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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17

EP.516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22)

괴물서커스단의 숙소에는 아침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평소라면 시끌벅적했을 식사 시간에도 단원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수저만 움직였다. 간간이 엘라, 스벤, 알렌 등이 농담을 던졌으나 다들 반응이 시원찮았다. 심지어 늘 알렌과 호흡을 맞추던 조도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조? 우린 무적의 콤비잖아?”

“우욱, 그, 그만 흔들어, 알렌. 토할 것 같아.”

원더스타인은 식사를 하면서 단원들의 안색을 살폈다. 다들 새파랗게 질린 것이 밤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았다.

가스통이 어젯밤에 숙면에 드는 약을 나눠줬지만 별 효험은 없었다. 시험 날이 다가오면서 단원들이 약을 찾는 빈도가 늘어나는 바람에 약에 내성이 생긴 탓이었다. 그렇다고 약의 양을 늘리자니 다음날 멍하니 단체로 정신을 놓는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어서 함부로 시도할 수 없었다.

“나 또 화장실 가야 할 것 같아.”

“이대로 잠들어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 말고도 복통이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단원들은 많았다. 이보다 더 큰 무대에 서 본 단원들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려 한 달 넘게 필사적으로 매달려온 일이 결판나는 날이었다. 단원들의 부담감이 평소의 몇 배나 달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들의 몸을 보살피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대 위에 설 사람들의 몸에 데볼루트를 집어넣는 건 위험부담이 컸다. 지금은 가스통과 칼슨에게 맡기는 게 최선이었다.

“아나이스 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준비가 거의 다 끝났다고 하는군요.”

현재 서커스단의 인원 절반 정도는 자리에 없었다. 배우들을 제외한 사람들 대부분은 새벽부터 극장에 나가서 무대 공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극장에 도착하는 즉시 예행연습에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바로 극장으로 출발했다. 한 팀당 주어진 무대 사용 시간은 6시간이었다. 무대 설치에 벌써 1시간을 사용했고, 도착해서 이리저리 준비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4시간밖에 없었다. 예행연습은 한두 번이 한계일 것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의 이 분위기가 좋단 말이지. 압박감에 졸도할 것 같다고나 할까?”

한트케 교수 역시 상당히 긴장한 눈치였다. 원더스타인은 그가 지금은 비어 있는 심사위원석을 괜히 흘끗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교수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눈치챘다.

“설마 우리 점수를 의도적으로 깎지는 않겠죠?”

원더스타인은 그저께 바퀴의 서커스 공연이 끝나고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동안 의도적으로 심사위원들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던 한트케 교수는 하필 그날 그들에게 걸리고 말았다. 스벤이 공연 내내 요란스러운 행동으로 이목을 끈 탓이었다.

“이거 심사위원 자리도 마다한 한트케 교수가 여기는 웬일이시오?”

“소문이 사실이었군. 설마 설마 했는데, 서커스 그랑프리에 참가할 줄이야.”

“이게 당신이 학자로서 명예를 지키는 방법이구려, 응? 우리에게도 미리 알려주지 그랬소.”

심사위원 7명은 모두 연극대학의 교수들이었다. 그들은 한트케 교수를 앞에 두고 노골적으로 빈정거렸다.

심사위원 자리도 속물적이라고 거부한 양반이 아예 대회에 참가했으니 조롱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고려해도 한트케를 향한 그들의 적의는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평소 연극대학 안에 적을 많이 만들어둔 것이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미 시내에는 한트케 교수가 몰락할 대로 몰락해버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안 그래도 평소 고고하게 굴던 사람이 연구비 남용으로 정직까지 당했는데 삼류 서커스단의 연출가로 들어갔으니 충분히 말이 나올 만도 했다. 베르그송 상회가 내민 백지 수표에 그가 굴복했다는 말도 돌았다.

“그들도 명색이 학자들입니다. 심사를 맡은 이상 노골적으로 나오지는 못할 겁니다.”

“승률 반반이라는 계산은 그들의 심사가 공정할 거라는 전제에서 나온 거죠?”

“……네.”

“그러면 노골적으로 나오지 못할 거라는 말은 위로가 못 되죠. 80대20 정도라면 몰라도 51대49 정도 되는 상황에서 49로 기우는 정도는 쉬울 것 같은데요.”

원더스타인의 냉철한 지적에 한트케 교수는 고개를 떨궜다.

“면목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와버린다면…….”

“아뇨. 아직 사과하는 건 이릅니다, 교수님. 교수님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승부는 7명의 교수만이 내리는 게 아니니까요.”

원더스타인의 말에 한트케 교수는 자신이 잠시 대회의 규칙을 간과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번 대회는 7명의 심사위원이 각 10표씩, 그리고 극장의 가면 배우 120여 명이 1표씩 행사했다. 설마 교수 7명이 모두 다른 쪽에 투표한다고 해도 배우 120명 중 100명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우승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1년간 진행된 시험에서 그렇게까지 표차가 크게 났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퀴의 서커스를 상대로 정말 그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원더스타인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 보였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웃고 있었다.

한트케 교수는 과연 단장의 그릇은 뭔가 다르구나 하고 속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욕했다.

무대 전체를 조율해야 할 연출가가 대회 시작 전부터 기가 죽어서 어쩌자는 말인가? 그는 다시 평소의 그로 돌아와서 고함을 질러가며 무대를 정비했다.

물론 원더스타인이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웃는 남자의 힘 덕분이었다. 사실 그도 속으로는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단장으로서 단원들의 사기를 꺾을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애써 자신감을 담아 말한 것이었다.

그는 단원들과 함께 노천극장의 무대가 회전하는 것을 지켜봤다. 돌로 만들어진 원형의 무대가 뒤편에 숨겨져 있던 반원을 객석 쪽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와, 신기한데?”

“이게 정말 고대의 기술입니까?”

무대를 회전시켜 뒤편의 무대로 바꾸는 장치는 이 시대의 극장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테레나 노천극장은 지어진 지 1000년이나 되었다. 그 먼 과거에 이와 같은 기술이 있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프라빈 시내에는 이것 말고도 작동하는 고대의 장비들이 많습니다. 물론 순수한 인간의 힘은 아니었죠. 바로 ‘케찰린’이 인간들에게 제공해준 것이었습니다.”

기계공학에 관심이 많은 랄프가 신나서 떠들어댔다. 케찰린에 대해서는 원더스타인도 몇 번 들은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그들은 1000년 전까지 세상을 지배했던 종족이었다. 인간의 허리춤에 오는 키에 온몸을 뒤덮은 깃털, 그리고 입 대신 부리를 가진 그들은 보통 ‘조인족’으로 불리곤 했다.

그들의 기술력은 현시대의 인간들보다 몇백 년은 앞서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났다. 그들은 구름 위에 거주지를 만들었고,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 인형을 제작해 수족으로 부렸으며, 기상을 마음대로 조종하기까지 했다.

당장 서커스 그랑프리의 본선이 열리는 하늘섬 히포드롬이 바로 그들의 작품이었다. 인간은 그저 그들이 남긴 것을 발견해서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시 지상을 횡행했던 마족들조차 그들의 적수가 못됐다. 덕분에 그들의 오만함을 하늘을 찔렀다. 그들은 마신들조차 자신들의 발아래라고 떵떵거렸다.

그런데 그렇게 고도로 발전했던 문명이 한순간에 멸망해버렸다. 그들은 수백 년 전, 어느 순간 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각종 유적에서 발견되는 단서들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멸망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게 확실했다. 그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기계를 정비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생활을 보내다가 눈 깜짝할 새에 소멸해버린 것이다.

케찰린의 멸망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수수께끼였다. 몇몇 사람들은 그들이 뭔가 위험을 감지하고 급하게 이 세계를 떠났다고도 말했고, 어떤 사람들은 감히 마신에게 도전한 죄로 어비스로 끌려가 버렸다고도 말했다. 각종 기록에서 눈앞에 있던 케찰린이 회색빛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뭔가 초자연적인 힘에 노출됐던 것은 확실했다.

랄프의 설명이 끝났을 때쯤, 단원들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잠시라도 대회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의 부담이 덜어진 것이다.

덕분에 이어진 예행연습은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마무리되었다. 한트케 교수가 다른 두 서커스단의 공연을 보고 뒤늦게 추가한 부분도 단원들은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연습이 모두 끝나자 해가 지평선 너머로 지는 게 보였다. 관객들이 하나둘 극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윽고 해가 완전히 지자 이날의 첫 번째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음악의 세계>라는 작품이었다. 황금 카니발과 바퀴의 서커스 공연 때도 앞서 진행되었었기에 그들에게는 익숙했다.

해당 연극은 특이하게도 배우들의 대사가 하나도 없었다. 그저 관현악단의 연주하는 여러 곡에 맞춰 수십 종류의 장면을 연기할 뿐이었다.

때로는 화산 폭발을 피해 도망치는 고대의 도시민들이 되었다가, 때로는 경이로운 바닷속을 탐사하는 잠수부들이 되었다가, 때로는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농촌 주민들이 되었다. 빠른 배경 전환에 맞춰서 그때마다 배우들은 복장과 연기를 순식간에 교체해야 했다. 어지간한 숙련자들도 연기하기 까다로워하는 극본이었다.

그렇게 2시간이 흘러 첫 번째 공연이 끝났다. 괴물서커스단 사람들은 무대 뒤에서 퇴장하는 그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던져주었다. 이제 곧 그들이 무대에 오를 차례였다.

사회자가 앞선 무대에 대한 짤막한 찬사와 함께 다음 무대를 소개하는 동안 원더스타인은 단원들을 모두 모아 서로 어깨를 맞대고 둥글게 섰다. 그는 그들과 한 명씩 눈을 마주치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보여줍시다.”

“핫핫, 맡겨만 두시죠.”

“기필코 이길 겁니다.”

“끄응, 좋아. 여기까지 온 이상 최선을 다하자고.”

“그래요. 걱정할 것 없어요. 다들 연습한 대로만 해요.”

단원들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격려의 말을 던졌다. 그렇게 한 바퀴 돌아 마지막으로 엘라의 차례가 되었다.

“내가 어제 밤새 고안한 복창 구호가 있는데 같이 해도 돼?”

“아니, 잠시만요.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밤을 새웠단 말입니까? 제가 그냥 간단하게 하나 준비하라고 했잖아요.”

원더스타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리쳤다. 어쩐지 아무리 큰 무대를 앞두고도 긴장한 적이 없는 그녀가 유독 아침에 수척하다 했다.

“고민하다 보니 끝도 없이 길어져서.”

그때, 돌끼리 부딪치는 마찰음과 함께 무대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검은 장막이 서서히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무대와 객석 사이를 가리고 있는 막이었다. 무대가 완전히 돌아가고 나면 막이 걷히고 연극이 시작될 것이다.

“좋습니다. 시간이 없군요. 그게 뭔지 빨리 말해보세요.”

다들 기대하는 눈빛으로 엘라를 바라봤다. 그녀가 밤새 고민했다면 분명 좋은 문구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자 그들은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괴커스, 괴커스, 파이팅!”

“…….”

다들 할 말을 잃고 허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밤새 고민했다 해놓고 고작? 뒤에서 지켜보던 미키가 이마를 딱 짚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엘라와 몇 년을 함께 살면서 이런 꼴을 많이 봤다.

“다른 건 잘하면서 저런 센스는 촌스럽단 말이야.”

“초, 촌스럽다니!”

“이제야 말하는데 찍순이나 구돌이라는 이름도 너무 유치해.”

“원래 애정이 들어간 이름은 좀 유치하기 마련이야!”

그들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무대가 거의 다 돌아갔다. 더는 시간을 지체하기 힘들었던 원더스타인은 단원들을 독려해 함께 구호를 외쳤다.

“괴커스, 괴커스, 파이팅!”

다들 흩어져서 각자 맡은 자리로 이동했다. 잠시 후, 울펜슈타인 백작의 막이 올랐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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