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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13

EP.512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18)

<울펜슈타인 백작>의 공연이 열리는 날은 화목토 3일이었고, 그중 괴물서커스단이 시험을 치르는 날은 마지막 날이었다. 그들은 화요일과 목요일에 상대방의 전력을 탐색하기 위해 극장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상대방의 연극을 보고 뭔가 연출에 추가적인 보강을 할 건 없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다른 팀의 연극을 관람하는 것은 한트케 교수를 비롯한 몇몇 단원에게만 허락되었다. 아직 연기가 불안정한 단원들의 경우 혹시나 다른 서커스단의 연기를 보고 몰입이 깨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애초에 가장 먼저 시험을 치르는 팀과 가장 늦게 시험을 치르는 팀 사이에는 고작 나흘밖에 없었고, 이미 완성된 연극에 뭔가를 더하기에는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다. 어설프게 극을 바꾸려고 시도하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물건이 나오기에 십상이었다. 한트케 교수 정도 되는 사람이 연출가를 맡고 다른 배우들이 군말 없이 그의 지시대로 움직인다는 보장이 있어야 겨우 시도해볼까 말까 한 일이었다.

경쟁자끼리 시험 준비 기간이 차이가 나는데도 불공정에 대한 시비가 붙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아니, 예선전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통계적으로 앞서 시험을 치르는 팀이 더 유리한 것은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전 공연이 남긴 인상에 다음 공연이 묻혀버리는 것이다.

월요일은 괴물서커스단과 경쟁하지 않는 다른 두 팀이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괴물서커스단의 모든 단원이 이날 극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무대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시험의 가장 가혹한 점은 진짜 무대 위에서 예행연습할 시간이 반나절밖에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일 밤에 시험을 치를 예정인 두 팀이 그날 오전 오후 12시간을 각각 6시간씩 나누어 쓰는 게 전부였다.

그 짧은 시간에 무대 공사와 설비의 설치를 모두 끝마쳐야 했다. 평소 서커스단의 조직력이 얼마나 뛰어난지가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들의 역량 전체가 시험받는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프란츠 군, 랄프 군, 부탁하네.”

“맡겨만 주십쇼!”

한트케 교수의 두 제자가 해당 부문의 전문가가 아니었다면, 괴물서커스단은 예행 연습할 틈도 없이 주어진 시간을 꼬박 무대 준비에만 써야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위를 살피며 배치도와 작업 동선을 다시 한번 검토했다.

나머지 단원들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무대 위를 바라봤다. 그들에게는 오늘 응원해야 할 팀이 있었다. 바로 홉스와 카렌이 있는 파파엘 서커스였다. 그들은 이번 주에 시험을 치르는 12개의 서커스단 중에 첫 번째로 공연을 하게 됐다.

“카렌.”

“앗, 마야, 오랜만! 응원하러 와준 거야?”

분장실에 들어선 마야는 온통 털로 뒤덮여 있는 옷을 입은 카렌을 발견했다. 그녀 외에도 가지각색의 털북숭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파파엘 서커스가 도전할 극본은 <들개들>이라는 제목의 뮤지컬이었다. 해당 극의 등장인물들은 거대한 실루엣으로 나오는 인간들을 제외한다면 모두 개였기에 다들 이런 걸 껴입어야 했다.

마야는 자신들이 이 대본을 뽑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평소에도 쫄쫄이를 입고 다니는 파파엘 서커스 사람들이면 몰라도 그녀처럼 답답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런 인형 옷 같은 것은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연습은 잘했어?”

“말도 마! 왜 이 연극이 배우들의 발목과 허리를 작살 내기로 악명 높은지 알겠다니까. 개처럼 구는 연습만 한 달 가까이 했어. 볼래?”

카렌은 그녀 앞에 엎드리더니 네발로 걷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이 사족보행을 시도한다면 상당히 엉거주춤한 자세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팔을 짚고 기어가거나 두 다리로 걸으며 팔을 늘어뜨리는 식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로 사족보행 동물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해부학을 공부한 마야였기에 그녀가 이 동작을 익히기 위해 어마나 고생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인간의 관절 가동 한계까지 써먹어야 간신히 표현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왈왈.”

카렌은 심지어 개 우는 소리도 그럴듯하게 해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흔들어대는 그녀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개를 연상케 했다. 마야는 자신에게 머리를 비벼대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래. 잘했어.”

“멍!”

카렌은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기뻤는지 사방팔방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그러다 그녀는 곧 뒷발로 몸을 일으키고는 친구의 어깨에 앞발을 얹더니 그녀의 볼을 혀로 날름 핥아댔다. 개의 역할에 몰입해 본능이 시키는 대로 호감을 표현한 것이다.

“아.”

카렌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몇 초 뒤였다. 그녀는 곧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미, 미안! 실수했어!”

“괜찮아. 그만큼 연기에 집중했다는 거니까.”

“아, 아니, 그렇다고 해도…… 네가 불쾌했을 수도 있으니까…….”

“괜찮아.”

그녀는 재빨리 친구를 다독여주었다. 예전이었다면 마야는 이렇게 관대하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 과하게 달라붙어 귀찮게 구는 친구를 염동력으로 패대기쳤을지도 몰랐다. 그때마다 카렌은 뭐가 즐거운지 깔깔대며 일어서고는 조금 있다가 비슷한 장난을 치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카렌은 자신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화들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마야는 그런 그녀를 보며 홀가분함보다 안타까움을 느꼈다. 두 달 전, 그 이고르라는 자에게 납치를 당한 이후로 그녀는 계속 이랬다.

마야는 그때 친구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아무리 무신경한 그녀라고 해도 그걸 대놓고 물을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다.

범인인 이고르라는 늙은이는 클라라가 춤추던 모습을 보고 반해 그녀를 덮치려고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카렌은 그걸 저지하려다가 함께 끌고 간 거고.

그런 변태 같은 노인네에게 두 사람이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두 사람 다 별일 없었다고 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어떻게 솔직히 말하겠는가? 다행히 위험한 선을 넘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카렌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 것은 분명했다. 그날부터 그녀는 왠지 시무룩하고 사람을 피해 다녔다.

자신의 제일 친한 친구를 이런 꼴로 만들다니. 마야는 나중에 그 영감탱이가 보이면 밟아주겠다고 다짐했다.

안 그래도 푸리 다이가 주최 측에 요청해 그에 대해 대대적으로 수배를 내려놓은 상황이었다. 원더스타인과 루미는 현존하지 않는 인간이라 생각해 그의 외형과 이름을 마음대로 팔아먹은 것이지만, 그를 원래부터 알고 있던 에스메랄다로서는 가만히 좌시할 수 없었다.

물론 카렌은 마야가 생각한 것처럼 이고르에게 무슨 짓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따져 보면 그건 어떤 의미에서 추행보다 더 몹쓸 짓이라고 할 수는 있었다. 소녀의 순정을 짓밟은 셈이 되니까.

-카렌 양, 저는 사실 클라라 양이 아닙니다.

-뭐야? 선배? 갑자기 왜 그래요? 세뇌당한 거예요?

-아닙니다. 침착하게 들어주세요. 사실 말이죠…….

카렌이 사랑에 빠졌던 대상은 진짜 클라라가 아니었다. 만우절의 저주인지 뭔지 때문에 그녀와 몸이 바뀌었던 원더스타인이었다.

사실을 알고 그녀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사랑했다고 믿은 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니.

그때 입은 정신적 내상 때문에 그녀는 한동안 사람 만나는 것도 거부하고 방안에 틀어박혀만 있었다. 주변에서는 그녀가 납치당한 일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굳이 그들의 오해를 정정해주지 않았다. 차마 말 못 할 진실이었으니까.

“단장님은 어디 계셔?”

카렌은 최대한 아무렇지 투로 질문하려고 애썼다. 그날 이후로 카렌은 원더스타인과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사건 직후 안부 인사차 방문했을 때 몇 마디 했던 게 전부였다. 그에 대한 소식은 계속 마야를 통해 듣고 있었다.

“스승님은 객석에 다른 단원들이랑 계셔.”

“아, 그래?”

카렌의 눈가에 진한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그녀는 아직 그에 대해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다. 자신이 정말로 사랑했던 것은 누구였을까?

단순히 외모를 좋아했다기에는 진짜 클라라를 볼 때 그녀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원더스타인을 떠올릴 때, 그가 여자였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녀는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이 감정의 정체는 실연의 고통일까. 아니면 단순히 기만당한 것에 대한 원망일까. 자신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남자라도 상관없는 것일까.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야 그녀가 좋아했던 ‘클라라 선배’를 홀가분하게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날 이후로 원더스타인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야속하게도 그는 그녀의 몸 상태를 한 번 살펴봐 준 뒤로 다시 그녀를 보러 오지 않았다.

아마 찾아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까.

-좋아했는데!

-카렌 양…….

-클라라 선배를 좋아했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따져 보면 그에게 화낼 일도 아니었다. 그도 상황의 피해자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감정을 주체 못 해서 그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맞아, 그랬죠. 카렌 양 당신은 여자를…….

원더스타인은 그제야 자신이 카렌 앞에서 했던 행동이 그녀에게 어떻게 비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저 같은 여자끼리는 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카렌은 그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일단 내일은 클라라 양과 만나보세요.

-…….

-저랑은 고작 5일 정도 같이 있었을 뿐 아닙니까. 클라라 양을 정말 좋아했다면 다시 시작해봐도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카렌은 클라라와도 따로 한 번 더 만나게 되었다. 클라라는 그저 원더스타인의 심부름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약을 전달하러 왔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그녀를 맞이한 카렌이었지만, 그녀에게서 바라던 것은 얻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듯했지만, 그녀의 말투나 행동에서 만우절 기간 느꼈던 선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클라라를 떠나보낸 카렌은 어떻게든 자신의 첫사랑을 마음속에서 지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달 전, 연극 연습에 들어가면서 겨우 가슴 구석에 묻어둘 수 있었다.

마야가 자주 찾아온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걱정했는지 이전과 달리 적극적인 신체적 접촉도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또 다른 두근거림을 꿈꿀 수 있으니까.

“단장님도 네 걱정 많이 하셨어.”

“어, 정말?”

마야가 아무 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에 카렌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려는 것을 꾹 참았다. 설마 그도 자신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마야의 다음 말에 무참히 꺾이고 말았다.

“응. 그래서 날 보낸 거잖아.”

“아니, 잠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서’ 널 보낸 거라니?”

카렌은 마야의 말에 담긴 미묘한 어조를 눈치챘다. 친구를 추궁한 카렌은 곧 그녀가 두 달 전 사건 이후로 자신을 자주 방문했던 것에는 원더스타인의 권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니 가서 말동무라도 해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 하하, 단장님이 그동안 날 신경 많이 써준 모양이네.”

카렌의 입에 어색한 웃음이 걸렸다. 왠지 두 달간 그에게 놀아난 기분이었다.

자신의 첫사랑을 가져간 버린 사람이 자신을 잊으라고 그를 대신할 사람을 보내주고 자신은 그걸 받아서 잘 즐긴 꼴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웃긴 것은 그 사람 역시 그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원더스타인은 정말로 그녀를 걱정해서 마야를 보내줬을 것이다. 마야도 친구를 돕는다는 생각에 그녀의 투정을 모두 받아줬을 것이고.

곧이어 시험을 시작하는 종이 울렸다. 카렌은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무대 위로 나갈 준비를 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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