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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40

EP.539 20. 방황하는 성자 (6)

카렌이 괴물서커스단에 들어온 지 벌써 2주나 흘렀다. 그녀는 유들유들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 덕도 금방 서커스단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전부터 단원들과 안면을 터놓았던 것도 한몫했다.

그녀는 부단장으로서의 경력을 날로 먹은 것은 아닌지 사람들을 이끄는 데도 소질이 있었다. 엘라가 앞에 나서서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강하게 휘어잡는 스타일이라면 카렌은 옆에 붙어서 살살 꼬드기는 스타일이었다.

그것은 부모 없는 애들 사이에서 보육원의 터줏대감으로서 골목 대장 행세를 했던 엘라와 자기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인정받으려고 발버둥 쳤던 카렌 사이의 경험 차이라 할 수 있었다.

카렌의 진가는 특히 또래들끼리 모여 놀 때 발휘되었다.

지금까지 엘라는 사회성 떨어지는 두 친구 사이에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야와 레이나는 언뜻 보면 비슷한 타입으로 보였다. 둘 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의 사고방식은 꽤 달랐다. 마야는 애초에 성격이 무심해서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라면, 레이나는 혹시나 다른 사람과 마찰이 생길까 봐 자신을 억누르는 것이었다. 마야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여과 없이 그대로 내뱉는 편이었고, 레이나는 해야 할 말도 주변 눈치를 보고 속에 꾹 눌러두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싸움은 레이나가 참고 참다가 결국 폭발해버리는 것으로 시작되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 사이가 험악해질 때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진화하고자 나서는 것은 엘라였다.

그들 셋 말고 다른 사람이 있으면 구도가 달라지긴 했다.

클라라가 있으면 마야와 레이나가 부딪치는 일은 줄어들었다. 대신 그 이상으로 클라라와 마야가 부딪치는 일이 늘어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클라라가 일방적으로 레이나를 감싸고 그녀를 대신해 마야와 맞선다는 말이 맞았다.

“다들 문제없지? 그럼 이렇게 하기로 하자.”

“잠깐! 레이나는 거기에 동의 안 하는 것 같은데?”

“저, 저요? 전 괜찮아요. 다들 괜찮다면…….”

“그 말은 ‘나는 솔직히 별로예요’라는 뜻이야. 맞지?”

“아……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요. 선배 말대로 저는 생각이 조금 다른…….”

“너 이상해. 아깐 괜찮다며. 왜 자꾸 이랬다저랬다 해?”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사소한 문제도 클라라가 있으면 금방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레이나를 위한답시고 나서서는 오히려 그녀를 더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건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선호가 아니라 효율의 문제죠.”

“알았어.”

니카에게는 마야를 통제할 수 있는 언변과 머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들끼리 몰려다니는 것을 피곤해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그들이 노는 데 끼곤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진력이 났는지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휴, 전 그냥 혼자 있을게요.”

그녀는 감정적인 교류에 금방 피로를 느꼈다. 남자였던 시절에 ‘능력’에 너무 의존해 사람을 대했던 나머지, 사소한 사회적 신호로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10대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버티기 힘들어했다.

그녀가 대화 상대로 가장 편안하게 여기는 대상은 아나이스였다. 첫 만남의 인연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말이 잘 통했다.

아나이스 역시 감정적인 문제나 신변잡기 따위에 시간을 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신문을 읽으며 사회, 경제, 국제 정세 등을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언니들 화났어?”

루엘로가 세 사람 사이에 끼면 그나마 분쟁이 크게 번지진 않았다. 그러나 그러면 정작 루엘로가 그들 눈치를 보며 불안해했다.

엘라로서는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 하나 더 느는 셈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루엘로를 끌어들이는 것은 그녀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자제했다.

상황이 이러니 엘라 혼자 레이나와 마야 사이에서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두 사람을 내버려 두면 되지 않냐고 유라크네가 조언한 적이 있었지만, 엘라는 그건 또 싫었다.

그녀는 천성이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이 대장질(?)할 집단이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서커스단 안에서 같이 놀 또래라곤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골머리를 앓아도 어디 갈 때는 항상 둘을 데리고 다니려 했다.

이런 와중에 카렌이 들어오니 엘라는 그제야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클라라처럼 우격다짐 식으로 하지 않아도 레이나의 마음을 살필 줄 알았고, 니카처럼 머리를 쓰지 않아도 마야를 다독일 수 있는 넉살이 있었으며, 필요하다면 분위기를 위해 스스로 망가지는 것도 개의치 않아서 루엘로처럼 진짜 어린애 다루듯이 조심히 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가는 거야?”

“즉석 사진사들의 거리.”

“즉석 사진?”

“사진기와 감광지를 이용해 즉석에서 사진을 뽑아준대.”

“어? 잠시만. 그거 예전에 너희들이……?”

“맞아. 우리도 비슷한 일을 했었지.”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 장사 대결을 할 때, 괴물서커스단의 주력 상품이었던 것이 바로 마야가 그려주는 즉석 초상화였다.

원래 그림 한 장 그리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마야에게는 시야에 담긴 대상을 즉각 그림으로 그려내는 스케치북이 있었다. 게임의 캡처 기능을 구현한 것이었는데, 덕분에 그때 마야는 통상의 수십 배나 되는 속도로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별로야.”

사진사 거리에 도착한 마야는 캔버스에 걸린 사진들을 보며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이 시대의 사진은 아직 품질이 조악했다.

“그건 햇빛에 감광지를 쬐고 있는 거야. 뒤에 봐. 화가들이 마른 사진 위에 붓칠을 더하고 있지?”

사진은 일종의 밑그림이었다. 거기에 화가들의 솜씨가 더해지자 썩 괜찮은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래도 내가 더 잘 그려. 더 빠르고.”

“알아. 하지만 그러면 넌 사진에 못 나오잖아. 오늘은 넷이 다 같이 찍어보자고.”

“잠깐, 그러면 미리 말했어야지. 옷도 좀 예쁜 것으로 입고 나왔을 텐데.”

“문제없어. 의상실 능력을 사용할 거니까.”

그들은 원더스타인에게 단원들의 옷을 갈아입히는 능력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엘라가 ‘단장 대리’의 힘으로 그 능력을 빌려 쓸 수 있는 것도.

의상실은 유용한 기능이긴 했이나 고작 옷을 갈아입는 것뿐이었다. 사용한 시간에 따라 데볼루트가 소모되었기에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엘라가 졸라서 특별히 허락을 받아냈다.

“이 옷 저 옷 바꿔 가며 여러 콘셉트의 사진을 찍어보는 거야. 어때? 괜찮겠지?”

“확실히.”

“재밌겠는데.”

“좋아. 어서 해보자!”

비록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10대 여자애들이었다. 예쁜 옷들을 입어 가며 사진을 남기는 일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탈의실로 쓸 부스 하나를 잡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뭘 입어 볼까?”

“다들 의견 내봐.”

“음, 수영복?”

“뭐, 뭣?”

“레이나, 이 계집애. 자기에게 유리한 소재부터 꺼내는 거 봐.”

“가슴 자랑은 적당히 해.”

“그, 그런 의도로 말한 거 아닌데……. 그, 그냥 특별한 복장이라고 생각해서…….”

“괜찮긴 한데 처음부터 수영복은 민망하다. 사진사도 당황할 거야.”

“그러면 레이스 달린 고급 드레스는 어때? 콘셉트는 4명의 공주로 하고.”

“좋아.”

엘라는 단장 대리의 능력을 사용해 그들에게 드레스를 입혔다. 네 사람은 거울 앞에 서서 복장을 바꿔 가며 이런저런 동작을 취해봤다.

“와, 대박. 이것 봐. 마야 완전 인형 같지? 그치?”

“맞아. 진짜 예쁘다.”

“평소에 이렇게 입고 다녔으면 길만 걸어가도 여러 남자 상사병 걸려 죽었지.”

“……그 정도야?”

“와, 되묻는 거 재수 없어.”

“이왕 이렇게 된 거 평소에 입고 다니는 그 꼬질꼬질한 옷들은 그냥 버려.”

“레이나가 이렇게 칼 같이 말하는 거 처음 봤어.”

“아, 아니, 나는 그냥 안타까워서…….”

그렇게 복장을 갖춘 4명은 탈의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부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진사와 화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의 미모도 미모지만 이런 화려한 드레스는 제대로 입으려면 몇 명의 도우미가 필요했고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그런 옷을 불과 10분 만에 갈아입고 나오니 그들이 신기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러면 여기 보세요. 셋 하면 찍습니다. 하나둘. 아, 네. 좋습니다. 공주님들, 그러면 이번에는 다른 자세로. 네. 그렇게…….”

어느새 구경꾼들이 그들이 있는 부스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복장을 차례로 바꿔 가며 사람들 앞에 섰다. 어디서 옷들이 계속 튀어나오는 건지 놀라는 사진사에게 마법이라고 설명하니 쉽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렇게 공주가 되었다가, 해적이 되었다가, 레카체프 학생이 되었다가, <울펜슈타인 백작>의 등장인물이 되었다가, 숲속 동물 친구들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때로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기도 하고 자지러지기도 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아, 동물 복장 되게 마음에 드네. 마지막에 이걸로 한 번 더 찍자. 다른 동물로 바꿔서.”

“좋아. 그러면 이번에는 뭘 입고 찍어볼까? 좋은 생각 없어?”

“나는 경찰 복장 해 보고 싶어.”

“오, 그거 괜찮다. 그러면 난 요런 식으로…….”

“엘라, 넌 이번에 미니스커트 금지.”

“엥? 왜?”

“사람들 시선이 너무 쏠리잖아.”

“맞아. 천박해.”

“쳇, 또 그놈의 천박 타령. 솔직히 말해. 너희들 내 다리가 예뻐서 질투하는 거지? 시선 쏠리는 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네. 오히려 좋지 않아?”

“난 부담스러워.”

“무대에 서는 사람이 왜 그래. 하여간. 근데 카렌에게는 왜 말 안 해? 쟤도 노출 만만치 않은데.”

“아까 구경꾼들 말 보니까 남자앤 줄 알더라.”

“뭐? 너무해!”

“자자, 그럼 경찰로 하는 거지? 종류는 많으니까 하나씩 고르자.”

그들은 지금까지 여러 나라와 도시를 지나왔다. 덕분에 경찰이라고 해도 다양한 복장을 구할 수 있었다.

엘라는 한때 파란색의 샤를로티아 경관으로 분했고, 레이나는 방한용의 털모자가 달린 제국 경찰 옷을 입었고, 마야는 붉은 베레모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국가근위대 옷을 입었으며, 카렌은 넓은 챙이 달린 모자에 견장이 달린 흰색 망토를 둘러 프라빈의 경비대로 분했다.

“아, 근데 그냥 이렇게 찍기 뭔가 아쉬운데.”

“확실히. 범죄자 역할도 한 명 하면 좋을 거 같아.”

“여경에게 붙잡힌 남자 범죄자로.”

“카렌?”

“싫어! 나는 이 복장 마음에 든단 말이야!”

“잠깐, 그냥 마야가 환상으로 한 명 만들면 되잖아.”

“아, 그러네. 연극에서도 엑스트라들 잔뜩 만들었잖아.”

친구들의 요구에 마야는 금방 환상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거울 앞에 아무리 자세를 잡고 봐도 영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끼리 찍는 사진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 끼어 있으니 영 이상하네.”‘

“그래. 차라리 없는 게 낫겠어.”

“아니, 그냥 아는 사람으로 하면 안 되나? 우리 단원 중에 제일 범죄자 상으로…….”

“범죄자 상이라면…….”

“미노바 씨?”

네 사람이 동시에 한 명의 이름을 외치자 그들은 조금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봤다. 워낙 인상이 험악하게 생겨야지.

“만드는 건 할 수 있어. 그런데 내 환상은 입력한 대로 움직이는 거라서. 사람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거나 표정을 짓는 건 힘들 거 같아.”

“아, 그래서 뭔가 어색해 보였던 거였나.”

“연극 때는 잘 했잖아?”

“그때는 그전에 다 미리 짜고 연습했었어.”

“그래? 어, 그러면 그 고양이는? 월리라고 했나?”

“월리?”

그때, 마야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녀가 폴리곤이 아닌 환상 마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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