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542

EP.541 20. 방황하는 성자 (8)

“제가 또 위에 찍혔군요.”

학장은 조언할 때 항상 예시로 들 사람을 먼저 화두에 던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그 마로이네의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보아 어디서 또 자신을 추방하라는 압력이 들어온 듯했다.

“라데츠키 의원이라고 아나?”

“잘 알죠.”

한트케는 쓴 미소를 지었다. 라데츠키는 현재 프라빈 시 의회의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당의 거물 의원이었다. 그는 작년부터 한트케와 악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가 입안한 재개발 정책을 한트케 교수의 제자가 풍자극으로 비판한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그것을 괘씸하게 여긴 라데츠키 의원은 올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자 프라빈 대학에 한트케 교수를 해고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그나마 학장의 변호 덕분에 한트케는 정직당하는 것에 그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이후로 조용히 지냈다면 학장은 반년쯤 지나서 이사회에 탄원을 넣어 그가 복직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트케는 얌전히 있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시 당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길 거부했던 노천극장의 시험에 나가서 보란 듯이 우승을 차지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그냥 우승한 게 아니라 황금 카니발과 바퀴의 서커스라는 우승 후보 둘을 동시에 꺾어버려서 엄청난 화제 몰이를 해버렸다.

몇 년 동안 잠잠했던 그가 오랜만에 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자연스럽게 그가 최근에 대학에서 정직당했다는 사실과 그 이유에 대해서도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학장의 말에 따르면 라데츠키 의원은 그 때문에 정적들로부터 제법 거센 공격을 받았다. 그가 지역의 오래된 건축물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인적 자원들도 학살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이 쏟아졌다. 덕분에 그가 야심 차게 추진하던 빈민가 재개발 건에 제동이 걸렸다.

“라데츠키 의원에게 뒷돈을 바쳤던 공사 업체들이 난리가 나겠군요.”

“그래서 말인데 돌아가는 분위기가 조금 심상치 않네. 사회당에 있는 친구 한 명이 알려줬는데, 라데츠키 의원이 ‘방황하는 성자’를 프라빈에 불러들였다더군.”

학장의 말에 한트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클로드 프롤로.

방황하는 성자라는 이름값과 평화 유지군 활동 때문에 그는 대중들에게 인상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식자들 사이에서 그는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가 선인 행세를 하며 뒤로 얼마나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데츠키 의원의 사돈이 프라빈 대주교의 사촌 아닌가.”

“뭔가 거래가 오간 모양이군요. 빈민가를 ‘정화’하러 오는 걸까요?”

“아마 그렇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몸을 사리라는 거야. 자, 보게. 지금 자네는 대학의 보호도 받기 힘들고, 시 정부랑 척을 진 상태이네. 게다가 대주교에 성자 같은 거물들도 이 판에 끼어들었지. 그러니 라데츠키 의원에게 반격하겠다고 엉뚱한 행동은 하지 말게. 괴물서커스단을 동원해서 도발적인 공연을 기획한다든가 하는 일 말이야.”

“오, 역시 스승님. 제자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져 주시다니, 방금 영감이 번쩍 떠올랐습니다. 원더스타인 단장님이 방황하는 성자 역할을 맡고 괴물 단원들을 성자의 추종자를 연기하는 풍자극이…….”

“자중해주게.”

학장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당부하자 한트케는 빈정대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단장님에게도 주의를 드려야겠군요. 하필 우리가 잡은 숙소가 그 재개발 지역 코앞이니 말입니다.”

***

마침 바퀴의 서커스에 방문한 스벤과 클라라도 방황하는 성자에 대해 말을 나누고 있었다.

에스메랄다는 프롤로의 무리와 마주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예전부터 그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가 프라빈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미리 입수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그자를 경계하는 거니?”

“그와는 안 좋게 엮인 적이 있어요.”

“왜?”

“……아버지 때문이에요.”

성 빅터의 사인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25년 전의 일이었다. 성 빅터 대성당이 서커스 학교로 개조당하는 것에 반발한 정교회가 과거 빅터와 역병 군주가 싸웠던 폐허를 정비해 박물관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현장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진 것이다.

스벤은 그녀가 말하는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전시되어 있었던 곳 앞에 그에 관한 내용이 아주 자세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빅터는 자신이 구해준 집시에게 등을 찔려 죽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벤을 그 범인으로 알고 있었다.

“학자들은 똑똑했어요. 아버지의 유골에 남은 복식을 분석하고 단검의 유래를 쫓고 과거의 기록과 대조해 아버지가 어떤 부족 사람인지 알아냈죠. 제가 아버지 딸이라는 것도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생각하는 일은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적 영역에서 이루어진 연구일 뿐이었다. 애초에 100년 전의 일 때문에 지금 와서 핏줄을 심판하겠다고 덤비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고, 교황청이 그런 옹졸한 곳도 아니었으며, 그런 논리가 통용되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러나 에스메랄다 본인은 이미 벌을 받은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사실 악당에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배신감에 몸서리쳤다.

아버지가 강도질을 시도하다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버지가 부족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자금 문제에 압박을 받다가 그만 실수를 해버렸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구제할 길이 없는 위선자요 비겁자였다. 그가 빅터를 찌르는 데 쓴 단검이 그의 절친한 친구 것이었다는 사실은 에스메랄다를 더 괴롭게 했다.

도적질한 것은 결국 실수가 아니었다. 원래 그런 인간인 것이다. 단검을 확인한 에스메랄다로서는 아버지가 부족의 공용 자금을 몰래 빼돌린 뒤 친구를 죽이고는 그가 돈을 훔쳐서 달아났다고 주장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비정상적으로 부족의 도덕성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녀는 도둑질을 저지른 손녀의 발목 힘줄을 끊어냈고, 마약을 판 손자의 두 손을 잘라버렸다.

“그게 방황하는 성자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거니?”

“도둑질로 추방당한 손녀를 거둔 사람이 바로 프롤로니까요. 그 아이는 그의 아이를 배기까지 했어요. 물론 아이를 낳고 얼마 가지 않아 죽었지만요.”

“아.”

“프롤로는 방황하는 성자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우리 부족을 목표로 정화를 시도했어요. 부족민 중 누군가가 쑥을 팔다가 걸려버렸죠. 그게 바로 클라라의 아비였습니다. 프롤로는 집요한 자였어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부족 전체가 엮여 들어갈 수 있었죠. 그래서 저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스메랄다는 거기까지 얘기하고는 클라라를 바라봤다.

“미안하구나. 내 편협함 때문에 네 아버지와 네가 고통받았다.”

통한의 심정이 담긴 그녀의 사과에 클라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듣고 싶은 것은 이런 가족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원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녀는 우선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아니에요. 아버지가 죄를 저지른 건 사실이니까요. 그 일이 없었다고 해도 원래 규칙상 부족에서 쫓겨날 만한 죄였잖아요?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녀의 웃음에는 그늘 한 점 없어 보였다. 푸리 다이는 그녀의 말에 구원받은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고맙구나.”

“천만에요. 어쨌든 그런 일들이 있었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건데요.”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다.”

에스메랄다는 눈물을 슬쩍 훔쳤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스벤은 뭔가 위로의 말을 던질까 머뭇거리다가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마침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프롤로가 왜 부족을 정화하겠다고 왔던 거니? 설마 죽은 아내에 대한 복수였던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아서요. 다만 그 아이에게서 무언가를 들었던 것은 분명해요. 제게 부족의 신물을 넘기면 정화를 철회하겠다고 제안했었거든요.”

“신물? 아, 그 돌멩이.”

스벤은 먼 옛날 기억을 떠올렸다.

현재 바퀴의 서커스가 상징으로 사용하는 ‘바퀴’의 문양은 사실 원래 ‘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바퀴의 테두리로 보이는 둥근 원은 사실 눈알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바퀴의 축으로 여겨지는 중심의 붉은 점은 동공이었으며, 그 둘을 잇는 바퀴의 살은 사실 홍채였다.

스벤이 눈을 부족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은 바로 그들의 부족 이름이 ‘키르쿠스의 눈’이었기 때문이다.

부족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그들이 재주를 파는 자들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부족장에게 내려오는 신물 때문이기도 했다. 그것은 사람의 안구 크기의 붉은색 보석이었는데, 전승에 따르면 그것은 키르쿠스가 세상을 내다보는 눈을 상징한다고 했다.

“제1회 서커스 그랑프리에서 그걸 사용해 곡예사들끼리 재주를 겨뤘어요. 보석을 더 많이 빛나게 한 사람이 승리하는 식이었죠.”

“아, 그랬구나. 그 부분을 주목했다면 나도 네 행방을 찾는 일이 쉬웠을 텐데…….”

“아빠도 참. 당연히 부족장의 신물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했어야지 않나요?”

그녀의 추궁에 스벤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사실 나는 그 돌멩이에 대해 별생각 없었어.”

“네? 어째서요?”

“그거 그냥 시장에서 주운 잡동사니였거든…….”

스벤의 말에 에스메랄다는 눈을 부릅떴다.

“제게는 분명 조상 대대로 물러 내려져 오는 가보라 했잖아요!”

“핫핫, 아직도 그걸 믿고 있었니? 사실 그건 내가 어렸을 때 시장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는데 어느 여자애가 재밌게 봤다며 돈 대신 주고 간 거야. 키르쿠스의 눈이니 하는 헛소리는 그 애가 들려준 거고. 혹시나 해서 감정을 받아보니 진짜 보석은 아니더군. 가끔 빛이 나던 것으로 봐서 마술사의 소도구나 요술쟁이들이 쓰던 물건인가 싶었지. 내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봐준 사람은 걔가 처음이라 난 그걸 일종의 자신감의 징표로 들고 다녔어. 그 아이에게 들은 키르쿠스의 눈 이야기를 떠벌리며 말이야. 부족민 누구도 믿지 않았는데 설마 네가 믿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스벤의 말에 에스메랄다는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소중하게 보관했던 물건을 정작 본인은 헛소리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니?

“그래서 프롤로가 그걸 요구했을 때 그걸 넘겼니?”

“아뇨. 그건 이미 손녀가 훔쳐서 누군가에게 팔아넘긴 뒤였어요. 아주 큰 거액을 제시했다고 하더군요. 프롤로가 저를 찾아온 것은 혹시나 우리가 그것을 회수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어요. 물론 우리도 그것을 되찾고 싶었지만 그게 누구의 손에 넘어갔는지 몰라서 포기한 지 오래였죠. 누군가가 손녀를 사주했던 건 분명하지만…….”

클라라는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녀는 인형의 집에서 언니들로부터 얻은 정보와 능력을 활용해 나름대로 수집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알 수 있었다.

정황상 에스메랄다의 손녀에게 사주했다는 작자는 이고르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제2회 서커스 그랑프리에 또 트릴이 나타났어요. 저는 혹시 우리 부족에서 훔쳐간 물건을 내놓은 것은 아닐까 했어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크기도 결정 모양도 전혀 다르더군요. 누군가가 또 키르쿠스에게 빌어서 보석을 새로 받아냈다고 하더군요.”

제1회 대회가 끝난 후, 이고르는 에스메랄다의 손녀를 움직여 트릴을 훔쳐냈다. 그래서 원더스타인은 제2회 대회를 대비해 새로운 트릴을 제조할 수밖에 없었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키르쿠스가 눈을 뜨고 마니까.

그리고 18년 전, 제2회 대회가 진행되던 중에 눈의 힘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이고르는 숨겨왔던 눈을 꺼내서 두 눈의 힘을 충돌시킨 것이다.

오토스테레오그램(Autostereogram).

통칭 ‘매직 아이’라 불리는 주술의 한 방법.

일상에서는 두 눈의 초점을 일부러 엇갈리게 맞춰 이차원상의 그림을 삼차원으로 끄집어내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설명에는 매직 아이의 주술적 원리를 정확히 관통하는 설명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근본을 공유하는 두 눈의 초점을 맞추면 타 차원의 존재를 이쪽 차원으로 불러낼 수 있다는 것.

이고르가 두 개의 트릴을 이용한 오토스테레오그램으로 무엇을 불러내려 했는지는 명확했다.

바로 눈의 주인인 마신 키르쿠스였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