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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27

EP.526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32)

2막 3장의 배경은 1막 8장에 나왔던 저택의 정원이 재활용되었다. 다만, 인공적일 정도로 가지각색의 꽃들이 만발했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계절에 맞게 꽃들이 자연스럽게 피어 있었다. 공주가 산책 중에 그것을 지적하자 백작은 솔직하게 답했다.

“사실 그동안 정원에는 연금술로 만든 약을 뿌려 왔었소. 이 날씨에 여름철 꽃들이 시들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지.”

“어쩐지……. 아름답긴 해도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고 했어요.”

“어머니께서 남기신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소. 하지만 생각해보니 어머니께서 정원을 가꾸셨던 시절에는 꽃들이 자연스럽게 피었다 지곤 했소. 나는 그걸 억지로 붙잡아 두고 있었던 거지. 그래야만 그 시절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면 이제는 더는 약을 안 뿌리시나요?”

공주의 질문에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부터.”

“얼마 전?”

“그대에게 처음으로 정원을 보여줬던 날.”

“아.”

“그날 그대의 말을 듣고 난 깨달았소. 꽃을 억지로 피운다고 해도 봄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자신 때문에 그가 변했다는 말에 공주는 기분이 좋아졌다. 목소리에 절로 콧소리가 섞였다.

“헷, 생각보다 낭만적인 분이시네?”

“생각보다?”

“처음 봤을 땐 솔직히 피도 눈물도 예의도 인정머리도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백작은 아무 말 없이 공주를 돌아봤다. 그녀는 당황해서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어, 화났어요? 농담이에요. 농담!”

“역시.”

“뭐가 역시죠?”

“꽃은 피는 것뿐만 아니라 바람에 떨리는 것도 아름답소.”

“그게 무슨 소리…… 아.”

공주는 그가 자신을 꽃에 비유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백작은 그런 그녀를 보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며칠 사이에 두 사람 사이는 부쩍 가까워졌다. 이제 걸을 때 자연스럽게 팔짱을 낄 정도였다. 두 사람은 정원을 거닐며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1막 8장에서 엘라가 불렀던 ‘봄’이었다. 다만, 가사와 악보 일부가 달라져서 1막 8장에서 불렀던 것보다 훨씬 달콤하고 발랄했다. 대부분 독백체로 끝났던 이전의 곡과 달리 지금의 곡은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래. 이 모두가 봄인 거야.”

마지막 후렴구는 두 사람이 함께 불렀다. 마침내 노래를 마친 백작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공주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서서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공주는 백작이 원하는 것을 눈치채고 눈을 감고 그에게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나 백작은 그런 그녀를 거의 내팽개치듯 내버려 두고는 앞을 향해 달려갔다.

마침 요리사와 하녀가 파이를 내오고 있었다. 애초에 그의 환한 표정은 그것을 보고 지은 것이었다.

차마 입맞춤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말하기 부끄러웠던 공주는 자신에게 쥐여주는 파이를 그의 얼굴에 던짐으로써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백작은 그걸 입으로 받아서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는 곧 자신의 접시에 든 파이를 사수하는 동작을 취했다.

“던진 건 그대 선택이오. 이건 내 거요.”

두 사람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둘 사이에 대화는 관객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이 장면에서도 3장에 나왔던 ‘이중 구성’ 연출이 사용되었다. 한 무대에 초점을 2군데로 잡고 소리가 나오는 ‘복판’과 소리가 나오지 않는 ‘구석’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구석을 담당하는 쪽은 공주와 백작이었다. 복판을 담당하는 쪽은 바로 하녀 로지였다. 그녀는 두 사람이 말없이 표정과 동작으로만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을 멀리서 질투심과 슬픔이 섞인 얼굴로 지켜봤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저런다고 저 둘의 사이가 멀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얼마 가지 않아 복판과 구석은 서로 전환되었다. 하녀가 무대 뒤로 모습을 감추고 조명은 다시 백작과 공주를 비췄다. 말싸움 끝에 마침내 공주가 성으로 혼자 들어가려 하자 그제야 백작이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그는 공주를 달래기 위해 자신의 접시에 있는 파이를 반으로 나누어 그녀에게 건네주려 했다. 하지만 소품 준비 과정에서 커팅이 어설프게 됐는지 파이가 그만 뚝 하고 부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한쪽이 다른 한쪽의 2배 크기로.

“우앗!”

무대 옆에서 다음 장의 소품을 준비하던 클라라가 그 장면을 보고 놀라서 작게 비명을 질렀다. 방금 무대 위에 올려보낸 파이를 잘랐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엘라는 능숙하게 애드리브로 대처했다. 그녀는 반으로 부러뜨린 파이 중에 어느 쪽을 공주에게 건넬지 잠시 고민하는 척을 했다.

과연 백작의 선택은 무엇일까? 고작 2, 3초밖에 안 되는 임기응변으로 긴장감을 형성하는 엘라의 솜씨에 단원들은 탄복했다. 관객들의 주의가 자연스럽게 백작이 손에 든 두 파이 조각을 향해 쏠렸다.

큰 쪽을 건네면 감동, 작은 쪽을 건네면 웃음. 한트케 교수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몇 번 연습 끝에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 연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엘라는 타고난 ‘눈’으로 그것을 단숨에 꿰뚫어 봤다. 그녀는 공주에게 큰 쪽을 넘겼다. 니카는 그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엘라를 곁눈질했다.

“웨, 웬일이래……. 식탐 대장이…….”

“드시오.”

“아, 됐어요. 저보다 위장이 2배 크신 백작님이 큰 거 드세요.”

엘라의 애드리브를 니카도 자연스럽게 애드리브로 받았다. 엘라가 큰 쪽을 건넨 덕분이었다.

만약, 그녀가 작은 쪽을 건넸다면 니카는 조금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 추는 반사적으로 ‘큰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엘라의 놀라운 통찰력은 큰 쪽을 선택하는 편이 니카가 받아주기 훨씬 쉽다는 것을 그 짧은 순간에 간파했다. 상대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서 말이다.

“알았소.”

한 번의 사양 없이 파이를 받아먹는 백작을 공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봤다. 여기서부터 다시 전개는 연습한 대로 흘러갔다.

파이를 입에 넣은 백작은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척하더니 살짝만 베어 물고는 남은 것을 공주에게 건넸다.

그 어설픈 배려에 그녀의 입에 피식 미소가 걸렸다. 누가 보면 정말 하찮다고 하겠지만, 그녀는 목석같던 그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생각해주었다는 것이 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대놓고 기쁜 티를 내기 부끄러웠던 그녀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거절했다.

“침 묻은 걸 어떻게 먹어요. 백작님 드세요.”

부끄러움 때문에 손에 힘이 좀 많이 들어간 탓일까. 그녀는 그의 손을 쳐내고 말았고, 파이 조각은 허공을 날았다.

그런데 백작은 마치 원반을 받는 개처럼 펄쩍 뛰어올라 그것을 입으로 받아냈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제야 공주의 입에서 깔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정원을 걸었다. 그들의 표정과 몸짓은 아까보다 훨씬 다정다감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관객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다시 이중 구성이 작동한 것이다.

무대 뒤에서 나온 하녀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제비꽃’이라는 노래였다.

“제가 여기 있어요. 바로 당신 옆에 제가 있어요.”

“돌아봐요, 주인님. 항상 당신 주위를 맴돌았어요.”

“당신에게 미소를 피어나게 할 사람은 저일 줄 알았는데…….”

그것은 엘라가 장미 풍차 카바레의 앞마당에서 한 번 부른 적 있는 노래였다. 그때, 엘라는 갑작스럽게 사람들 앞에 나섰는데도 너무나 훌륭하게 노래를 소화해낸 덕분에 카바레의 임시 배우로 무대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레이나가 보여주는 연기력에 신음을 삼켰다. 가창력이야 아까 경험해서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녀가 감정표현까지 이 정도로 해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건 그녀뿐만 아니라 백작이나 공주도 마찬가지였다.

재능이 아무리 출중하다고 해도 그들은 아직 10대에 불과했다. 사랑 연기를 하기에 아직 세상 경험이 모자라다 생각했다. 애증, 질투, 아련함 같은 복잡한 감정은 단순히 ‘좋아한다’라는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은 능숙하게 역할을 소화해냈다.

“하녀가 마지막 가사를 내뱉었을 때, 저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깊은 한을 느꼈습니다. 마치 남자가 한 10년은 그녀를 버려두고 떠난 것 같은…….”

“뒤의 장면도 기대가 되는군요. 과연 백작을 맡은 소녀가 좋아하는 사람을 칼로 찌르는 슬픔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공주를 맡은 아이가 백작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배신감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기대되는군요.”

“하녀의 눈빛에 담긴 질투심 좀 보세요. 저게 과연 10대 배우가 한 달 연습한 걸로 가능한 눈빛인지…….”

사람들은 넋을 놓고 레이나의 노래를 감상했다. 무대 반대편에 있는 백작과 공주 사이가 알콩달콩해 보일수록 그녀의 노래가 주는 슬픔은 더욱 커졌다.

“당신 옆에 머무는 것만으로 충분한 줄 알았는데…….”

노래의 슬픈 끝맺음과 함께 레이나의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객석 몇몇 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녀는 공주와 달리 무대 위에서 사랑 표현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홀로 외로이 떨어져 있는 그녀의 처지가 더욱 강조되었다. 만약, 하녀가 앞선 무대에서 백작과 많은 교감을 보여주었다면 오히려 지금 제비꽃 노래의 여운이 죽었을 것이다.

레이나의 노래가 끝나고 초점은 다시 백작과 공주에게로 돌아왔다. 정원을 한 바퀴 돈 두 사람은 함께 차를 마셨던 정원의 벤치에 몸을 기댔다.

“아, 파이 남은 조각을 반대편에 두고 왔네요. 백작님이 아까 너무 웃겨서 먹는 것을 미처 깜빡했어요.”

공주는 짐짓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백작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배가 고픕니까? 가져올까요?”

“정말 눈치라고는……. 그냥 달콤한 게 땅길 뿐이에요.”

백작은 공주와 시선을 마주쳤다. 잠시 후, 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 입을 살짝 벌렸다. 공주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얼굴이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백작이 그녀의 몸을 덮치듯 벤치 위로 올라탄 것이다.

“공주.”

“백작님.”

그렇게 막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어지려는데, 무대 한쪽에서 거대한 인영이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그는 바로 공주의 호위기사인 우몬이었다.

“공주님! 공주님!”

공주는 백작의 몸을 재빨리 밀쳤다. 호위기사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의복을 정돈하고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지?”

“공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수행하고 오는 길입니다.”

호위기사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쫙 펼쳤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공주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기사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주님?”

“휴, 아무것도 아니야. 얘기해 봐.”

공주는 호위기사가 몸을 회복하자 그를 수도로 보내 황궁의 소식을 알아보도록 했다. 만약, 황제가 급환으로 사망했다면 무턱대고 수도로 들어가기보다 그녀 파벌의 귀족을 찾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위기사는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을 들고 왔다.

“황제 폐하는 멀쩡하십니다.”

“정말인가?”

“네! 급환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거짓이라. 그러면 그때 우리에게 소식을 전했던 전령은 뭐지?”

“토끼 귀를 가졌던 것은 제가 봤습니다만…….”

“아무런 단서가 없으니 생각해봤자 소용없지. 어쨌든 수고했다. 그럼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겠구나.”

“네. 호위 병력이 며칠 뒤에 뒤따라 도착할 겁니다. 그들과 함께 돌아가면 됩니다.”

이야기를 마친 공주는 다시 백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는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무슨 일이오?”

“며칠 뒤에…… 저를 데려갈 인원이 도착한대요.”

“……그렇소?”

그렇게 손을 마주 잡고 어딘가 슬픈 미소를 짓는 두 사람. 그들을 비추는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지며 2막 3장이 종료되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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