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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10

EP.509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15)

무대를 만드는 데는 배우의 연기 말고도 많은 것이 필요했다. 배경, 소품, 음악, 조명, 의상 등. 주변 환경적 요소들이 뒷받침되어주지 않으면 배우가 아무리 몰입하고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었다.

한트케 교수는 지난 3주간 어떻게 해야 단원들의 연기를 빛나게 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 연출에 따라 그저 그런 연기도 썩 괜찮은 연기로 바꿀 수 있었고, 썩 괜찮은 연기도 훌륭한 연기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제가 자주 드는 사례가 바로 ‘뒤뚱거리는 기사’입니다. <마르셀>이라는 작품을 아십니까? 전설적인 전공을 세우고 은퇴한 군인이 정체를 감추고 조용히 살고 있다가 사건 사고에 휘말려 활약하는 내용을 담은 활극입니다. 제가 대학원생 시절 <마르셀>의 연출을 맡은 적이 있는데, 하필 주인공 마르셀 역을 맡은 배우가 40대 후반의 배 나온 아저씨 아니겠습니까? 물론 연기와 노래를 잘하시는 분이었긴 했어요. 분장으로 배는 가릴 수 있었고요. 하지만 걸음걸이가 뒤뚱거리는 게 문제였죠. 우습지 않습니까. 전설적인 군인이 동네 아저씨들처럼 팔자걸음을 하는 게 말입니다. 제가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마르셀의 설정에 의족을 달고 있는 것을 추가했습니다. 의족 형태의 장화를 만들어 배우에게 신겼죠. 그 때문에 그의 뒤뚱거리는 걸음은 몰입을 망치는 요소가 아니라 주인공이 전쟁에서 받은 상처를 조명하는 묘소가 됐죠.”

대학교수의 강의답지 않게 그의 설명은 알아듣기 쉬웠다. 덕분에 단원들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러분의 연기는 현재 일류의 문턱에 간신히 걸쳐져 있습니다. 이 배역에 한해서만요. 이 정도로라면 지난 시험에서는 충분히 승리를 노려볼 만하지만, 상대가 황금 카니발과 바퀴의 서커스인 이상 그렇게 되기 힘들 겁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여러분의 뒤뚱거리는 부분을 찾아서 제가 의족을 달아드리려고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여러분의 연기는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트케 교수는 예행연습을 진행하는 도중에 중간중간 멈춰서 장면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때로는 배역에 설정이 더해지고, 때로는 있던 소품이 빠지기도 하며, 때로는 배우들이 서 있는 위치가 뒤바뀌었다.

그럴 때마다 연극은 조금씩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해갔다. 누가 봐도 확연히 좋아지고 있었다. 단원들은 더 의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한트케 교수는 때로는 단원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꼭 무대 위에 서는 배우가 아니더라도 그는 반겼다. 오히려 연출가나 배우가 무대에 몰입하다 보면 놓치는 것들을 무대 밖의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단원들이었지만 한트케 교수가 독려하자 하나둘 자신이 무대를 지켜보면서 느낀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배우들을 닦달할 때의 한트케를 보면 그가 독선적인 사람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수용할 줄도 알았다. 그는 쏟아지는 아이디어 사이에서 옥석을 잘 가려 연출에 반영했다.

“환상의 빛이 조금 밝은 느낌이에요.”

무대 일에는 좀처럼 간섭하지 않던 아나이스도 분위기에 편승해 의견을 말했다. 원더스타인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마야가 만든 환상을 살폈다. 확실히 평소 공연에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빛을 띠고 있었는데 지금은 등처럼 은은한 빛이 나오는 것 같았다.

낮부터 계속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눈에 익은 탓에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밖에 있다 들어온 아나이스는 그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한트케 교수는 그것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서는 곳은 야외무대니까요. 광원을 통제할 수 있는 천막이나 건물 안과는 다르죠. 달빛, 도시의 야경, 실내보다 자유로운 관객의 움직임 등. 방해 요소가 많아서 일부러 환상의 밝기를 키우게 한 겁니다. 어쨌든 관객들 눈에 잘 보여야 하니까요.”

“아.”

“아테레나 노천극장은 백면극이 자리 잡은 뒤로 무대에 환상 마법을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적정 광도를 알아내는 데 고생했지요. 연구 자료는 모두 옛날 것밖에 없어서요. 그래서 프란츠 군이 3주 밤낮 동안 극장에 머무르며 실험을 거듭해 연극의 진행 정도에 따른 적정 광도를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프란츠가 무대를 완성한 뒤에 사라졌다가 어제 초췌한 몰골로 돌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무려 3주간을 산 위에서 철야를 했다니. 사람들은 프란츠가 겪은 일보다 그 정도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트케 교수의 태도가 더 무서웠다.

“투기장도 저 정도로 굴렸어, 이반?”

“아뇨. 검투사는 투기장의 자산이니까요.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의외로 복지는 좋았습니다.”

“그럼 프란츠는 노예보다 못하다는 거군.”

“대학원은 절대로 가지 말아야지.”

쑥덕거리는 단원들 사이에서 아나이스는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지적한 문제가 사실 교수가 의도한 거였다니.

“음, 그러면 이것도 의도하신 건가요? 배경의 색이 너무 진한 것 같아서요.”

“네. 맞습니다. 노천극장의 뒤로는 도시가 내려다보이니까요. 배경의 채도를 강하게 해야 관객들의 시선을 묶어둘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때문에 무대가 조금 산만하게 느껴질 수는 있죠. 이 문제는 어쩔 수 없어요. 야외에서 연극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문제니까.”

“제가 괜한 지적을 했네요.”

아나이스는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딴에는 원더스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나섰는데 괜히 문외한 티만 낸 것 같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원더스타인의 말에 아나이스는 코웃음을 쳤다.

“굳이 위로해주실 필요 없어요.”

“위로가 아닙니다.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좋은 아이디어라고요?”

“네. 환상의 광도 문제와 배경의 채도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한트케 교수는 너그러운 미소로 그에게 말해보라는 손짓을 했다. 업계의 석학들이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 초보자가 얼마나 신선한 의견을 낼지 궁금했다. 그는 상대가 무슨 이론을 내세우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를 반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가 생전 처음 듣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르 하나 했는데 어느새 그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게 됐다. 그만큼 그의 아이디어는 혁신적인 동시에 실현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었다.

“그게 정말 가능합니까? 그러니까 환상에 사용되는 광자 하나하나에 외부 광원에 대한 반응을 계산한다고요?”

“네.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마야 양이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원더스타인이 구석에 앉아 있는 새하얀 머리카락의 소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원더스타인을 바라봤다. 무심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그가 제시한 이론을 검토하고 있었다.

일단 발상 하나는 천재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보통 환상 마법이 간파당하는 것은 마력이 빛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부자연스러운 빛을 내뿜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환상 마법사들은 주변 광원에 맞춰서 적당히 음영을 입히는 방법을 썼다. 이게 바로 셰이딩이라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의 이론은 그것을 완벽하게 뛰어넘는 것이었다. 마력으로 생성한 광자 하나하나에 외부 광원이 주는 영향을 계산한다니.

“이 방법을 쓰면 광도를 일률적으로 올리지 않아도 되죠. 광자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그 밝기를 결정할 겁니다.”

이것이 천재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데에는 그 획기적인 발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오직 천재만을 위한 기술이라는 데에도 한몫했다. 상식적으로 광자 하나하나에 들어오는 빛의 영향을 연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마 보통의 마법사라면 공 하나 만들어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마야 그녀라면 할 수 있었다. 아니, 이것은 완전히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라고 봐야 했다.

자고로 빛의 정반사는 질감을 결정하고 빛의 난반사는 색을 결정하기 마련이었다. 이 이론으로 환상을 만든다면 색은 물론이고, 사람 피부나 고양이의 털 같은 질감도 광자 단위로 완벽하게 재현 가능했다. 절대로 간파할 수 없는 환상이 탄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야 양에게 시간이 될지 모르겠군요. 안 그래도 연기 일로도 바쁠 텐데요.“

”할 수 있어요!“

마야가 드물게 큰소리로 외쳤다. 안 그래도 시험을 준비하면서 엘라와 레이나에게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던 그녀였다. 오랜만에 원더스타인의 눈에 들 기회가 생겼는데 놓치기 싫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요. 이론은 이해가 다 됐나요?“

”물론…… 아니, 잠깐만요. 조금 더 들어야 알 것 같기도…….“

사실 그녀는 그가 말한 이론의 개요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일부러 모르는 척을 했다. 원더스타인은 열의를 불태우는 그녀가 기특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마야 양이 그렇게까지 해준다면 저도 시간을 더 내보지요. 당장 오늘 밤부터 제 방에서 개인 과외를 할까요?

“네, 스승님.”

마야는 자신을 향해 미소짓는 스승을 보며 가슴이 뭉클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이론이 순간의 발상으로 떠오른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말투로 보아 꽤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게 틀림없었다.

환상 마법을 쓰지도 못하는 그가 왜 이런 이론을 개발했을까. 묻지 않아도 대답은 뻔했다. 바로 제자인 그녀를 위해서일 것이다. 그녀가 현재에 안주하지 않도록 도약할 다음 단계를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이 이론의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원더스타인은 그가 게임 스트리밍을 시작하던 시절 한창 게임사에서 선전하던 그래픽 기술 이름을 떠올렸다.

“레이 트레이싱이요.”

“광선 추적이라. 적절한 이름이군. 이보시오, 단장님. 혹시 학자가 되어볼 생각은 없습니까? 꼭 연극대학이 아니더라도 서커스 학교라든지.”

“그건 대회가 끝난 다음 고려해 보죠. 그것보다 다음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아, 맞아. 배경의 채도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고 하셨죠.”

원더스타인을 대하는 한트케 교수의 태도는 이전보다 친근해져 있었다. 잘생긴 외모와 인덕을 이용해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게 단장으로서 그가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연출 이론에 대해서도 재능이 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론을 들려줄까. 그렇게 그의 말을 경청하던 그는 잠시 후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야외의 다른 것에 시선을 뺏기는 게 걱정된다면, 그냥 환상으로 무대 밖까지 덮으면 됩니다. 좌우로 길게 말이죠.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된 환상으로 만든다면 오히려 그것들에 시선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야 본말전도죠. 그래서 일부러 환상을 희미하게 만드는 겁니다. 좌우로 갈수록 더 흐릿하게요. 그러면 사람들이 무대 밖에 가는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무대 중심을 향한 집중력은 향상되지 않겠어요?”

“단장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건…… 사진사들이 사용하곤 하는 방식이군요.”

방구석에서 랄프가 혼자 잡동사니를 만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아는 체를 했다. 원더스타인이 방금 얘기한 이론은 사진기 렌즈의 피사계 심도를 이용한 배경 흐림 기법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연극도 좋아하지만, 기계 만지는 일도 좋아하는 랄프는 앞으로 카메라 기술의 발전이 연극의 흐름을 바꿀 거라고 보았다. 그래서 사진술에도 빠삭했다.

“맞습니다. 이 이론에 이름을 붙여 보자면…… 아웃포커싱이라고 할까요?”

원더스타인이 말하는 방법 중 아웃포커싱은 한트케 교수의 지시에 따라 즉시 실행에 들어갔다. 레이 트레이싱은 상당히 어려운 수련을 요구했지만, 아웃포커싱은 그저 무대의 배경을 연장해 흐릿하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마야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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