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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44

EP.543 20. 방황하는 성자 (10)

곧이어 식당 문이 열리며 엘라, 레이나, 카렌 세 사람이 차례로 들어왔다. 미키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들은 그를 본척만척했다. 그들의 걸음걸이와 표정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마야 누나는 어디 갔어?”

우몬이 고개를 빼고 그녀를 찾았다. 그러자 세 사람이 동시에 번쩍 고개를 들고는 그를 노려봤다.

“마……야……?”

그 섬찟한 느낌에 우몬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왜,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마야는…….”

세 사람은 몇 시간 동안 온 도시를 무대로 마야와 술래잡기를 벌이다가 돌아온 참이었다. 그녀는 갖가지 환상을 이용해 그들을 골탕 먹였다.

엘라는 엉뚱한 사람을 마야로 착각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레이나는 투명 벽에 머리를 들이받고 기절하기도 했으며, 카렌은 거대한 벌레를 마주하고 졸도할 뻔도 했다.

물론 그들을 피해 달아나는 마야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겨우 따돌렸다 싶으면 엘라와 카렌이 인스피라를 사용해 그녀의 위치를 알아내고는 금새 뒤를 쫓아왔다.

마야가 그렇게 친구들을 뿌리치고 달아난 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남몰래 스승의 환상을 이용해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해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최근 그녀가 심취해 있던 것은 ‘집사와 주인님’ 놀이였다. ‘울펜슈타인 백작’에서 원더스타인이 집사 연기를 한 덕분에 그녀는 잘스타인 씨에게 같은 역할을 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버릇이 아까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고 만 것이다.

그녀는 차마 친구들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몸을 의탁할 만한 곳으로 향했다. 그녀에게 당장 떠오르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마야는 한동안 은막에 머무르기로 했어요.”

“은막? 거기는 갑자기 왜?”

“그쪽 일을 도우면서 자기도 공부할 게 있다나 봐요.”

엘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솔직히 아까 마야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저지른 일을 단원들 모두에게 공개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단 친구의 비밀을 지켜주기로 했다.

일단 그건 인간적으로 너무 잔인했다. 그랬다간 그녀의 성격상 수치심이 폭발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

은막의 서커스는 몇 주 전에 프라빈에 도착해 이미 대회 참가신청을 해둔 상태였다. 그들은 지난달에 벌어진 제비뽑기에서 시험을 치를 날짜와 대본까지 받아 놓았다.

마야가 은막을 찾아온 것은 그들이 한창 연습으로 바쁠 때였다. 루미는 마야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대외적으로 활동할 때 입는 로브로 몸을 감추고 그녀 앞에 나타났다.

“무슨 볼일이야?”

“며칠만 좀 재워주세요…….”

마야의 행색은 말이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붙들렸다가 겨우 빠져나오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느라 옷은 여기저기 흙이 묻어 있거나 찢겨나가 있었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그녀의 마력이었다. 마구 퍼다 쓰느라 흐름이 거칠어진 것은 둘째치고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기까지 했다.

“단장님, 밖에 또 괴물 서커스 애들이 찾아왔는데요?”

친구들이 도착했다는 말에 마야의 마력이 급격하게 요동쳤다. 루미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어떤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자식 문제군.’

마야가 지금까지 마법으로 문제를 겪었다 하면 늘 원더스타인이 관련되어 있었다. 루미는 일단 그녀의 친구들을 만나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야가 이곳에 며칠 머무르겠다고 부탁한 사실을 듣고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이내 돌아가 버렸다. 친구를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이거 어째 익숙한 느낌인데…….’

방으로 돌아와 보니 마야는 안절부절못하며 온갖 환상을 만들었다 지우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저건 마치 그녀의 아빠에게 차였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를 안쓰럽게 여기고 떠나는 모습은 자신을 동정하던 그녀의 엄마를 보는 것 같았다.

“너 설마 고백했다가 차였니?”

“아니에요.”

루미의 질문에 마야가 욱하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꼴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도와주지.”

“…….”

“너 지금 네가 어떤 꼴인지 모르지? 완전히 폐인이 되기 직전이야. 이 멍청이, 또 심마에 들어서고 있잖아!”

“심마…….”

“말했잖아. 너 같은 마법사에게는 감정적인 격류 한 톨도 독이 될 수 있다고.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녀가 여러 차례 다그쳤지만, 마야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루미는 그녀의 시선이 방 한구석을 향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곳에는 대본을 연습하는 척하면서 이쪽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그녀의 단원들이 있었다.

“야, 너희들이 있으니까 애가 말을 못 하잖아!”

“아, 아니, 왜 저희를 탓하고 그러십니까…….”

“맞아요. 솔직히 이건 단장님 탓이 커요.”

“뭐라고?”

루미는 기가 막혀서 반문했다. 그녀가 화를 낼 기미가 보이자 부단장인 크레오가 재빨리 나서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다독였다.

“이 친구들 말도 일리가 있어요. 그렇게 자기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편하게 하겠어요? 생각해보세요. 마야는 엄마 아빠 친구라는 단장님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잖아요.”

“그, 그건…… 그, 그런가?”

그의 말에 루미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왠지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본 모습을 보이고 난 후로 단원들이 너무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중년의 차갑고 지적인 남자 아르노일 때는 아무도 저렇게 따질 생각을 못 했는데…….

“어쨌든 모두 나가 있어! 나는 얘랑 둘이서 얘기 좀 할 테니까!”

마야가 그들이 있어 쉽게 말을 못 꺼내는 건 사실이었기에 그들은 연습하던 대본을 들고 재빨리 방을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그제야 마야도 숨통이 조금 트였는지 표정이 풀렸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하여간 엄마나 딸이나 입 꾹 닫고 앉아서 공주 흉내는…….’

루미는 잠시 마야를 보며 심호흡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감싸고 있던 천들을 한겹 한겹 벗었다. 마야는 그녀가 숨겨왔던 진짜 모습을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은…….”

마야는 단순히 그녀가 페어리라는 사실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체형이나 환상을 만드는 실력을 생각해보면 진즉에 페어리를 떠올리지 못한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마야가 진정으로 놀란 이유는 그녀가 바로 원더랜드에서 만난 적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원더랜드에서 그들 일행을 도와준 2명의 안내인 중 하나가 바로 그녀였다.

그날의 기억을 되새겨본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녀와 줄곧 함께했던 인물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함께 공연을 준비했던 일행 10명 중 원더랜드에 없었던 사람은 2명이었다.

“그러면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은…….”

“눈치챘나 보네. 맞아. 너희 단장이야.”

“아.”

마야는 무의식중에 또 원더스타인의 환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이전에 만들었던 것들과 달랐다. 밀짚모자를 쓴 거대한 허수아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다. 원래 너희 단장과 그러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왜……?”

“나도 잘 몰라. 솔직히 이상하긴 하잖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육체를 가진 채로 원더랜드에 다녀왔는데, 본인만 그러지 못했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지.”

“알았어요.”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님의 비밀이라면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자신이 좀 더 특별해진 기분이니까.

평정심을 회복한 그녀는 다시 루미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봤다.

5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작은 키. 몸이 비춰 보일 정도로 얇은 민소매 원피스에 가는 팔과 다리. 그리고 각도에 따라 여러 색으로 보이는 머리카락과 그 사이로 삐죽 솟은 2개의 더듬이.

마치 인간 어린아이와도 같은 그 모습은 영락없는 페어리였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보통의 페어리에게는 있는 날개가 없었다.

언윙드 페어리. 동심을 잃은 요정은 날개를 잃는다.

그러나 마야가 지금 주목하는 것은 그녀의 종족적 정체성 같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루미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그녀의 몸은 요정답게 무성이었다. 가슴에 돌출된 부분도 전혀 없었고, 아마 두 다리 사이에 성별을 나타내는 어떠한 신체적 특징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마야는 승리감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네가 생각해도 네가 좀 한심하지 않니?”

루미는 마야의 눈빛에 담긴 생각을 읽어내고는 혀를 찼다. 무성의 몸을 보고 승리감을 느끼다니. 따지고 보면 본인에게 비참한 일이었다.

“그, 그건……!”

“아, 됐고. 자, 이제 네 사정도 좀 들어볼까? 난 밝힐 만큼 밝힌 거 같은데.”

마야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곧 오늘 있었던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지난 몇 달 간 그가 원더스타인의 환상을 어떤 식으로 이용했는지도.

“제가 이상한 걸까요?”

“이상하면 어때. 원래 너는 그런 거 신경 안 썼잖아.”

루미는 마야의 비밀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놀라거나 비웃거나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저 희미하게 미소만 지었을 뿐이었다. 마야는 그녀의 모습에 안심이 되면서도 어딘가 불안감을 느꼈다.

“자, 솔직히 말해봐. 그게 왜 신경 쓰이는지.”

마야는 가만히 허공을 바라봤다. 지금 자신의 마음에 이는 감정.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자신이 원래 보통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알 바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원더스타인을 만나고 그녀는 달라졌다. 그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다.

그것은 그녀에게 한 가지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그가 자신을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 말이다.

“아.”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월리와 원더스타인.

어째서 그 둘만이 자신의 마음에 흔적을 남길 수 있었는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것이 원인이었다.

월리는 직접적인 죽음을 통해 보여줬고, 원더스타인은 몇 가지 단서를 통해 그것을 암시했다. 그 공포가 그녀의 하얀 도화지 위에 상을 새겼다.

-쟤는 이상해.

-죽은 고양이를 보고도 무표정한 모습이…….

-마음이 없대. 도화지가 비어있대.

그녀는 누군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알고 있었다.

엄마의 죽음. 그녀의 절대적인 기억력이 선사하는 아기 시절의 경험.

그것이 그녀의 마음에 자물쇠를 채웠다. 그래서 그녀는 작년까지 도화지 위에 아무것도 담지 못한 것이었다.

“이것도 유전인가.”

루미는 마야의 현재 상태를 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환상을 가르쳐 달라고 서커스단까지 기어들어 왔던 어느 여자애의 모습을.

그녀 역시 지금의 마야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었다. 그때 루미가 도와준 덕분에 그녀는 심마를 극복하고 상의 신비를 터득할 수 있었다.

그것은 루미에게 뿌듯한 기억인 동시에 일말의 후회가 남는 선택이었다. 그때 치료 도구로 제공했던 남자를 결국 그녀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니 말이다.

환상 마법사들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겪는 과정이었다. ‘자기 머릿속’이라는 방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 말이다. 그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상의 신비를 터득할 수 없었다.

오늘 마야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가장 감추고 싶고 은밀한 욕망을 주변 사람에게 들키고 말았다.

자신의 속내를 들킨 수치심과 주변 사람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 가지가 마야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마 혼자였다면 또 심마를 끙끙 앓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겨우 회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루미가 있었다. 그녀는 마야의 증상이 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야, 어서 일어나!”

루미는 지금 마야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전혀 별나고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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