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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35

EP.534 20. 방황하는 성자 (1)

찰리 일행이 제국을 빠져나온 것은 5월 중순쯤이었다. 경찰에 수배된 그들이었지만 평범한 서커스단으로 위장해 천천히 이동한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경찰도 설마 도망자들이 당당하게 광고지까지 돌려가며 공연을 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장용으로 만든 서커스단이었지만 그들의 공연은 썩 괜찮은 편이었다. 찰리는 레카체프에서 학생 대표를 맡았던 몸이었다. 이런 작은 서커스단을 위한 프로그램을 짜는 것쯤이야 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제국의 국경을 넘을 때는 가짜 괴물서커스단과 찰리 일행 사이의 벽은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찰리를 무리의 리더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함께 무대를 준비하고 공연을 펼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제국을 빠져나왔는데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지? 괴물서커스단은 프라빈에 있다고 하던데……. 거기로 갈 건가?”

“아니, 지금 우리 힘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어. 물론 꼭 싸움이 아니더라도 놈들의 앞길을 방해할 방법은 많지만……. 일단 그곳보다 우선 들려야 할 곳이 있어.”

“거기가 어딘데?”

“내 고향.”

찰리가 석화된 상태에서 들었던 말에 따르면 원더스타인과 관련된 시설이 찰리가 살았던 마을 아래에 있다고 했다. 거기 가면 놈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에게 죽었다던 마을 사람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싶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악당들이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한때 찰리의 가족이요 이웃이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 달이 걸려 찰리는 고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속 깊은 곳에 있어서 찾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10년만인가.”

마을은 잡초와 덩굴에 잠식당해 있었다. 그들은 간신히 흔적만 남은 길을 따라 마을 중앙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백여 구의 백골들이 두서없이 뒤엉킨 채 쌓여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찰리는 백골들을 뒤적여 봤다. 그러나 거기서 누군가를 분간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유골을 결국 통째로 매장하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의 유해를 수습한 찰리는 다음 날 본격적으로 탐색에 나섰다. 사냥꾼 출신인 페렌츠 덕분에 그들은 쉽게 지하동굴의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보안장치는 이미 다 무력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구소로 들어가는 일은 쉬웠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누군가 한 번 쓸어간 듯 남은 자료가 별로 없었다.

원더스타인이 한 짓일까? 뭔가 도움이 될 정보가 없나 기대했는데 허탕이었다.

“베르카! 여기 장작 좀 패주겠어?”

“가, 간다!”

비올라의 외침에 덩치 큰 사내가 쿵쿵거리며 달려갔다. 그는 비올라를 향해 헤벌쭉 웃더니 그녀가 시키는 대로 일하기 시작했다. 한때 악명 높았던 투기장의 흑투사가 지금은 순박한 머슴이나 다름없었다.

“비올라, 비올라, 나 장작 다 팼어!”

“좋아. 그러면 숲속에 뭔가 먹을 만한 게 없나 보러 갈까?”

“응! 비올라, 내 등에 업힐래?”

“안 무겁겠어?”

“비올라는 하나도 안 무거워!”

“하하, 그러면 신세 좀 질게.”

요즘 비올라는 베르카와 부쩍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그를 경계했던 그녀였지만 그의 헌신적인 태도와 천진한 모습에 마음의 벽은 쉽게 허물어졌다. 물론 그녀가 투기장에서의 그를 봤더라면 이처럼 쉽게 경계심을 풀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을을 나서던 두 사람은 곧 언덕 아래에서 올라오는 찰리, 페렌츠와 마주쳤다. 비올라는 애써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맞았다.

“뭔가 찾았어?”

“아니, 싹싹 훑어봤는데 별거 없더군.”

“그래?”

찰리는 차갑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그녀를 지나쳤다. 인형의 집에서 탈출한 이후로 두 사람 사이는 서먹해졌다. 정확히 말해서 원래의 고향 친구 관계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었다.

최면에서 깨어난 그는 지난 몇 달간 두 사람이 연인이었던 일은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비올라는 찰리의 태도가 내심 섭섭했지만, 감히 불평할 수는 없었다. 그의 정신이 개조당하는 데에 그녀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부모님과 살던 집에 들어간 찰리는 집안을 거닐며 추억에 잠겼다. 10살 이전의 일이라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안을 살피다 보니 사소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쪽이었던가.”

그는 어머니가 편지들을 보관하곤 했던 서랍을 떠올렸다. 폐쇄적으로 살던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종종 외부와 연락을 취하곤 했었다.

외부와의 접촉을 엄격하게 금하는 그들이 도대체 바깥의 누구와 편지를 주고받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짐작이 갔다. 아마 그 방황하는 성자 프롤로라는 작자일 것이다.

찰리가 서랍을 찾은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그도 마을에 편지를 한 번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레카체프에서 알라모로 향하던 찰리는 문뜩 부모님께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싶어졌다.

뭔가 성과를 이룰 때까지는 절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였다. 그때 그는 그래도 레카체프에 입학한 것 정도는 자랑할 만하다 싶어서 편지를 보냈다.

우체국에 공식적인 주소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지만 찰리에겐 새로 길들이 부엉이가 있었다. 그는 부엉이를 날려 부모님께 편지를 전했다.

아직 길들이기가 미숙했던 시절이라 그는 부엉이에게 답장을 가져다 달라는 명령은 미처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온 부엉이의 다리에 묶인 어머니 특유의 리본을 보고 부모님이 자신을 응원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있었군.”

찰리는 어머니의 서랍에서 자신이 보냈던 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불과 5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먼 과거의 일 같았다.

그는 그것을 읽고는 서랍에 쌓인 편지들을 살펴봤다. 혹시나 실마리가 될 만한 게 없나 해서였다.

그곳에서 찰리는 유일하게 빳빳한 새 봉투에 밀봉된 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받는 사람 이름이 자신으로 되어 있었다. 찰리는 그것을 재빨리 개봉해 내용을 읽었다.

‘찰리 보아라. 네가 이것을 읽고 있다는 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이 편지를 남긴다. 물론 이건 네게 전해주려는 목적보다 미리 너에게 진실을 털어놓는 연습을 하는 것에 가깝지만 말이다.’

편지에 동봉된 날짜를 보니 이것은 2년 전에 쓰인 것이었다. 19살이 되는 자신의 생일 무렵에 말이다. 어머니는 그가 성인이 되면 그에게 무언가를 밝히려고 했었다.

‘우리는 너의 친부모가 아니다. 네 어머니는 이곳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우리 부부는 홀로 남은 너를 친자식으로 키우기로 한 것이란다.’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의심을 품고 있던 것이었다. 자신과 부모님은 이목구비부터 해서 머리 색깔에 눈동자 색깔까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네가 곡예사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놀랐을지 네가 상상할 수 없을 거다. 왜냐면 네 친어머니도 곡예사였거든. 그것도 아주 대단한 곡예사였어.’

찰리의 친어머니는 ‘바퀴의 서커스’라고 서커스 업계에서 유명한 유랑민 부족 출신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부족민이 아니라 업계의 전설로 알려진 푸리 다이의 손녀이자 현 바퀴의 서커스 단장인 조르주 클로팽의 딸이기도 했다.

‘네 어머니는 죄를 지어서 부족에서 쫓겨난 몸이었단다. 발목 힘줄이 잘린 채 동료들과 떠돌아다니다가 우리와 합류하게 되었지.’

편지를 읽는 찰리의 표정은 복잡했다. 어머니가 부족에서 쫓겨난 일은 분명 안타까웠지만, 자신이 그 대단한 푸리 다이의 피를 물려받은 것은 또 기뻤다. 자신이 곡예사의 길을 걷게 된 것에 어떤 운명마저 느꼈다.

‘우리가 이 마을에 정착하기 전에 네 어머니의 남동생이 우리를 찾아오기도 했단다. 아마 부족에서 쫓겨난 누이가 걱정되었던 모양이야. 그의 말에 따르면 너는 나중에 성인식만 치르면 부족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하더구나.’

어머니는 혹시라도 부족에 돌아가고 싶다면 자신들은 신경 쓰지 말고 돌아가라고 당부했다. 물론 지금의 찰리에게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네 외삼촌도 갓 태어난 딸을 데리고 있더구나.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그도 몇 년 있다가 부족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죽었다고 하던데, 그의 딸은 어딘가 살아 있지 않겠니? 만약, 부족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해도 이 땅에 너와 피로 이어진 사람이 한 명은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외삼촌의 딸이라. 자신에게는 사촌 여동생이 됐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동생이지만, 찰리는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집시가 부족의 보호를 벗어나면 얼마나 비참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나마 자신은 이런 풍족한 마을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그 여자애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일궈온 인연들이 원더스타인 그 남자에게 넘어가면서 느꼈던 절망감. 그 응어리가 얼굴도 모르는 사촌 여동생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풀렸다.

놈의 손길에 더럽혀지지 않은 인연이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었다. 상상 속의 그녀가 ‘오라버니!’라고 외치며 자신에게 안기는 것을 느꼈다. 가슴 속에서 훈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네 친아버지 말인데…… 네가 성인이 되면 말해줘도 된다고 허락받았단다. 애초에 이 편지를 쓴 것도 그 때문이니까. 아마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는…….’

이어지는 내용을 읽은 찰리는 작은 탄식을 토했다. 어머니의 말대로 그는 찰리가 들어본 적 있는 자였다.

방황하는 성자, 클로드 프롤로.

떠돌이 성직자로서 부랑자 무리와 함께 지내던 그는 찰리의 친어머니와 가까워지게 되었고 자식까지 봤다. 원래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기로 했으나, 프롤로가 ‘방황하는 성자’의 자리에 오를 계획을 세우면서 그는 예정을 바꾸었다. 그 정도 자리에 오를 성직자가 범죄자 집시 따위와 혼인하고 자식까지 생겼다는 것은 큰 흠이 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내 아버지란 말이지.”

찰리는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과 어머니를 이 외딴곳에 내버려 둔 일로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당시에는 그게 서로에게 최선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버렸다고는 하지만, 이후로도 그는 꾸준히 마을과 연락하면서 찰리의 안위를 살폈다고 했다. 실제로 어머니의 서랍에서 발견된 편지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성자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한 짓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선량한 랫맨을 죽이고 그 이름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는 마을 사람 전체가 공범이었다. 당장 모든 것을 솔직하게 밝히겠다고 한 어머니만 해도 이 마을에 감춰진 더러운 비밀에 대해서는 편지에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를 찾아간다면 그가 반가워할 거라고 했다. 자신이 곡예사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아마 좋은 일자리도 알아봐 줄 거라고 했다.

실제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롤로는 혈육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신이 가출했을 때도 어머니를 질책하며 계속 자신의 행방을 수소문했던 것 같았다.

‘그래. 악당이면 어때. 누구나 그 정도 죄는 짓고 사는 거잖아. 쥐 새끼 한 마리 죽었다고 법석 떨 필요 없어. 놈은 그 악마 남매들 패거리의 일원이잖아? 사람을 돕고 다닌 것도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었겠지.’

찰리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사촌 여동생과 아버지. 아직 그에겐 가족이 남아있었다. 어머니와 외삼촌의 최후를 생각하면 조금 꺼림칙하긴 했지만, 조부와 증조모도 있었다.

소담에서의 일을 정리한 찰리는 번슈타인과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사기꾼답게 잔머리가 잘 돌아갔다. 처음 찰리의 목표를 들었을 때는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지만, 그와 함께하고 그의 능력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점점 그의 일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내가 볼 땐 여기가 최고야. 카탈리냐의 수상 극장. 마침 괴물서커스단의 진로를 보면 아마 5번째로 시험을 치를 곳이 되겠군?”

찰리는 번슈타인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금과 인력이 더 필요했다.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의 가족들이 그의 힘이 되어줄지 몰랐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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