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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4

54화 입단 시험 (2)

54화 입단 시험 (2)

세실은 홀로 방 안에 앉아 있었다.

루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의 시험 종목은 같았다. 진심으로 은월의 단에 들어오고 싶느냐는 물음.

데미안은 일말의 고민 없이 그렇다고 했다. 반면 카인은 단을 나가고 싶을 때는 언제든 나갈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답변을 들은 후에야 입단 의사를 밝혔다.

투틋. 투트틋······.

창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등에 걸친 은월의 망토가 불편했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느낌이었다. 쿠훌린이 직접 둘러준 망토이기에 아직 벗지 않았을 뿐.

카인의 부릅뜬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세실은 단검을 쥐며 중얼거렸다. 도려내고. 싶어. 머리를 열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들을, 모조리.

쿠욱.

창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세실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눈앞이 붉었다. 단검이 젖어 있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쿡. 쿠욱. 쿡.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은 계속 들려왔다. 세실은 그 소음이 낯익었다. 네몬의 웃음소리. 돌연 목에서 소름 끼치는 감촉이 느껴졌다. 차가운 칼날. 그리고 피처럼 붉은 눈.

세실은 창 아래로 달려가 몸을 웅크렸다. 피에 젖은 안구를 손으로 닦아내며 단검을 고쳐 쥐었다. 소리는 이제 등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목표로 다가오고 있어. 쿡. 쿡. 쿡. 비웃음을 흘리며.

시커먼 손이 창틈으로 밀려든 순간 세실은 단검을 내뻗었다. 그러나 손목이 움켜잡히는 감각을 느끼며 단검을 놓쳤다.

“흐앗. 깜짝이야.”

이어 히죽 웃으며 등장한 얼굴.

그 얼굴을 보자마자 세실의 시야가 부옇게 흐려졌다.

세실! 놀란 목소리와 함께 이마 위로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세실은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눈에 비치는 풍경은 어지러이 휘날리는 은빛의 가닥과 그 사이로 스미는 붉은 달빛이었다.

.

.

.

비가 흙먼지를 씻어낸 듯 밤공기는 맑았다.

자신의 옷을 찢어 세실의 머리 상처를 지혈한 쿠훌린은 세실과 함께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세실이 알지 못했던 은밀한 통로를 통해 성벽을 지나, 말없이 걷고 있었다.

빽빽한 대나무 숲이 나타났다. 쿠훌린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세실.”

세실은 말없이 쿠훌린을 바라봤다.

자신을 마주 보는 그의 얼굴에서는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블러디드를 발현해 봐.”

세실의 눈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힘없이 고개가 떨구어졌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누구도 나를 볼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세실의 머리카락 사이로 익숙한 손길이 파고들어 왔다.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던 단단하고 투박한 손. 그 손이 세실의 머리를 이리저리 헝클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세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세실.”

웅크려 앉은 쿠훌린은 미소하고 있었다.

데미안의 눈과 닮은 그의 푸른 눈동자는 언제나와 같은 빛으로 세실을 보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어둠이 살고 있어. 때로는 그 어둠에 기대거나, 숨고 싶을 때도 있지. 하지만 유혹에 흔들려서는 안 돼. 가장 어둡다고 생각했던 곳 옆에는 늘, 그보다 더한 어둠이 숨어있기 마련이거든.”

쿠훌린의 손길은 따뜻했다.

그 온기가 세실의 머리를 지나, 이마를 지나,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앞으로 너는 많은 일을 겪게 될 거야. 그것이 너를 두렵게 하고, 슬프게 하고, 분노하게 만들 거야. 그래서 네가 다시 어둠에 기대거나 숨고 싶어지도록 만들 거야. 그러나 네가 만약 그 어둠을 똑바로 마주한다면, 고통을 견디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면, 언젠가 너는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의지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세실의 어깨가 흔들렸다. 점점 더 세차게 들썩였다. 억눌러왔던 감정이 봇물 터지듯 폭발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작은 심장은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여렸다.

“오늘부터 매일 밤, 나와 함께 이곳에서 훈련하는 거야. 그리고 더욱 강해지는 거야. 너 자신과, 네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켜낼 수 있도록.”

세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또 끄덕였다.

비 갠 하늘의 틈새로 내리는 따스한 달빛이 두 사람의 은빛 망토를 하나로 물들이고 있었다.

***

이튿날, 보란 듯이 은월의 망토를 두른 루나가 우리를 대동한 채 온 마을을 뛰어다녔다.

“아하하하! 나도 이제 단원이야! 자랑스러운 은월의 단원이라고!”

어제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으로 루나는 잘도 뛰어다녔다. 저래서는 앞도 잘 안 보일 것 같은데.

신이 나 소리치던 루나가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마을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어젯밤 나는 세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남몰래 세실의 방을 찾았었다. 그런데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 빼꼼 열어 보니, 세실을 번쩍 안아 든 쿠훌린이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 올리며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세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안심했다. 저렇게나 행복해 보이는 미소라니.

‘카인 녀석도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고.’

세실이 발현했던 그림자 도약은 블레오파드의 블러디드가 반쯤 섞여 있지만, 그럼에도 오직 세실만이 발현할 수 있는 기술이다. 카인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이야기.

“트리스탄! 나와 봐! 보여줄 게 있어!”

루나가 어느 집 대문을 쾅쾅 두드린다 했더니, 트리스탄의 집인 모양이었다.

문을 열고 나온 것은 트리스탄의 어머니였다.

“응? 루나. 왜 아직 여기에 있는 거니?”

“네?”

“오늘 입단 시험을 치른다고 다들 훈련장에 모였잖니. 아버지께 듣지 못했어? 가만. 벌써 망토를 받았네?”

“뭐라고욧!”

빽! 소리친 루나가 씩씩대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얼마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넓은 훈련장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대부분 은빛의 망토를 둘렀다. 저만치 단상 위의 쿠훌린을 찾아낸 루나가 부리나케 달려가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러는 게 어딨어요! 어제는 날 속인 거예요? 이럴 거면 나도 오늘 시험 치르면 되는 거였잖아요!”

쿠훌린은 루나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내가 봐도 한 대 때리고 싶을 만큼 얄미운 표정으로.

“말 좀 해보라고요! 이런 건 불공정해요! 직권 남······ 아악! 벨락! 이거 놔요! 아파요!”

루나는 벨락의 손에 끌려갔다. 덤으로 은월의 망토까지 빼앗겼다.

“아악! 안 돼요! 어떤 수모를 겪으며 받은 건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짐짓 근엄한 표정을 한 쿠훌린이 연대 책임이라며 우리의 망토까지 모두 회수 조치했다. 저 빌어먹을 심술쟁이. 처음부터 이럴 셈이었던 게 분명했다.

“지금부터 입단 시험을 치르겠다! 루나! 데미안! 세실! 카인도 재시험을 치르도록! 종목은 일대일 대전이다!”

나는 살짝 불안해졌다.

시험 참가자들의 실력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뒤로하며, 참가자들을 통찰해 보기로 했다.

우선은 루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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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프레나 아르테미스 [14세], [Lv.43]

◎ 속성: [은월]

◎ 특성: [놀라운 친화력], [■■■], [배려심], [통솔자], [발달된 감각], [■■■], [■■■], [승부욕], [불굴의 정신], [검의 재능]

◎ 적성: [검술 Lv.5], [■■■ Lv.3], [■■ Lv.3], [궁술 Lv.4], [■■■ Lv.3], [투척술 Lv.5], [승마술 Lv.3]

◎ 일반 스킬: [강격 Lv.3], [■■ Lv.3]

◎ 전용 스킬: [은월송환 Lv.3], [은월무 L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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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루나프레나 아르테미스네.’

루나는 귀여운 공주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루나프레나는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여신 같다. 지금의 루나는 ‘루나’가 잘 어울리고, 소설 속의 루나는 ‘루나프레나’가 더 잘 어울리는 느낌.

‘레벨은 43.’

과연 대단했다. 세실보다는 낮지만, 아스트레아 대륙 전체를 뒤져도 14세의 나이에 40레벨 대에 도달한 이는 거의 없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40레벨부터는 어엿한 기사 등급이니까.

‘속성은 역시 은월.’

‘놀라운 친화력’ 특성이 눈에 띈다. 저 특성보다 지금의 루나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당연히 ‘검의 재능’도 있고.

검술 적성은 무려 5레벨.

그리고.

‘은월송환!’

은월송환은 돌진기다.

달빛의 마력을 빌려 순식간에 원하는 위치로 달려드는 저 기술은 심지어 이동 중에는 무적 상태가 된다. 쿠훌린이 눈부신 빛을 뿜으며 쇄도해 미스트를 날려버렸던, 바로 그 기술.

그런 엄청난 기술이기에 은월송환에는 큰 제약이 따른다. 오직 달이 떠올랐을 때만 발현할 수 있고, 기술의 위력이 달의 크기와 밝기에 비례한다. 게다가 한 번 시전하면 내일의 달이 떠오를 때까지는 다시 시전할 수 없다.

그런 큰 제약에도 엄청난 기술임에는 변함이 없다. 어지간히 강한 적도 은월송환에 제대로 맞으면 전투 불능에 빠져 버리니까.

‘은월무도 있네.’

은월무는 연속공격기다. 마치 춤을 추듯 쉴 새 없이 적을 공격하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 은월송환과 달리 달이 뜨지 않은 환한 낮에도 발현할 수 있지만, 달빛 아래서는 위력이 더욱 증가한다.

다음으로 세실을 살펴봤다.

‘49레벨.’

갑자기 2레벨이 상승했다.

아무래도 어젯밤 쿠훌린과의 일로 마음의 짐을 한결 덜어낸 듯하다. 제발 루나와 세실만은 대전 상대로 만나지 않기를.

이번에는 카인을 봤다.

‘36레벨.’

쿠훌린과의 훈련으로 카인은 1레벨이 올라 36레벨이 됐다.

나도 최근 1레벨이 올라 33레벨이 됐다. 만약 카인과 맞붙으면 어떻게 싸워야 할까, 생각하며 남은 참가자들을 통찰했다. 대부분 20레벨 대였고 몇 명인가 30레벨 대가 보였다.

‘트리스탄이 39레벨?’

생각보다 많이 높았다. 기사 등급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니. 그러나 납득할 수 있다. 트리스탄은 훗날 루나를 주축으로 한 새로운 은월의 부단장이 되는 인물이니까.

루나와 세실 외에 40레벨 대의 참가자는 없었다. 이 둘만 피하면 된다. 가능하면 카인과 트리스탄도.

나머지는 동기화 스킬을 활용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2레벨의 동기화는 100분 후 자동 소멸하며, 카피한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지속 시간이 추가로 감소한다.

동기화 소멸 후 20시간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번에 2레벨로 업그레이드된 동기화는 지속 시간이 10분 증가했고, 재사용 대기 시간은 4시간 감소했다.

‘리메이크 스킬은 쓰면 안 되겠지. 아니, 어차피 RP가 부족하구나.’

자연스레 내 생각은 아스트레아의 천칭에 닿았다.

혼돈을 발현한 이후, 아스트레아의 천칭 메시지는 두 번 더 떠올랐었다. 퀵피를 타고 바람노래 초원을 달렸을 때와, 달빛나무 언덕에서 루나를 처음 보았을 때.

게다가 두 번 모두 크게(10도 이상) 기울었다. 기운 방향은 당연히 오른(현실)쪽일테고.

즉, 현재 나의 리메이크의 위력은 최소 47퍼센트 약해졌다는 거다.

“대진표를 발표하겠다!”

우렁찬 목소리에, 나를 포함한 훈련장의 모든 사람이 쿠훌린을 돌아봤다.

쿠훌린이 히죽 웃으며 외쳤다.

“첫 번째 대전 참가자는 루나! 그리고 세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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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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