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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24

EP.523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29)

막이 무대를 완전히 가리는 순간, 엘라와 마야는 제자리에서 비틀거렸다. 잠시지만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몸에 힘이 풀린 것이다. 두 사람 다 여간 지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평소에 서로를 은근히 경멸하던 두 사람이 서로를 부축할 정도였다. 물론 그것은 의도한 게 아니라 원더스타인의 양옆에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이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둘은 자신들이 몸을 기댄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윽, 마야, 너! 갑자기 뭐 하는 거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잠시 서로를 싸늘하게 노려본 두 사람은 뒤를 돌아보고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차렸다. 그들과 함께 걷고 있던 원더스타인은 어느새 아나이스에게 붙들려 있었다.

“정말 잘하셨어요, 단장님! 나중에 제가 진짜 집사로 고용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진짜 수고 많으셨어요.”

“뭘요. 저는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도 않습니다. 고생은 저 두 사람이 더했죠.”

“후훗, 그래서 칼슨 씨가 두 사람의 몸을 우선해서 봐주기로 했어요. 저는 이렇게 땀을 닦아드리는 것밖에 못 하니까 단장님을 담당하기로 했답니다.”

아나이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엘라와 마야에게 어서 칼슨의 막사로 가보라고 손짓해 보였다. 마치 어린애들은 절로 가라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으나 일단 그녀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20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은 이런 사소한 걸로 기 싸움할 여력이 없었다. 쉬는 것도 전투적으로 쉬어야 했다.

“으악, 어깨야! 칼 아저씨, 저도 좀 주물러줘요!”

“2막 1장에 출연하는 사람들 먼저 해야지. 넌 조금 있다 받아라.”

“찍찍, 악기의 현들이 거칠다! 찍찍, 기름을 발라야 한다”

“엇, 기름? 그거 어디 갔더라? 아까 통로에 방해된다고 아저씨들이 짐을 멋대로 옮겨 놔서……. 이런! 상자 번호를 보이도록 둬야지! 이렇게 무작정 쌓아두면 어떡해!”

“나 제대로 한 거 맞아? 아까 대사 틀리지 않았어? 내 대본 어디 갔어? 대본 좀 줘 봐! 대본!”

“안 돼요. 저도 읽고 있어요. 2막 순서가 갑자기 헷갈린단 말이에요.”

“핫핫, 저 의상이 좀 삐뚤어졌군요. 나타샤 씨, 좀 고쳐 주시겠어요?”

“잠깐! 이거 배경 판자 버팀목이 부러져 있는데? 아까 4장에서 너무 무리하게 움직였나……. 누가 손 좀 거들어줘! 이대로 뒀다간 2막 중간에 쓰러질지도 몰라.”

휴식 시간이었지만 무대 뒤는 정신없이 바빴다. 칼슨에게 마사지를 받으러 가던 엘라는 결국 일정을 바꿔서 무대 일을 돕기로 했다. 서커스단 일에 그녀만큼 밝은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사소한 소품이나 장비도 어디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쉬는 시간조차 일에 매달리는 그녀를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원래 배우에게 무대 일을 시키면 안 되는데……. 심지어 엘라 양은 주인공이잖아요. 분량도 제일 많은데.”

“어쩔 수 없잖아! 실전은 언제나 뜻밖의 사고가 닥치기 마련이니까! 그렇다고 당신이 내 일 대신 할 수 있겠어?”

“못하죠.”

“그럼 가서 저기 버팀목 수리하는 거나 도와줘!”

“알겠습니다.”

원래 무대 뒤의 일을 총괄해야 할 사람은 한트케 교수였다. 그러나 그는 현재 ‘낯선 사람 현상’을 겪고 있는 니카를 달래느라 바빴다.

낯선 사람 현상은 주로 배우들이 막간에 겪곤 하는 것이었다. 역할에 깊게 몰입해 있던 배우가 쉬는 동안 잠시 역할에서 벗어나면서, 자기 자신을 매우 낯설게 느끼는 현상이었다. 이때, 경험이 적은 배우들은 혼란에 빠지곤 했다.

“제, 제가 어떻게 공주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몰입이 안 돼요! 대본이 하나도 안 떠올라요! 아, 왜, 왜 이러지? 저, 저는…… 2막에 나가지 못할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마야 언니에게 환상을 부탁해서…….”

니카는 평정을 잃고 횡설수설했다. 평소 냉정 침착하던 그녀답지 않았다. 평균적인 사례들과 비교했을 때, 그녀의 경우는 증상이 상당히 심했다. 이는 연기에 임하는 그녀의 마음가짐이 보통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황태자’로서 자신을 잃은 것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녀가 연기에 도전한 것도 가면을 벗었다 써보는 일을 해보면 그 충격이 완화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하필 그녀는 잃어버린 신분과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황녀 아자티’는 그녀가 평소에 연기하는 배역인 ‘귀족 소녀 니콜라’보다 훨씬 그녀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배역에서 깨어났을 때,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심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자자, 진정하게. 진정하고 차근차근 자네가 한 연기를 돌이켜 보자고.”

한트케 교수는 연출 경력이 오래된 만큼 낯선 사람 현상을 겪는 배우들을 많이 봤다. 1막에서는 잘만 연기하던 배우들이 막간에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더니 2막에서 완전히 무너져 내리곤 했다.

그것은 저주나 질병 같은 게 아니었다. 일반인도 거울을 오랫동안 바라보거나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발음했을 때, 종종 겪곤 하는 일이었다. 특정한 내용이 머릿속에 과포화되면서 그것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낯선 사람 현상의 본질이라 할 수 있었다.

배우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고작 거울상이나 단어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그 혼란이 조금 깊고 오래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막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이다. 아자티 공주는 2막 1장부터 출연해야 하니까 남은 시간은 20분밖에 없었다.

그래서 교수는 즉석에서 다른 치료법을 동원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방금 한 연기를 처음부터 되새겨 보는 것이었다. 니카는 교수의 질문에 따라 기억을 더듬어 갔다.

“2장 마지막 부분에서 사실 조금 움찔했어요. ‘빛나리’ 노래를 부르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싸늘한 거예요. 엘라 언니나 트라이머리 형제분들과 비교해서 제가 못 불러서 그런가 싶었어요. 다행히 6장의 ‘검은 숲’은 호응이 좋았지만……. 제가 2장에서 뭔가 실수한 건가요?”

“아니, 그건 오늘 관중 중에 이쪽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걸세. 연극대학 학생들도 포함해서 말이야. 업계 사람들은 그 노래를 싫어하거든.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 노래가 울펜슈타인 백작이라는 작품에 들어가 있는 걸 싫어하지. 그 노래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니까.”

프라빈은 한때 극장 파괴 운동까지 일어났을 정도로 사회공화주의 정치적 운동이 활발한 곳이었다. 20여 년 전, 크리스티앙의 ‘울펜슈타인 백작’이 공개되었을 때,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연극대학의 교수들은 정통 연극인들을 위해 곡예 부분을 줄인 각색판을 발간했다.

그러나 당시 프라빈의 사회적 분위기상 연극에는 사회공화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진취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들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 의회에서 공연의 허가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각색을 맡은 극문학 교수는 극악과 쪽에 의뢰해 의회의 비위를 맞출 곡을 집어넣었다. 그게 바로 ‘빛나리’라는 곡이었다. 아자티 공주가 황녀의 몸으로 황제가 되고자 하니 그녀는 진취적인 여성상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업계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각색판인지라 내용을 고쳤다는 사실 자체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방식이 너무 성의가 없다는 것이었다.

노래 한 곡 욱여넣고 대사 몇 줄 고친 게 전부였다. 공주가 야심가로서 면모를 드러내는 것도 첫 등장 때뿐이었다. 뒤의 전개는 울펜슈타인 백작의 원본을 그대로 따랐다.

“성질 같아서는 이 노래 확 빼버릴까도 생각했는데, 그랬다간 탈락 확정이라서 그럴 수 없었지.”

이번 시험의 극본은 무조건 프라빈 대학 판본으로 진행하는 게 원칙이었다. 대사를 조금 수정하는 건 몰라도 곡 하나를 완전히 들어내는 건 힘들었다. 특히 ‘빛나리’는 이러나저러나 연극대학 교수가 직접 작곡해서 넣은 곡 아닌가.

사정을 대강 설명한 한트케 교수는 니카와의 상담을 이어나갔다. 뒤로 갈수록 그녀의 얼굴에는 점점 생기가 돌았고 음색도 안정적으로 변했다.

“그래. 6장은 만족스러웠나 보군. 그러면 혹시 7장에서는 뭔가 문제가 있었나?”

“7장요?”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아, 거기요. 맞다. 거기는…… 마지막에 대사를 옛날 버전으로 말할 뻔했어요.”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곡은 고용인들이 완벽하게 요리를 준비하는 게 통상의 연출이었다. 그러나 알렌과 조의 능력적 한계 때문에 해당 곡은 그들이 실수하고 식당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연출로 바뀌었다.

원래 해당 장면은 그렇게나 식기를 던졌다 받았다 요란을 떨어놓고 고작 미트볼 6개를 대접하는 기막힌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래서 저 정도 연출의 변화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 따라 공주의 반응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니카의 말은 최근 1주일간이 아니라 그전 한 달간 연습했던 연기가 나올 뻔했다는 뜻이었다.

“아마 수천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앞이라서 그럴 걸세. 그들에게 동조되어 한심하다는 눈빛보다 경탄 섞인 눈빛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지.”

“아, 맞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많은 연기자가 실전에서 실수하는 이유 중 하나일세. 관객들의 감정을 따라가 버리는 것.”

그렇게 7장에 이어 8장까지 복기를 끝내자 니카는 어느새 자신이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아자티 공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다시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좋아. 그러면 분장실로 가서 어서 의상을 갈아입게. 시간이 많지 않으니…….”

한트케 교수가 막 자리를 파하려는 그때, 갑자기 무언가 와지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무대에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어어, 뭐야? 너, 넘어간다!”

“뭔데, 뭔데, 왜 이래?”

“죄, 죄송합니다, 엘라 양! 버팀목이 부러졌어요!”

“뭐?”

배경으로 세워둔 패널이 쓰러지려고 하고 있었다. 한 손 거들어 달라는 프란츠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무작정 힘을 써버렸고 그만 삐걱대던 버팀목이 그대로 반 토막 나버린 것이다.

“이, 이거 어떻게 좀 해 봐!”

엘라가 원더스타인의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그는 주변을 둘러 보고 필요한 단원들을 찾았다.

“우몬 군, 이반 씨, 설리반 씨!”

“네!”

원더스타인의 외침에 서커스단의 괴력 3인방이 즉시 달려왔다. 그들은 각각 패널의 모서리로 흩어져서 손으로 그것을 받쳤다.

가조립 상태로 빨리 세울 수 있게 결합해둔 상태라 패널 전체의 무게는 2톤이 넘었다. 물론 네 사람이 힘을 합치면 이 정도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더스타인 혼자서도 버틸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패널에는 가구에 소품에 무대에 쓰는 온갖 물건들이 결합해 있었기에 그것들이 다치지 않도록 부드럽게 받는 게 관건이었다. 다행히 그들 네 사람의 힘은 그 정도도 충분히 감당할 만했다.

“자, 이 틈에 어서 새 지지대를!”

“여기다! 이곳으로 가져와!”

“남는 사람들은 이쪽으로!”

그들이 힘을 쓰는 사이 다른 단원들이 재빨리 달려들어 버팀목을 새로 세우고 패널 뒤에 연결된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네 사람은 배경 패널을 붙든 채 조심스럽게 그것을 다시 세웠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패널이 이음매에 다시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자 네 사람은 그것을 놓을 수 있었다.

“진땀 뺐군. 네 사람이나 있어서 다행이야. 혼자였다면 모서리 어딘가가 휘어지거나 부러졌겠지.”

“하마터면 공들여 준비한 것들이 다 망가질 뻔했어요.”

“이래서 현장에서는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는 말이야.”

그렇게 위기를 해결한 괴물서커스단은 서둘러 무대 준비를 재개했다. 몇 가지 사소한 문제가 더 터지긴 했지만, 단원들의 역량을 합쳐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었다.

얼마 안 있어 휴식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울펜슈타인 백작의 2막이 시작되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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