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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34

EP.533 막간. 곡예사들의 왕, 왕들의 곡예사

어느 호텔 로비.

흰색의 도복을 입은 남자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잡지를 읽고 있었다.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체격 그리고 뚜렷한 이목구비는 지나가는 사람이면 한 번쯤 돌아볼 정도로 남성적인 매력을 풍겼다.

그의 이름은 리암 살라메. 그는 전원이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수석 졸업생들로 이루어진 ‘레카체프 25’의 1번 단원, 그러니까 단장이었다.

“루디니 이 양반은 여전히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 빌빌대고 있군. 완전히 끝났어. 그 나이에 탈출 마술은 무리지. 그만 설치고 후임 양성이나 할 것이지. 응? 모르타 서커스가 해적들에게 납치당해? 역시 이쪽을 지날 때, 돈이 들어도 비행선을 이용했던 게 정답이었나.”

그가 읽고 있는 잡지는 ‘빵과 서커스’의 최신호로 그저께 막 풀린 것이었다. 그는 잡지의 내용을 하나하나 유심히 읽어 내려가며 경쟁자들의 현황을 확인했다.

“이거 이번 대회는 우리가 쉽게 우승하겠는데?”

리암 살라메는 현재 서커스 업계의 정점에 선 자였다. 그런 그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곡예사들의 왕, 왕들의 곡예사.

그가 곡예사들의 왕이라 불리는 것은 모든 곡예사 중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며, 그가 왕들의 곡예사라 불리는 이유는 세계 각국의 군주들로부터 초청을 받아 그들 앞에서 공연했기 때문이다. 별명이 너무 길기에 그는 보통 왕이라는 의미의 ‘레이’로 불리는 편이었다.

거침없이 잡지를 읽어 넘기던 그의 손이 멈춘 것은 바로 ‘아테레나 노천극장 편’에서였다. 그곳에는 유독 커다랗게 인쇄된 제목 아래에 지난달에 벌어진 세 서커스단의 대결을 조명하는 기사가 있었다.

이미 2주는 지난 소식이었다. 지난 2주 내내 업계는 이 대결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현재 크리스티앙 가이드로부터 3성 서커스단으로 인정받은 곳은 총 3곳이었다. 그중 두 곳이 별이 하나도 없는 서커스단에게 패배한 것이다.

“한트케 교수 때문인가? 아니야. 아무리 그 양반이 명 연출가라 해도 단원들의 기본적인 실력이 없으면 안 될 텐데. 황금 카니발이야 후원자 접대 때문에 그 사달이 났다 해도……. 역시 문제는 바퀴의 서커스겠지? 푸리 다이는 오늘내일하고 있고 클로팽도 너무 늙었지. 후계자가 없어. 그놈의 엄벌주의로 인재들을 너무 많이 쳐냈어.”

바퀴의 서커스는 현 단장인 조르주 클로팽 이후로 모두를 압도하는 인재가 없었다. 아니, 예전에는 제법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제 살길을 찾아 부족을 떠나고 말았다. 당장 클로팽의 아들, 딸만 해도 부족에서 추방당하지 않았던가.

“클로팽의 딸이 진짜 천재였는데. 지금 살아 있었다면 나와 지몬과 더불어서 3강 체제였겠지. 자업자득인가. 푸리 다이가 죽고 클로팽이 현역에서 물러나면 바퀴의 서커스는 끝나는 거지. 얼마 안 남았어.”

지금 와서 없던 천재가 뚝 떨어질 리도 없고, 설사 나타난다고 해도 수십 년간 자리를 공고하게 다져온 기존의 부족민들을 지배하기도 힘들었다.

혹시 모른다. 쫓겨났던 직계 혈족 중 누군가가 압도적인 실력을 등에 업고 귀환한다면 가능성이 있을까?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때, 로비에 도착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한 무리의 젊은 여성들이 내렸다. 레이는 이만 잡지를 내려놓고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어이, 아가씨들, 어제는 정말 재밌었어.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마차는 밖에 불러뒀어.”

그들은 레이가 술집에서 데려온 여인들이었다. 그는 어젯밤에 이들과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는 서둘러 그들을 데리고 나와 마차에 태웠다. 다른 단원들에게 들키기 전에 말이다. 특히나 잔소리 많은 2번이 알았다간…….

“재미 좋았어요?”

마차가 출발하는 것을 지켜보고 돌아선 레이는 그와 같은 흰색 도복을 입은 사람 24명이 호텔 입구에 서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레카체프 25의 단원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이 각 기수의 수석 졸업자였다. 그들은 한심함, 딱함, 경멸 등이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중 2라는 숫자가 적힌 도복을 입은 중년의 여인이 지은 표정이 가장 험악했다.

“뭐야, 어떻게 알고 다들 이렇게 나온 거야?”

“조명팀이 어제 야식 먹으러 나왔다가 선배가 아가씨들 데리고 들어가는 걸 봤더래요.”

단원들 뒤로 파란색 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레카체프 25의 보조 인력들이었다. 레이는 그들 중 몇몇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흘겨봤지만, 그들은 모른 척 짐을 옮기는 일에 열중했다.

“자, 다들 이동 준비!”

2번의 명령에 단원들은 제각기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 레이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2번을 향해 다가갔다.

“그래서 다들 1시간이나 일찍 나온 거야? 내가 여자들 배웅하는 거 보려고? 아으, 쪽팔려. 18기 이하 애들에게 이런 모습 보인 건 처음인데.”

“한 번씩은 이렇게 망신을 당해야지. 봐주니까 이제 시험 전날까지 그 짓을 하고 있냐.”

“뭐, 어때. 어차피 오늘 시험은 이긴 거나 다름없는데. 설마 우리가 ‘여기서’ 질 리가 있겠어?”

레이가 호텔 앞을 바라보며 두 팔을 펼쳤다. 바닥을 빼곡하게 메운 7가지 종류의 블록들이 광활하게 펼쳐진 광장이었다. 저 멀리 솜사탕 같은 구름을 내뿜는 과자 공장과 화려한 색으로 칠해진 성당 건물이 보였다.

이곳은 바로 예테린푸르크. 그들은 오늘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시험을 치를 예정이었다.

“이기는 건 당연한 거고. 재학생들 앞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지.”

“문제없어. 문제없어.”

1번의 능청스러움에 2번도 더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문제없다는 그의 말은 오만한 것도 허세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그는 그런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완벽한 육체에 완벽한 기술, 그리고 완벽한 반사신경. 그가 괜히 ‘왕’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1기 졸업생들은 지금과 달리 교수들이 한 명 한 명 공들여서 자신들의 기술을 전수했다. 그리고 리암 살라메는 그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남자였다.

그는 한때 2번이 가장 동경하고 존경하는 남자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곡예’에 대해서는 지금도 생각이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레카체프 25! 레카체프 25! 레카체프 25!”

“레이! 레이! 레이!”

시험 시간이 되어 체육관에 입장하니 온통 그들을 부르짖는 목소리들로 가득 찼다. 원래도 인기가 많은 그들이었지만, 이곳의 열광적인 분위기는 조금 비정상적일 정도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그들의 고향이었으니까.

불공평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는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서커스 그랑프리에 출전할 정도의 서커스단 중에 레카체프 출신이 없는 서커스단은 별로 없었다. 어떤 곳은 레카체프 25보다 더 많기도 했다.

“다들 활기차네. 좋아, 좋아. 어, 근데 저긴 뭐야?”

경쟁자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는 레이였다. 그런데 그는 체육관에 모인 참가자 중에서 처음 보는 모습들을 발견했다.

“맞다. 선배는 예비 소집 때 나오지 않았지?”

“제비뽑기하러 나까지 갈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쟤들 누군데?”

“유령 서커스단이었던 곳이야. 이번이 첫 시험이라고 하더군.”

서커스 그랑프리의 참가자 중에는 참가 신청만 하고 활동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후원자와의 갈등이나 내부 사정 때문에 서커스단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대회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레이가 가리킨 서커스단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제 본선까지 1년도 남지 않았는데 지금 시작해서 과연 별을 7개나 모을 수 있을까. 그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본 레이는 곧 인상을 찌푸리더니 서커스단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쯧,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그들이 내건 깃발에는 ‘괴물 서커스’라는 이름이 당당히 내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원더스타인의 서커스단이 활약하며 주목을 받으니 모방 전략을 시도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저 흉측한 꼴의 단원들은 어디 노예 시장에서 급하게 끌어모은 녀석들일 것이다. 곡예사로서 기본도 안 된 쓰레기들임이 분명했다.

후원자로서는 이슈 몰이만 해도 홍보가 되니 충분하다 여겼을 것이다. 실제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상당수 그들을 향해 있었다.

레이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인사나 하러 가볼까.”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건들거리는 자세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연미복을 입은 땅딸막한 노인과 고딕풍의 짧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이 서커스단의 대표인 듯했다.

“어이, 거기 늙은이, 당신이 이 괴물들의 주인인가?”

두 사람이 대화를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그렇다네. 내가 바로 이곳의 단장인 이고르라네.”

“잠깐, 서커스단이었어? 난 또 음식물 쓰레기 통에서 기어 나온 부랑자들의 우두머리인 줄 알았는데?”

레이의 말에 단원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이고르는 낄낄 웃었고, 안나는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가 마음에 안 드는가 보군? 응? 리암 살라메, 곡예사들의 왕, 왕들의 곡예사여.”

“날 알아보네?”

“모르는 게 더 이상할 테지. 그래. 뭐가 그렇게 불만이지?”

“오늘 이곳에 모인 관객들은 우리가 내로라하는 서커스단들을 때려눕히고 1등을 하는 장면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이야. 완전하게 압도적으로. 그런데 너희들이 혹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이상한 짓거리를 해대면 분위기가 다 망치겠지, 안 그래?”

레이가 하는 말은 도발이자 경고였다. 그러나 이고르는 그의 말에 화를 내기는커녕 히죽 웃었다.

“꽤 자신 있나 보군. 1등을 하겠다고? 그럼 우리 내기할까?”

“뭐?”

레이는 설마 그가 감히 자신에게 도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간단해. 우리가 이기면 넌 단장직을 때려치우고 우리 서커스단에 들어와서 일해야 한다. 아무래도 우리 규모가 작다 보니 손발이 되어 줄 인원이 좀 필요하거든.”

“크하하, 나를 영입하겠다고? 뭐, 좋아. 그렇다면 우리가 이기면 선물도 있는 건가?”

“원하는 건 뭐든지 요구해보게.”

레이는 씩 미소를 지었다. 그냥 가볍게 경고나 하러 왔는데 일이 제법 재밌게 돌아갔다.

“좋아. 그러면 나는…… 그쪽 아가씨를 내게 하룻밤 빌려줄 것.”

“우리 부단장을?”

“그쪽이 부단장이었나. 그래. 나와 하룻밤 재밌게 놀면 돼.”

이고르는 어떻냐는 듯 안나를 돌아봤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내기 대상으로 팔렸는데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활짝 웃어 보였다.

“나는 상관없어.”

“훗, 이거 기대되는걸.”

레이는 그들이 선선히 내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런 화젯거리를 반가워한다고 여겼다.

“선배, 무슨 이야기하고 온 거야?”

“그냥 간단한 인사. 조금 불타오르네.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잠시 후, 시험이 시작되었다.

***

사람들은 이번 시험에서 첫 번째 트로피는 상당히 빨리 찾아질 거라 여겼다. 레카체프를 무대로 하는 이번 시험은 레카체프 25에게 너무 유리했다.

그들의 출신도 출신이지만 일류 곡예사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협동하며 보낸 경험치가 있었다. 곡예사끼리 육체적 기술적 경합을 치르는 일은 그들에게 일상과 같았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첫 번째 트로피는 30분도 안 되어서 발견되었다. 문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트로피였다. 그것들은 첫 번째 트로피와 거의 동시에 획득되었다. 그것도 같은 서커스단 사람들에 의해서 말이다.

지금까지 트로피를 발견하지 못해서 합격자가 한 팀밖에 없었던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한 팀이 3개를 동시에 집어서 그렇게 된 경우는 처음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유일한 합격자가 레카체프 25가 아니라는 것이다.

3번 경기장. 대나무 숲이 우거진 중앙 정원.

레이스의 함정으로 설치된 대나무 대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사람이 체중을 실어도 유연하게 튕겨내던 것들이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 하나도 무사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을 왕이라 자부했던 남자는 양팔을 대나무에 꿰뚫린 채 경기장 벽에 박혀 있었다. 이고르는 사람들의 경악에 찬 시선을 받으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덜덜 떨리는 상대의 얼굴을 마주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슨 왕이라고 했지, 꼬마야?”

이고르의 괴물서커스단. 그 이름은 금방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

곡예사들의 왕, 왕들의 곡예사 (끝)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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