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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18

EP.517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23)

연극의 시작종이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이미 황금 카니발과 바퀴의 서커스라는 두 일류 서커스단의 무대를 본 그들이었다.

그 둘과 비교하면 다른 이름 있는 서커스단들의 무대는 마치 10대들의 학예회처럼 보였다. 그런 마당에 하물며 괴물서커스단이야 오죽하랴 싶었다.

괴물서커스단은 잡다한 구설수로 이름이 알려진 자들이었다. 실력은 다른 서커스단에 비해 많이 떨어질 것이다. 대다수 관객이 그런 생각을 품은 채 막이 오르는 것을 지켜봤다.

“젊은 울펜슈타인 백작은 역병으로 여동생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천재적인 과학자이자 의사이자 연금술사인 백작은 죽은 여동생을 되살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여동생이 죽은 지 5년이 흘러 마침내 그는 그녀를 부활시킬 준비를 마쳤습니다.”

미노바가 읽어주는 내레이션이 끝나고 무대가 밝아졌다. 화사한 분위기의 저택 응접실이 무대 위에 나타났다.

“아.”

객석 여기저기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정말 실존하는 저택의 내부를 그대로 옮겨둔 듯한 공간이 그곳에 있었다.

“이거 우리보다 돈을 더 많이 쏟아부은 모양이군요.”

알베르트 라이프니츠는 괴물서커스단의 무대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적어도 배경과 소품은 수준은 자신들보다 한 단계 위였다. 분명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을 터였다.

경악하는 그에 비해 지몬의 태도는 비교적 태연했다. 그는 오히려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무대를 뜯어봤다.

“베르그송 상회의 회장님이 친히 행차하셨으니 저 정도야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아직 감탄하기를 이릅니다. 업계에는 ‘1장 사기’가 팽배하니까요.”

“1장 사기?”

“후후, 일단 지켜보시죠.”

관객들의 얼굴에 떠오른 경탄은 금방 가라앉았다. 배경 미술의 완성도가 놀랍긴 해도 돈을 바르면 무대를 저렇게 꾸미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과연 연기나 노래도 그만큼 따라줄까?

그들이 쑥덕대는 사이, 무대 위로 백작으로 분한 엘라가 올라왔다. 그녀는 무대 중앙에 서서 객석 방향을 바라보며 옷깃을 정리했다. 그녀의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그녀의 동작은 어딘가 경쾌했다. 곧 그녀의 몸짓을 박자로 삼아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관현악단의 정체가 관객들에게 공개되었다. 무대 아래의 조명이 켜지며 정장을 빼입은 랫맨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관객들이 놀라서 수군거리는 가운데 엘라의 노래가 시작됐다.

“상아색으로 할까? 군청색으로 할까? 아니면 그녀가 좋아하는 검은색으로 할까?”

엘라는 넥타이 고르는 시늉을 하며 거울 앞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방금까지 웅성거리던 관객들은 어느새 숨을 죽이고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옷을 고르고, 화장하고, 저택을 꾸미고, 모두 내겐 낯선 일.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꼭 필요한 일. 왜냐하면…….”

그때, 저택 내부의 문들이 일제히 쾅 하고 열리며 저택의 고용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동시에 외쳤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그래! 떠나갔던 그녀가 다시 내 품에 안기는 날! 옷도, 음식도, 화장실에 걸린 액자 하나도!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준비해야지!”

저택의 고용인들이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엘라는 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다. 집사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녀가 요구하는 사항을 받아적었다.

“여기는 좀 더 따뜻한 색을 써 줘.”

“가족 초상화는 떼어내 주겠어?”

“샹들리에의 장식을 교체해.”

그녀가 무언가를 지적할 때마다 원더스타인은 수첩에 무언가를 쓰는 시늉을 했고, 그에 따라 마법처럼 휙휙 배경이 바뀌었다. 커튼이 화려한 색으로 칠해졌고, 추억이 담긴 액자가 저 혼자 날아가 창고에 처박혔으며, 우스꽝스러운 장식이 샹들리에 끝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엘라는 색이 바뀐 커튼 앞에서 우아한 걸음걸이로 고개를 끄덕였고, 액자가 있던 벽 앞에서 머뭇거리는 걸음걸이로 무언가 생각하는 척했으며, 샹들리에 장식을 지나면서 우쭐한 걸음걸이와 함께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엘라가 짓는 모든 표정과 그녀가 내비치는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관객들을 자극했다. 객석 사이로 감탄과 애잔함과 폭소가 흘렀다. 랫맨들이 연주하는 노래가 그들의 감정을 적절하게 맺고 끊어주었다.

무대 반대쪽 끝까지 도달한 엘라는 커다란 강철 문 앞에 섰다. 그것은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이었다. 문에는 두꺼운 자물쇠가 몇 개나 달려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문 전체를 쇠사슬이 칭칭 감고 있었다.

“그녀를 맞이해야 해! 약간의 소홀함도 없이! 너무나 오래! 나는 이날을 기다렸어…….”

문 앞에 선 엘라의 목소리는 처음에 비해 거칠게 변했다. 불안감과 흥분이 뒤섞인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그에 맞춰 악기들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뿜었다.

“나는 그녀를 맞이하러 내려갈게. 힘들어도 다들 힘을 내줘. 알다시피…….”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고용인들은 처음 등장할 때와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다만, 집사만은 다소 걱정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엘라는 그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뒤 지하실로 가는 강철 문을 밀었다.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대가 어둠에 잠겼다.

문을 열고 무대 뒤로 들어가는 동작을 취했던 엘라는 어둠이 내려앉는 즉시 바로 뒤로 돌아 문을 열고 무대 앞으로 나오는 척을 했다. 빛은 오직 엘라가 연 문에서만 쏟아지고 있었다. 무대의 다른 공간은 모두 암흑이었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공간이 지하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20초 안에 배경을 바꿀 수 있을지? 후후.”

로드 판타스틱은 조소에 찬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지금 무대를 뒤덮은 암흑은 환상 마법사들의 특기 중 하나인 ‘검은 안개’였다. 빛의 입자를 다루는 그들은 그 힘을 역으로 사용해 빛을 차단할 수도 있었다.

아마 지금 저 암흑 속에서는 저택 내부를 지하 실험실로 바꾸기 위한 작업이 한창일 것이다. 제한 시간은 백작이 지하실 바닥에 다다를 때까지.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서 계단을 내려가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검은 안개가 걷히며 지하 실험실의 전경이 드러나야 했다.

그 시간이 바로 20초였다. 지몬은 괴물서커스단이 처음과 같은 배경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상식적으로 배경을 그런 레벨로 계속 유지하려면 장면이 바뀔 때마다 최소 30분은 써야 했다. 그랬다간 배경의 질이고 나발이고 극의 흐름이며 호흡이 다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첫 장면만 공들여서 화려하게 구성하고 그 뒤로는 배경과 소품의 질을 떨어트리며 이야기의 관성으로 끌고 가는 수법은 오래된 ‘1막 사기’ 중 하나였다. 일반 관객들은 전체적인 ‘인상’만으로 극을 평가하는 일이 많았기에 배경과 소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보다 몇몇 강렬한 장면에서만 질을 끌어올리는 게 흥행에 유리했다.

물론 그것은 수준이 떨어지는 대중들을 대상으로 할 때나 통하는 이야기였다. 이번 시험에서 평가를 담당한 사람은 극장의 배우들과 연극대학의 교수들이었다. 저런 얄팍한 눈속임 따위 그들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 역시 같은 연극을 앞서 두 번이나 본 탓에 ‘이야기의 관성’에 사로잡히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그들도 금방 괴물서커스단의 기만을 알아차릴지도 몰랐다.

“그래. 오늘은 기쁜 날, 실험의 마지막 날, 그녀가 돌아오는 날이니까!”

엘라는 새되고 거칠어진 음악에 맞춰 고양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지하실로 내려갔다. 이윽고 그녀의 발이 지하실 바닥에 닿는 순간, 확 하고 밝아지며 실험실의 풍경이 드러났다.

“와!”

객석에서 재차 함성이 터졌다. 불과 30초 전까지 무대를 차지하고 있던 저택 내부 풍경은 어디 가고 음산한 빛과 소리가 흘러나오는 실험실이 나타났다. 놀라운 점은 소품의 밀도나 배경의 정밀함이 첫 장면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지몬은 고작 20여 초 만에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배경을 교체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배경의 질을 유지하면서 빨리 배경을 교체하는 꼼수가 몇 가지 있기는 했다.

미리 적당한 가림막을 세워두고 배경이 전환되는 순간 치워버리는 ‘껴입기’라든지, 혹은 서로 다른 배경과 소품을 앞뒤로 붙여 필요할 때 돌려서 사용하는 ‘뒤집기’라든지, 혹은 배경과 소품을 묶어서 거대한 하나의 완성품으로 미리 제작해두고 그대로 일으켜 세우는 ‘가조립’이라든지,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절대 그런 꼼수가 사용된 게 아니었다. 껴입기는 배경의 물리적 구조가 유사할 때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저택 내부와 실험실의 구조는 전혀 달랐고, 뒤집기는 소규모의 배경 전환에만 사용할 수 있어서 이번 같은 규모의 무대에는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조립이라 하기에는 무대의 3차원적 구조가 너무 복잡했다.

그렇다면 답은 2가지밖에 없었다. 괴물서커스단이 남들 보다 수십 배 빠른 속도로 일할 수 있는 만능 하인 수십 명을 어디선가 구해왔든가, 아니면…….

“환상이군.”

어느새 지몬의 뒤로 다가온 남자가 그렇게 속삭였다. 그는 황금 카니발에서 환상 마법을 총괄하는 마법사였다.

“설마 저게 다 환상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까지? 여긴 야외라고. 달빛도, 도시의 야경도 뒤에 훤히 보이잖아. 환상이 이렇게 외부의 다양한 광원에 대해 저렇게 사실적인 질감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어.”

“합을 맞췄겠지. 10명이 배경을 구현하고, 10명이 소품을 구현하고, 10명이 셰이딩을 담당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아마 환상 마법사를 수십 명을 고용한 모양이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런 수준의 합을 맞출 수 있는 환상 마법사 수십 명이 어디서 떨어져?”

“하긴. 은막 외에는 그럴 수 있는 곳이 없지. 혹시 모르지. 대마법사가 괴물서커스단에 있을 수도.”

“무슨 그런 농담을…….”

서커스 업계 사람들이 압도적인 레벨의 환상 마법에 놀라서 갑론을박을 벌이는 반면 관객들은 무대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환상적인 배경 속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는 엘라로부터 다들 눈을 뗄 수 없었다.

무대 위로 푸른 불빛이 여러 차례 번쩍였다. 울펜슈타인 백작이 성 꼭대기의 피뢰침으로부터 번개를 끌어와 여동생 리아의 시체가 든 관에 넣고 있었다.

‘빛’은 보통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현재 리아의 몸이 받는 빛은 순수한 빛이 아니라 ‘차가운 푸른 빛’을 내뿜는 ‘번개’라는 점에서 그녀의 생명 또한 정상적인 순리를 따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연출로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별 고민 없이 화려한 번개 환상에만 집중하던 보통의 ‘울펜슈타인 백작’ 연출과는 달랐다. 한트케는 청색광을 적재적소에 사용해 정상적인 생명과 비정상적인 생명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빛의 색을 이용한 연출. 저 인간 특기가 나왔군.”

“이러나저러나 한트케라 이거지?”

“한 방 먹었군.”

심사위원을 맡은 교수들은 아니꼽지만, 그의 솜씨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울펜슈타인 백작은 1장의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오늘은 기쁜 날, 오늘은 너를 위한 날, 네가 돌아오는 날!”

유리관이 열리며 차가운 수증기가 쏟아졌다. 그 안에 든 것은 새하얀 머리카락과 피부를 가진 소녀. 여동생 리아 역할의 마야였다.

“자, 눈을 뜨렴. 나의 여동생아!”

엘라의 광기 어린 외침에 따라 마야가 눈을 살며시 떴다. 정말 죽은 여동생이 살아난 것이다. 백작은 기쁨에 겨워 재차 외쳤다.

“자, 일어나렴, 나의 여동생아! 일어나서 걸어봐라! 걸어서 내게 다가와라!”

관에서 일어난 마야가 엘라를 향해 걸어갔다. 막 부활한 참이라 아직 걸음이 익숙하지 않은 듯 절뚝이거나 비틀거렸다. 신기하게도 다른 연기는 지지부진하던 그녀가 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연기만큼은 쉽게 해냈다.

백작은 자신의 앞에 선 여동생을 바라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가장 바라던 요구를 했다.

“자, 웃어주렴! 나의 여동생아! 나를 위해 웃어라!”

광소가 섞인 엘라의 외침. 하지만 점점 고조되던 음악이 갑자기 뭔가에 걸린 듯 뚝 꺾여버렸다. 그에 맞춰 여동생을 바라보는 백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웃어! 웃어 보라고!”

그가 초조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마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엘라는 절망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웃어…… 웃어 보라니까……? 오, 오늘은 기쁜 날인데? 응?”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졌다. 축 늘어진 엘라의 등과 무표정한 마야의 표정에만 은은한 조명이 감돌았다.

점점 소리가 줄어들던 ‘오늘은 기쁜 날’의 음악이 곧 멎었다. 그와 동시에 무대 전체가 암전되었다. 울펜슈타인 백작의 1막 1장이 끝났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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