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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23

EP.522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28)

1막 8장은 울펜슈타인 성 아래의 정원이 무대가 되었다. 회색빛 성에 어울리지 않게 그곳은 가지각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공주가 성에 머무르기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오후, 백작은 공주를 정원으로 초대했다.

“모친께서 직접 이곳을 가꾸셨다고요?”

“그렇소. 하지만 나는 어떻게 꽃들을 가꿔야 하는지 몰랐소. 그래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로 정원은 금방 지저분해졌고, 나는 정원사를 고용해야 했자.”

두 사람이 거니는 곳 뒤로 입에 연초를 물고 가위질을 하는 알렌이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그 나른하면서도 어딘가 고집스러워 보이는 행동거지는 영락없이 귀족의 장원에서 일하는 정원사였다. 가스통이 직접 그의 옆에 붙어서 가르친 덕분에 그는 정원사의 몸가짐을 완벽하게 익힐 수 있었다. 지난 한 달간 그는 숙소의 정원을 직접 돌보기까지 했다.

“좋은 솜씨네요. 황궁에서도 저 정도 수준의 정원사는 드물었어요.”

“그렇소?”

백작의 무뚝뚝한 대꾸에 공주는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여전히 말이 짧으시네? 제가 황녀라는 것을 알았으면 당신도 이제 태도에 변화가 있을 법하지 않나요?”

“나는 그대 나라의 사람이 아니오.”

“내 말은…… 귀족으로서 예를 차려달라는 말이었어요. 저는 그 쪽에게 계속 존댓말을 쓰고 있다고요?”

“계속? 하지만 어제 저녁 식사에서는 그렇지 않던데?”

“그, 그때는 워낙 신경이 날카로운 마당에 당신이 속을 긁는 짓을 하니까 그렇죠.”

“어쨌든 난 그대에게 존댓말을 요구할 생각 없소. 내게 말을 놓든 마음대로 하시오.”

그의 한결같은 태도에 공주는 입술을 삐죽였다.

“쳇, 됐어요. 그냥 저만 예의 바른 사람이 되기로 하죠. 하지만 제가 봐주는 건 당신이 제 목숨을 구해줬기 때문이에요. 혹시나 제가 당신에게 다른 감정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면 곤란해요.”

“다른 감정?”

백작이 되물었으나 공주는 그 질문을 무시하고 앞서 나가버렸다. 엘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그렇게 정원을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차 마시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아까부터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백작의 여동생인 리아였다. 그녀의 찻잔에는 마침 차의 향기에 이끌려온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녀석을 관찰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정원 구경 잘했어요, 리아 양. 참으로 아름답더군요.”

그녀가 말을 건넸지만, 마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찻잔에 앉은 새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공주는 자신을 무시하는 그녀의 태도에도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미 백작이 산책을 시작하며 그녀의 병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투병으로 고생한 그녀는 마음에 병이 생겼다고 했다.

백작은 두 사람을 보며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을 공주와 함께 어머니의 정원에 데려오면 그녀가 뭔가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별반 달라진 점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 좋은 술, 아름다운 풍경, 뭐가 더 필요한 걸까?

백작의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떠올랐다. 공주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리아 양이 웃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하셨죠, 백작님?”

“그렇소.”

“저는 이유를 알 것 같은데요.”

그녀의 말에 백작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꽉 붙들며 외쳤다.

“그게 뭐요?”

공주는 또 숙녀의 손을 함부로 잡는 그의 무례함을 지적하려다 말았다. 세상이 무너져도 목석처럼 굴 것 같던 그가 안달 내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건 당신이 웃지 않아서 아닐까요?”

“내가?”

“유일한 가족이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 웃고 싶어도 웃기 힘든 게 당연하죠. 솔직히 말해보세요. 태어나서 한 번도 웃어 본 적 없지 않아요?”

공주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백작은 가만히 생각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웃었던 게 언제였더라?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뭔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마지막으로 웃은 건…… 5년 전, 리아가 역병에 걸려…… 쓰러지기 전이었소.”

여동생이 한 번 죽었었다고 밝힐 수 없었던 그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공주는 그동안 그가 상당히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님께서는요?”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소.“

공주는 어딘가 지쳐 보이는 그의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꼈다. 무례하고 오만한 남자였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진심인 것 같았다.

”아주 좋은 분들이었던 것 같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당신이 웃고 지냈다면서요. 그만큼 그 시절이 좋았다는 거죠. 여동생을 치료하려는 것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건…….”

백작은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그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 그의 본심이었다. 느닷없이 정곡을 찔린 그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그때, 하녀가 막 성에서 내려와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공주의 손을 꼭 잡고 마치 애걸하듯 매달려 있는 백작의 모습을 보고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일이지?”

“기사님의 치료가 완료되어서요.”

“정신을 차렸나?”

“네. 계속 누워 있기는 하지만 지쳐서 그럴 뿐이에요. 며칠 쉬면 쌩쌩해질 거예요.”

그녀의 말에 공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국땅에서 의지할 사람 없이 홀로 남겨진 것은 아닌가 걱정했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백작님, 제 기사를 보러 가도 될까요?”

“그렇게 하시오. 로지, 공주님을 안내해드려라.”

“네.”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나고 정원의 테이블에는 엘라와 마야만이 남게 되었다. 그동안 찻잔 위에 앉은 새를 가만히 관찰하던 마야가 입을 열었다.

“오빠.”

“그래.”

“나 배고파.”

그녀의 말에 백작의 표정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그는 곧 느릿한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먹으렴.”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야의 얼굴이 놈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새 바로 앞에 도달한 그녀의 입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녀석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녀는 입속에서 발버둥 치는 새를 그대로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맛있니?”

“응. 맛있어.”

백작은 여동생의 입가에 묻은 피와 깃털을 닦아주었다. 되살아난 그녀는 그가 알던 그녀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자신의 말도 무척 잘 들었다.

그러나 이따금 그녀는 보통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생물을 산 채로 뜯어먹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흑마법사의 경고를 미리 받았다. 그때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여동생이 다시 살아나서 웃어주는 것만으로 족했다. 그러나 방금 공주의 말이 그의 가슴을 울렸다.

“난 꽃만 피면 봄이 올 줄 알았어. 내가 기억하는 그 색들만 채우면 봄이 될 줄 알았어. 그러나 곧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

엘라는 정원을 거닐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의 제목은 ‘봄’으로 이 연극에서 인기와 인지도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곡이었다. 그리고 1막의 마지막 노래이기도 했다.

“새싹이 바위를 밀고 일어나는 소리. 싱그러운 흙이 머금은 이슬 냄새. 꽃가루에 실린 꿀의 달콤함. 무심코 지나쳤던…… 그 모두가 봄이었던 거야.”

이 노래에서 반복되는 구절인 ‘그 모두가 봄이었던 거야’는 백작의 본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공주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단순히 여동생의 미소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람과 정을 나누던 시절 그 자체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녹아내린 호수가 흘리는 눈물. 겨울바람에 작별인사를 보내는 앙상한 나뭇가지의 흔들림까지. 그 모두가…… 봄이었던 거야.”

총 6번 반복되는 이 가사는 매번 부르는 톤이 달랐다. 때로는 그리워하듯, 때로는 자책하듯, 때로는 찬양하듯.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5번째 부분은 그 모든 감정을 담아 격렬하게 소리쳐야 했다. 여기가 바로 이 노래의 절정이었다.

“그 모두가 봄이었던 거야!”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목소리를 한계까지 뽑아냈다. 그녀의 가창력, 표현력, 연기력. 모든 게 하나가 되어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그녀의 노래에 혼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울림을 느꼈다. 심지어 연극 내내 이러쿵저러쿵 품평해대던 지몬조차도 입을 벌리고 멍하니 그녀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실력은 다른 두 서커스단의 백작들을 압도했다.

“그래. 맞아. 그 모두가…… 봄이었던 거야…….”

이윽고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은 무대 위로 갈채와 함성이 쏟아냈다. 그것은 엘라로서 기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아직 8장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래 뒤로 조금 이어지는 내용이 있었다.

이제 막 무대 앞으로 나선 원더스타인은 당황하지 않고 손님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엘라와 함께 다니면서 이런 돌발 사태는 수십 번 겪어본 그였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집사 시그왈트의 캐릭터를 유지하도록 훈련받았다.

흔들림 없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엘라는 작게 몸을 떨었다. 물론 겨우 이 정도 사태에 실수할 그녀는 아니었다. 그저 이제까지 자신이 일방적으로 연기를 지도해주었던 남자가 한 명의 당당한 배우가 되어 반대로 자신을 지탱해주는 상황이 반가운 것이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는 그에 대한 호감이 한 층 더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얼마 가지 않아 아직 극이 남았다는 것을 깨달은 관객들은 소란스러움을 멈추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만히 손님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집사는 능숙한 동작으로 백작 옆으로 다가와서는 이야기를 진행했다.

“공주님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집사의 질문에 백작은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비록 그녀 덕에 깨달음을 얻기는 했으나 이대로 계획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계획대로 계속 진행해야지.”

“그래도 일국의 공주입니다. 아무리 좋은 대접을 제공한다고 해도 심장을 뛰게 만들기는 힘들 텐데요?”

“내게 생각이 있어. 마침 로지가 광대와 재인들을 모아주었잖아? 며칠 뒤에 리아를 대상으로 경연을 열겠다는군. 공주도 그걸 함께 관람하는 거야. 그럼 뭔가 반응이 오겠지.”

주인을 바라보는 집사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작중 다른 등장인물들과 관객들조차 아는 ‘심장이 뛰게 한다.’라는 의미를 그만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조언해 봤자 이 목석같은 주인이 그것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계속 분위기를 만들고 백작님의 무심함에 공주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도와드리는 것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날까지 공주님은 그냥 내버려 둘까요?”

백작은 가만히 공주의 손을 잡았던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 정말 그 시절의 정취를 다시 느끼는 방법은 리아의 미소를 보는 것뿐일까?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손님 대접을 소홀히 하면 안 되지. 안 그래도 제법 까다로운 구석이 많아 보이는 여자야. 그동안 내가 여기저기 구경시켜줘야겠어. 어쩌면 그 전에 그녀의 심장을 뛰게 만들지도 모르니까.”

“좋은 생각입니다!”

집사가 신나서 소리쳤다. 엘라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돌아봤다.

“……어째 지나치게 반기는 것 같군?”

“그럴 리가요.”

백작은 리아에게 그만 일어서도록 명령했다. 집사는 두 사람의 뒤를 조용히 뒤따라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8장을 끝으로 1막이 종료되었다. 관객들의 환호와 갈채가 다시 한번 무대 위로 쏟아졌다. 잠시 후, 무대의 막이 내렸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2막이 시작되는 건 20분 뒤였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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