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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1

51화 한밤의 방문자

51화 한밤의 방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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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시테루나: 루나다! 루나 나왔다! ㅠㅠㅠㅠㅠ

└ 수달꼬리팡팡: 루토커 소원성취 ㅋㅋ 아 근데 1등 또 뺏겼네 ㅅㅂ

[RP가 2만큼 상승합니다.]

– 얼룩무늬성애자: 와 루나 등장씬 미쳤네

└ 바토리바라기: 데미안 뻑간 거 같은데?

└ 딱풀전사: ㄹㅇ ㅋㅋㅋㅋ

[RP가 3만큼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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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루나의 별빛 눈동자가 몇 차례 깜빡거렸다. 나는 조금 긴장했다. 소설 속 루나의 까칠한 성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루나라면 분명 기분 나빠할 테니까.

‘당신. 누구인데 함부로 남의 이름을 부르는 거죠?’

그러나 루나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할 뿐, 기분 나빠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둘러보던 루나가 돌연 헉! 하며 제 입을 가렸다. 그러고는 호다닥 달려오더니 와락, 세실을 끌어안았다.

“······!”

세실이 당황한 얼굴로 두 팔을 버둥거렸다. 그러나 루나는 꺄아아! 소리치며 세실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세실이 억지로 루나를 밀어내자, 루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넌 누구니? 너 정말 예쁘다. 인형 같아!”

나는 몇 가지 이유로 당황했다.

첫 번째는 루나가 어깨 위에서 찰랑이는 단발머리가 아닌,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가졌다는 것.

두 번째는 성격이 까칠하기는커녕 지나치게 밝아 보였다는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세실을 보자마자 강한 호감을 드러냈다는 거였다.

놀란 세실이 내 뒤에 숨었다.

그런 세실을 아쉬운 표정으로 좇던 루나가 내게 눈길을 돌렸다.

“와아. 예쁜 금발.”

“······.”

“그런데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았니?”

대답할 말을 고민하기도 전에 루나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 디네베에게 들었겠구나. 아하하! 나 바보인가 봐.”

웃는 얼굴이 묘하게 쿠훌린을 닮았다. 반면 목소리는 너무도 맑아 귀가 간지러울 정도였다.

“나는 데미안이야. 그리고 얘는 세실······.”

“너희 둘이 사귀는 사이니?”

갑작스러운 물음에 세실이 아으, 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내 팔을 꽉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내 입에서 아악! 소리가 튀어나왔다.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세실은 남자아이야.”

“뭐라고오오!”

루나가 빽!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도 쿠훌린과 묘하게 닮아서, 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치? 세실.”

내가 세실을 돌아보며 묻자, 세실은 새빨개진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곁으로 다가온 루나가 세실의 얼굴을 요모조모 관찰했다.

“말도 안 돼. 남자아이가 이렇게 예쁘다고?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예쁜 거 같은데.”

은근히 제 미모를 자랑하던 루나가 큼큼 헛기침했다.

“너는 데미안. 너는 세실. 그러면 너는?”

“카인이다.”

“흐응.”

눈을 가늘게 좁히며 우리를 뜯어보던 루나가 제 가슴에 손을 올리며 자기소개를 했다.

“디네베에게 이미 들은 것 같지만, 내 이름은 루나야. 루나 아르테미스.”

이어 루나는 자신은 열네 살, 디네베는 열 살이라고 덧붙이며 씨익 어금니를 드러내어 웃었다. 저 모습마저 쿠훌린을 닮았다니.

그러나 저 미소는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제야 나는 상기했다. 내가 아는 소설 속의 루나는, 쿠훌린의 죽음을 겪고 변모한 루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잊었고, 당황했다. 이렇게 해맑은 루나의 모습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아마 저 긴 머리카락이 단발로 변한 이유도 쿠훌린의 죽음과 연관이 있겠지.

“만나서 반갑다. 루나.”

카인이 손을 내밀었고, 루나가 히죽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나와 세실도 루나와 악수했다.

“너 정말로 남자아이 맞니? 손이 이렇게 작고 예쁜데?”

루나가 세실에게 다시 호감을 드러냈다.

세실은 그런 루나에게서 달아나려 했지만 루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세실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저렇게 장난기 가득한 모습도 쿠훌린을 쏙 빼닮았다.

“안 놓아줄 거지롱. 헤헤.”

루나가 세실에게 호감을 보이는 모습에 내가 놀랐던 이유. 그것은 소설 속에서 둘의 사이가 극도로 안 좋기 때문이다.

소설에서의 세실은 카인과 동등한 관계라기보다는, 카인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충신에 가깝다. 세실은 은밀한 어둠 속에서 활동했고, 카인이 시키는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반면 루나는 카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료였다. 늘 카인과 함께 전면에 섰으며, 카인의 선택이 옳지 않다고 생각될 때면 거침없이 반대 의견을 표했다.

당연히 세실의 입장에서 루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루나 역시 카인의 어두운 면모를 떠오르게 하는 세실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아니, 혐오했다는 편이 맞겠지.

그랬던 두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니.

“아으. 으······.”

결국 힘으로 루나의 손을 뿌리친 세실이 내 뒤에 숨었다.

“어라?”

그 상황이 루나는 조금 놀라웠던 모양이다. 하긴, 이 섬의 또래 중에서 루나를 당할 이는 없었을 테니까.

“이만 가자. 루나.”

디네베의 말에 루나가 응! 하고 외치더니, 골목대장처럼 앞장서며 우리를 인솔했다. 디네베의 손을 놓치기라도 할세라 꼬옥 붙잡고서.

마을로 돌아가는 동안 루나는 종종 디네베의 귀에 무어라 속삭이며 깔깔 웃었다. 디네베도 루나를 마주 보며 웃었다. 참 보기 좋은 자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너희들. 앞으로 우리와 함께 사는 거니? 성에서?”

루나가 우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곳에 당분간 머무를 예정이긴 한데, 성에서 사는지는 모르겠어.”

“성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왜?”

“친구랑 함께 살면 재밌잖아!”

······벌써 우리는 친구가 된 건가.

소설 속에서, 쿠훌린이 죽기 전의 루나는 배려심 많고 순수한 소녀였다고 표현된다.

그런데 그 순수함의 정도가 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태어나 한 번도 어둠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듯한, 그야말로 환한 보름달 같은 소녀. 그러고 보니 얼굴도 동그란 편이지.

“그치? 디네베. 너도 친구들이랑 같이 살면 좋겠지?”

그렇게 말하며 루나가 해맑게 웃었다.

그 음악 같은 웃음소리를 배경 삼아 우리는 달빛에 젖은 들판을 걸었다.

“제 아버지를 쏙 빼닮았군.”

카인이 피식 웃었다.

그때, 디네베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다.

카인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인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디네베의 동그란 눈동자는 뚫어져라 나를 보고 있었다.

.

.

.

달빛나무 언덕에서 보았던 루나의 사교적인 모습은 성에 도착하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쿠훌린 앞에서만.

“아악! 하지 마요! 하지 말라고요!”

루나는 쿠훌린을 보자마자 뒤돌아 도망쳤다.

그러나 쿠훌린은 순식간에 루나를 낚아채 껴안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루나의 볼에 제 수염을 마구 문질렀다.

“하지 마요 진짜! 하지 말라고요! 아악! 저리 가요!”

루나는 어떻게든 쿠훌린에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성공할 리 없었다.

“우리 큰 공주가 이렇게나 컸구나! 으하하하하!”

“엄마아아아!”

루나는 엄마를 찾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리아논은 난처한 표정으로 웃을 뿐이었다. 디네베에게도 적절한 도움을 얻지 못한 루나는 결국 우리에게 손을 뻗었다.

“도, 도와줘! 카인! 데미안! 세실!”

그 순간 우리를 돌아보는 쿠훌린의 눈빛이 변했다.

그의 몸에서 가공할 살기가 발산했다. 나는 내 몸이 석상처럼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베인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그에게 베인다는 확신이 들었다.

“용기가 있는 자만 들어와라.”

우리 셋은 꿀꺽, 마른침만 삼킬 뿐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흑······! 흐흑······!”

결국 루나가 울음을 터뜨린 후에야 소란은 멈췄다. 쿠훌린은 엉엉 우는 루나를 어떻게든 달래보려 했지만, 루나가 빽! 소리치자 무안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었다.

놀라운 점은 루나가 쿠훌린을 아버지나 아빠가 아닌 ‘아저씨’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세실이 내 팔을 콕콕 찌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같은 것을 떠올린 모양이다.

‘저기······ 쿠 아저씨.’

‘누가 아저씨라는 거야!’

우리가 쿠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저씨라고 부르는 족제비에게 쿠가 버럭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루나 때문이었구나.

“성에서 같이 살게 되어서 좋다. 그치?”

조금 전까지는 펑펑 울었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루나가 히죽 웃었다. 물론 눈이 퉁퉁 부어서 조금 웃기기는 했다.

루나의 말대로 우리는 성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

성의 1층에는 회의실과 식당이 있었고, 2층은 쿠훌린과 리아논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3층에는 루나의 방과 디네베의 방이 있었는데, 남는 여러 개의 방에 나와 세실과 카인이 머무르기로 했다.

즉, 우리 다섯은 모두 3층에서 지내게 됐다.

“좋다! 꼭 우리들만의 세계 같아!”

오늘 처음 만났을 뿐인데, 루나는 우리를 몇 해는 함께 지낸 친구처럼 대했다. 그 놀라운 친화력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잠시 함께 놀다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뭐, 함께 놀았다기보다는 루나의 수다를 들어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루나는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내일 마을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기대해도 좋다고 으스댔다.

나는 벌러덩 침대에 누웠다. 은월호에서 쿠훌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도록 해라. 도착하면 한동안 정신이 없을 거야.’

분명 루나를 말한 것이었겠지.

나는 오늘 루나가 보였던 다양한 표정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저렇게 표정이 많은 사람을 보는 것은 쿠훌린 이후로 처음이었다. 역시 부녀지간이구나.

지금부터는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스트레아의 천칭’ 메시지가 두 번이나 등장했으니까. 하지만 침대에 깔린 이불은 너무 포근하고, 기분 좋은 향이 났다. 의식이 멀어진다. 아무래도 생각의 정리는 나중으로 미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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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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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갑자기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보름달이 떠 있었다. 창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부옇게 방을 밝혔다.

그 아늑한 풍경 속에서, 나는 잠들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변화를 포착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하얀 원피스 잠옷을 입은 디네베가 창틀에 기대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디네베가 천천히 눈을 깜빡거렸다. 디네베는 오늘 저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나는 홀린 듯이 상체를 일으켜 디네베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 맺힌 달빛의 음영이 변해가는 것으로 나는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그동안 디네베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런 그녀에게서 나는 인간과는 다른 종류의 생기를 느꼈다. 마치 식물과도 같은.

창 아래 심어진 고고한 백색 나무처럼, 디네베는 나를 응시했다. 아니, 그저 눈길이 나를 향해있을 뿐이다. 달빛에 물들어 반짝이는 그녀의 은청빛 눈동자는 ‘나’라는 껍질을 넘어선, 어떤 ‘본질’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너.”

디네베의 자그만 입술이 달싹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녀는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혼자가 아니구나?”

나는 디네베의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말투도 바뀌었다.

“너, 누군가와 함께 있어.”

그 순간 내 눈에 비친 디네베의 얼굴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매혹이 느껴지리만치 성숙한 여인으로 보였다.

“내게 보여줘.”

나는 처음으로 입술을 떼었다.

“······무엇을?”

“너와 함께하는 존재.”

디네베가 두 손을 모아 내밀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부드러운 울림이 느껴지더니 먼지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디네베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웃었다. 그녀가 먼지에게 손짓했다. 나를 보며 헥헥 혀를 내밀던 먼지가 주머니에서 기어나와 디네베의 두 손 위로 올라갔다.

디네베와 먼지의 눈이 교감하듯 서로를 바라봤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봤다. 지금껏 먼지의 정체를 눈치챈 이도, 먼지가 제 모습을 드러내도록 만든 이도 없었다. 그런데 디네베는 어떻게.

“알고 있니? 데미안.”

은청빛 눈동자가 가까워지며 나의 시야를 푸른빛으로 채웠다. 그 안에는 아득한 심연이 있었고, 우주가 있었고, 별이 있었다.

“이 세계는 덧씌워졌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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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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