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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39

EP.538 20. 방황하는 성자 (5)

원더스타인은 어쩐지 카렌을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그녀 말마따나 성인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흔하디흔한 일일 뿐인데도 자꾸 그녀의 눈치를 보게 됐다. 큰 죄를 저지르다 들킨 기분이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예전 서커스단에 있을 때는 더한 꼴도 봤는데요. 새벽에 홉스 방에 난입했는데 오빠가 여관집 딸이랑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던 적도 있었고, 오빠들 몇이 안 보여서 찾으러 갔다가 술집에서 수영복 입은 여자들을 주무르고 있던 것도 봤고, 몰래 창녀촌 가는 아저씨 뒤를 밟아서 딸인 척 가게에 난입한 적도 있었고, 또 한번은 옆 숙소에 여자 무용단이 머무른다고 해서 제가 염탐꾼으로 잠입해서…….”

카렌의 경험담을 듣고 있으니 원더스타인은 정신이 어질해졌다. 홉스가 제발 그녀의 인생을 구해준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좀 데려가 달라고 사정하던 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거기서 인간들이 뭐라고 떠들고 있었는지 알아요? ‘땅재주의 덕목이 뭐냐! 몸을 곧추세우고, 강직하게 버틴다!’ 무용단 언니들이 그걸 듣고 대꾸하는 게 더 대박이었는데…….”

아저씨들이 술자리에서 떠들 법한 음담패설이 이어지자 더는 버티기 힘들었던 원더스타인이 손을 내저었다.

“그, 그만합시다. 알겠습니다. 카렌 양은 참으로 특이한 환경에서 자랐군요.”

“앗, 단장님 의외로 부끄럼쟁이? 완전 선수인 줄 알았는데.”

“아니, 이 경우는 다르죠! 어른의 사정과 별개로…… 비밀연애를 하다가 동료에게 들킨 거잖아요! 어쨌든…… 저랑 유라크네 씨에 대해 눈치챈 건 카렌 양밖에 없다는 거죠?”

“네!”

“비밀로 해주면 고맙겠군요.”

“알았어요. 자작님 건도 포함해서 말이죠?”

“네. 물론입니다. 그분과의 관계도…… 잠깐, 그건 또 어떻게……?”

경악하는 원더스타인을 보며 카렌은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핫! 찍었는데 맞췄다! 홉스가 예전에 이거에 걸려서 사귀던 언니한테 차인 적이 있었는데! 와, 이게 먹힐 줄 몰랐네. 정말 쉬운 남자네요, 단장님!”

당했다. 원더스타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건 그렇고 진짜 그렇게 선 긋는 척은 그렇게 해놓고. 자작님이랑도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니…….”

“제, 제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특히 유라크네 씨에겐…….”

원더스타인은 등 뒤를 확인했다. 다행히 유라크네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애초에 음소거를 적용해 놓았기에 카렌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들릴 일은 없었다.

“와, 설마 자작님이랑 유라 언니 두 분 다 모르는 거예요?”

“……네.”

원더스타인은 카렌이 경멸을 표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그것이 일반적인 여자들의 반응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지은 표정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욕 나오네.”

그녀는 짜증과 감탄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원더스타인은 그제야 그녀가 남자들 틈에서 자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여자를 끼고 노는 일에 대해 여성으로서 도덕적, 생리적 거부감을 느끼기보다 동경심과 질투를 품는 듯했다.

“나중에 들켰을 때 제 이름이나 팔지 마세요. ‘카렌 양은 알고 있었는데.’ 이러면 죽어요, 바람둥이.”

“무, 물론이죠. 그리고 오해가 조금 있는 것 같은데. 저는 바람둥이가 아닙니다. 그저 두 사람의 상처를 달래주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된…….”

“우엑, 전형적인 바람둥이의 변명. 더러워, 퉤퉤. 자작님과 유라 언니만 불쌍하지.”

카렌은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어 보였다. 원더스타인은 말이 더 나오기 전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뭐라도 드시렵니까? 중간에 배고파서 룸서비스를 시켰는데…… 아직 손도 안 대서 말이죠.”

“말 돌리기는. 뭐, 저야 좋죠.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카렌은 탁자 위에 있는 음식과 음료를 허겁지겁 입에 쓸어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뇌물로 고작 식사 한 끼면 너무 싼데…….”

“……부족하면 뭔가 더 요구하시던가요.”

원더스타인은 체념한 표정으로 포도주를 잔에 따라 들이켰다. 음식을 우물거리며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곧 뭔가 떠올랐다는 입에 든 것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대신 저랑도 섹프해요.”

“푸훕!”

원더스타인은 입에 든 포도주를 쏟아냈다. 그는 사레들린 듯 거칠게 기침을 내뱉다가 간신히 호흡을 되찾고는 그녀를 노려봤다.

“카렌 양…….”

“왜요? 저는 안 돼요?”

“절대 불가입니다.”

“아, 정색하지 마요. 농담이에요. 농담. 말했잖아요. 전 아직 남자랑은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요. 그건 그렇고 이런 반응도 되게 오랜만이네요. 옛날 서커스단에서 다른 오빠들은 이제 이 정도 장난을 쳐도 잘 놀라지 않던데.”

“어지간히도 놀려댔나 보군요.”

원더스타인은 카렌이 떠난다고 했을 때, 단체로 나와서 싱글벙글한 얼굴로 배웅하던 파파엘 서커스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저, 그런데……”

한참을 식사에 집중하던 카렌이 입을 연 것은 탁자 위에 마련된 음식을 거의 다 해치웠을 때쯤이었다. 그녀는 그를 놀릴 때의 능청스러움은 어디 가고 조금 주저하듯이 말을 꺼냈다.

“그렇게 별로예요?”

“뭐가 말입니까.”

“단장님 보기에 저 같은 애…….”

원더스타인은 그제야 그녀가 아까 내뱉은 ‘절대 불가’라는 말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남녀 사이에 민망한 화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당당하게 굴었던 것은 어린 소녀가 남자들 사이에서 기가 눌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취해야 했던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다. 그것은 환경에 대한 적응이라고 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합리화, 현실도피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무던한 성격이라 해도, 남자들 틈에 있으면서 당혹스럽거나 충격적인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을 피하려고 그런 감정들을 모두 무시하거나 마음속 깊숙이 묻어버렸다.

방어 기제라는 게 꼭 레이나나 마야처럼 겉으로 날을 세우는 강철 갑옷 같은 종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카렌처럼 밝은 척하며 엉뚱한 행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의 해묵은 상처들은 동성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유연하고 질긴 가죽 갑옷 아래 멍들고 딱지가 붙은 자국이 보이는 것이다.

홉스는 오빠로서 여동생의 그런 상태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위와 같은 심리학 용어는 모르더라도 그녀가 마야나 엘라와 어울릴 때 보이는 모습이 사람으로서 훨씬 자연스럽다는 것은 느꼈을 것이다.

“제가 봐도 별로인 거 알아요. 파파엘에도 또래 단원들이 몇 명 있는데, 걔들도 그랬어요. 제 성격 보면 시집 다 갔다고.”

카렌은 일부러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음식을 벅벅 긁어먹었다. 겉으로는 거칠고 활기차 보였던 그녀는 가끔 이렇게 울적한 소리를 하곤 했다. 원더스타인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가 답했다.

“확실히 남자가 보기에 카렌 양은 별로긴 하죠.”

“……그, 그렇죠? 뭐, 저, 저도 그런 것 같아서…….”

애써 담담한 척 횡설수설하는 카렌. 원더스타인은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몸매가 너무 남자애 같잖아요. 자고로 여자라면 유라크네 씨 정도는 돼야죠.”

그의 말에 카렌이 입을 헤 벌리더니 곧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리쳤다.

“유라 언니랑 비교하면 누가 여자 노릇 할 수 있겠어요? 이거 열 받네! 두 사람 관계 확 다 떠벌리고 다닐까 보다. 자작님에게도…… 응? 잠깐, 자작님도 가슴은 작은 편인데……. 마야랑 거기서 거기…….”

“어, 그건…… 자작님은…… 도, 돈이 많아서?”

“…….”

“…….”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카렌 쪽이었다. 그녀는 피식 웃더니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와, 그러면 단장님에게 선택되려면 저는 가슴을 키우거나 돈을 많이 벌어야겠네요?”

“그래야……겠죠?”

“흥. 그렇게 돼도 단장님 같은 바람둥이에겐 붙을 생각 없어요.”

카렌은 심술 난 목소리로 말했지만, 표정은 상당히 개운해 보였다. 그녀도 원더스타인이 왜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는지 그 의도를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상담하러 오세요. 그게 계약 조건이었잖아요?”

“뭐, 딱히 없지만. 내키면 그럴게요.”

다시 평소대로 삐딱한 자세로 돌아간 카렌을 보고 원더스타인은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

마침 별빛의 효력이 끝났고, 웃는 남자도 회복되었다. 평정심을 되찾은 그는 방금 그녀와 주고받았던 대화에서 고민하고 있던 수수께끼의 단서를 잡을 수 있었다.

“전 가볼게요. 애들이랑 만날 시간 됐거든요. 재미나게들 노세요.”

카렌은 베란다로 나가더니 훌쩍 뛰어내렸다. 그가 잡은 호텔 방은 3층이었지만 그는 그녀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보다 더 높은 곳에서도 손쉽게 낙법을 펼치곤 했다.

그녀가 떠나고 원더스타인은 바닥에 떨어진 지도를 주웠다. 아까 그녀가 난입하면서 놀라 떨어트렸던 것이었다.

보르조미 (유레클‘나’엘‘니’쿠아마)

보르조미 옆에 적힌 글자들은 괴물서커스단의 여성 단원들의 앞글자를 딴 것이었다. 보르조미 시점에서 작성되었기에 이후에 합류한 니카와 나타샤는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보르조미가 어떤 도시인지 생각해 보면, 단원들의 이름이 나열된 순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떠올리기 쉬웠다. ‘유’가 맨 앞에 있고 ‘마’가 맨 끝에 있는 게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아마 그때 단체로 목욕하면서 엘라는 서열을 확실히 한 모양이었다.

지도를 물끄러미 들여다본 원더스타인은 안타까운 한숨을 토했다.

아나이스의 가슴이 쿠쿠보다 작았구나.

***

호텔을 나온 카렌의 발걸음은 들어갈 때와 비교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솔직히 원더스타인의 뒤를 밟아 현장을 적발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도 못 하고 무작정 객실에 난입했다. 단장님 앞에서 여유 있는 척은 다 했는데 돌이켜 보면 자신의 입에서 나왔던 말은 좨 농담에, 헛소리에, 음담패설이었다.

아마도 놀라서 그랬던 것 같았다. 설마 단장님과 유라 언니가 정말 그런 관계일 줄은 몰랐으니까. 끽해야 데이트라고 생각했지.

확실히 당황스럽긴 했다. 그러나 그것이 질투나 부러움은 아니었다. 어쩌면 파파엘에 있을 때, 주변 어른들이 여자랑 뒹구는 꼴을 워낙 많이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인간들이 순진한 소녀를 완전히 닳고 닳은 아줌마로 만들어 놨단 말이야.’

잠시 후, 친구들과 약속한 장소에 도착한 카렌은 재빨리 고민을 털어 버렸다. 애들 앞에서 괜히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대형 사고가 터질 수도 있었다.

얘네들은 ‘진짜 남자’라고는 전혀 모르는 애들이었다. 아직 이성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진 풋풋한 소녀들이었다. 카렌은 친구들의 동심을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었다.

“마양! 레이낭! 엘랑!”

카렌은 평소처럼 혀 짧은 목소리를 내며 친구들에게 달라붙었다. 마야는 질색하며 그녀를 밀쳐냈으며, 레이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엘라는 그 모습들을 보고 킬킬 웃더니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아 주었다.

“좀 달라붙지 마.”

“카, 카렌? 가, 가슴을 자꾸 주무르면…….”

“야, 애들 너무 괴롭히지 마. 얘네들은 사람이랑 접촉하는 데 아직 서툴다고.”

카렌은 여느 때처럼 마야의 염동력에 패대기쳐질 때까지 그들을 괴롭혀댔다. 마야는 뒤통수를 붙잡고 울먹이는 카렌을 보고 가볍게 코웃음을 쳤고, 레이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며 앞으로 그러지 말 것을 침착한 목소리로 당부했으며, 엘라는 그녀를 다독여주는 척하더니 한 번 더 머리를 쥐어박았다.

“너무해. 너희들!”

카렌이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다시 친구들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다들 그녀를 대하는 것을 보면 그녀를 못 말리는 어린애 취급하는 듯했다.

바로 이것이 카렌이 친구들의 마음을 지켜주려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녀는 아직 색이 바래지 않은 친구들 틈에서 노는 게 즐거웠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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