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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28

EP.527 19.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33)

2막 4장은 저택을 무대로 광대와 여동생이 숨바꼭질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이 장면은 ‘울펜슈타인 백작’에서 연출가의 재량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부분이었다. 별다른 명확한 지시문 없이 두 사람이 서로 번갈아 숨고 찾는 장면을 통해 둘 사이에 싹트는 호감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트케 교수는 이 장면에서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었다. 원인은 바로 마야였다. 그녀의 연기력은 단원 중에서 가장 뒤떨어졌다. 업계의 평균적인 수준은 둘째치고 평범한 사람보다 못했다.

나무토막 같은 뻣뻣한 움직임, 매가리 없는 목소리, 변화 없는 표정 등 배우로서 최악의 조건은 다 갖추고 있었다. 그나마 이번 연극에서 배역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리아가 작중에서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울펜슈타인 백작에서 리아는 단순히 감정이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표정에 변화가 없을 뿐, 미묘한 행동이나 호흡의 변화를 통해 억압된 감정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야 했다.

여기서 호흡의 변화는 앞서 말했듯이 몸에 ‘과부하’를 주는 방법으로 어느 정도 해결을 보았다. 그녀가 환상에 강하게 힘을 쏟고 있는 동안에는 눈빛과 말투에 감정이 묻어났다.

“여동생 배우도 볼 때마다 대단하군요.”

“저 은근하면서도 희미한 눈썹과 입술의 움직임 좀 보세요. 얼굴 근육을 아주 미세한 수준까지 다룰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게 분명합니다.”

“놀라운 재능입니다. 프라빈에 과연 저렇게까지 섬세하게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지.”

심사위원들은 마야가 극도로 절제된 연기를 한다고 여겼다. 그들은 설마 저게 마야가 드러낼 수 있는 최대한의 감정표현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제게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가씨.”

“당신의 미소는 어디 있나요.”

“그 차가운 가면 뒤에 숨어 있나요.”

숨바꼭질은 ‘미소를 찾습니다’라는 노래와 함께 진행되었다. 그것은 1막 4장에서 하녀가 불렀던 ‘웃음을 찾습니다’라는 곡과 짝을 이루는 노래였다. 작중에 2번 반복되는 ‘봄’이나 ‘마법의 가루’처럼 가사와 가락을 조금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작곡할 때부터 서로 대비를 이루도록 제작된 것이었다.

“나는 여기 있어. 네가 미끄러진 곳 바로 뒤에.”

“내 입으로 말 못 해. 네가 찾아와 줘.”

“네 몸 안에서 춤추는 것이 보여. 그게 내 미소를 찾아줄 수 있어.”

둘은 번갈아 노래를 부르며 저택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서로 숨고 찾는 것을 반복했다. 이 노래가 연출가의 역량을 재는 것으로 유명한 데는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었다.

배경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소품은 어디 둘 것인지, 숨는 쪽은 어디에 숨고, 찾는 쪽은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었다. 사실상 연출가에게 무한한 선택지가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트케 교수도 아이디어가 많았다. 언젠가 울펜슈타인 백작을 맡았을 때, 써먹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장면에서 역량을 모두 마야의 연기를 보조하는 데 써야 했다.

이 곡은 가사와 가사 사이에 반주가 길었다. 반주 시간 동안 두 배우는 장난스럽게 숨바꼭질을 하다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는 서로에게 느끼는 호감을 표현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짧은 시간에 연기의 톤을 바꾸는 것을 연극학에서는 전환(modulation)이라고 했다. 주로 내면 갈등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오른쪽 봤다 왼쪽 봤다 자기 안의 다른 자신과 말싸움을 할 때 말이다.

베테랑인 스벤에게 전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마야였다.

앞선 장에서는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대부분인 그녀였지만, 2막 4장에서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했다. 감정표현은 앞서 말했듯 ‘과부하’로, 노래는 ‘환상 목소리’로 대체했지만, 연기 자체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야는 그 부분을 ‘암기’로 때워야 했다. 교수가 손가락의 위치 하나까지 일일이 지정해주면 그녀가 통째로 외우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간단해 보였지만, 동선이 조금만 달라져도 지시 사항을 다시 써야 했기에 교수는 몇 주간 제대로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가 깨어 있는 시간의 3분의 1은 마야의 연기 지도에 써야 했다.

“대학원생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교수는 정직이 결정되었을 때, 제자들을 너무 성급하게 다른 연구실로 보낸 것을 후회했다.

어쨌든 그렇게 고생해서 완성한 장면이었기에 노래가 2막 4장이 시작되었을 때, 한트게 교수는 초조한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봤다. 다행히 마야는 마지막에 탁자 밑에서 나올 때 머리를 박은 것을 빼면 별다른 실수는 없었다.

아마 막간에 버팀목이 부러졌던 위치가 저곳 뒤편이었던 것 같았다. 새로운 버팀목을 덧대는 과정에서 미묘하게 각도가 틀어진 모양이었다.

숨바꼭질을 마친 두 사람은 응접실에서 함께 다과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에다가 말했고 리아는 듣는 쪽이었다.

스벤은 심사위원들조차 웃음을 터트릴 정도로 재밌는 농담들을 선보였다. 그러나 마야의 얼굴을 희미한 미소 한 번 짓지 않았다. 관객들은 광대가 내뱉는 한숨에서 짙은 실망감을 느낄 수 있었다.

“좀처럼 웃지 않으시는군요, 아가씨. 혹시 저랑 있는 게 즐겁지 않으신가요?”

“즐거워.”

“그럼 왜 웃지 않는 거죠? 며칠 전의 그때처럼 다시 웃어 보실 수 없나요?”

“없어.”

“병인가요? 저주 때문인가요?”

스벤의 질문에 마야는 뭔가를 고민하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말할 수 없어.”

“…….”

“말하면 오라버니는 그것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지 몰라.”

“백작께서?”

“응……. 그리고…… 나는 너를 상처 주기 싫어.”

광대는 웃지 못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 왜 자신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설마 자신의 농담이 끔찍하게 재미없기 때문인가? 역시 무도병이 또 한 번 크게 발작해야…….

광대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녀의 말투에서 자신을 걱정하는 기색이 느껴져서 기뻤다.

“당신 옆에 있다 보면 언젠가 또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죠?”

마야는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광대가 계속 자신 옆에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응.”

“하하, 그러면 그걸로 됐습니다. 언젠가 아가씨를 한 번 더 웃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소녀는 광대를 바라보며 시험하듯 슬쩍 말을 던졌다.

“오빠가 돈을 준다고 해서?”

“아뇨! 저는 그저…… 아가씨의 웃는 모습에 반했는걸요!”

“…….”

“아, 죄송합니다! 감히 천한 신분인 제가 아가씨를 사모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아니.”

“…….”

“나도 네가 좋아. 네가 옆에 있으니 안심이 돼.”

그녀의 말에 광대는 쑥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궁궐 같은 저택에 주변에는 아가씨를 섬기는 사람들뿐인데. 아가씨가 불안할 게 있나요?”

리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무덤덤했지만, 그 행동에서 강한 공포가 섞여 있음을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저택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사실…….”

그때, 응접실의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울펜슈타인 백작을 필두로 그의 고용인들이 모두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분노한 얼굴로 광대를 노려봤다.

“떠돌이 광대 에다.”

“무, 무슨 일이시죠, 백작님?”

“네가 감히 약을 써서 내 여동생을 속인 것이냐?”

“네?”

“네가 얼마 전 거리에 약을 뿌린 죄로 감옥에 갇혔다고 들었다. 그리고 감옥에서도 무단으로 탈옥했다고.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설마 리아에게 무슨 약을 써서 웃게 한 거냐?”

“약이라뇨! 오해입니다! 아, 물론 체포되었다가 탈옥한 건 사실이지만…… 앗, 아가씨!”

“이거 놔.”

리아에게 다가갔던 집사가 저항하는 그녀의 입에 강제로 빨대 같은 것을 쑤셔 넣었다. 잠시 후, 그가 빨대를 꺼내었을 때, 하얀색이었던 그것은 끝부분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맞습니다. 웃음이 나오는 연기. 금지된 물건이군요.”

“자, 잠깐만요! 저게 뭡니까! 저는 모릅니다. 억울…… 으앗!”

광대가 갑자기 쥐고 있던 케이크 나이프를 휘두르려고 했다. 그의 몸이 또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이 자식이!”

“정신 나갔나!”

백작의 고용인들은 그가 리아를 인질로 잡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경호원과 정원사가 재빨리 그에게 달려들었고, 집사가 리아를 뒤로 잡아당겼다.

“이 광대 놈이!”

“어디서 감히!”

광대는 쉽게 제압당했다. 백작은 혐오감이 뒤섞인 눈으로 발버둥 치는 그를 내려다봤다.

“저 광대 놈을 지하에 가둬라! 가장 끔찍한 처벌을 내리겠다!”

“그를 놓아줘! 그는 잘못 없어!”

리아가 백작의 옷깃을 붙들고 사정했으나 그는 차갑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모두 응접실에서 나가도록 했다. 요리사는 광대와 리아가 먹고 마셨던 다과를 위험물질이라도 되는 듯 손가락을 집어서 들고 나갔다.

백작은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창밖을 가만히 바라봤다. 잠시 후, 아자티 공주가 응접실의 문을 열고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무슨 일이죠? 갑자기 성난 표정으로 달려가셔서 너무 놀랐잖아요.”

“미안하오. 여동생이 걱정되어서…….”

백작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공주는 복도 쪽을 바라보며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정작 그 걱정되는 여동생은 차갑게 내쫓았나요?”

“…….”

“제가 해드린 조언 기억하시죠? 당신이 웃어야 리아 양도 웃을 수 있다고 한 거.”

“알고 있소.”

“알면 됐어요.”

공주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그를 한 번 째려보고는 방을 나가려 했다. 어딘가 화가 난 분위기였다. 가만히 서 있던 백작은 방을 막 나서려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정말 떠나는 거요, 며칠 뒤에?”

“……그래야지 않겠어요?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을 테니까.”

공주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백작은 그녀를 향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입을 꾹 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흥.”

공주가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잠시 후, 저택 밖에 먹구름이 밀려오는 듯 무대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단순히 조명의 밝기를 낮추는 게 아니라 정말로 흐린 날의 실내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언제 봐도 놀라운 마야의 레이 트레이싱이었다.

랫맨 관현악단의 슬픈 반주와 함께 백작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제목은 ‘그림 속 나비’였다.

“그림 속 꽃에는 역시 나비가 찾지 않는 걸까.”

“내가 저 비열한 광대 놈과 다를 게 뭘까.”

“그녀가 사실을 알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방금 그를 진짜 화나게 만든 것은 단순히 여동생이 광대에게 해를 입을까 그래서가 아니었다. 놈이 약이라는 속임수를 썼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은 공주를 떠나보내야 하나 고민하는 그에게 어차피 너희 두 사람도 가짜로 만들어진 인연 아니냐고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동시에 이렇게 된 이상 여동생을 웃게 하려면 공주를 죽일 수밖에 없다고 등을 떠미는 것처럼 느껴졌다.

“덜 마른 도화지 위로 풍기는 어지러운 술향기가 괴롭구나.”

백작의 노래가 끝나고, 조명은 응접실 밖 복도를 비췄다. 공주는 수심 가득한 얼굴로 문 안쪽을 바라봤다.

그녀 역시 백작과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작이 붙잡는 말 한 번을 하지 않으니 혼자만 마음이 있던 건가 싶어서 실망하던 참이었다.

그런 그녀를 또 한 칸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녀의 호위기사였다. 그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의 주군을 바라봤다.

그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죄인을 한 번 보러 갈까.”

그것은 바로 하녀 로지였다. 그녀는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혼잣말을 하고는 기사가 숨어 있는 기둥 앞을 지나갔다.

그를 지나친 그녀는 얼마 가지 않아 벽에 달린 횃불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지하실로 향하는 통로가 열렸다.

“저건?”

하녀는 기사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아는 듯 슬쩍 곁눈질하며 웃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기사는 뭔가에 홀린 듯 그녀의 뒤를 따라 지하실로 내려가면서 2막 4장이 종료되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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