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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08

EP.507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13)

대본의 수정 작업이 끝난 다음 날, 그들은 처음으로 무대에 서서 예행연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그들의 의상도 모두 완성된 참이었다.

“그럼 호명하는 순서대로 들어와 주세요.”

나타샤가 차례차례 단원들을 분장실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녀의 표면상 신분은 니카의 시녀였으나 그녀의 실제 정체는 제국 정보부의 상급 요원이었다. 니카가 뱀 마녀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후로 계속 서커스단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녀의 변장 솜씨는 정보부 내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특기를 살려 서커스단에서 분장 일을 맡았다.

3분이면 뒷골목 노숙자에서 무도회에 참석하는 귀족 아가씨로 변할 수 있는 게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무대 분장을 해내는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었다.

더불어 그녀는 이번에 단원들의 의상을 제작하는 일도 맡았다. 그녀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유행하는 각계각층의 복장을 섭렵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트케 교수가 모호하게 지시한 의복 콘셉트의 요지를 단번에 파악해내고는 그가 요청한 것보다 훨씬 그의 상상력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재킷의 가슴 주머니에 손수건을 삼각형 모양으로 꽂아 넣는 것만으로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다니. 미켈튼 사교계에서 유행하는 방식이라고 했죠?”

“의상의 디자인이나 완성도도 실제로 돈 받고 팔아도 될 정도입니다.”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배역의 옷을 그대로 뺏어온 거 같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단장님! 도대체 어디서 이 정도 인재들을…….”

처음에만 해도 한트케 교수는 괴물서커스단의 고용인들이 미덥지 못하다고 여겼다. 어디서 경력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을 잘도 끌어모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들이 과연 제대로 된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가 연출가로서 아무리 지시를 잘 내린다고 해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들의 능력은 그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을 넘어서 마법을 부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났다.

며칠 전, 한트케 교수는 대학 사무국으로부터 정직과 관련한 서류들을 받았었다. 교수의 지위가 사라지면서 누리고 있던 여러 권리가 박탈되고 면제되었던 의무들이 부과된 것이다.

한트케 교수는 해당 문제로 관공서와 며칠은 씨름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서커스단의 회계 담당인 아나이스와 행정 담당인 니카가 나서더니 불과 1시간도 안 되어서 모든 문제를 처리해 버렸다. 전문 회계사나 법무사를 고용해도 하루는 걸릴 일인데 말이다.

늙어서 더는 써주는 곳이 없어서 곡예 판까지 흘러들어왔다고 여겼던 세 노인 단원들의 능력도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당장 현역에서 뛰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로소 그들의 경력을 물어서 알게 된 한트케 교수는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 왜 고작 서커스단에서 일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냥 잡일꾼이라 여겼던 설리반, 이반의 힘도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장정 10명은 달려들어야 할 일을 혼자서 처리하곤 했다.

엘라와 동문이라는 미키라는 소년도 재주가 뛰어났다. 그는 프란츠와 랄프 사이를 오가며 조수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우려했던 랫맨들의 경우도 문제없었다. 그들은 쥐의 탈을 쓴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성실하게 작업에 임했다.

도스빌은 원래 학과에서 우등생이었던 만큼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었다. 법 공부 때문에 그의 창의력은 죽었을지 몰라도 언어 구사력은 더 정확하고 명료해졌다.

마야는 그가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마법사들보다도 정교하고 사실적인 환상을 만들어냈다.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그녀의 환상은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연기에 몰입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환상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사람이 바로 단장인 원더스타인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를 중심으로 인연이 얽혀 있었다.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대체 어떻게 이 사람들을 모은 것일까? 그는 자신의 예상대로 크리스티앙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 맞을까?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한트케 교수는 그에게 질문을 퍼붓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그러나 그는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참기로 했다. 일단 약속한 대로 시험을 통과하는 게 우선이었다.

“공주님 행차하십니다!”

나타샤의 외침에 따라 누군가가 분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검붉은 드레스를 입은 회색빛 머리카락의 소녀였다.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서커스단에서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니카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앞의 공주님은 니카와는 이미지가 전혀 달랐다.

지금까지 몇 번 여자 옷을 입기는 했어도 그녀는 서커스단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남자애처럼 꾸미고 다녔다. 머리도 조금 길어진 것 같으면 바로 짧게 쳐버렸다.

그런 결벽증은 인형의 집 사건을 겪으면서 더 심해졌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한 번도 여자 옷을 입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긴 머리를 하고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들어오니 단번에 니카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진짜 황녀라도 되는 것처럼 고상한 걸음걸이로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 우아함과 당당함은 하루 이틀 연습해서 몸에 배는 게 아니었다.

다들 그녀가 내뿜는 황족으로서의 기백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가면은 그녀가 원더스타인과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는 서커스단 안에서 그녀가 황태자 니콜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짓는 미소는 그녀로서 마치 그녀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비쳤다.

“잘 어울리는군요.”

그의 한 마디에 그녀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정치인으로서 감정을 갈무리하는 방법을 통달했다고 자부하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런 게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 어색하기만 할 뿐입니다! 이, 이딴 치마 따위…….”

한트케 교수는 그녀가 애써 ‘남자처럼’ 구는 모습을 보고 감탄사를 토했다. 아자티 공주는 극 중에서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황제의 후계자가 되지 못하는 것에 늘 불만을 품고 있었다.

황녀이면서 황태자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그 태도가 그녀의 표정과 동작에 묻어나 있었다. 대본 읽기 연습에서 그가 니카에게서 포착했던 아자티 공주의 모습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물론 그녀는 의도하고 저런 모습을 연출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저 그녀가 내외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외부로 표출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모습이 우연히 아자티 공주의 캐릭터와 겹칠 뿐이었다. 적어도 한트케 교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니카를 마지막으로 모든 배우가 복장을 갖춰 입자 예행연습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암기한 대본 대로 무대 위에 올라 최선을 다해 연기를 펼쳤다.

엘라와 레이나는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니카, 스벤, 미노바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의 연기가 너무 어설펐다.

당연히 예행연습을 마친 단원들의 표정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들도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한트케 교수가 해 볼만 하다고 말한 게 있어서 나름 기대를 한 게 컸다.

미진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한트케 교수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들의 연기가 어리숙하게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연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배역을 선정한 기준은 배우가 완벽하게 그 캐릭터에게 몰입했을 때, 그 캐릭터를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느냐였다.

즉, 아직 배역에 몰입하지 못한 그들의 연기가 어색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단원들의 몰입도를 크게 끌어올릴 비책이 있었다.

“오늘 밤에 새로운 일과표를 여러분에게 나눠줄 겁니다. 제가 클라라 양의 도움을 받아서 짠 것이죠. 내일부터는 모두 그 일과표대로 생활해 주십시오. 단, 평소처럼 하면 안 됩니다. 일과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무조건 자신의 배역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무대 밖에서도 진짜 해당 배역이 된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오래된 연기 이론 중 하나였다. 그러나 현재 업계에서는 해당 훈련을 크게 권장하지 않았다.

일단 배우가 캐릭터에 너무 깊게 몰입해 레이나가 들었던 지적처럼 다른 배우들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게다가 특정 캐릭터의 표정이나 버릇이 몸에 배어 다른 작품을 연기할 때 멋대로 튀어나오는 것도 문제였다.

괴물 단원들은 그 부작용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우몬은 뭔가 일이 안 풀릴 때 자신도 모르게 적혈귀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탁자를 때려 부순 적이 있었고, 유라크네는 길을 지나가다가 자신을 훔쳐보는 젊은 남자들을 발견하고는 반사적으로 요부 연기가 튀어나올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 양날의 검이 바로 한트케 교수가 제시한 훈련법이었다. 그러나 단기 결전으로 끝나는 이번 시험에서는 이런 방법의 단점은 축소되고 장점은 극대화할 수 있었다. 거기다 그는 일정표마다 정기적으로 다른 배역과 함께 대화하고 행동하게 함으로써 배역에 몰입해 다른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일을 잊지 않도록 만들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단원들은 클라라가 배부하는 일정표를 받아들었다. 다들 자신의 일과를 읽고 시끌벅적 의견을 나누는 가운데 엘라와 원더스타인만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봤다.

울펜슈타인 백작의 아침 일과 중에는 목욕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집사가 시중들기로 되어 있었다.

***

다음 날, 새벽 일찍 기상한 원더스타인은 ‘집사 시그왈트’로서 완벽하게 복장을 갖춰 입고 나왔다. 그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건물을 촛대를 들고 돌아다니며 고용인들의 잠을 깨웠다. 요리사 유라크네, 하녀 레이나, 정원사 알렌, 경호원 조가 차례로 각자의 복장을 갖춰 입고 나와 각자 일정표대로 움직였다.

원작에서 이들의 일과는 세세하게 묘사되지 않았다. 장면마다 간단히 암시되어 나올 뿐이었다. 그들의 일과표는 클라라가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트케 교수가 캐릭터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었다.

크리스티앙의 작품은 지난 20여 년간, 많은 연구자로부터 분석과 해석을 거쳤기에 등장인물의 뼈대를 잡는 일은 쉬웠다. 몇 장면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들조차 ‘아마 대기근을 거치면서 가족을 잃은 경험 때문에…… 나이로 보아 공화국 내전에서 군인으로 참전…… 평소 휘두르고 다니던 금 담뱃대는 당시 지주 계급을 은유…….’ 따위의 설명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더스타인은 저택을 돌아다니며 촛대로 숙소의 창문 흠집 하나조차 꼼꼼히 확인했다. 집사 시그왈트 특유의 느릿느릿한 걸음걸이와 모든 것을 관찰하는 시선은 여간 흉내 내기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성실하게 일과에 적힌 대로 따라갔다.

“단장, 아니, 시그왈트 씨, 백작님의 아침 식사가 완성되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원더스타인은 유라크네가 내민 커피와 토스트가 담긴 쟁반을 한 손으로 받친 채 엘라의 방으로 향했다. 평소 일찍 일어나는 편인 그녀였지만, 그녀는 오늘 백작의 캐릭터대로 읽던 책으로 얼굴을 덮은 채 자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백작이 이렇게 자고 있을 때, 집사가 깨웠던 작중의 장면 하나를 기억해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덮은 책을 치워 머리맡의 책장에 꽂았다.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아, 이런 감각으로 책을 치우는 거였구나. 원더스타인은 집사가 백작을 대하는 태도에 어린 짜증이 뭔지 감에 잡힐 듯했다. 이쪽은 숙소의 먼지 한 톨조차 흐트러짐 없이 검사하고 왔는데 주인이라는 사람이 엉망진창으로 누워 있는 꼴로 퍼져 있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어나시죠, 백작님. 아침입니다.”

“……음, 몰라, 더 자게 둬.”

엘라는 자는 척을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자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다. 그녀를 어떻게 깨워야 하나 고민하던 원더스타인은 그 순간, 백작의 캐릭터 하나가 떠올랐다.

그녀는 독서광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은 밤을 새워서라도 다 읽곤 했다. 그리고 오늘 일정에 그녀와 함께 서점에 외출하는 게 있었다.

이거다. 분명 이걸 노린 것일 것이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은 <크리스티앙 가이드> 5월호가 나오는 날이지 않습니까, 백작님?”

“뭐? 오늘이었어?”

엘라가 소리치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울펜슈타인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눈을 비비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말없이 그를 향해 잘했다는 눈빛을 던져 보였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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