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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45

EP.544 20. 방황하는 성자 (11)

루미는 우선 자신과 마야에게 투명화를 걸었다. 그들은 지금부터 은막의 마법사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염탐하러 갈 예정이었다.

마야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 단원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왜 훔쳐보려는 걸까? 루미는 그녀에게 자신이 이러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마음’을 타인에게 들킨 것이 죽을 만큼 부끄럽지? 너는 지금까지 폴리곤 계산을 통해 환상을 만들어 와서 그런 경험은 처음일 거야. 하지만 상의 신비에 몸을 담은 마법사들은 누구나 머릿속에 망상을 품고 있어. 그것을 적절히 제어하는 게 중요한 거야. 자칫 잘못하다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머릿속 깊은 곳을 드러내 버리니까 말이야. 환상 마법사라면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지만 너는 지금까지 그럴 기회가 없었지. 자, 우리 단원들을 지켜봐. 너 정도면 결코 부끄러운 것도 아니니까.”

루미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첫 번째 방에 들어가자마자 마야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헉하고 들이키고 말았다. 그곳에는 나체의 여성을 세워 두고 몇 명의 마법사들이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선배가 만들면 여성 등장인물들이 전부 육덕이 되어버린다니까요!”

“육덕이라니. 이거보다 완벽한 비율이 어디 있다고. 내 전 선배는 어땠는지 알아?”

“아, 그 아저씨. 여자는 전부 개미허리에 가슴에 수박을 달고 있었지.”

“조금 다양하게 할 수는 있잖아요. 이건 몸매가 모두 같지 않습니까? 저기 저쪽 캐릭터는 감옥에 10년을 갇혀 있던 설정인데 어떻게 저런 몸을 유지하는 거죠?”

환상 마법사들은 사물의 외형을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은막 서커스 마법사들은 그 철학에 충실해 전신을 천으로 감싸고 다녔고, 그 모습은 수도사를 연상시켜 사뭇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이 구애되지 않는 건 어디까지나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현실의 육체뿐이었다. 환상에 들어가면 모두 각자의 이상과 취향을 강하게 고집했다.

“잠깐, 여기 누구야! 치마 아래에 팬티 구현 안 하고 전부 블랙 처리한 사람!”

“쓸데없는 데 자원 낭비하지 마! 이번 연극에서 치마 아래 비출 일 있어?”

“마차가 지나가는 장면이 있잖아. 그러면 바람에 치마가 날려!”

“대본 제대로 봤냐? 마차가 거리를 천천히 거닐며 주인공들이 풍경을 감상하고 있잖아. 거기에 어떻게 치마가 날리냐? 네가 그러니까 저번에도 욕먹었지! 자꾸 아무 장면에서나 치마를 뒤집으니까!”

마침 은막의 서커스가 시험 과제로 고른 대본은 ‘아브릴’이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젊은 여성 무희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남사스러운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애초에 성인용으로 쓰인 극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팀원들 바꿔줘! 아니, 한 번도 이성이랑 자 본 적 없는 애들 데리고 침대 장면을 어떻게 구현하라는 거야?”

“거기서 허리를 들썩이면 남자가 여자 배꼽에 쑤셔 넣는 꼴인데?”

“잠깐, 주인공의 캐릭터를 생각하면 여기서 여성 상위로 가는 게…….”

그들이 떠드는 내용은 천박하면서도 열성적이었다. 마야는 그들을 보며 자신이 혼자 환상을 만들고 주물렀던 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의 자신도 이랬다. 자신이 했던 것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환상 마법사들 기준으로 ‘평범’한 것이었다.

루미는 마야의 마력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 것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마야가 겪은 심마는 공연계에서 활동하는 환상 마법사들이 자주 걸리곤 하는 것이었다. 인간을 만들어내고 대본에 따라 조종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자신이 인간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전능감에 도취하는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환상 마법사들도 증상은 다르지만 비슷한 직업병을 앓았다. 전쟁이나 군사 훈련에서 활동하는 자들은 살육에 무감각해지고, 메모리 디스크를 주로 다루는 사람은 타인의 삶에 너무 몰입하다가 정신 건강을 망치는 것이다.

환상 마법사들은 누구보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기 쉬웠기에 쉽게 방구석 외톨이로 전락하곤 했다. 그들을 20년 넘게 이끌어온 루미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루미가 마야에게 단원들의 작업을 관람토록 한 것은 일단 그녀가 ‘망상’에 가진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하는 성교육의 과정과 유사했다. 우선 자신이 가진 욕구 자체를 누구나 가지는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조금 민망한 장면들이 있긴 했다. 성교육 시간에 포르노가 틀어지면 이런 기분일까. 마야는 그럴 때마다 화들짝 놀라 두 눈을 가리기도 하고, 손가락 사이로 그것을 훔쳐보기도 했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 루미는 따뜻한 시선으로 친구들의 딸을 바라봤다.

하지만 루미의 여유도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바로 인물의 뼈대를 설정하는 담당자들을 만났을 때였다.

“선배, 사람들 하반신에 자꾸 역 관절이 형성되는데요?”

“내 토템이 부러져서 그래! 나는 이거 없으면 사람 관절 구현을 제대로 못 한다고.”

토템은 환상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도구 중 하나로 현실의 ‘기준점’을 잡는 데 도움을 줬다. 예를 들어 사람 모양의 인형을 손에 쥐고 다니다 보면 사람을 구현하는 일이 보다 쉬워지곤 했다.

하지만 토템에 의존하는 버릇을 들이면 타성에 젖어 토템이 없으면 환상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이 그런 경우였다.

“어……?”

“잠시만. 저건……?”

하지만 마야와 루미를 놀라게 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자신의 토템이 부러졌다고 투덜대는 마법사가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그것은 아주 익숙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잖아?”

그것은 루미의 모습을 한 인형이었다.

“무슨 짓들이야!”

“허, 허억? 다, 단장님?”

마법사는 갑자기 루미가 튀어나오자 놀라서 재빨리 인형을 등 뒤로 감췄다. 그러나 루미가 손을 한 번 까딱이자 허공에서 채찍이 나타나더니 그의 손에 든 인형을 낚아채 버렸다.

“이, 이게 도대체 뭐야!”

루미는 인형의 모습을 살피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의 피부는 합성수지로 만들어져 있어서 매우 사실적이었다. 게다가 뼈대 역시 정교하게 제작되어 관절의 가동 역시 부드러웠다. 손가락 하나까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를 더욱 경악시킨 것은 바로 옷을 인형에 탈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인형은 메이드 복에 흰색 스타킹과 구두를 신고 있었다.

“이, 이게 어, 어떻게 된…….”

“아, 제가 손수 제작한 인형 옷입니다. 메이드 복 말고도 여러 가지가…….”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

루미가 지르는 소리를 듣고 다른 방에 있던 마법사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그들은 무슨 일인가 싶다가 루미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더니 입을 딱 다물고 말았다.

“설명해 봐.”

루미의 서슬 퍼런 기세에 단원 중 한 명이 나서서 사정을 풀어 놓았다. 얼마 전에 그들이 밀랍 인형 공방을 지날 때, 마침 단장님의 밀랍 인형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말이 나와서 단체로 하나씩 맞췄다는 것이었다.

수십 명의 환상 마법사가 있으니 그녀의 본을 뜨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인형 공방의 장인들은 이토록 상세한 원형은 처음 본다고 감탄하며 자신들이 가진 최대한의 역량을 동원해 루미의 인형을 제작해줬다.

“신기한 게 단장님의 인형을 끼고 있으니까 다들 환상 실력이 늘더라고요.”

“맞아요. 왠지 그동안 쉽게 못 했던 것들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거 있죠?”

“보세요. 저는 단장님처럼 자유롭게 말은 못 하지만 환상 목소리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단원 한 명이 수영복을 입은 루미 인형을 들어 보이더니 마법을 사용했다.

-안녕. 나는 너희들의 단장 루미온이야. 요정의 나라로 출발!

정확히 루미의 것과 같은 목소리가 인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야는 그 모습들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완전 변태들이다. 이제야 그녀는 자신을 보는 친구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노여워 마세요.”

“단장님이 저희 마음의 토템이어서 그렇습니다.”

“원래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토템을 남에게 알려주면 그 힘을 잃는다고들 해서 다들 말을 못 하고 있었어요.”

단원들이 말에 루미는 화를 내려던 것을 포기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았어. 이 몸이 너희들에게 그런 존재란 말이지? 마음의 우상? 흐음…….”

루미는 볼을 작게 부풀렸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은막의 단원들은 그런 그녀를 보고 헤벌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워.’

지난 몇 개월간 은막의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당사자들은 잘 체감하지 못했지만, 몇 달만에 그들을 찾은 마야로서는 머리가 어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쩌다 그 비밀스러운 카리스마 은막 아르노가 이런 꼴이 된 걸까.

루미는 단원들로부터 포장을 뜯지 않은 인형을 선물로 받았다. 단체 주문을 한 탓에 아직 재고가 제법 남아 있었다.

“잘 만들었네.”

루미는 인형이 담긴 상자를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상자 안에는 다양한 부품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등 뒤에 달 수 있는 반투명한 날개도 있었다.

원래 날개 달린 페어리들의 크기가 다 이 정도였다. 인형을 보고 있으니 루미는 자신이 날개가 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사실 밀랍 인형을 만드는 것도 원래 루미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단원들이 그녀가 단원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을 기념하여 날개가 있었던 시절을 복원하여 선물할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이 진행되다 보니 몇몇 단원이 견본으로 만들어진 물건에서 토템으로서 효능을 느꼈고 너도나도 하나씩 가지게 된 것이었다.

“자, 이제 기분이 어때? 아직도 네가 한 행동에 수치심을 느껴?”

“아니요.”

마무리가 조금 황당하게 끝나긴 했지만, 어쨌든 루미는 의도했던 바를 달성할 수 있었다. 마야의 마음은 아까와 비교해 훨씬 개운해졌다. 그녀의 마력이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끈 것뿐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바로 ‘두려움’.

그녀는 언젠가 사라지고 떠날지 모르는 존재를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했다. 엄마를 잃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모순적이게도 그녀에게 그 정도로 강한 심리적 충격을 준 대상만이 그녀의 도화지 위에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바로 월리와 원더스타인이었다.

그것을 누군가는 그 조건을 사랑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루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화지 위에 담기는 조건이 사랑이라면, 왜 엄마랑 아빠는 도화지 위에 담지 못하는가.

엄마는 단순히 어릴 때라 마음에 담을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아빠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실제는 이럴 것이다. 아빠는 언제나 귀찮을 정도로 딱 달라붙어 한결같은 사랑을 퍼줬기에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음속 도화지는 결국 자신의 마음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하얀 거름종이라 할 수 있었다.

그 거름종이를 치우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녀 스스로 마음을 단련해 종이를 치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원더스타인을 포함해 그녀가 마음을 열고 있는 대상들을 한꺼번에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게 해 단번에 거름종이를 찢어버리는 것이었다.

후자는 아무리 봐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아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도 문제였다. 결국에 남은 방법은 전자밖에 없었다.

루미는 마야가 은막에 머무르는 동안 좀 더 찬찬히 그녀를 살펴보기로 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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