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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4

53화. 

우리는 다 같이 골든게이트 빌딩을 나왔다.  

엘리는 찌뿌둥한지 기지개를 쭉 켰다. 

“하암! 나오니까 좋네요.” 

이러고 있으니 특정 부위가 유독 강조되는 것 같아 시선을 두기가 마땅치 않다. 정장을 입어도 볼륨감은 감출 수가 없구나. 

엘리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두 사람 덕분에 공짜 휴가도 받았네요.” 

골든게이트 아시아 지사장님께서는 우리가 홍콩에 머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직원을 붙여주었다. 그 직원이 바로 현주 누나와 엘리다. 

명칭은 외근이지만, 사실상 휴가인 셈이다. 

좋아하는 엘리와는 달리 현주 누나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아, 일도 많은데 외근이라니.” 

“왜, 누나? 이번 기회에 쉬면 좋잖아,” 

택규의 말에 현주 누나는 담배를 빼물며 말했다. 

“일을 안 한다고 일이 사라지진 않아. 그저 밀릴 뿐이지. 돌아가 보면 책상 위에 서류가 한 트럭쯤 쌓여 있을 걸.” 

“······.” 

골든게이트는 주당 100시간 업무가 기본이라고 했나? 

하루에 거의 14시간씩 일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게 최소한이라는 것. 

한때는 나도 골든게이트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는데, 이젠 낙하산으로 넣어준다고 해도 싫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확실히 나도 배가 불렀구나.  

정문에는 우리가 타고 온 S클래스 마이바흐가 대기하고 있었다. 엘리는 직원에게서 차키를 받아들며 말했다. 

“자, 그럼 어디부터 갈까요?” 

택규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홍콩하면 디즈니랜드죠.” 

현주 누나는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저번에 갔잖아.” 

“또 가도 재밌잖아.” 

“······.” 

너만 재밌겠지. 

난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빅토리아 피크로 가죠. 좀 있으면 해질 테니, 야경 보면서 저녁 먹어요.” 

“그게 좋겠네요.” 

엘리는 운전을 하며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빅토리아 피크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우리는 아래 주차를 하고 관광객들과 함께 피크트램을 타고 올라갔다.  

레스토랑에 들어간 우리는 야경이 잘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엘리는 유창한 광둥어로 씨푸드와 와인을 주문했다. 

현주 누나는 나에게 물었다. 

“올해는 복학한다며?” 

“예. 당분간 할 일도 없으니까요. 공부는 계속 해야죠.” 

내 말에 누나는 웃음을 지었다. 

“네가 거기서 배울 게 있을지는 모르겠네. 그래도 재미는 있을 거야. 나도 학교 다닐 때가 좋았는데.”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좋았지. 1학년 때부터 매일 같이 담배랑 술에 절어서 새벽에 집에 기어들어왔으니. 아침에 신발장에 쓰러져있는 거 보고 시체인 줄 알고 엄마가 경찰에 신고할 뻔했지.” 

“닥쳐.” 

“넵.” 

난 엘리에게 물었다. 

“대학 생활은 어땠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공부한 기억 밖에는 없어요. 혼자서 유학 간 거라 친구도 별로 없었고.” 

엘리는 홍콩에서 국제학교를 다녔고, 어머니 나라인 영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홍콩의 야경이 펼쳐졌다. 해안가에 늘어선 빌딩들이 형형색색의 빛으로 물들었다. 

“그래서 아시아의 전설적인 투자자를 직접 만나본 소감은 어때?” 

현주 누나의 물음에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대단하던데요.” 

만나서 얘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그가 투자에 대해 가진 소신과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어째서 사람들이 비싼 돈 내며 워렌 보트와 점심을 먹으려 하는지 알 것 같다. 

내가 체이스 사우스웰을 직접 만나서 악수하고 대화를 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 

난 아까 그가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런데 좋은 소식이 뭐예요? 혹시 들은 얘기 있어요?”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누나랑 엘리 월급 올려주는 거 아니야?” 

엘리는 맞장구쳤다. 

“앗! 그럴 수도 있겠네요.” 

“월급이 늘어나면, 일도 늘어나겠지.” 

“히잉.” 

엘리는 울상을 지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 그동안의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현주 누나는 주로 우리가 투자한 기업들의 현황에 대해 말했고, 엘리는 한국 대학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리고 택규는 여전히 아무 말이나 하고 있었다. 

말을 할 때마다 매를 벌고 있는 걸로 봐서 30분 뒤쯤에는 현주 누나한테 쥐어터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나처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법이지. 

엘리는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다른 손으로는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술기운 때문인지 볼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귀엽다.  

“저도 진후와 함께 대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예?” 

혹시 취한 건가? 

현주 누나에게 시선을 보내자, 누나는 그런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골든게이트는 어떻게 하구요?” 

“그만 두고 한국대학교에 입학원서 넣으면 되죠. 저도 경영학과 들어갈래요.” 

“······.” 

골든게이트에 들어가고 싶어서 경영학과를 다니는데, 골든게이트를 그만두고 경영학과에 들어가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엘리는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복학하면 그 유리라는 후배랑 같이 수업들을 거 아니에요?” 

“헉······.” 

어떻게 아직까지 그 이름을 기억하지? 

내가 당황하는데, 택규가 말했다. 

“그렇겠죠. 둘 다 2학년이니. 얼마 전에 수강신청도 같이 했데요.” 

“아니, 그건 내가 잘 몰라서 부탁한 거고.” 

엘리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호오. 그 얘기 좀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난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홍콩 야경은 언제 봐도 아름답네요.” 

“말 돌리지 말구요.” 

“······예.” 

* * * 

사흘 동안의 홍콩 여행을 끝마친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소파에 누워 있는데, 유리에게서 톡이 왔다. 

띠링! 

[선배 한국 왔어요?] 

난 답장을 보냈다. 

[방금 돌아왔어.] 

[학교는 언제 와요?] 

[내일 갈게.] 

오늘도 갈까 했는데, 귀찮아서 안 가기로 했다. 어차피 수강 정정기간이기도 하고. 

눈을 감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으악! 안 돼!” 

“왜 그래?” 

택규는 나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야야, 지금 큰일 났어!” 

“뭔데? 갑자기 연준이 금리를 100BP 올리기라도 했어?”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대체 뭔데?” 

“니가 직접 봐봐.” 

택규는 룰루웹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기사 하나를 열었다. 

[로스트 판타지M 개발 중단] 

리닉스펜타곤이 모바일 RPG게임 로스트 판타지M의 개발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리닉스펜타곤은 이전에 출시한 라쿤테일즈와 파로스톤2의 흥행실패로 모바일 시장에서 철수하며 자연스레 프로젝트를 중단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리닉스펜타곤 측은 콘솔게임 제작에 매진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으며, 사전에 개발자들과 충분히 상의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로스트 판타지의 아버지이자 전 펜타곤의 경영자였던 이치카와 시게루는 회사의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개발자들과 함께 퇴사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게 뭐야?” 

택규는 비분강개하며 소리쳤다. 

“로스트 판타지M의 개발이 중단 되었다니까!” 

“아니, 그러니까 로스트 판타지가 뭔데?” 

내 물음에 녀석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차에 붙어있는 캐릭터가 로스트 판타지12 주인공 루시잖아. 전에 말해줬는데 벌써 까먹었어?” 

“······.” 

기억도 안 난다. 

난 일단 택규를 진정시켰다. 

“개발이 왜 중단되었는데?” 

“거기에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스토리가 있어.” 

“아, 그래? 그럼 안 듣는 걸로.” 

“그냥 들어.” 

녀석은 구질구질하게······  아니,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로스트 판타지는 펜타곤이라는 일본 게임사에 제작하던 게임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콘솔게임 시장의 강자였다. 그러나 게임시장의 축이 온라인과 모바일 쪽으로 이동하며, 콘솔게임을 만들던 업체들의 사정이 어려워졌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펜타곤은 동종업계에 있는 리닉스와 합병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리닉스펜타곤이라는 거대 회사가 탄생했다. 

그러나 합병 이후에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사양 산업은 아니지만 콘솔게임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았고, 뒤늦게 뛰어든 온라인게임 시장에서는 미국의 아이스스톰이나 한국의 LC소프트 같은 게임사들에 밀려 참패했다.  

결국 야심차게 모바일게임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두 게임 연속으로 망하며 사상최대 분기별 적자를 기록했다. 

만약 한 번 더 실패하면, 경영진이 전부 물갈이 되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라이트 유저가 많은 모바일과는 달리 콘솔게임 시장에는 매니아 층이 두텁다. 리닉스펜타곤은 다수의 매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는 만큼 적당한 콘솔게임을 만들어서 내놓으면,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 

······라고 판단한 경영진은 로스트 판타지M의 개발을 중단시키고, 팀을 해체해 콘솔게임 개발 쪽으로 투입시키기로 했다. 

이에 초창기부터 로스트 판타지를 개발해왔던 이치카와 시게루는 격렬하게 반발하며 회사를 나가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게 완전 시게루 옹이 뒤통수 맞은 거라니까.” 

펜타곤과 리닉스는 동등하게 합병했다.  

어느 한쪽이 인수하는 게 아닌 만큼 누가 경영을 맡느냐가 문제였는데, 펜타곤의 경영자인 이치카와 시게루는 기꺼이 리닉스 쪽에 감투를 넘겼다.  

원래 개발자 출신이었던 만큼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것도 못하게 생겼다. 

택규는 분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 시게루 옹이 고작 10억 엔이 없어서 개발을 중단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10억 엔이 100억 원이라는 건 알고 있지?” 

“그러니까! 고작 100억 원 때문에!” 

“······.” 

100억이 애들 장난이냐? 

난 이해가 안 돼서 물었다. 

“그게 출시가 안 되면, 그냥 다른 게임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자 택규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로스트 판타지는 다른 게임과는 달라.” 

“뭐가 다른데?” 

“꿈과 모험, 그리고 희망이야! 

“······.” 

이쯤 되니 도저히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여기 룰루웹 로스트 판타지 게시판을 봐. 지금 단체로 리닉스펜타곤에 항의메일 보내려고 서명 받고 있어. 여기 edm이라는 게이머는 아예 내일모레 본사 앞에 1인 시위하러 간다고 일본행 티켓까지 구매했어.” 

정말로 비행기 티켓과 일본어로 쓴 항의피켓을 인증한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으음, 어지간히 할 일이 없는 모양이다. 백수인가?  

택규는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이쯤 되면 눈앞에 뭔가 보이지 않아?” 

“뭐가 보여?” 

“‘로스트 판타지M 초대박’ 같은 거.” 

“아니. 전혀.” 

예지가 보여주는 게 맞긴 해도, 맞는 걸 다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매일 같이 홀로그램이 수천만 개씩은 떠오르겠지. 

택규는 결심한 듯 말했다. 

“안 되겠어. 그냥 우리가 투자하자.” 

“응?” 

“전세계 로스트 판타지 유저를 위해 시게루 옹에게 개발비 대주자는 거지. 그래봐야 100억 밖에 안 하잖아.” 

“······.” 

돈 벌어서 어따 쓰나? 덕질하는 데 써야지. 

본인이 이렇게 원하는데, 말리기도 미안하다. 100억 정도면 여유가 있기도 하고. 

“잠깐 기다려봐.” 

난 K컴퍼니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깍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물론이지. 얘기해.] 

난 바로 본론을 말했다. 

“일본에 리닉스펜타곤이라는 게임회사가 있고, 거기에 이치카와 시게루라는 개발자가 있어요. 그 사람에게 연락해서 오택규가······ 아니, OTK컴퍼니가 개발비 10억 엔을 투자하겠다고 전해주세요.”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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