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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3

53화 입단 시험 (1)

53화 입단 시험 (1)

“어이 데미안. 벌써 끝난 거냐?”

나는 들판에 널브러져 있었다. 날이 서지 않은 훈련용 검을 손에 쥔 채.

“······아직인데요.”

나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옷을 벗으면 멍 자국이 없는 곳을 찾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쿠훌린이 씨익 웃었다.

“그래. 그래야지.”

어제는 루나와 마을 구경을 하느라 해 질 녘에야 성에 돌아왔다. 이후 루나는 우리를 모아놓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아기새처럼 조잘댔다.

그리고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쿠훌린은 우리를 들판으로 끌고 나왔다.

“하압!”

나는 미스트에게 한 방 먹였을 때를 떠올리며 쿠훌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쿠훌린은 장난치듯 나의 검을 피했고, 옆구리에서 끔찍한 통증이 이는가 싶더니 나는 또다시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그렇게 무작정 달려드니까 당하는 거다. 내가 여러 번 말했었지. 검을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말이야.”

억울했다. 나는 분명 그렇게 했다.

디딤발에 힘을 주고, 하체에서 시작된 힘을 척추로 끌어올린 뒤, 두 팔로 옮겨 검 끝으로!

“안 되겠군. 다음은 카인, 네가 공격해 보거라.”

“······더 할 수 있는데요.”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지만 금세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았다.

“너로서는 무리다 데미안. 내 움직임을 지켜보도록.”

카인이 검을 들었다.

그러나 수 분도 지나지 않아 녀석은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내 곁에 엎어져 있었다.

“무슨 움직임을 보라는 거냐.”

“······.”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은 카인은 조금 방심했다는 둥, 다음번에는 이렇지 않을 거라는 둥 핑계를 댔다.

“구질구질하다, 너.”

“나는 너보다 오래 버텼다. 데미안.”

“아닐걸.”

“나는 시간에 정확한 편이다. 약속대로 푸른 매의 단도 금세 창단하지 않았나.”

티격태격하는 우리를 보며 쿠훌린이 쯔쯔, 혀를 찼다.

“좋아! 이제 우리 큰 공주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볼까!”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요, 아저씨.”

시큰둥하게 답한 루나가 쿠훌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쿵.

“으하하하! 내가 이겼다! 루나!”

인정사정없이 루나를 바닥에 내리꽂은 쿠훌린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 아버지를 이기려면 30년은 이르다! 알겠냐 루나! 으하하하하!”

끄응, 신음을 흘리며 일어선 루나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아직이거든요? 아저씨.”

루나가 재차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제법 공방이 이어졌다. 그러나 누가 봐도 쿠훌린이 루나를 데리고 노는 중이었다.

“이잇······! 전력으로 하라고요!”

“알았다!”

쿵! 루나가 지면에 꽂혔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던 루나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 채, 씩씩 콧김을 뿜으며 쿠훌린을 노려봤다.

그 눈을 마주하기가 부담스러웠는지 쿠훌린이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세실! 네 차례다!”

***

세실은 루나의 움직임을 홀린 듯이 보고 있었다.

루나는 숲의 요정 같았다.

바람을 타는 듯이 가벼운 몸놀림.

그에 맞춰 물결처럼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

그러던 중 세실은 데미안이 루나를 넋 놓고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쿠훌린의 외침에 놀랐다.

“세실! 네 차례다!”

내 차례? 무엇이?

“안 오면 내가 간다! 하하하하!”

멍하니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는데, 쿠훌린은 이미 눈앞에 있었다.

“······!”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마주한 세실은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래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피핏!

그림자 도약을 발현한 세실의 몸이 점멸하듯 앞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로 부웅, 쿠훌린의 검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갈랐다. 세실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들판 위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세실은 자신을 향한 여러 시선을 느꼈다. 식은땀이 흘렀다. 카인은 직전의 움직임에서 암영의 기운을 감지했는지도 모른다.

세실은 용기를 내어, 카인이 있는 곳을 천천히 돌아봤다. 이어 충격으로 부릅뜬 그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와하하하! 이거 발을 헛디뎌 버렸군!”

그때, 쿠훌린이 크게 웃으며 다시 세실에게 달려들었다.

세실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몸은 재차 그림자 도약을 발현하고 있었으니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정신이 아니었다. 부릅뜬 카인의 눈빛이 비수처럼 심장을 찔렀다.

“잡았다!”

쿠훌린의 억센 손이 세실을 움켜쥐었다. 세실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하늘과 땅이 위치를 바꿨다.

쿵, 지면에 내던져진 세실의 귀로 쿠훌린의 외침이 들렸다.

“4전 4승! 하하하하!”

.

.

.

“세실. 아까는 어떻게 한 거니?”

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루나가 물어왔다.

쿠훌린은 데미안과 카인을 양쪽 옆구리에 낀 채 ‘너희 둘이 공동 꼴찌다!’ 라고 외치며 달려가고 있었다.

“나한테도 가르쳐주면 안 돼? 나도 저 아저씨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단 말이야.”

루나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애걸했다.

그러나 세실은 루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와, 근데 너 진짜 강하더라. 또래 중에 너처럼 강한 아이는 처음 봤어. 우리 나중에 대련해 보지 않을래?”

루나가 생긋 웃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가 여자아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 물론 남자아이여서 싫다는 건 아니야! 그냥, 여자아이면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잖아. 같이 목욕도 하고, 한 침대에서 뒹굴며 자기도 하고. 헤헤헤.”

대답 없는 세실에게 무안함을 느꼈는지 루나가 콧노래를 부르며 시선을 옮겼다. 세실은 슬쩍 눈동자를 굴려 루나를 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저 아이처럼 되고 싶다고.

***

“아, 그렇지. 다들 잠시 내 방으로 오너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식당을 벗어나던 쿠훌린이 빼꼼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랐다. 뭐, 어차피 우리 방도 3층에 있으니 올라야 하는 계단이기는 했다.

“몸의 회복력이 그리 좋지 않군. 데미안.”

난간을 잡고 이동하는 나를 보며 카인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나는 카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녀석이 이때쯤 주둥이를 놀릴 것 같아서 아까 쿠훌린에게 얻어맞는 부위를 유심히 봐놨었다.

“끅?”

괴상한 소리를 내며 부르르, 몸을 떤 카인이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박장대소했고, 이내 폭풍처럼 찾아든 근육통을 이기지 못한 내 몸도 계단을 굴렀다.

“크윽······! 데미안······ 너······!”

카인이 어금니를 악물며 나를 노려봤다. 굴러떨어진 내 몸이 녀석의 옆구리를 다시 한번 가격했기 때문이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루나가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왔다. 뭐야. 저렇게 잘 뛰어다닌다고? 빌어먹을 음흉한 아저씨. 딸이라고 봐줬구나.

카인과 뒤엉켜 쓰러진 나를 보며 세실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세실에게 나는 히죽 웃어 주었다. 세실이 지금 어떤 마음일지 나는 짐작하고 있다.

“······이 빚은 반드시 갚아주지. 데미안.”

“실수야. 실수.”

나는 세실의 부축을 받고, 카인은 루나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다시 올랐다.

“거짓말이 서투르군. 너는 예전부터 그랬지.”

“아닐걸.”

“그러고 보니 전부터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사실을 답할 것 같지 않군.”

“그럼 묻지 마.”

“둘 다 유치하게 뭐 하는 거야! 그만 좀 해!”

루나가 빽 소리친 뒤에야 나와 카인의 말다툼은 끝났다.

“문 열어요, 아저씨.”

루나가 콩콩 방문을 두드리자 쿠훌린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며 문을 열었다.

방 안에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널찍한 테이블이었다.

그 위에는 잘 개어진 은빛 망토 네 벌이 놓여 있었다.

루나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은월의 망토!”

“하하하! 맞다! 이것이 바로 무적의 용병단 ‘은월’의 단원들만 두를 수 있는, 은월의 망토다!”

“지금 주려는 거예요? 진짜로요?”

루나가 반색하며 외쳤다.

쿠훌린이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잊은 거냐? 큰 공주. 은월의 망토를 가지려면 입단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다, 당연히 알죠! 그치만 줄곧 벨락이 시험을 못 치르게 했단 말이에요!”

“당연히 그래야지! 은월의 입단 시험은 준비된 자만이 치를 수 있는 신성한 시험이다! 단장의 딸인 너라도 예외는 아니야!”

루나가 발끈하며 대들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루나는 순순히 수긍했다.

“아, 알아요. 나도.”

돌연 쿠훌린의 목소리가 엄숙해졌다.

“그렇다면 은월의 단장으로서 묻겠다. 은월의 예비 단원, 루나프레나 아르테미스.”

루나프레나 아르테미스?

설마 ‘루나’는 애칭이었어? 그러고 보니 세실도······.

그러나 나의 의문은 루나의 다음 행동을 보자마자 사라졌다.

루나가 쿠훌린을 향해 각 잡힌 차렷 자세를 취한 것이다.

“시험을 치르는 시기와 종목은 해마다 바뀌며, 단장 또는 부단장이 정한다.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단장!”

꾀꼬리 같은 루나의 외침이 방 안을 울렸다.

조금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루나는 아버지로서의 쿠훌린과 은월의 단장으로서의 쿠훌린을 별개의 인물로 여기는 듯했다.

“올해의 시험은 오늘, 이 방에서 치른다. 이것은 단장의 결정이며, 부단장인 벨락 헤카테가 동의한 내용이다. 이의 있나?”

“이의 없습니다! 단장!”

“시험은 루나, 데미안, 카인, 세실 순으로 치른다. 참고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시험 종목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이해했나?”

이번에도 루나는 ‘이해했습니다! 단장!’ 하고 외쳤다.

나는 꿀꺽, 침을 삼키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어느새 나는 루나의 반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의 쿠훌린에게서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풍겼다.

“지금부터 루나프레나 아르테미스의 시험을 치르겠다. 종목은 이 종이에 적혀 있으니 확인하도록.”

“네! 단장!”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걸어간 루나가 공손히 종이를 받았다.

내용을 확인하던 루나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이, 이런 걸 하라고요? 말도 안 돼! 이런 게 어딨어! 이건 직권 남용이야!”

루나가 와락, 종이를 구겨 던졌다.

쿠훌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시험을 포기하는 건가? 루나프레나 아르테미스.”

“이, 이런 건 못해요! 다른 시험 종목을 달라고요!”

“시험을 포기한다면, 루나프레나 아르테미스 예비 단원은 향후 10년간 입단 시험 자격을 박탈하겠다.”

“뭐라고욧!”

루나가 빽! 소리치며 항변했다.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말도 안 되는 직권 남용이라고. 벨락이 이런 불공정한 엉터리 시험에 동의했을 리 없다고!

그러는 동안 카인이 루나가 구겨 버린 종이를 슬쩍 들고 왔다. 내용을 읽던 카인이 풉! 웃음을 터뜨렸고,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와 세실이 카인에게 달라붙었다.

시험 종목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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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험자: 루나프레나 아르테미스

◎ 시험 종목: 단장을 꼬옥 안아주며 ‘아빠.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 라고 말하시오.

◎ 유의 사항: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시 오답 처리한다. 단, 재도전의 기회는 무한으로 주어진다.

————————

바락바락 쿠훌린에게 대들던 루나는 결국 울 것 같은 얼굴로 우리를 돌아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잠깐만 나가 있어.”

어느새 등 뒤로 종이를 숨긴 카인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를 듣고 싶군.”

“······제발.”

나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새끼와 세실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왔다.

방 안에서는 루나의 비명과, 절규와, 쿠훌린의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그러다가 돌연,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달칵······.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한 얼굴로,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는 루나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힘없이 우리를 지나쳐 3층 계단을 오르는 루나의 손에는 그녀의 축 처진 어깨만큼이나 측은하게 늘어진 은빛 망토가 쥐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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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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