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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20

EP.519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25)

1막 3장의 배경은 울펜슈타인 성 근처 산속에 있는 동굴이었다. 그곳에는 한 명의 흑마법사가 살고 있었다.

백작은 여동생을 부활시키고 얼마 후에 조수인 하녀 로지를 대동하고 그를 찾았다. 백작에게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비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흑마법사였기 때문이다.

“저는 여기 올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아요.”

하녀로 분한 레이나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칭얼거렸다. 그녀는 몸을 떨며 엘라의 등 뒤로 숨는 시늉을 했다. 레이나의 키는 엘라보다 25cm나 컸는데도 그 동작이 하나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연기력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이다.

“너도 같이 가야지. 혹시 네 힘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넌 내 조수잖아.”

“조수…… 네. 그렇죠.”

레이나는 뭔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들이 동굴을 방문했을 때, 흑마법사는 새장에 갇힌 요정에게 빵조각을 나눠주고 있었다. 흑마법사는 밴딕이, 요정은 루엘로가 연기했다.

“울펜슈타인 백작, 여기는 웬일이지? 여동생은 성공적으로 부활시켰을 텐데?”

“그래.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엘라는 밴딕에게 여동생이 웃지 않는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밴딕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선반에 놓인 책들을 뒤적거리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심장이 뛰지 않아서 그럴 거야. 인형처럼 말이지. 인형은 언제나 같은 표정을 짓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백작과 흑마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하녀는 새장에 갇힌 요정과 가벼운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하녀는 흑마법사의 실험 재료로 붙잡힌 요정이 가여웠다.

이처럼 같은 무대 위에서 동시에 2개의 전혀 다른 대화가 진행되는 경우를 ‘이중 구성’이라고 했다. 보통 한쪽에서는 어른들이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데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끼리 천진하게 뛰어논다든가, 한쪽에서는 가족들끼리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 그들이 마실 찻잔에 독을 타는 등, 장면의 양면성을 강조하는 데 사용되는 기법이었다.

보통 여기서 주된 대화가 진행되는 쪽을 ‘복판’, 그 반대 상황이 진행되는 쪽을 ‘구석’이라고 불렀다. 복판에서는 그냥 평범한 대화를 나누면 됐지만, 구석에서는 대사 대신 표정과 행동으로 모든 상황을 전달하는 게 기본이었다.

그래서 해당 연기를 특별히 ‘구석자리 연기’라고 불렀는데 광대들의 ‘마임’과 통하는 면이 있었다. 이 3장의 구석자리 연기는 레이나가 연습 중 처음으로 난항을 겪었던 부분이었다.

그녀는 일전에 지적을 받았듯이 주변을 배려하는 연기를 잘 하지 못했다. 구석자리 연기는 복판의 대화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그녀가 구석을 맡고 있으면 그녀의 존재감이 너무 강렬해서 복판의 연기가 죽어버렸다. 그녀의 철저한 배역 수행 능력이 구석자리 연기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흑마법사 역할은 밴딕인데, 존재감이 완전히 빨려버리잖아.’

‘맞네. 하필 또 이 장면은 밴딕 씨 중심이라.’

‘밴딕 아저씨의 존재감이 소멸하려고 해요!’

‘야! 내 존재감이 어째? 너희들 자꾸…….’

다른 장면에서는 금방 단원들과 합을 맞추던 레이나였지만, 이상하게 1막 3장만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한트케 교수의 지도에 따라 열성적으로 연습에 임한 덕분에 10년 넘게 몸에 익은 연기 방법을 수정할 수 있었다.

“크, 크윽, 저 녀석 어느새 저런 연기를…….”

지몬은 무대를 보며 분한 표정을 참지 못했다. 레이나는 언제나 자신이 마련해준 무대에서 지정한 역할만 파고들어 연기를 수행했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며 연기를 하고 있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병렬적으로 흘러가던 극의 흐름은 흑마법사가 여동생의 치료 방법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하녀는 요정과 놀던 것을 멈추고 옆에서 오가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심장을 넣어줘야 해. 그냥 심장은 안돼. 강력한 마법이 흐르는 혈통이 필요하지. 이웃 나라 아자티 공주가 좋겠군. 그녀를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을 도려내면 돼. 그러면 여동생을 웃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쉬운 일이군.”

엘라는 냉철한 표정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레이나가 반발하며 일어섰다.

“안 돼요! 불쌍한 공주님은 무슨 죄에요?”

“로지,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주인님. 위험할 수 있어요. 상대는 한 나라의 공주라고요. 이렇게까지 해서 리아 아가씨를 웃게 할 필요가 있나요?”

“내겐 중요한 일이다.”

엘라의 말에 레이나는 크게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가만히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어차피 이것저것 준비하면 시간이 걸릴 것 아니에요? 제가 그전에 어떻게든 리아 님을 웃게 해 보겠어요!”

그녀는 그렇게 외치며 동굴을 달려나갔다. 백작은 못 말리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난 뒤 흑마법사는 웃음을 터트렸다. 멍청한 백작! 이걸로 자신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공주의 심장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랫맨 관현악단의 연주가 시작됐다. 밴딕은 목을 가다듬었다. 흑마법사의 독주곡 중 하나인 ‘심장이 뛰네’라는 노래를 부를 차례였다.

그런데 그가 막 입을 떼는 순간, 갑자기 객석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저길 좀 봐!”

“오, 저게 다 뭐야?”

“유성우다! 유성우!”

까만 하늘에서 하얀색 빛의 궤적이 수십, 수백 줄기나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관객들은 물론 심사위원들에 심지어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까지도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유성우는 원래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기는 하나 이번에 떨어져 내리는 녀석들은 2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규모를 자랑했다. 다들 연극은 까맣게 잊고 황홀한 표정으로 한동안 그것을 바라봤다.

밴딕과 랫맨 관현악단은 객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수행했다.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시간이 흘러 관객들의 시선이 다시 무대로 향했을 때, 밴딕의 노래는 거의 끝나 있었다. 곧 그가 마지막 가사를 외치자 열화와 같은 갈채가 무대 위로 쏟아졌다. 1장에서 보여준 것과 비슷한 수준의 열기였다.

물론 객석에 있는 사람 중에 밴딕의 노래를 제대로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유성우를 관찰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이 호응은 애써 공연을 계속 진행했던 그에 대한 죄책감의 발로라고 봐야 했다. 혹은 20년에 한 번꼴로 볼 수 있는 유성우에 대한 찬사를 갈음한 거라든가.

“음, ‘심장이 뛴다’ 이 노래는 그냥 만점을 주는 것으로 해야겠지요?”

“아무도 무대를 안 봤단 말입니까?”

“이거야 원. 어쩔 수 없군. 괜히 점수를 깎았다가는 무슨 트집을 잡을지.”

심사위원들은 그렇게 서로 합의를 보고 관객들처럼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밴딕은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무대 뒤로 돌아왔다.

“수고했어!”

“심사위원들도 박수를 보내는 걸 보니 이 장은 만점 받을 확률이 높겠군.”

“이걸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겠지?”

“…….”

밴딕은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1막 4장은 울펜슈타인 영지의 술집들이 배경이었다. 반드시 리아를 웃게 하겠다고 다짐한 레이나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백작의 이름으로 포고령을 내리고 있었다. 누구든 백작의 여동생을 웃게 한다면 큰 포상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잠깐, 백작 나리의 여동생이라면 5년 전에 돌아가시지 않았나?”

“병에 걸려 칩거했던 모양이지 뭐.”

“이 정도 포상금이면 3대가 먹고 살겠어. 나도 한 번 도전해볼까?”

엑스트라들이 한바탕 쑥덕대는 소리가 끝나고 하녀 로지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바로 ‘웃음을 찾습니다’라는 곡이었다.

“어디 재밌는 이야기 없나요?”

“웃긴 표정도 좋아요.”

“배를 잡고 깔깔 웃게 할 그런 광대 없나요?”

이 장에서 한트케 교수는 랄프가 개발한 무대 장치를 통한 새로운 연출을 시도했다. 원래 레이나가 부르는 이 노래는 같은 술집을 배경으로 진행되었다. 그녀가 부르는 가사에 맞춰 가지각색의 술집 손님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극의 내용상 원래는 그녀가 마을 곳곳의 술집을 돌아다니는 게 맞았다. 같은 술집을 배경으로 하는 것은 무대 공간이 한정된 연극이기에 어쩔 수 없이 타협한 것이었다.

그런데 랄프는 그것을 해결할 만한 장치를 개발해냈다. 그것은 마치 그림책처럼 배경을 넘김으로써 등장인물이 걷는 장면을 구현하는 것이다.

“코 빨간 주정뱅이, 어디 한번 재밌는 이야기 해봐요.”

“딸꾹질하는 당신, 다른 우스꽝스러운 소리도 낼 수 있나요?”

“방금 넘어지는 모습. 한 번 더 보여주실 순 없나요?”

레이나는 노래를 부르며 건물 그림이 그려진 합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새로운 술집 배경이 나타났고 그 안에는 환상으로 만들어진 손님들이 있었다. 레이나는 그중 한 명을 붙잡고 그에 맞는 노래를 부른 뒤, 다시 다가오는 합판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거리의 모습이 나타났다.

배경 그림이 그려진 합판은 계속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 장 한 장 넘어갔다. 레이나는 제자리에서 걷는 시늉을 하며 다가오는 합판 중앙에 달린 문을 열고 건물로 들어갔다 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정말로 그녀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여러 술집을 방문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레이나는 마지막 술집에서 노래를 끝마쳤고 이만 무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술집 구석에서 잡지로 얼굴을 덮은 채 탁자에 발을 올려두고 자고 있던 남자가 눈을 떴다.

“지금 내가 들은 게 맞아? 여자애를 웃게 하면 천금을 내려준다고?”

그는 바로 ‘불한당 에반스’로 분장한 미노바였다. 그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일이라니. 그런 일에는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그는 품에서 하얀 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한 자루 꺼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법의 가루’라는 노래였다.

“자, 모두 모여 봐. 우울해? 그럼 내가 마법을 뿌려주지.”

“웃음이 나오지? 이게 바로 내가 부리는 마법이야.”

“한 모금만 들이켜. 그럼 행복해져. 웃어봐. 그래. 웃어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갔던 무대가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미노바는 레이나가 지나쳐왔던 술집을 역순으로 들르며 그가 쥔 자루에서 가루를 꺼내 뿌렸다.

“푸핫핫!”

“아이고,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지?”

“몰라! 그냥 막 웃겨!”

가루를 들이마신 손님들은 웃기 시작했다. 불한당 에반스는 바로 떠돌이 마약상이었다. 그가 뿌리는 마법의 가루는 사람을 웃게 하는 힘이 있었다.

마침내 첫 번째 술집에 도착해 노래를 마친 그는 자신이 가진 마법의 가루로 울펜슈타인 백작의 여동생을 약 없이 못 사는 몸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막 이곳에도 마법의 가루를 뿌리려고 하는데, 술집의 입구가 쾅 하고 열리며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거리에 약을 뿌리고 다니는 자가 있다고 들었다. 여기 혹시 없나?”

에반스는 재빨리 자루를 품에 숨기고 구석으로 물러났다. 그때, 갑자기 온몸에 발작이 일어난 듯 부르르 떨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스벤이 분장한 떠돌이 광대 에다였다. 그는 몸이 통제가 안 되는 듯 손과 발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병사들은 그를 보고 수상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정작 광대 본인은 술집에 걸린 공고문을 읽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곳 영주님의 여동생을 웃게 하면…… 큰 상을 내리겠다고? 좋았어. 사람을 웃게 하는 거라면 자신 있어! 지금까지 나를 보고 안 웃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가 그렇게 소리쳤을 때, 검은 그림자가 그의 뒤를 가렸다. 놀라서 고개를 돌린 광대는 병사들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몽둥이를 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저기?”

“현행범을 연행한다!”

그들은 광대가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무도병’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의 특이한 행동은 아마도 약을 했기에 그런 거라고 여겼다.

광대는 병사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애처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는 그대로 술집 밖으로 끌려나갔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미노바가 고개를 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울펜슈타인 백작의 1막 4장이 끝났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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