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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37

EP.536 20. 방황하는 성자 (3)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이 끝난 지 2주가 넘었는데도 괴물서커스단은 여전히 프라빈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지난 시험을 통과한 서커스단 대부분이 아직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다음 시험 장소인 베가스로 향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시에라마드레 산맥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그곳을 넘기 위해서는 ‘베르너 가도’라 불리는 곳을 통과해야 했다.

시에라마드레 산맥은 평범한 사람은 열 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길을 잃는다는 곳이었다. 평균 높이가 5천 미터가 넘었고, 해발 8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도 여러 개 있었다.

그곳에 근접한 비행선은 온갖 장치가 이상을 일으키며 추락하기 일쑤였다. 일전에 프라빈 상공에 나타난 ‘드래곤’의 주 서식지도 바로 그곳이었다.

그런 위험한 마경을 안전하게 넘는 데는 2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는 산맥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산악순찰대원을 고용해 안내를 받는 것이었고, 둘째가 바로 베르너 가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우선 첫 번째 방법인 순찰대원을 고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들은 주로 산맥 내부를 탐사하는 중요한 일에 동원되곤 했다. 일개 서커스단이 그냥 산을 넘기 위해 그들을 고용한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거액을 부르거나 그냥 무시해버릴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산맥을 통과하는 사람 대부분은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폭 50m, 높이 10m, 총합 길이 100km. 산맥을 관통하는 초거대 터널. 전 세계의 교통과 물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곳이기에 ‘세계의 목구멍’이라는 별명을 가진 곳. 그것이 바로 ‘베르너 가도’였다.

베르너 가도가 만들어진 것은 바로 고대 콜룸 제국 시절이었다. 물론 고대의 기술력으로 이와 같은 대공사를 할 수 없었다. 프라빈에 남아 있는 다른 고대 유적들처럼 베르너 가도 역시 조인족 케찰린들의 기술력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베르너 가도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서커스단은 먼 남해를 돌아서 가야 했다. 원래는 괴물서커스단도 그 선택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서커스 그랑프리 참가자인 모르타 서커스가 얼마 전에 그곳을 지나가다가 해적에게 납치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모르타 서커스는 괴물서커스단이 칼디르 신년축제에서 마주친 적 있는 서커스단이었다. 전원이 줄타기 곡예사이자 인형술사로 이루어진 7개의 전문 서커스단 중 하나였다.

그곳은 단원들이 천장에서 수십 개의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해 공연을 펼쳤다. 무대에 사람이 직접 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은막 서커스와 유사한 곳이었다.

그들이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서커스단 사람들도 남해를 이용하기를 꺼렸다. 다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베르너 가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일반 여행객들이 가도를 이용하려면 상당히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가도는 물류의 이동만으로 이미 수요가 넘쳤기 때문이다.

가도는 철도를 깔기에 충분히 거대했지만,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현시대의 열차가 통과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터널이 매연으로 가득 찰 것이다.

심지어 가도 상에서는 가축의 이동도 크게 제한되었다. 그들이 흘리는 분변 때문에 터널의 위생이 악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소들을 대량으로 들여보냈다가 터널 깊은 곳에 메탄가스가 차서 사람들이 집단으로 질식사한 적도 있었다.

괴물서커스단은 7월 중반에 가도를 통과하는 표를 구했다. 오늘이 6월 말일이니 이제 2주 정도 있다가 출발하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괴물서커스단은 지난달의 고생을 보답하듯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여기저기 관광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여가를 즐겼다.

원더스타인 한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 녀석아, 대화가 이제 며칠 안 남았다!”

원인은 바로 가스통이었다. 그가 그렇게나 벼르고 있던 ‘세계 가로수 경연대회’가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3월 말에 프라빈에 도착했을 때부터 원더스타인을 닦달했던 그였다. 이제 시험도 끝났겠다. 거리낄 게 없어진 그는 제자를 붙잡고 매일같이 들들 볶아댔다.

“그래서야 1등 할 수 있겠냐! 네가 떨어지면 토마토 온실의 정원사인 내 이름에 먹칠하는 거란 말이다!”

가스통이 지금까지 충실히 서커스단을 따라왔던 것은 모두 이번 일을 위해서였다. 6대 극장 중 하나가 프라빈에 있는 것을 봤을 때부터 그는 이번 일을 계획했었다.

“저는 정원사가 될 생각이 없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요.”

“어허, 날 믿고 이번 한 번만 딱 진심으로 해봐라. 세상이 달라 보일 거라니까?”

계속해서 억지를 부리는 가스통을 보고 원더스타인은 이제는 그를 내보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부족할 때야 손 하나 느는 셈 치고 그를 데리고 다녔지만, 이제는 단원도 많이 늘어서 그의 부재가 그렇게 아쉽지 않았다.

‘지게에는 타기 싫어’ 퀘스트의 페널티가 아프긴 했지만, 그동안 데볼루트를 상당히 쌓아둔 터라 충분히 감당할 만했다.

하지만 그가 결단을 내리려고 하면 가스통은 귀신같이 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전략을 바꿨다. 눈물을 글썽이며 불쌍한 척을 하는 것이었다.

“설마 이 늙은 몸으로 몇 개월을 고생하며 널 도왔는데, 한 달 남짓 공부하는 것 때문에 불만을 품은 건 아니겠지? 크흑, 서럽구나, 서러워. 혹시 지금 와서 날 서커스단에서 쫓아내려는 건 절대 아닐 거야. 그렇지?”

그가 그렇게 나오면 원더스타인은 그의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스통은 나이를 헛먹은 게 아니었다. 그는 원더스타인이 누구보다 ‘동정심’에 약한 인간이라는 걸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채찍질에 그가 마음을 독하게 먹을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태도를 바꿔 눈물에 호소하곤 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잠시만요…… 휴, 알겠습니다……. 하는 데까지 해보죠.”

이런 식이니 원더스타인이 아무리 용을 써도 가스통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덕분에 그는 팔자에도 없는 원예 공부를 하루에 14시간이나 해야 했다. 2주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말이다.

“내가 저번에도 말했잖아. 활엽수는 수간(樹幹)의 황금 비율을 좀 더 높게 잡아야 한다고 말이야. 얼마만큼? 잎자루의 길이 만큼! 그리고 침엽수는 가지를 칠 때 피보나치 수열만큼 간격을 두라고 했지! 눅눅해진 껍질을 대패질할 때는 정남향과 태양의 입사각을 확인하라고 분명히 경고했는데…….”

일단 제자의 기세를 꺾고 나면 가스통은 언제 눈물을 보였냐는 듯 다시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그때마다 원더스타인은 노인네의 영악함에 속으로 욕을 내뱉곤 했다.

“왜 이렇게 이해가 늦는 거냐. 이런 건 원래 이론이 아니라 다 타고난 감각으로 하는 건데……. 그렇게나 재능 있는 놈이……. 이 녀석, 일부러 꾀를 부리는 건 아니겠지?”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원더스타인이 정원 일에 재능이 있어 보였던 것은 어디까지나 생물의 기전을 꿰뚫어 보는 바이오맨서의 눈과 특정 기술의 숙련도를 끌어 올려주는 스킬북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것들이 그 분야와 관련된 지식과 통찰력까지 키워주는 건 아니었다.

그것을 모르는 가스통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일 것이다. 천재인 줄 알았던 놈이 둔재처럼 굴고 있으니 말이다.

원더스타인은 그 사실을 그에게 밝혀볼까도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래 봤자 별로 바뀌는 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오히려 ‘지식과 경험만 키우면 되는구나!’ 하고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파고들 확률이 높았다.

“좋다. 이걸로 아침 수업을 마치겠다. 이다음은 그저께도 말했듯이 대회 예행연습이다. 이 지점과 이 지점 사이에 있는 가로수들을 네가 직접 관찰하고 어떻게 다듬을지 그 전략을 한 번 세워봐라. 보자 앞으로…… 8시간 뒤에 검사하마.”

“8시간이요? 그러면 그동안 스승님은 뭘 할 겁니까?”

“나? 포구 쪽에 먹거리 장터가 열린다고 해서 거기 가보기로 했다. 한트케 교수가 그러는데 거기 전통 주막들이 술을 아주 맛있게 담근다더군.”

과연 숙소 입구로 가보니 몇몇 단원들이 마차를 타고 가스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괴물서커스단 사람들은 요즘 삼삼오오 모여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원더스타인 본인을 제외하고 모두 알뜰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단장님, 고생 많이 하십시오!”

“저희는 술 한잔하고 오겠습니다!”

“올 때 네 것도 몇 병 사 오마!”

가스통을 비롯한 단원들을 태운 마차가 떠났다. 몇몇 단원은 약 올리듯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원더스타인은 한숨을 내쉬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최대한 지치고 실망한 티를 팍팍 내야 했다. 그래야 가스통을 속일 수 있었다.

이윽고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원더스타인은 늘어뜨렸던 어깨를 폈다. 그리고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소리쳤다.

“자유다!”

그는 제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는 바로 음향실을 켰다. 건너편에서 유라크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장님, 어떻게 됐어요?”

“성공입니다! 스승님은 떠났습니다! 앞으로 8시간은 안 보일 겁니다!”

“그럼 어서 가로수길로 오세요. 그 과제니 뭐니 하는 거 이미 제가 거의 다 해놨어요! 베끼기만 하면 돼요!”

“알겠습니다! 서둘러 가죠! 지금 가면 15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네! 그 정도면 마무리까지 끝날 듯해요!”

“그렇게나 빨리! 금방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사랑합니다, 유라 씨!”

“헤헷, 저도요!”

가스통이 그저께 과제를 예고했을 때부터 원더스타인은 그것을 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유라크네를 미리 그곳으로 보내 가스통의 과제를 풀도록 한 것이다.

유라크네는 단원 중 유일하게 원예에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에 가스통이 정원 일을 얘기할 때마다 그의 말 상대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의 기술은 일류에 못 미치지만, 지식이나 눈썰미는 원더스타인보다 나았다. 그녀는 가스통이 내준 과제를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가스통이 두 사람의 작전을 알아차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라크네는 지난 사흘간 조금씩 시간을 쪼개어 가로수길 앞을 지나며 과제를 풀었다. 그리고 원더스타인도 어제오늘 괜히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듯 스승과 신경전을 벌이며 그의 의심을 피했다.

덕분에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원더스타인은 8시간의 자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다. 그 시간은 온전히 유라크네가 소유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정원 공부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그는 만족스러웠다.

“아빠! 찍찍! 나랑 색칠 공부할래? 찍찍!”

숙소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신나서 날뛰던 원더스타인은 한 명 더 남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홍색 털을 지닌 랫맨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바로 슈슈였다. 태어난 지 1년이 조금 넘은 랫맨 소녀.

그녀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으면 원더스타인을 아빠라 부르곤 했다. 그녀의 엄마인 쿠쿠가 원더스타인이 자신을 임신시켰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단원들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원본의 과거에 대해 거의 모르는 원더스타인도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슈슈야, 난 스승님이 준 과제를 해야 해서 나가봐야 한단다.”

“찍찍! 그게 그렇게 재밌어? 찍찍! 딸을 혼자 둘 만큼?”

“어, 물론이지. 그리고 말인데……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난 네 아빠가 아니란다.”

“찍찍! 그렇게 밀어내도! 찍찍! 소용없어! 난 아빠 딸이니까! 찍찍!”

슈슈는 그렇게 뻔뻔하게 말하고는 거실 바닥에 대뜸 엎드려 색칠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보며 질린다는 듯 한 번 고개를 내젓고는 복장을 갈아입고 숙소를 나섰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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