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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41

EP.540 20. 방황하는 성자 (7)

“단장님의 환상을 만들어 볼게.”

마야는 마치 태어나서 처음 시도해 본다는 듯 짐짓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더스타인의 환상이라고?

나머지 세 사람이 떠들던 것을 멈추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우선 마음의 환상.”

마야 앞에 희끄무레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그는 그들을 둘러보더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여 보였다. 그 표정과 동작은 정말 실제의 원더스타인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여기에 폴리곤 보정.”

원더스타인의 환상이 뚜렷해졌다. 현실적인 움직임 위에 현실적인 형태가 씌워졌다. 여기까지가 통상적인 환상의 영역이었다.

“레이 트레이싱.”

원더스타인의 환상이 주변 광에 맞춰 변화했다. 그의 피부, 입술, 눈동자, 머리카락 등에서 실제와 같은 질감이 느껴졌다. 카렌이 감탄의 의미로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실체화.”

원더스타인의 입술에 손을 뻗었던 레이나는 깜짝 놀랐다. 정말 실제와 같은 감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엘라는 그녀의 눈앞에 있는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꾹 찔러 봤다. 탄탄한 근육의 느낌이 손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마지막으로 목소리.”

“안녕하세요, 여러분?”

원더스타인이 모자를 벗어 그들에게 인사했다. 세 사람은 입을 헤 벌린 채 그를 바라봤다. 진짜 그가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와, 정말 자연스럽네.”

“실제 사람 같아.”

“막 자기 자신이 진짜 단장님이라 착각하는 건 아니지?”

카렌의 말에 엘라와 레이나는 조금 겁먹은 눈으로 환상을 바라봤다. 마야는 문외한들의 헛된 걱정을 재빨리 덜어주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만든 환상에 불과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뿐이야. 물론 내가 이 환상을 진짜라 믿고 진짜처럼 대한다면 조금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어.”

“너 어째 자신감 넘친다?”

“환상은 환상일 뿐이니까. 아직 부족한 건 많아. 체온이라든지, 체취라든지, 체액이라든지…….”

“체액?”

엘라의 반문에 마야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녀는 허둥대며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어, 어쨌든 나는 내가 겪어 보지 않은 단장님은 바로 표현할 수 없어. 보통의 환상 마법사는 다른 경험을 투사해 즉석에서 대상에게 새로운 것을 시킬 수 있다지만, 나는 특별히 훈련하지 않으면 내가 보고 들은 대로만 표현 가능해. 예를 들어, 나는 단장님의 흥분한 숨소리나, 신음,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어서 그걸 마음의 환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아니, 없을 거야.”

“잠깐. 어째 예시가 이상한걸.”

“뭔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 같은데?”

“마야, 너 설마 이전에도 단장님 환상을 만든 적 있는 거 아니야?”

세 사람이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친구를 바라봤다. 마야의 새하얀 피부 위에 물감을 몇 방울 던져 넣은 것처럼 붉은색이 번져 나갔다.

“어, 어디까지나 후, 훈련이었어…….”

“…….”

“저, 정말 순수하게 마법 증진을 위한 거였다고…….”

마야가 드물게 자신의 행동을 변명했다. 세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모습은 다들 처음 보는 것이다.

“……그렇다는데?”

“그냥 믿어 주자.”

“그래! 덕분에 오늘 재미난 구경을 하게 됐잖아?”

“다, 단장님에게는 얘기하지 마…….”

마야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눈동자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눈물을 글썽이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다, 당연하지!”

“뭐하러 이런 걸 일일이 일러바쳐?”

“맞아! 여자들끼리 의리가 있지!”

세 사람이 앞다투어 맹세하자 그제야 안심한 마야는 본격적으로 환상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에게 몇 가지 동작을 시켜 보았다. 그는 마야의 기억 속에 있는 그를 모방해서 그대로 행동했다. 아까 만든 엑스트라 환영에서 느껴졌던 위화감은 이제 느끼기 힘들었다.

“진짜 단장님 같다.”

“그래. 단장…… 잠시만. 우리 이걸 뭐라고 부르지?”

“단장님의 환상? 가짜 단장님?”

“계속 그렇게 부르긴 이상하잖아. 내가 이름을 붙여줘야겠어.”

엘라가 자신 있게 나서자 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레이나는 그녀의 기이한 작명 센스가 발동하기 전에 뭔가를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잠깐! 내가 생각해둔 이름이 있어!”

“뭔데?”

“자, 잘스타인 씨 어때?”

존 잘스타인.

그 이름을 듣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것은 예전에 ‘다섯 곡예사’를 준비하던 중에 네 사람이 장난처럼 원더스타인에게 붙였던 별명이었다.

“마음에 들어. 난 좋아.”

“음, 확실히……. 내 ‘원붕이’보다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조금 정도가 아닌데.”

그렇게 환상에 이름까지 붙인 그들은 사진 찍는 작업에 다시 몰두했다.

경찰 복장을 갖춘 그들은 부랑자 복장을 한 잘스타인 씨를 바닥에 무릎 꿇리고 각자 그럴듯하게 그를 제압하는 자세를 취했다. 사진사는 재밌는 그림이 나왔다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들은 차례로 다음 아이디어를 꺼내 들었다. 아까만 해도 소재가 거의 다 떨어져 가는 느낌이었는데 잘스타인 씨 한 사람이 추가되니 재미있는 발상이 계속 떠올랐다.

잘스타인 도련님과 그의 시녀들.

가난한 잘스타인 씨와 그의 딸들.

늑대 잘스타인과 숲속 동물 친구들.

등등.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아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다.

레이나가 벌인 단독 행동이 시발점이 됐다. 다른 친구들이 잠시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사이, 그녀 혼자 몰래 탈의실에 들어와 잘스타인 씨의 몸을 더듬다가 발각된 것이다.

마침 그는 ‘금발 태닝 양아치 잘스타인과 해변의 미녀들’을 찍기 위해 피부를 갈색으로 그을리고 수영복 차림으로 대기하던 중이었다.

“내가 만든 환상인데 설마 만져도 모를 줄 알았어?”

“아, 아니, 나는 순간적으로 손이 가서…….”

“처음에는 어깨를 만졌지. 그다음 등 근육에 목, 가슴, 복근까지. 그걸 ‘순간적으로’라고?”

마야의 지적에 레이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설마 그렇게 세세히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거 어쩐지 수상하다 싶었어. 잘스타인 씨에게 수영복 입혔을 때부터 눈이 뒤집히더라고. 침까지 흘리고…….”

“그, 그건 실수였어!”

“치사하게…… 잠깐! 카렌, 너 뭐, 뭐 하는 거야?”

엘라가 비명을 내지르며 펄쩍 뛰었다. 카렌을 돌아본 마야와 레이나 역시 그녀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서로 싸우는 동안 잘스타인 씨에게 다가간 카렌이 그의 트렁크 수영복을 슬쩍 들춰보고 있었다.

“아니, 그냥 물건 크기 좀 가늠해 보려고.”

“뭐, 뭣?”

“무, 무슨 미친 소리를 저렇게 태연하게!”

“아, 난 옛날 우리 파파엘 단원들 거 다 봤거든. 목욕도 같이했는걸? 그래서 단장님은 어느 정도일까 해서…….”

“미, 미친!”

“사, 사생활 존중! 이, 인격 보호!”

“레이나 넌 그런 짓을 해놓고 그런 말이 나오니?”

그때, 뭔가 떠오른 엘라가 진정하라는 듯 두 팔을 벌려 보였다.

“얘, 얘들아, 괜찮아. 마야가 아까 말했잖아! 직접 관찰하지 못한 건 구현 못 한다고. 저 수영복 속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야.”

“아, 그렇게 되나?”

레이나가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려는데, 카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있던데?”

“뭐, 뭐라고?”

“엘라가 갑자기 비명을 질러서 제대로 못 봤지만, 확실히 달려 있었어.”

세 사람의 고개가 이번에는 마야를 향해 홱 돌아갔다. 한 번 해명해 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 대신 입을 꾹 다문 채 그들의 시선을 슬금슬금 피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봤어?”

엘라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마야는 우물쭈물하며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 그게…….”

“솔직히 말해!”

레이나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소리쳤다. 그 살벌한 기세에 마야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예, 예전에 잠시…… 시, 실수로…… 투명화를 썼다가…….”

“실수? 실수라고?”

“어떻게 실수해야 투명화를 써서 단장님의 알몸을 훔쳐보는 거지?”

“설마 훔쳐보기가 취미?”

“이 음란마귀가!”

“앗, 투명화로 사라지고 있어!”

“붙잡아!”

세 사람이 동시에 그녀를 향해 튀어 나갔다. 마야는 본능적으로 환상을 움직여 공격을 방어했다.

“주인님, 제 등 뒤로.”

세 사람을 막아선 것은 잘스타인 씨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자신들을 막아선 것보다 그가 마야를 부르는 호칭에 더 경악했다.

“주, 주인님이라고 했어?”

“잘스타인 씨가 마야를 주인님이라고 불렀다!”

“끼에에엑!”

세 사람은 광분하여 마야를 향해 돌진했다. 레이나가 가면을 쓰고 ‘부전여전’으로 원더스타인의 육체적 힘을 끌어왔다. 그러자 잘스타인 씨의 환영이 단번에 찢겨나갔다.

마야는 염동력을 써서 그들을 막으려고 했으나 눈으로 좌표를 계산하고 마력을 발산하기까지의 몇 초는 숙련된 곡예사들인 그들이 접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카렌이 땅을 미끄러지듯 다가가 마야를 뒤에서 붙잡았고, 엘라가 그녀의 배에 있는 힘껏 주먹을 갈겨 넣었다.

“흐악!”

마야의 허리가 휘었다. 마력이 흩어지며 한바탕 폭풍이 탈의실 안을 휩쓸었다.

“말해! 이 계집애!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야?”

“이실직고할 때까지 두들겨 패.”

“주인님이라니! 주인님이라니! 끼엑!”

“아, 아냐! 그런 거 아니야! 다, 당황해서 환상이 그만 허, 헛소리를…….”

“아까 마음의 환상은 네가 경험한 대로 나온다고 했지?”

“단장님이 누구에게 그런 소리를 했을 리는 없고. 설마 환상으로 자가학습한 거 아냐?”

“자, 잠깐만! 너 설마 호, 혹시 아니지? 밤에 잘스타인 씨로…….”

카렌의 한 마디에 세 사람의 머릿속에 불길한 상상이 떠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마야가 갑작스럽게 입을 딱 다무는 것이 그들의 추측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왜 갑자기 조용해져!”

“대답하라고!”

“끼에엑!”

그 순간, 쾅 하는 폭음과 함께 탈의실이 요동쳤다. 그들이 잠시 굳어버린 사이 마야가 마력을 끌어모아 염동력을 폭발시킨 것이다. 세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고, 그 사이 마야는 투명화를 써서 달아나버렸다.

그것으로 오늘의 나들이는 종료되었다.

***

한트케 교수는 2주가 지나서야 간신히 주변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정직을 당했다고 해도 교수의 신분을 잃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가 대학을 떠나 외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한트케 교수는 떠나기 전에 연극대학의 학장을 찾았다. 그는 대학 안에서 한트케가 깍듯하게 예를 표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학부생 시절부터 대학에서 겉돌던 한트케를 챙겨주던 교수였다. 다들 꺼리던 그의 담당 교수를 자청해서 맡았던 사람도 바로 그였다. 애초에 그의 비호가 없었다면 한트케는 교수가 되기는커녕 학위도 따지 못했을 것이다.

“허허, 이제 한동안 못 보는 건가?”

“죄송합니다. 사고 치고 자숙은 못 할망정 끝까지 제멋대로 굴어서.”

“허허, 이제까지 자네가 저지른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

“여러모로 폐를 많이 끼쳐드렸죠.”

“자네 정도면 모범생이지. 난 그 마로이네와 동시대 사람이었어.”

장미 풍차 카바레의 총감독 유그 마로이네.

그는 한트케보다 한 세대 위의 문제아로 유명했었다.

마로이네는 공연에 에로티시즘과 페티시즘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선 사람이었다. 그 엄숙하고 딱딱한 시대에 그는 당시에 감히 상상하기 힘들었던 온갖 과감한 시도를 저질렀다.

당연히 그를 향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그를 발정 난 개로 부르기도 했다.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던 그는 결국 황실 극단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그가 흥행사로 이름 높던 브왈레와 손을 잡고 세운 곳이 바로 장미 풍차 카바레였다.

지금은 마로이네가 연출계의 거장으로 불리고, 카바레도 6대 극장 중 하나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 그가 감내해야 했던 인고의 세월은 상당히 길었다.

한트케는 학장이 갑자기 왜 마로이네의 이름을 꺼냈는지 짐작이 갔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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