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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14

EP.513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19)

<들개들>은 개들을 주인공으로 한 군담 소설인 <농장 이야기>에서 비롯된 작품이었다. <농장 이야기>는 수천만 평의 농장을 일구던 노인이 자식도 없이 사망하면서 도회지에 살던 농부의 조카가 농장을 물려받아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었다.

농장주의 조카는 농장일에 무지했기에 대부분의 일을 개들에게 맡겼다. 개는 드넓은 농장에서 집안을 드나드는 게 허락된 유일한 동물이었다. 그들 중 주인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는 ‘알파독’이 자연스럽게 농장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됐다.

<농장 이야기>의 절반은 그 알파독의 자리를 두고 개들끼리 다투는 내용이었다. 수많은 왕자와 패자가 그 자리를 거쳐 갔다. <들개들>이라는 작품은 <농장 이야기>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인 ‘불타는 갈대밭’의 내용을 뮤지컬로 옮긴 것이었다.

‘불타는 갈대밭’은 마침내 알파독의 자리에 오른 사냥개 ‘조베르만’이 휘하의 사냥개들을 이끌고 그에게 대항하는 들개무리의 대장 ‘유트리버’와 고기가 되길 거부하는 식용견들의 대장 ‘손와와’와의 전쟁을 치르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들개들>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연극의 주인공은 들개무리를 이끄는 유트리버였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카렌이 맡은 배역이기도 했다.

“조베르만의 무리가 쫓아온다! 그러나 내 무리에는 늙고 병들고 어린 개들이 가득하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카렌은 유트리버의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들개들>은 자칫 너무 배역에 몰입하면 개로서 특징이 죽어버렸고, 그렇다고 개 흉내에 집중하면 캐릭터의 심정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카렌은 그 둘 사이를 능숙하게 오가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개가 사람 탈을 쓰고 연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여기는 내게 맡기고 먼저 가쇼!”

유트리버의 의동생인 장트와일러가 홀로 조베르만의 추격대 앞을 막아서고 사투를 벌였다. 이는 <들개들>의 초반부 클라이맥스 장면이었다. 동시에 그가 독창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오라! 오라! 성난 파도와 같은 군세여! 오라! 오라! 나 홀로 여기 있도다! 오라! 오라!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카렌은 동료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며 뒤로 물러나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 이 초반부 추격 장면은 네발로 달리는 시늉을 하면서 계속 대사를 외쳐야 했기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카렌 누나, 여기 물!”

“고마워.”

파파엘 서커스의 막내인 까까머리 남자애가 주는 물을 카렌은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 한 통을 순식간에 비운 그녀는 바로 다음 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는 뭔가를 보고 굳고 말았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괴물서커스단 사람들이 앉아 있는 객석이었다. 그곳의 중심에는 금발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는 한창 연극에 몰입한 듯했다. 입술의 움직임으로 보아 장트와일러의 곡을 따라 부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근처에 있는 두 사람은 연극보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의 옆에 앉은 마야는 옆에 앉은 원더스타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댈까 말까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그의 뒤에 앉은 클라라는 자꾸 그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손가락에 돌돌 말거나 냄새를 맡는 등 장난을 쳐댔다.

카렌은 차가운 비수가 가슴에 꽂히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 다 그래도 한때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이 노력하고 고생하는 것을 봐주지 않고 다른 남자에게 사랑이 듬뿍 담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개새끼.”

카렌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는 맹렬한 질투심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그녀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카렌 누나!”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그녀는 자신의 차례를 놓치고 말았다. 대본상 장트와일러의 노래가 끝나는 순간 그녀는 그의 등 뒤로 헐레벌떡 숨는 시늉을 해야 했다.

그녀는 무대 위로 급하게 뛰어올랐으나 당황한 나머지 인간의 걸음과 개의 걸음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발이 엉킨 그녀는 결국 무대 위로 콰당 엎어져서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무대 위에 있던 다른 단원들은 굳어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실수가 터진 것이다. 그때, ‘조베르만’으로 분장하고 있던 홉스가 재빨리 애드리브를 날렸다.

“푸하하, 유트리버! 달아나다 자빠지는 꼴이 우습구나! 네가 그러고도 알파독에 도전할 자격이 있느냐?”

그제야 사람들은 이것이 연출의 일부임을 깨닫고 따라서 웃음을 터트렸다. 원래는 유트리버가 장트와일러의 뒤에 숨는 것을 보고 비웃는 것인데 그 내용을 약간 바꾼 것이다. 20년에 달하는 서커스 경력을 지닌 홉스의 순발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카렌은 자신을 보며 웃는 관객 중에 원더스타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저딴 남자에게 신경 쓰느라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다니.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그러나 카렌은 위기를 넘긴 이후로도 좀처럼 집중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아까처럼 큰 실수는 없었지만, 연습에서 보였던 것보다 박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그녀의 동료들은 느낄 수 있었다.

“뭐야, 왜 그래? 연습 때는 잘했잖아. 시험이라 긴장한 거냐.”

막이 전환되고 한숨 돌릴 겨를이 생겼을 때, 홉스는 카렌을 조용히 구석으로 불러냈다. 그녀는 동료들에게 폐를 끼쳤다는 사실에 상당히 의기소침해 있었다.

“미안.”

홉스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카렌을 보며 난처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차라리 그녀가 분해했다면 안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이렇게까지 기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니 좀처럼 꾸지람을 이어가기 쉽지 않았다.

그는 동생을 한참 바라보다가 객석 방향을 한 번 흘깃 훔쳐보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원더스타인, 그 남자냐?”

“뭐? 뭣? 무, 무슨 개소리야?”

카렌은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홉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발뺌하지 마. 너와 마주 보고 연기하던 사람의 눈을 속일 생각이냐? 네 시선이 계속 그쪽으로 가는 게 보이던데.”

“아, 아니, 이상한 생각하지 마! 나는 마야가 날 응원하고 있는지 보려고…….”

홉스는 펄쩍 뛰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낼 때라 여겼다.

“베이컨이 화장실에 갔다가 말이야. 휴지가 없어서 마침 쓰레기장 옆에 쌓인 과월호 잡지를 찢어서 닦으려 했거든? 그런데 이상한 게 잡지마다 누군가의 사진과 기사가 오려져 있는 거 아니겠어? 내가 알기로 그때 쓰레기 수거는 네 담당이었지 아마?”

“아, 그 아저씨가 괜한 짓을! 그, 그냥 자료 조사한 거야! 언젠가 붙을지 모르는 경쟁자니까!”

“당장 우리랑 붙어야 하는 두 서커스단을 내버려 두고 괴물서커스단을 조사했다?”

“어, 어차피 승률 70%라며! 굳이 조사할 것도 없겠다 싶어서…… 야, 그만 좀 히죽대!”

카렌은 겉으로는 강한 척 굴어도 속에 상처도 많고 마음도 여린 애였다. 그에게 그녀는 여동생이라기보다 딸에 가까웠다.

그는 시꺼먼 남정네들이 가득한 욕탕을 당당히 알몸으로 활보하는 동생을 보고 저거 시집이나 갈 수 있으려나 늘 걱정했었다. 그래서 그는 동생이 원더스타인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히려 반가움을 느꼈다.

이 험한 세상, 여자 몸으로 홀로 헤쳐 나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녀 옆에 누군가 짝이 되는 남자라도 있었으면 했는데, 아무리 봐도 그녀가 남자에게 전혀 흥미가 없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그 장벽을 원더스타인이 부숴주었으니 그로서는 감사할 일이었다.

“자, 다시 무대에 오를 시간이다. 준비하자.”

“야, 이상한 소문 퍼트리기만 해봐. 죽을 줄 알아!”

홉스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동생을 보며 이제 그녀를 떠나 보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생각하던 일이었다. 언제까지고 이런 곳에 그녀를 둘 수 없었으니까.

괴물서커스단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딘가 다른 곳에 보내야 한다면 그곳만 한 곳이 없었다. 거긴 엘라, 레이나, 마야 같이 친분이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혹시나 원더스타인과 잘된다고 해도 그는 밀어줄 생각이었다. 30대 중반의 노총각이 느끼기에 20대 후반은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같은 의미에서 될 수 있으면 빨리 짝을 찾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있는 기회 없는 기회 다 날리다 보니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들개들>의 연극이 끝나고 홉스는 원더스타인을 불렀다. 서커스단 간의 단원 이동은 별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는 불가능했다. 부정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규칙이었다.

이번 시험에서 파파엘은 별을 딸 확률이 모든 서커스단 중에서 제일 높았지만, 괴물서커스단은 반대로 제일 낮았다. 즉, 별의 수가 대등한 지금이 카렌이 괴물서커스단으로 이적할 적기였다.

“자네, 가진 별을 이용한 영입권은 다 썼지? 그러니 내가 대회 동안 한 번 쓸 수 있는 단장 권한을 이용해 카렌을 보내주지. 미노바도 본인의 서커스단이 해체되기 직전에 그런 식으로 딸을 데리고 자네 서커스단에 들어갔다지? 어때? 카렌을 받아주겠나?”

홉스는 굳이 원더스타인에게 카렌이 너에게 관심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카렌도 이제 곧 있으면 성인이 되는데 남자들만 가득한 이곳에 두기 불편하다고 적당히 사정을 꾸며냈다.

원더스타인은 그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카렌 정도 되는 곡예사가 들어온다면 환영이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들이 이번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전제로 제안했다는 게 거슬렸다.

“시험이 끝난 다음에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별을 따고 자네들이 따지 못하면 별의 차이가 나서…….”

“이길 겁니다.”

원더스타인의 결연한 표정을 확인하고 홉스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생각해보니 시험을 앞둔 서커스단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되나? 이거 내가 내 일만 생각했군.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카렌 양이 자신의 팀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나오려 하지는 않을 것 같군요. 귀중한 영입, 방출 권리 아닙니까? 아껴두시죠. 카렌 양을 데려온다면 저는 이번에 새로 얻게 될 별을 이용해서 데려오고 싶습니다.”

“정말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군? 하긴 그 마광필(魔狂筆) 한트케 교수를 섭외했다고 했던가. 좋아. 그러면 기다리기로 하지. 정 안되면 다음 달 시험도 있으니까 말이야. 아, 젠장. 말은 이렇게 해놓고 우리가 떨어지면 꼴이 우습게 되는데, 큭큭.”

홉스는 그에게 무운을 빌며 휴게실을 나갔다. 잠시 후, 원더스타인은 방구석에 있는 소파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카렌 양.”

“알고 계셨어요?”

소파 뒤로 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소파를 재주넘기로 뛰어넘어 그의 앞에 섰다.

“저 병신이…… 아니, 우리 오빠가 엉뚱한 오해를 한 거 같아서 따라와 봤어요. 아까 사실 제가 무대 위에서 홉스와 마주 보며 연기를 하면서 단장님 쪽으로 시선이 몇 번 갔거든요. 그래서 저 인간이 제가 단장님 쪽에 가고 싶은 거 아니냐 이러더라고요. 하여간 등신! 저 인간이 한 제안은 신경 쓰지 마세요. 헛소리니까.”

카렌은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을 적당히 꾸며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엘라 양이 말하더군요. 카렌 양이 우리 쪽을 볼 때마다 긴장해서 실수하는 것 같다고요.”

“네? 아, 그랬어요? 엘라가? 뭔가 잘못 본 게…….”

“레이나 양도요.”

“아니, 그건…….”

“혹시…… 두 달 전 그 일 때문인가요?”

원더스타인의 질문에 카렌은 입을 딱 다물었다. 설마 그가 정확히 그 점을 찔러 들어 올 줄은 몰랐다. 그녀가 대답이 없자 그는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런가 보군요. 그 일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 카렌 양의 마음을 희롱할 의도는 없었어요.”

“그래서 마야를 보낸 건가요? 클라라 선배 대신으로 즐기라고?”

카렌이 그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억하심정에 원더스타인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네? 아뇨. 그런 의도는 전혀…….”

“알아요. 그런 의도 아닌 거. 저도 안다고요. 저는 그저…… 단장님이 직접 와주길 바랐을 뿐이에요.”

“저를요? 하지만 카렌 양이 좋아하는 건 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카렌 양은 남자를…….”

“그냥 확인하고 싶었단 말이에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누군지.”

“아.”

원더스타인은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부주의한 행동이 설마 사춘기 소녀의 성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았을 줄은 몰랐다.

“기억하세요?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서 언제나 상담해주시겠다고 한 거.”

“네. 기억합니다.”

“지금 확인하고 싶어요. 제가 남자를 상대로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는지.”

“그걸 어떻게 확인…… 카렌 양?”

카렌이 갑자기 그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두 손목을 꽉 붙잡았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뿌리칠 수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에게 접근하는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요, 선배.”

“카렌 양, 잠시만…… 읍!”

이윽고 카렌의 입술이 그의 입술을 덮쳤다. 그녀의 혀가 그의 입속으로 부드럽게 얽어 들어왔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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