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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06

EP.505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11)

사람들은 무대에 한 번도 서보지 않은 그녀가 공주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엘라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놀랄 거 없어. 우린 이미 한 번 경험해본 일이잖아?”

“우리? 우리가 무슨…… 아.”

우몬은 탄성을 내뱉었다. 자신들이 하는 괴물 서커스. 그것이야말로 배역과 배우가 일치하는 대표적인 예였다. 물론 이번 일과는 순서가 반대였지만 말이다.

그들은 원더스타인에게서 대본을 받은 지 1주일 만에 공연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2달 뒤에는 서커스 그랑프리 참가자로서 모자라지 않을 수준까지 성장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니카에게 주어진 5주라는 시간이 그렇게 짧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소란이 가라앉고 나자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은 중요한 문제가 남았음을 깨달았다. 백작, 공주, 하녀, 요리사 중에 공주를 니카가 한다면 나머지 셋은 누가 하는가?

“요리사는 유라크네 씨께서 맡아주십시오.”

“제가요?”

유라크네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깜빡였다.

“요리사의 곡예는 엘라 양과 레이나 양을 제외한다면 유라크네 씨가 제일 잘 소화하는 것 같더군요. 주연에서 밀려나서 아쉬울 수 있겠지만…….”

“아뇨! 좋아요!”

그녀는 그렇게 외치고는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 그래도 그녀는 주연 자리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단원 중에서 암기력이 제일 떨어졌다. 원더스타인의 대본을 외울 때도 혼자만 남들보다 며칠이나 늦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분량의 대본을 또 외어야 한다고 하니 머리가 어질거렸다. 그녀는 배역 교체를 반갑게 받아들였다.

“그럼 이제 백작과 하녀만 남았군.”

엘라와 레이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 남은 게 두 배역이라니.

하녀 로지는 울펜슈타인 백작의 고용인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비록 정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그 까다로운 백작이 실험 조수를 쓸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그녀는 뒷골목에서 죽어가던 자신을 구해준 백작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에 대해 품은 마음에는 단순한 존경심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여자로서 백작을 사랑하고 있었다.

즉, 이렇게 되면 진 쪽이 이긴 쪽을 좋아한다고 매달리는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 사람으로서 굴욕적이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한트케는 방안에 흐르는 긴장감을 느꼈다. 이대로 불쑥 결론을 말해도 되지만 그랬다간 진 쪽이 쉽게 용납 못 할 것이다. 배우의 반발 따위 조금도 겁나지 않는 그였지만, 그런 마음이 응어리져서 연기에 방해가 되면 곤란했다.

“배역을 발표하기 전에 우선 감상부터 말하지. 두 사람 다 훌륭한 연기였어. 연극대학에서도 자네들만 한 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 거야. 둘 중 누가 더 낫다고 쉽게 말 못 할 정도로 두 사람의 실력은 대등해. 이게 만약 보통의 연극이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두 사람 다 주인공으로 발탁했을 거야. 하지만 이게 시험인 이상 1명으로 정해야 하지.”

한트케 교수는 백작과 하녀의 대본을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나머지 단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시험의 심사위원도 거절한 저지만, 이곳의 연출가를 맡은 이상 저는 어떻게든 여러분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게 도울 겁니다. 이번 시험의 주제는 아시다시피 ‘연기력’입니다. 여러분이 등장인물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로 승부가 갈리죠. 다시 말하지만 두 사람의 백작 연기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엘라 양이죠. 그녀가 백작 역을 맡아야 합니다. 레이나 양, 자네는 하녀 로지 역일세.”

그는 두 대본을 각각 엘라와 레이나를 향해 건넸다. 엘라는 그것을 선뜻 받아들였지만, 레이나는 자신의 앞에 놓인 그것을 차마 쥐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들이 교차했다. 패배감, 실망감, 좌절감. 그녀는 원더스타인의 눈치를 한 번 살폈다가 이를 악물고는 한트케 교수를 노려봤다.

“왜죠?”

아빠 앞에서 자신이 엘라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이대로 패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트케 교수는 그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손에 깍지를 꼈다.

“그래. 이유가 궁금한가 보군. 그러면 작은 테스트를 해볼까? 두 사람 다 지금 울펜슈타인 백작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연기를 해보게. 이곳은 응접실이야. 나는 저택을 방문한 손님이고. 갑작스럽게 저택의 문을 두드리고 나타났지. 그리고 단장님, 단장님은 집사를 맡아주시죠.”

교수의 지시에 따라 원더스타인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는 흑마법사를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집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자, 그러면 이 상황에서 백작인 자네들은 손님을 어떻게 대접할 거지? 우선 레이나부터 해볼까?”

좋아. 아직 기회가 있어. 이번에 잘만 한다면…….

레이나는 천천히 심호흡하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울펜슈타인 백작의 성격과 버릇을 빠르게 복기했다.

‘나는 울펜슈타인 백작이다. 자신의 능력과 지식에 도취 된 남자.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편이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는 않는다. 이해 못 받을 걸 아니까. 인간관계에 방어적이면서 오만한 태도. 빈정거리는 말투. 외로움. 가족에 대한 사랑…….’

다시 눈을 뜬 그녀는 인상이 눈을 감기 전과 전혀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지금 완전히 백작이 되어 있었다.

“누구시죠? 제가 당신을 초대한 적 있던가요?”

그녀는 한트케 교수를 바라보며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는 모자를 벗는 시늉을 하며 그녀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지나가는 길손입니다. 마차 바퀴가 빠져 버려서 마을까지 가는 도중에 비를 피해야 했거든요.”

“시그왈트!”

울펜슈타인 백작은 다짜고짜 집사를 불렀다. 그것은 손님에게 따뜻한 음료라도 내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퉁명스러운 어투와 무례한 태도는 그녀가 손님을 반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완벽하게 울펜슈타인 백작다운 모습이었다.

“저기, 그러니까…….”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자신을 불러서 무엇을 시키려는지 알지 못했다. 유능한 젊은 집사가 순식간에 어리숙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레이나는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손짓했다.

“손님에게 차를 내오란 말이야.”

“아, 네. 알겠습니다.”

원더스타인은 뒤로 돌아서서 차를 타는 시늉을 하고는 한트케 교수와 레이나 앞에 두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레이나는 인상을 팍 쓰며 한마디 했다.

“내가 손님에게 차를 내오라 했지. 내 것도 내오라고 했나?”

“죄, 죄송합니다…….”

너무나 실감 나는 연기에 원더스타인은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어 그녀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 순간, 짝하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한트케 교수가 친 것이었다.

“좋아. 이만하면 됐네.”

레이나는 자신이 펜슈타인 백작을 완벽하게 연기했다고 생각했다. 일단 엘라의 연기가 끝난 다음 볼 일이었지만, 그가 엉뚱한 트집을 잡아 자신을 엘라 아래로 깎아내린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 그럼 이제 엘라 양이 해주겠나?”

교수의 지시에 엘라도 레이나처럼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곳에 또 울펜슈타인 백작이 나타났다. 분명 얼굴도 체형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인데 한순간 사람들이 둘을 동일인물로 느꼈을 정도로 흡사한 분위기를 풍겼다.

“시그왈트, 내가 부랑자는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엘라도 레이나처럼 불청객의 방문에 언짢아 하는 연기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며 집사인 원더스타인이 있어야 할 위치를 지정해주었다. 그는 그녀의 의도를 바로 눈치채고 그녀의 시선이 가는 곳에 섰다.

“지나가는 길손입니다. 마차 바퀴가 빠져 버려서 마을까지 가는 도중에 비를 피해야 했거든요.”

한트케 교수는 아까와 같은 대사를 말했다. 엘라는 삐딱한 자세로 교수를 바라보며 집사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찻잎이 있었지 아마.”

“네. 손님에게 내오겠습니다.”

울펜슈타인 백작은 손님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하라는 말을 직접 할 정도로 친절한 성격이 못됐다. 그래서 레이나는 아까 다짜고짜 집사의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엘라도 역시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백작다운 냉소적인 어조로 어차피 버려야 할 물건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두 대사 다 캐릭터에 잘 어울렸다. 그러나 레이나와 엘라의 연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배려군요.”

원더스타인이 찻잔을 한트케 교수 앞에 내려놓는 시늉을 했다. 이번에는 백작의 것까지 내오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엘라가 썩어가는 찻잎이라는 힌트를 줬기 때문이다. 백작의 성격상 그딴 걸 마실 리 없었다. 덕분에 그는 유능한 젊은 집사라는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배려라는 원더스타인의 말에 레이나는 뭔가를 깨닫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트케 교수는 있지도 않은 찻잔을 홀짝이는 척하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눈치챘나?”

“…….”

“자네의 울펜슈타인 백작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어.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서 그가 되어버렸지. 이게 보통의 연극이었다면 나는 자네를 중심으로 연출을 짰을 거야. 자네의 연기가 어디까지 갈지 보고 싶으니까.”

레이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만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극은 시험일세. 모든 배역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평가받지. 솔직히 이곳의 단원들은 황금 카니발과 바퀴의 서커스 쪽 배우들보다 기량이 떨어지네. 연기자로서는 간신히 이류에 들까 말까 한 수준이야. 그러면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모두가 서로를 살려주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어. 이른바 팀워크라는 거지. 혼자 배역에 취해 극 전체의 흐름을 끌고 가버리면 자네의 동료들은 그걸 쫓아갈 역량이 안 돼”

한트케 교수는 엘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반면 엘라 양은 상대역의 연기를 계속 살려주려고 노력하더군. 아까 대본 연습을 할 때부터 그 점이 강하게 드러났어. 방금도 마찬가지고.”

레이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엘라, 엘라, 엘라.

도대체 얼마나 비교를 해야 성이 찰는지.

그녀는 교수를 한 번 노려본 뒤에 원더스타인을 바라봤다. 아무리 공적인 장소에서는 단장과 단원 사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궁지에 몰리고 있는데도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그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바람 좀 쐴게요.”

그녀는 문을 쾅 닫고 방을 나가버렸다. 단원들은 다들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봤다. 그녀가 저렇게까지 거칠게 나오는 것은 다들 처음 봤다. 그것도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 무례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까지 하다니.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왜 저런지 알고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녀는 가면을 벗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15살의 그림자였다. 당연히 평소보다 미성숙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요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터라……. 평소에는 저렇지 않거든요.”

원더스타인의 말에 한트케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레이나 양의 탓이 아닐세.”

“네?”

“레이나 양에게 연기를 가르친 사람이 문제지. 이기적일 정도로 철저하게 가면을 쓰도록 교육한 것 같더군.”

“아.”

원더스타인은 지몬이 레이나를 어떻게 다뤘는지 떠올렸다. 학대에 가까운 훈련에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부녀 관계.

그러고 보니 지금 그녀는 그림자 상태였다. 방금 자신의 태도에 그녀가 크게 섭섭함을 느꼈을 수 있었다. 그는 자리를 정리하는 단원들을 뒤로하고 급하게 방을 나섰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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