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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2

52화 마법은 열등하다

레온의 오연한 선언.

스카웃 권유나 거액의 제안 따위가 아닌 1%의 우수생만을 ‘받아주겠다’하는 오만함에 대부분의 생도들이 반감을 품었다.

특히, 천재들이 모인 아카데미에서도 진짜 천재들은 분노하는 이도 있었다.

‘생존자라 들었는데, 저렇게 오만할 줄이야.’

신검 길드장의 손녀딸 천소연도 그 중 한 명이다.

‘최근 이름 좀 날렸다고 우리들이 만만해 보이는 건가? 이곳에는 십대 길드와 연관된 생도들도 많다고.’

이곳은 헌터 아카데미 졸업반 중에서도 A반이다. 특목고로 치면 특별 진급반이다.

향후 출세가 확정된 천재들의 집합소였다. 그런 특별반의 생도들에게 거한 대우와 계약금을 제안하는 것도 아니고 ‘실력을 보이라’라고?

하지만 그러한 분노와 반감과는 별개로 학생들은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헌터협회의 김진수 과장이 신신당부한 것도 있지만, 누가 봐도 보통 인물이 아닌 레온에게 겁 없이 덤빌 학생이 적은 탓이다.

생존자라 하지 않는가? 청주 게이트를 공략하고 변동 게이트도 클로징한 이가 아닌가?

실적이 동반된 자신감이다 보니 생도들로서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물론 현 10대 길드에서 그 정도 업적을 수행한 이들은 꽤나 있다. 신검 길드가 대표적이다.

“길드장님. 질문 있습니다.”

천소연이 손을 들었다. 지켜보던 김진수 과장이 눈을 부릅떴다.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레온의 공식적인 호칭은 폐하다. 이세계 라이온하트 왕국이라는 곳의 사자심왕. 그 정도 정보는 정부 차원에서 공개됐다.

본디 이계 출신인 생존자들은 그 문화를 존중하여 대하자는 것이 일반론인 탓이다. 물론 그것도 그만한 실력을 가지지 않으면 무시되는 형편이지만.

레온은 그런 일반적인 생존자가 아니었다.

계급주의에 차별주의자에 권위주의자. 옆에서 지켜보면 살짝 미친놈 같다.

문제는 그 미친놈 칼이 너무 잘 든다는 것이다.

‘제발 폐하! 재들 잼민이에요! 넓은 아량을──!’

“이름을 말해라.”

김진수 과장의 걱정과 달리 레온은 차분하게 회답했다.

“……천소연입니다.”

“그대, 귀족인가?”

“아, 아뇨…….”

현대 한국에 귀족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은가. 천소연의 대답에 레온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평민이란 소리군. 아해야, 네 무지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만, 앞으로는 호칭에 주의하도록.”

“무슨…!”

순식간에 못 배운 평민이 돼버린 천소연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차가운 시선으로 묻는다.

“저희를 시험해 ‘주겠다’고 하셨는데, 저희의 평가 데이터는 이미 받으시지 않으셨나요?”

스카우터들은 드래프트 전에 생도들의 정보를 받는다. 그 자료를 통해 생도들의 몸값을 측정하고 그에 걸맞은 제안을 하는 것이다.

레온 또한 헌터협회 차원에서 그 분석자료를 받은 바가 있었다.

“그깟 종이 쪼가리로 뭘 알 수 있다는 거냐. 짐은 그런 자료 너머가 아니라 그대들 자체를 볼 것이야.”

“그게 무슨…….”

“반대로 말하지. 짐이 어째서 너희들을 군문에 들여야 하지? 짐이 너희들을 들여야 할 이유를 말해봐라.”

이게 무슨 면접에서 회사가 왜 당신을 고용해야 하냐 묻는 것도 아니고… 압박면접이라기엔 레온 표정이 너무나 진심이다.

“짐은 너희들을 가르칠 것이다. 이 사자심왕의 종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니 너희들은 영광으로 알아야지.”

“”………….”

학생들의 반응은 더욱 어리둥절했다. 한수호는 저런 사람 밑에서 하리 누나가 고생이 많겠구나, 싶었다.

“저… 사자심왕 폐하.”

그것과는 별개로 수호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질문을 윤허한다.”

“그… 가르치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일까요?”

고위 헌터가 있는 길드에서는 드래프트한 신인들을 직접 전담 마크해 가르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고위 헌터의 노하우는 그 자체로 귀중한 지식이니까.

실제로 고위 헌터의 가르침을 받는 헌터들은 금방 승급하기도 했고.

“짐은 그대들에게 네 가지를 가르칠 것이다. 검술, 창술, 승마술, 신학교육이다.”

“……예?”

웅성거리는 생도들. 당연했다.

헌터들이 검술이나 창술을 배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검술 특화나 창술 특화스킬을 가진 이들에 한해서다.

다른 스킬에 특화된 이들이라면 응당 다른 무기를 들었고, 검술과 창술도 엄밀히 말하면 쓰기 편한 무기라서 배우는 것이지 깊게 파고드는 건 아니다.

게다가 승마술이라니? 게이트에서 말탈 일이 어디 있다고 승마술을 배운단 말인가?

-아니,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신학교육은 뭐야?

-우리 목사 되라고?

당연히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저, 저는… 궁술 특화인데요?”

“네 녀석은 불합격이다. 그딴 무기는 보병의 몫이다. 짐은 기사를 구하러 왔지 보병을 구하러 온 게 아니다.”

“너, 너무해…….”

시무룩하게 손을 내리는 궁술 특화 학생. 이에 다른 궁술특화 학생이 반발심에 손을 든다.

“궁술은 뛰어난 스킬이에요! 게이트 공략에서 원거리 딜러는 필수라구요!”

“이런 천한 짤짤이가 어딜 언성을 드높여!”

“짜, 짤짤이…?!”

더욱 반감이 드는 멸칭이었으나 레온의 【원거리 혐오자】는 효과적으로 학생을 닥치게 했다.

“화살에는 한계가 있다. 결코 일류가 될 수 없음이야. 오직 성장의 한계가 없는 완력만이 기사가 추구해야 할 정점이다.”

“아니…….”

“물론 원거리 무용론을 펼칠 생각은 없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잡병. 검과 육체가 부딪치는 백병전에서는 결코 주력이 될 수 없지.”

요컨대 원거리는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 극한까지 단련된 근접 냉병기는 원거리조차 뛰어넘는다는 이론이다.

“애초에 성법… 아니, 보편적인 건 마법인가. 마법이라는 화력이 있는데, 짤짤이 따위에 의존할 필요성은 또 무엇이냐. 화살통이 다 떨어지면, 단검이라도 들고 달려들 것이야?”

“으으…!”

냉혹하지만, 실제로 궁병들의 장기전투능력은 여러 논란이 있었다.

보급이 여의치 않은 필드형 게이트나 규모가 큰 전투에서는 화살의 갯수라는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럼 마법사는 폐하의 길드에 들어갈 필요가 없으려나요?”

손을 든 건 A반은 물론 전체 학년에서도 몇 안 되는 마법사 소녀였다.

보통 마법사 생도들은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마탑으로 진학하기에 드래프트에는 별 관심이 없다.

“마법사인가. 확실히 마법사는 있으면 편리하지. 그 부분은 짐이 가르칠만한 것이 없다.”

뭐, 그렇겠지.

딱 봐도 무투파 헌터지, 마법사는 아니다. 원거리 혐오니 뭐니 하는 걸 봐선 마법 같은 걸 쓸 리가──

“하지만 신학을 공부한다면 짐이 간단한 성법 정도는 가르쳐줄 수 있느니라.”

“신… 학?”

가장 의문인 것이었다. 검술이나 창술, 승마술은 그렇다 치고, 대체 신학을 알려준다는 건 무슨 소린가?

“성법이란 게 신학하고 상관이 있습니까?”

“있다. 성법은 곧 신앙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뭐야, 이름만 다른 마법인가?

-이세계의 마법은 좀 궁금하긴 한데.

-근데 기사라며. 칼질하는 양반이 무슨 마법이야?

-애초에 신앙으로 뭐시기 하는 점에서 판타지 같은데. 왜 게임에서 나오는 사제 힐러 같은 거.

-빛은 정의로운 자의 편이죠! 뭐 이런 거?

대부분은 레온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보통 마법이란 극소수의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

헌터 아카데미 5천여명의 생도 중에서도 마법사는 불과 백여 명. 그 정도의 희소한 재능이다.

안 그래도 마탑이 마법사 생도들을 싹 쓸어가는 마당에 일반적으로는 더 희소한 직종이기도 하고.

검술과 창술을 가르치는 무투파가 마법까지 사용한다고? 레온을 향한 시선에 의심이 샘솟는다.

“너희들은 마법이라는 것이 극소수의 재능있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축복이라 여기는 모양이더구나.”

당연한 거 아닌가? 레온이 계속 말했다.

“성법은 그런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다. 누구나 배우고 의지를 가진다면 해낼 수 있지.”

“말도 안 돼요.”

천소연이 꺼낸 말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무심코 꺼낸 말에 잠시 당황하면서도 손을 들어 발언했다.

“일반적인 무투계 헌터와 마법계 헌터는 마력을 운용하는 수순이 다릅니다. 무투계가 마력을 내부에서 응축하는 내력이라면, 마법계는 외부로 발산하는 외력이에요.”

“그래서?”

레온의 어디 해봐라, 라는 태도에 천소연은 입술을 질끈 씹으며 계속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는 천재도 있긴 하지만, 그거야말로 마법사보다 희소한 극소수입니다. 폐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셨죠?”

“그러하다. 강력한 성법은 아니지만, 생활에 필요한 정도라면 길거리 농부도 가능한 것이 성법이지.”

천소연의 시선이 가늘게 좁혀졌다. 이건 대놓고 물어뜯을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논리로 이해하려 하지 마라. 지식으로 쌓이는 것도 아니다. 허나, 믿기지 않는 모양이니 한 가지 더 말해주지.”

레온의 다음 말에는 호기심으로 접근했던 마법사 소녀도 기겁할 말이었다.

“마법은, 성법보다 열등하다.”

“”……!!””

대체 이게 무슨?

앞선 발언들은 그렇다 쳐도 대체 이 무슨 폭탄발언인가?

A반 내부의 마법사 생도들이 부들부들 떨며 차마 분노를 내비치지 못하고 손을 들었고, 레온은 여기저기서 들린 질문들을 윤허했다.

“마법사 생도 김대수입니다. 열등하다…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다. 열등하다. 다음.”

“마법사 생도 채나린이에요. 여, 열등하다는 이유는요?”

“마법사의 마법은 방정식에 따른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음.”

“천소연… 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흠…….”

레온은 여기서 마법과 성법의 결정적인 차이를 설명해야 하겠다 싶었다.

“가령 불을 사용하는 마법이 있다 치자. 그 불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태우는 것… 아닌가요?”

“그래, 그것이 불의 마땅한 사용법이다. 헌데 말이다. 그 불로 ‘어디까지’ 태울 수 있느냐?”

그야 화력에 따라 다르다.

모닥불이라면 고기를 태우는 정도에 그치겠고, 화력발전소라면 대량의 연료를 태울 것이다.

“거기 마법사 소녀. 채나린이라 했나. 앞으로 나와라.”

“예, 엣?”

지명당한 채나린 생도는 주변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레온은 적당한 물건을 찾더니 불안불안해하며 제 눈치를 살피는 김진수 과장도 불렀다.

“과장 김진수. 이곳에 훈련용 병장기가 있겠지?”

“예? 아, 그, 그렇습니다요.”

“방패가 있다면 그게 좋겠군.”

김진수 과장은 레온의 의도를 묻지 않고 곧장 훈련용 방패를 들고 왔다. 사람 한 명을 온전히 가릴 수 있는 준대형 사이즈의 라운드 쉴드다.

“흠, 일개 훈련병의 장비치곤 나쁘지 않은 방패다.”

그야 헌터 아카데미의 비품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교육비가 세금으로 충당되는 곳이니까.

실제로 연습용 방패는 노말 등급 광물 중에선 가장 고품질의 광물을 사용한다. 준 레어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방패, 마법으로 태운다면 얼마나 걸리겠느냐.”

“태, 태워요?”

“그래, 아예 전소시킨다고 생각해라. 녹이는 과정 없이.”

“불가능해요!”

채나린 생도의 말은 당연했다. 쇳덩이에 불을 붙이면 타는 게 아니라 녹는 법이다. 그것도 엄청난 화력이 필요했다.

하물며 헌터용으로 제작된 마정석 방패라면 더더욱.

“불가능하다?”

“에, S급 마법사시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녹는 과정은 필요해요!”

“그래, 그것이 너희들의 한계다.”

“”?????””

레온은 어리둥절한 학생들을 상대로 말했다.

“너희들의 마법이란 건 엄밀히 따지면 마법이 아니다. 그저 합당한 방정식에 따른 결과에 불과하지. 마법이 아니라 마술이라 칭해야 할 것이야.”

그야 당연… 아니, 이제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조차 지친다. 생도들은 불신과 반감 가득한 얼굴로 레온을 주시했다.

그런 생도들의 무지몽매함을 탓할 수도 없어서, 레온은 손가락에 성력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짐은 전쟁과 불꽃의 신성께서 지피시는 신성한 불꽃이 이 방패를 전소시킬 것을 믿는다. 짐이 원한다면 녹는 점에서 끝날 수도 있지. 오롯이 짐의 믿음에 달렸다.”

말뿐인 믿음으로 대체 뭘 하겠다고. 하지만, 놀랍게도 레온의 손끝에서 불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정말 마법도 쓰는 건가? 하지만 생도들의 놀람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성법 <악멸의 화형>

그 미약해 보이는 불이 방패에 닿는 순간.

방패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녹는 과정조차 없이 잿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

“”……?!!””

강의실을 가득 채우는 소리 없는 아우성.

누구나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방금 벌어진 일을 해석하려 든다.

하지만 눈은, 머리는 그것을 해석하지 못한다. 그저 결과로만 나왔을 뿐.

불이 방패를 ‘전소’한다는 결과만이.

대체 어떻게?

마법 사용의 가장 중요한 중간 과정의 방정식이 통째로 사라졌다.

불을 일으키고, 불이 전소시킨다.

결과만이 현실에 보여진다.

“이것이 마술과 성법의 차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말했고, 당연하게 행했다.

레온은 자신이 선보인 ‘기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한 자랑 따위 없었다.

이런 대단한 기적을.

신앙이라는 비논리적인 힘만으로 당연히 해내는 것이라며.

이건 혁신이나 새로움 같은 게 아니다.

아예, 다른 것이다.

성법은… 아니, 레온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 지구와는 ‘다르다’.

이 비상식은 레온에게는 상식이었을 뿐이다.

-정말… 누구도 배울 수 있다고?

-신학교육을 한다는 게 이거였어?

-나도 마법사… 아니, 성법사가 될 수 있는 거야?

레온을 보는 생도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이세계의 사이비 권위주의자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진짜’로.

“정말로 그걸──!”

그때였다. 8교시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가 맥없이 풀린다.

“흠, 시간이 끝났나.”

레온은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을 전부 썼음을 알고 망설임 없이 교단에서 내려왔다.

“짐이 고르는 건 1%의 옥이다. 스스로 옥이라 생각하는 자, 기사가 되고자 하는 자는 짐의 군문에서 그 자격을 증명하도록.”

레온이 떠난 자리에는 전소한, 잿가루가 된 방패의 흔적만이 휘날렸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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