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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16

EP.515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21)

알베르트 라이프니츠는 상계의 기인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그는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1인 비행선으로 태평양을 횡단한다든가, 세계 일주 최단 기록에 도전한다든가, 활화산의 분화구를 탐사한다든가. 그는 이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모험가 부류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저 돈과 시간과 열정이 넘치는 백수일 뿐이오.”

알베르트는 그렇게 자신을 포장하곤 했지만, 아나이스는 그가 단순한 한량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기행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선전했고, 그때마다 전략 상품들을 기획해 효과적으로 팔아먹었다. 여행이나 운송 분야에서 ‘라이프니츠’가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명성 덕이 컸다.

“이번에는 ‘바보같이 실패하는’ 도전인가요?”

아나이스의 빈정거림에 알베르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풀어졌다. 그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에 대해 많이 아시는군요.”

“요즘 따라 당신을 흉내 내는 업계 사람들이 많아져서 말이죠. 하필 다 제 또래 아니겠어요? ‘파티 중독녀’라든지 ‘빈민가에 돈 뿌리는 남자’라든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서 대중적인 이미지는 홍보에 많은 도움이 되죠. 다들 잘 나가는 척 뻐기다가 멍청한 짓 한 번 저질러주는 것은 필수고요.”

“상계의 재녀라는 이름이 허명은 아니었군요.”

아나이스의 똑 부러지는 대답에 알베르트는 조금 두려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그의 전략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녀 말대로 이번에는 처음부터 실패를 염두에 둔 도전이었다.

태평양 횡단이라든가, 세계 일주라든가, 화산 탐사 같은 거창한 일은 멋져 보이지만 너무 누적되다 보면 ‘친근한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이미지가 죽어버렸다. 그는 자신이 극기의 도전자가 아니라 라이프니츠의 지원 덕에 어영부영 살아남을 수 있는 바보로 비치길 바랐다. 그래서 알베르트는 간간이 이렇게 멍청하게 실패하는 모습도 섞어 주었다.

얼마 전에는 포도주 축제에 가서 술 마시기 대회에 나갔다가 지역 술꾼들이랑 어깨동무하고 고래고래 야한 노래를 불러댔다. 그전에는 투기장에서 사자와 레슬링을 시도하다가 도망쳐 조련사가 구해줄 때까지 우리 안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런 행적 덕분에 알베르트 라이프니츠는 모험가로서 숱한 업적을 달성하면서도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지몬도 알베르트의 의도가 뭔지 알고 있었다. 경이로운 성공과 우스꽝스러운 실패. 서커스 업계에서는 곡예사와 광대를 겸하는 자들이 자주 쓰곤 하는 방법이었다. 실제로 사자와 레슬링을 하던 때는 그가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알베르트는 개막식 이전부터 단원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지몬은 이러한 사태를 상정하고 있었지만, 하필 이 순간에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조만간 또 뭔가 큰 도전을 치를 모양이었다. 이번 건은 그 전에 미리 이목을 끌기 위한 작업일 것이다. 아마 우승 후보 중 하나인 ‘바퀴의 서커스’가 경쟁자로 참전한다는 소식에 그 화제성을 이용하려는 것 같았다.

사실 그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진즉에 예측했어야 했다. 다른 시험은 그가 참여해봤자 단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힘들지만, 이런 연극 무대라면 주인공 배역을 맡는 것만으로 쉽게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실패를 목적으로 한다면 일부러 연극을 망친다는 건가요?”

“아마도요.”

“그래서 이곳 사람들 모두 뭔가 득도한 듯한 분위기였군요.”

“이쪽은 이겼다고 봐도 될까요?”

단원들의 기대 어린 눈빛에 한트케 교수는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을걸세. 이 시험은 연극의 완성도를 두고 감점하는 방식이 아니니까 말이야. 다른 단원들이 최대한의 기량을 발휘해주면 점수는 높게 받을 수도 있네. 황금 카니발에서 주연으로 나오는 배우들 몇은 나도 알고 있는 얼굴들일세. 다들 일류 배우들이지. 라이프니츠 가의 도련님이 기본만 해도 우리가 이기긴 쉽지 않을 걸세.”

“하긴 저 남자도 한 달 동안 연습했을 테니…….”

엘라가 수긍하고 넘어가려는데 황금 카니발의 단원들이 갑자기 그녀를 돌아봤다. 그들은 웃고 있는 듯 보였지만,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한…… 달……?”

“연…… 습……?”

그들의 차가운 태도에 엘라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지몬이 한 마디 한 마디 씹어먹듯이 내뱉었다.

“알베르트 님은…… 1주일 전 저녁에…… 프라빈에 도착했다…….”

“1주일 전이라고요?”

사실 지몬은 1주일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백작 배역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후원자가 나타나서 그의 배역을 강탈해간 것이다.

공연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단장이 캐스팅 권한을 쥐고 있었다. 아무리 후원자라도 이렇게 난입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1회에 한해서 자유롭게 시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계약서 조항 때문에 지몬은 그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가 집사 역할을 맡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백작과 가장 긴 시간을 붙어 다니는 배역이 그였기에 알베르트의 연기를 급하게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가 직접 옆에서 돌봐주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 일정이 바빠서 길게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 말이죠, 하하! 그래도 대본은 오는 길에 다 외어 왔습니다!”

“끄으으.”

자랑스럽데 자신의 사정을 밝히는 후원자를 지몬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노려봤다. 한 달 동안 연습하던 배역을 뺏겼으니 오죽하랴 싶었다.

“아, 아버지, 진정하세요…….”

레이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지몬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불안감에 휩싸였다. 원더스타인은 몸을 덜덜 떠는 레이나를 남몰래 다독이며 말했다.

“우리는 이만 객석으로 올라가죠.”

레이나는 지몬을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한 방 먹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앞에 서자 그녀의 다짐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특히나 지금은 가면을 벗은 15살짜리 그림자 상태여서 더 그럴지도 몰랐다.

“가면을 쓰고 있었다면 달랐을 겁니다.”

속상해하는 레이나를 원더스타인이 조심스럽게 달래주었다. 그녀는 특히 그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완전히 저 인간에게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들이 자리에 앉고 30분 정도 지나서 연극이 시작되었다. 관객들의 대부분은 기대감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는 빈정거리는 듯한 조소가 걸려 있었다. 그들은 황금 카니발의 내부 사정에 대해 어디서 미리 정보를 입수한 듯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극이 진행되었다. 알베르트도 보기보다 진지하게 연기에 임했다. 그러나 후원자의 개입이 있었던 게 분명한 연출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하자 도무지 연극에 몰입할 수 없게 됐다.

“공주, 제가 가져온 선물이 마음에 드시지 않습니까? 요즘 사교계에서 가장 인기라는 라이프니츠 상회의 ‘은 등급’ 화장품이옵니다.”

“어허, 그런 걸 감히 공주마마께 드릴 생각을 하다니! 나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제공한다는 ‘금 등급’의 화장품을 구해왔소! 은 등급의 화장품의 라벨을 10개 모아 상회의 지점에 들고 가면 받을 수 있는 물건이지. 공주마마! 받아주시지요!”

“우습지도 않군요. 저는 아직 시장에 내놓지 않은 희귀한 ‘백금’ 등급의 화장품을 준비했습니다. 3달 뒤에 발매 예정인 상품이죠. 제 인맥 덕에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세 명의 구혼자가 단계별로 값비싼 선물을 꺼내 드는 장면이 상회의 상품을 소개하는 광고로 변질되었다. 관객들은 작위적으로 물건의 효능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등장인물들을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라이프니츠의 상품은 그 장면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소품들도 모두 상회로부터 협찬받은 물건들이었다. 하녀가 마법 청소기를 쓰며 혼잣말로 그 성능에 감탄하는 장면은 예사였다. 기어이 집사인 지몬의 입에서 ‘신혼여행을 간다면 라이프니츠 관광을 이용하는 걸 추천합니다.’ 같은 대사가 나왔을 때는 다들 자지러지고 말았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푸핫핫, 소문대로군! 소문대로야!”

“세상에. 이런 건 장미 풍차 카바레의 시험에서나 볼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다들 알베르트의 기행에 혀를 내둘렀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배우들도 표정 관리하기 어려워했다.

그들도 진즉에 이런 무대인 줄 알았다면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최 측에 배역과 배우 목록을 제출해버린 터라 뺄 수도 없었다. 알베르트는 딱 그것을 제출하는 마감 기한 직전에 황금 카니발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알베르트는 상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욕심을 드러냈다. 극의 많은 연출이 백작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그 정점은 백작과 공주 간의 첫 잠자리 장면이었다. 원래는 책벌레 두 사람이 밤새 다양한 분야의 지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노골적인 성애 연출이 추가되었다.

흥행을 위해 작품이 수위 높은 연출이 추가되는 건 예사였지만, 설마 서커스 그랑프리의 무대에서 이런 꼴을 볼 줄은 몰랐기에 관객들은 기가 막혔다. 누가 봐도 주인공 배우의 욕심 때문에 더해진 장면이었다.

“이걸로 7% 정도였던 승률이 30% 정도로 올랐군.”

“그렇게나 말입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우리가 당일 무대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인다는 전제하에 그렇다는 걸세.”

숙소로 돌아온 사람들은 나머지 단원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다들 탁자를 쾅쾅 치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아이고, 지몬 그 아저씨 표정을 우리도 봤어야 하는 건데.”

“승률 30%라니. 정말 해볼 만하잖아요?”

“아직 바퀴의 서커스 쪽 공연을 보지 않았으니 확실한 건 아니지. 우리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자, 그러면 연출에서 몇 가지 수정을 해볼까? 황금 카니발의 공연에서 몇 개 건질 게 있긴 있었는데 말이야….”

황금 카니발이 사실상 탈락 확정이라는 말에 힘을 얻은 괴물서커스단은 연습의 마무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 뒤, 바퀴의 서커스가 공연하는 날이 됐다.

바퀴의 서커스는 지금까지 엄격한 규율에 따라 인원을 선발하고 시험에 임해왔다. 그런데 지난 만우절 사건 이후로 많은 면에서 부족의 규율이 느슨하게 바뀌었다. 부족장인 에스메랄다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응어리가 풀린 덕분이었다.

그래서 이번 연극은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준비되었다. 원래의 바퀴의 서커스라면 안정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깐깐하게 기존의 해석을 따랐을 테지만, 이번에는 서커스 내의 젊은 연출가들에게 많은 자율권이 부여되었다.

한트케 교수조차 생각지도 못했던 도전적인 연출이 시도되었다. 흑마법사의 역할에 푸리 다이를 기용한 것도 그중 하나였다. 관객들은 전설적인 곡예사의 출연에 놀라워했다. 그녀의 연기나 발성은 나이에 맞지 않게 생동감이 넘쳤다.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물론 관객 중 한 명만은 전혀 동떨어진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했다.

“와, 잘한다! 우리 에스미! 예쁘다! 귀여워!”

푸리 다이가 등장할 때마다 스벤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심지어 그녀가 죽는 장면에서는 무대가 떠나가라 오열하기까지 했다.

“으이구, 팔불출.”

“이거 역효과 아닌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무대 위의 에스메랄다가 얼굴을 붉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 때문에 그녀의 연기에 지장이 가는 일은 없었다.

바퀴의 서커스까지 관람을 마친 한트케 교수는 자신들의 승률이 더 올랐다고 선언했다. 그들이 정석적인 <울펜슈타인 백작>을 보여주었다면 연기 면에서 비교되었을 부분들이 많이 상쇄된 덕분이었다.

“아마 황금 카니발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준비한 부분들 같은데 우리에게는 오히려 득이 된 셈이지.”

엘라가 간단히 상황을 정리했다. 금요일 오후까지 마침내 연습을 모두 마무리 지은 한트케 교수는 단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이것으로 승률은…… 반반입니다.”

그리고 토요일. 시험 주간의 마지막 날. 괴물서커스단이 무대에 설 차례가 되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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