 서커스를 해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군요.”

“핫핫, 농담인 줄 아셨나요?”

스벤이 교수로부터 극찬을 받자 미노바는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떠돌이 광대 에다에 대항하는 캐릭터인 ‘불한당 에반스’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불한당 에반스는 광대 에다처럼 백작의 포고령을 듣고 찾아온 사내였다. 잘생긴 얼굴에 훤칠한 키 그리고 근육질의 몸매를 가져 모두가 선망하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의 속내는 시커멓기 그지없었는데, 그는 백작의 여동생 리아를 유혹해 그녀와 결혼한 뒤 백작을 죽이고 그의 영지와 재산을 모두 차지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쾌한 에다에 비해 에반스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 음흉함과 위선을 잘 살리는 게 에반스 캐릭터를 살리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와 부딪치는 에다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지면 에반스가 내뿜는 위협적인 분위기가 죽을 수 있었다. 미노바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든 대본을 만지작거렸다.

백작의 고용인인 정원사와 경호원은 각각 알렌과 조가 맡기로 했다. 그들은 비중이 적은 역할을 맡은 것에 안심했다.

트라이머리는 고디르 왕자, 누덴 공작, 돔피뇽 후작을 맡았다. 그들 셋은 어차피 무도회 장면에서 아자티 공주의 구혼자들로 함께 등장했다가 함께 퇴장했기에 그들 셋이 한 몸으로 묶여 있어도 상관없었다. 아니, 한트케 교수는 오히려 재미있는 연출이 가능할 것 같다고 좋아했다.

공주의 호위기사로는 우몬이 선발되었고, 백작의 집사로는 원더스타인이 선정되었다. 원래 원더스타인은 흑마법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밴딕의 열연에 감동(?)한-사실 원더스타인이 집사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교수가 두 사람의 역할을 바꿔버렸다.

한트케 교수의 결정은 엘라가 내렸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이변이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이번 무대에 오를 예정이 없었던 루엘로에게 배역이 주어진 것이다.

“제, 제가 요정 역할로요?”

“충분히 가능성이 보이더군. 잘 다듬으면 좋은 연기가 나올 것 같아. 등장 장면도 많지 않으니 부담가지지 말고 한번 해봐.”

“네! 네! 가, 감사합니다! 우, 우와, 내가 요정을…….”

루리는 두려움과 쑥스러움이 반반 섞인 표정을 지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그녀가 잘하도록 응원을 해주었다.

그러나 니카만은 그녀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1주일 전, 서커스 그랑프리 개막 1주년 기념으로 단원을 1명 추가 영입할 수 있을 때, 그녀는 정식 단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절대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고 했기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그녀가 뽑힌 것이다.

그러나 정식 단원이 되었다고 해도 그녀는 이번 시험에서 전력으로 쳐주지 않았다. 루엘로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연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트케 교수는 두 사람 다 대본 읽기에 참가시켰다. 니카는 자신이 교수의 눈에 들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원래 환상으로 때울 예정이었던 요정 역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자리를 루엘로가 방금 가져가 버렸다. 이제 남은 배역은 백작, 공주, 하녀, 요리사뿐이었다.

저들 중 셋은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 그들은 극의 주연이었다. 엘라와 레이나가 백작과 공주를 맡고 하녀로는 유라크네가 유력했다.

남은 요리사 배역은 분량은 짧지만 상당한 곡예가 요구되는 자리였다. 그는 저택의 고용인 중에 유일하게 독주곡도 보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곡예의 기초도 모르는 니카에게는 무리였다.

어차피 요리사는 백작을 맡은 사람이 1인 2역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백작과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엘라나 레이나라면 요리사의 곡예는 쉽게 해낼 수 있었다.

루엘로가 요정 배역을 가져간 이상 이번 시험에서 니카가 맡을 만한 배역은 없었다. 그녀는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그냥 처음부터 희망을 주지 말지…….

그녀가 서커스단에 들어오게 된 것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고, 단원이 된 것도 빈자리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뭔가 배역을 맡아서 연기해보고 싶었다.

니카는 자신이 왜 그런 욕심이 생겼는지 알고 있었다. 아마도 전신을 짓누르는 무력감과 상실감 때문일 것이다.

뱀 마녀가 정계로 복귀한 지 2달이 지났다. 현재 그녀는 황제의 옆에서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그녀는 제국을 어지럽히는 악녀로 지탄받았다. 그녀는 제국의 정계를 장악하기 위해 부패한 세력과 손잡고 갖은 술수로 혼란을 조장했다.

그녀가 1년 만에 복귀했을 때,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제국이 망할 거라고 떠들어댔다. 그녀를 견제해야 할 황태자와 제3 황비 세력이 구심점을 잃고 무너졌기 때문이다. 황태자는 암살 사건 이후로 두문불출한 지 오래였고, 제3 황비는 아예 실종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대규모 피의 숙청과 함께 정계의 혼란이 가속화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큰 혼란은 없었다. 뱀 마녀는 무리 없이 제국을 이끌어 나갔다. 그녀는 철저하게 제3 황비 세력만을 짓밟았다. 그리고 황태자 세력은 온전히 보존해 야당의 역할을 맡겨버렸다.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제국의 중앙을 장악한 뱀 마녀는 이전과 전혀 다른 정치적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주부터 그녀는 황제에게 간언해 제국 의회에 새로운 법률과 안건들을 제출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는데 바로 그것들이 체제 개혁에 대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노선도 반년 전까지 황태자가 추진하던 것과 일치했다.

덕분에 지난 1주일간 신문의 정치란은 뱀 마녀에 대한 소식들로 가득했다. 그녀의 행보에 대해 의심스러워하거나 떨떠름한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반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뱀 마녀는 니카와 한 약속을 모두 지켰다. 그녀의 세력을 보존해주었으며, 예전처럼 일부러 정계에 혼란을 조장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것을 넘어 아예 그녀가 진행하던 개혁을 이어주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녀가 얌전히 자신의 제안에 응해준 것에 대한 선물일지도 몰랐다.

‘선물? 선물로 봐야 하나?’

해당 소식을 접했을 때, 니카의 심경은 복잡했다. 그녀의 최측근이었던 펠레빈이 뱀 마녀와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사진을 봤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욕도 나왔다.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칭송을 그녀가 훔쳐 간 것 같았다.

물론 자신도 동의한 일이었다. 이게 가장 피를 덜 흘리는 길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분했다.

그래서 연극에 서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다른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다면 황태자 자리도 뺏긴 게 아니라 잠시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 시도는 좌절되었다. 사실 루엘로는 아빠를 따라서 무대에 서 본 경험이 많았다. 경력만 따지자면 단원들 절반은 그녀 아래였다. 초짜인 자신이 그녀를 제치고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다음은 아자티 공주 역인데…….”

니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트케 교수는 그녀를 한 번 흘끗 바라보고는 다음 대본을 꺼내 들었다. 엘라와 레이나는 긴장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울펜슈타인 백작>의 주연은 크게 넷이었다. 백작, 공주, 하녀, 광대. 그중 가장 비중이 큰 백작과 공주는 엘라와 레이나가 맡기로 되어 있었다.

여기서 공주 역으로 지목된 사람은 자연스럽게 백작 역에서 탈락이었다. 아자티 공주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사람은 제목에도 자기 이름을 박아 둔 울펜슈타인 백작이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이 모두 한트케 교수에게 쏠렸다. 그는 단원들을 한 차례 둘러보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멈췄다. 그는 엘라도 레이나도 아니었다.

“이 배역은 니카 양이 맡는 것으로 하지.”

“네?”

“뭐라고요?”

폭탄이 떨어진 듯 방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은 경악한 얼굴로 한트케과 니카를 번갈아 바라봤다. 엘라와 레이나도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히 자신들 중 하나가 되리라 예상했는데…….

당황한 건 지목당한 당사자인 니카도 마찬가지였다. 배역을 바라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비중이 큰 자리가 떨어질 줄은 몰랐다.

“마, 말도 안 돼요! 제가 감히 어떻게…….”

“왜? 무슨 문제 있나?”

태연하게 묻는 한트케 교수의 태도에 니카는 버럭 소리쳤다.

“다, 당연하죠! 저는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어떻게? 그건 내가 묻고 싶군. 자네는 어떻게 아까 그 연기를 해낸 거지?”

니카는 대본 연습 중에 아자티 공주를 몇 번 연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다들 돌아가며 이것저것 시켜보기에 자신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설마 한트게 교수가 거기서 자신을 진지하게 평가하고 있었을 줄이야…….

“난 거기서 진짜 아자티 공주를 봤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황제의 딸’을 말이야. 무엇보다 완벽하게 귀족적인 몸짓이 인상적이었어. 그건 쉽게 익힐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귀족 출신이라고 했나? 귀족 연기자는 업계에서 귀한 편이지. 배우를 하려는 귀족은 많지 않은데, 귀족 주인공은 또 많고, 귀족 관객들은 귀족적이지 않은 몸짓을 금방 알아채거든.”

교수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니카를 향해 삿대질했다.

“하여간 각설하고, 자네가 초보자라는 것은 알아. 발성, 표정, 몸짓에서 아주 풋내가 진동하더군. 내 학생이었다면 발로 차서 쫓아냈을 거야. 하지만 자네의 성격, 자네의 말투, 자네의 작은 버릇 하나하나가 이 역할에 딱 들어맞아. 가끔 이런 일이 있지. 배우가 배역을 찾는 게 아닌 배역이 배우를 부르는 일이……. 이 역할에 한해서 자네는 일류 연기자들과 나란히 설 가능성이 있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만 말이야. 죽을 각오로 연습해야 할 걸세. 자, 그러면 어떡할 텐가? 맡을 텐가?”

“저, 저는…….”

주저하는 니카를 보며 한트케 교수가 히죽 웃었다. 상식인을 자처하는 그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극문학과 교수일 경우였다.

지금의 그는 연출가였다. 이 상태의 그는 조금의 타협도 관용도 허용하지 않았다. 가끔은 광기도 보일 정도로 완벽을 추구했다.

“자네가 배역을 맡지 않는다면, 내 시중을 들게 하겠네. 쓸모없는 인간도 쓸 데는 있어야지. 내 똥 닦는 일까지 시킬 거니 각오하게.”

“윽, 그런 더러운…… 아, 알았어요! 할게요! 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니카는 아자티 공주의 역을 맡게 되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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