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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07

EP.506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12)

레이나의 뒤를 쫓아가는 일은 쉬웠다. 가는 길마다 그녀가 여기저기 흔적을 남겨뒀기 때문이다. 평소 들고 다니던 손수건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든가, 쓰레기통이 특정 방향으로 넘어져 있다든가, 계속 잠가있던 옥상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려 있다든가.

따라와달라고 대놓고 광고한 격이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심지어 그녀가 들고 나갔던 하녀 로지의 대본이 떨어져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간 그는 레이나가 뾰족한 지붕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통 사람에게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녀 정도 되는 곡예사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레이나 양, 아니…… 레이나?”

그녀가 그를 돌아봤다. 가로등 불빛에 눈물이 반짝였다. 소리죽여 훌쩍이고 있던 그녀는 그와 얼굴을 마주하자 재빨리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아빠…….”

그녀는 그렇게 한 마디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지붕 위로 올라가 그녀 옆에 앉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녀가 감정을 추스르기를 기다려주었다. 잠시 후, 그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비록 입은 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몸을 끌어 안아주었다.

“아니, 나야말로 미안하구나. 네 연기에 배려가 없다고 지적한 주제에 정작 네 마음을 배려해주지 못하다니…….”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빠는 잘못한 것 없었다. 누가 봐도 선을 넘은 건 자신이었다.

“한트케 교수님의 지적은 사실이에요.”

원더스타인도 그에 대해선 부정할 수 없었다. 그도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많이 목격했던 일이었다.

유튜버들끼리 합동 방송을 하다 보면 자신의 캐릭터에만 몰입해 다른 방송인이 준비한 콘텐츠를 망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레이나는 대본에서 벗어나면서까지 그러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연기는 그들과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너무 걱정하지 말렴. 교수님도 그게 네 탓만은 아니라고 했으니까.”

레이나는 그의 말이 함의하고 있는 바를 알아차렸다. 자신의 탓만은 아니다. 그렇다는 건 다른 사람이 원인 제공한 부분이 있다는 소리였다.

지몬 마기어. 떠올리기도 싫은 인간이지만 그의 실력은 분명 업계 최정상이었다. 만약 자신에게 한트케 교수가 말한 것과 같은 ‘하자’가 있었다면 그 지몬이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어떻게든 뜯어고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까지 저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왔어요. 아버지가 준비한 대본을 익히고, 아버지가 준비한 무대에 올라, 아버지가 가르친 방식대로 연기했죠.”

사람은 누군가가 시켜서 무슨 일을 해도 조금만 숙달되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뭔가 하려고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계속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였다.

“저는 아버지가 요구하는 것만 완벽하게 해내려고 했어요.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었거든요. 아버지에게.”

15살. 그래. 딱 이때쯤이었다. 레카체프 입학시험에서 찰리에게 패배하고 나서 그녀를 대하는 지몬의 태도는 더욱 싸늘해졌다.

-쯧, 한심한 것. 재능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불량품이라는 거냐?

더 철저하게. 더 충실하게. 더 완벽하게.

아버지의 마음에 들도록 그녀는 자기 자신을 가혹할 정도로 엄하게 다스렸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자아 같은 건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다. 오로지 아버지가 요구하는 인형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무대라는 것이 다른 사람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런 사정이 제가 아까 한 행동에 대한 변명은 될 수 없어요. 그건 정말 치기 어린 짓이었어요.”

“지금의 넌 15살이잖니. 그 나이 때는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야.”

“……제가 왜 그랬는지 아세요?”

반사적으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려던 원더스타인은 그래도 부모로서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제오늘 있었던 일들을 조금만 살펴 봐도 그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엘라 때문이구나.”

“맞아요. 걔한테만은…… 지기 싫었어요.”

“그래. 엘라와 넌 만났을 때부터 경쟁 관계였으니까.”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원더스타인을 보며 레이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투로 보아 자신들이 누구를 두고 경쟁심을 불태웠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마 단순히 실력 다툼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 마당 안쪽에서 엘라의 함성이 들렸다. 뒤이어 다른 단원들의 감탄사도 연이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무슨 일인가 싶어 지붕에서 내려왔다.

옥상 안쪽에서 숙소 안마당이 내려다보였다. 그곳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한 순간, 원더스타인과 레이나도 감탄사를 참지 못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무 골조만 덩그러니 서 있던 곳에 화려한 연극 무대가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엘라가 단원들 모두가 달려들어도 무대를 만드는 데 최소 3, 4일은 걸릴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걸 그들이 대본 연습을 하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누군가가 완성한 것이다. 그것도 도면보다 훨씬 훌륭하게!

안마당을 살피던 원더스타인은 곧 단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한트케 교수의 두 제자 중 한 명인 프란츠였다.

“프란츠 군은 무대 공사와 배경 설치에 능하지. 어지간한 현역 베테랑보다 튼튼하고 빨리 짓는다네. 건축대학에 갔으면 대성했을 인재지.”

“아니, 교수님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사실이니까. 사실 이 두 사람은 연기자로서도, 극작가로서도, 학자로서도 그저 그런 녀석들이야. 하지만 다양한 무대를 섭렵한 덕분에 온갖 잡기에 능하지. 자신 있는 분야에서는 보다시피 전문가 수준일세.”

한트케의 말에 이번에는 랄프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무대 구석에서 혼자 설계도면 같은 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곧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채고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랄프 군은 무대 장치의 설계와 제작에 뛰어나다네. 웬만한 현역 이상이야. 독창성과 정확성은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지. 공대에 갔으면 좋았을 것을…….”

“또, 또 그러신다. 저희는 연극이 좋다고 했잖아요.”

“맞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단원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지금까지 연기 연습보다 무대의 준비와 뒷정리에 시간을 더 많이 썼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솜씨로 몇 배는 빠르게 일을 해치울 수 있는 장인들이 들어왔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럼 설리반 아저씨 때문에 타 죽을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야?”

“윽, 이 자식, 그걸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냐?”

우몬은 2달 전에 설리반이 무대 장치를 잘못 조작해서 몸에 불이 붙었던 일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유라크네는 느슨한 밧줄 매듭 때문에 천장에서 추락할 뻔했던 일을 언급했고, 밴딕은 땜질 실수 때문에 석관 속에 꼬박 이틀을 갇혀 지냈던 일을 토로했다.

“그때 제일 화가 났던 건 땜질을 잘못한 게 아니라, 나를 이틀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거다!”

“우린 정말 아저씨가 방에서 쉬는 줄 알았다니까요. 도대체 얼마나 더 우려먹어야 속이 풀리겠어요?”

미키가 성가시다는 듯 손을 내젓자 밴딕이 울컥해서 소리쳤다.

“시끄럽다! 단장님이 어떻게 알아내서 구하러 와주지 않았다면 난 아마 평생 발견되지 못했을 거다!”

밴딕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는 듯 역정을 냈다. 어느새 옥상에서 내려온 원더스타인은 그때 떴던 황당한 단원 퀘스트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 그럼 이제 무대 관련 일은 제 제자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배우 여러분들은 다들 각자의 대본을 외우는 데 집중해주세요! 1주일 뒤에 완벽하게 외웠는지 검사할 겁니다!”

“1주일이면 거뜬하죠!”

1주일이면 확실히 넉넉한 시간이었다. 머리 쓰는 데 약한 유라크네조촤 자신감을 표할 정도니.

***

그러나 예상과 달리 1주일 동안 대본을 외우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단순히 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대본을 수정하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기 때문이다.

단원들 각자의 발성, 발음, 외모에 따라 몇몇 어휘가 수정되고 어투가 바뀌었다. 해당 작업은 한트케 교수의 지시에 따라 도스빌 남작이 진행했다.

단순히 몇 가지 단어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배역의 인상이 확 달라지는 경험에 다들 놀라워했다. 지금까지 엘라가 몇 번 시도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극적으로 효과를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괜히 연출가와 작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대본은 바로 주인공인 울펜슈타인 백작의 것이었다. 원래 백작은 성인 남성이 맡는 게 보통이었다. 그걸 엘라에게 맞춰 연출하려다 보니 여기저기 고쳐야 할 부분이 많았다. 동시에 백작의 상대역 또한 그에 맞춰 대사를 바꿔야 했기에 작업이 2배로 늘어났다.

“어이, 도지! 무리하지 마라!”

“아저씨, 야식 가져 왔어요!”

상황이 그렇다 보니 루엘로도 삼손도 함부로 도스빌 남작에게 동화책을 써내라고 닦달하지 못했다. 그는 요즘 사전을 쌓아두고 밤새 대본 수정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 때문에 30분을 끙끙대는 건 예사였다.

고생인 건 도스빌 남작만이 아니었다. 한트케 교수도 배우들에 맞춰 연출의 방향성을 수정하느라 매일 철야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의 연기력이 상대 팀에 모자란 만큼 어떻게든 배우에 맞춰서 등장인물을 살리는 연출을 짜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단원들과 상담을 나누며 그들의 연기에 맞는 연출을 찾아갔다. 대부분 진지하게 상담에 임했으나 종종 황당한 요구를 하는 단원들도 있었다.

“집사가 리아를 데리고 방에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 집사가 리아를 품에 안고 갈 수 없을까요?”

마야는 여동생 리아의 배우이자 환상 담당이었기에 한트케 교수와 있는 시간이 단원 중에 제일 길었다. 환상과 연출은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묘하게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대학 사회에서 겉돌던 천재들이라는 점이 닮아서 그럴지도 몰랐다. 한트케 교수는 언제나 냉정해 보이는 마야의 마음속에도 자신과 같은 광기가 숨어 있을 거라고 보았다.

그의 예상은 얼마 안 가 사실로 드러났다. 다만, 그 광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터져 나왔다.

“그 장면에서 집사가 리아의 볼에 입맞춤하는 건 이상하네.”

“그 장면은 집사와 리아가 복도에서 마주친 거라네. 부딪친 게 아니라! 그리고 부딪쳤다고 갑자기 집사가 리아의 몸을 덮치는 자세로 넘어지는 건 또 뭔가? 부자연스럽지 않나?”

“집사가 떨어트린 물건은 바닥에 떨어져야 하네! 우연히 리아의 치마 속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집사는 절대 숙녀의 치마 속을 뒤지지 않아!!”

마야가 내놓는 아이디어들은 하나같이 원더스타인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 내용도 노골적이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연극을 틈타 어떻게든 스승과 신체 접촉을 늘리고 싶어 하는 듯했다.

물론 연출의 수정을 핑계 삼아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사람은 비단 마야만이 아니었다. 엘라는 자꾸 대본을 읽는 도중에 백작과 집사 간의 우정을 애정으로 해석하곤 했고, 레이나는 집사와 하녀 간의 교감을 선임과 후임 사이에 오가는 것이 아니라 남녀 사이에 오가는 것으로 변질시키곤 했다.

자꾸 연출에 사심을 담으려는 그녀들을 보며 한트케 교수는 혀를 내둘렀다. 원더스타인에 대한 여러 악의적인 소문 중 적어도 하나는 사실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1주일 뒤에는 마침내 대본이 완성되었다. 유라크네를 마지막으로 모두 대본 암기 테스트를 통과하기까지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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