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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7

56. 소꿉친구 – 습관

레나의 아리송한 눈초리에 레오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레나는 금방 답하지 않았다.

레오가 낯설다. 어느 날 갑자기 사색이 되어 돌아간 이후로, 어쩐지 그는 평소의 레오 같지 않았다.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소한 행동들이 달라졌다.

특히 그동안 유용하게 써먹어 온 ‘당황하면 귀가 씰룩이는 버릇’이 사라졌다.

지금도 당황한 것이 분명한데…

‘내가 그걸 안다는 걸 눈치챘을까? 하지만 그런다고 사람 버릇이 금방 사라질 수가 있나?’

레나는 눈을 깜박이며 그를 들여다봤고, 레오는 땀을 뻘뻘 흘렸다.

‘레나가 날 의심하고 있구나.’

그는 레나의 질문에 일순 당황했으나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이럴 때는 먼저 말을 하면 안 됐다.

여자친구에게 의심을 받을 때, 또는 뭔가를 어떻게든 숨기려 할 때는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수렁에 빠져들기 마련이었다.

레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반응하지 않자 이윽고 레나가 본인의 입과 뺨을 한 손으로 받치듯이 가리며 말했다.

“너 어딘가 달라진 것 같아. 네가 콧노래 부르는 것도 처음 들었어.”

그랬었나?

레오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런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까지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거 어제 형들이랑 일하면서 들은 거야. 밭일하는데 디노 형이…”

“그 오빠는 항상 흥얼거리잖아. 지금껏 따라부른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

“그냥 한 번 따라 해본 거야. 일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게 재미있어 보이더라고.”

“흐음- 그것 말고도 너 귀가… 쯧, 아니다.”

레나는 혀를 차며 입을 다물었다.

말을 꺼내기 전에는 어떤 의구심이 있었는데, 막상 말로 꺼내 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콧노래 말고도 손톱을 씹는 모습도 처음 봤지만,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인가.

물어볼수록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빨리 이거나 받아. 팔 떨어져.”

그녀는 잠시 눈을 아리송하게 흘기다가 레오가 건네는 통발을 받았다.

통발에 조약돌을 넣고, 개울가로 조심조심 다가가는 레나,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레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큰일 날 뻔했다.’

민서가 레오로서 이 게임에서 살아간 시간을 따지면 벌써 8년이 다 되어갔다.

각 시나리오에 따라 짧게는 이틀을, 길게는 2년이 훌쩍 넘게 살기도 했는데(공교롭게도 둘 다 거지남매 시나리오다.), 대체로 회차가 반복될수록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잔뜩 쌓인 기억을 받아들인 ‘이 레오’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지난 약혼관계 시나리오에서도 레나가 “네 성격이 변한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시나리오를 반복하는 게 너무 익숙해져서 실수를 범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거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일 나겠는데?’

하지만 이건 단순히 눈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고민하던 그는 다시 통발을 엮기 시작했다.

바위에 턱 걸터앉은 자세로.

진짜 레오였다면 바닥에 쪼그려 앉았으리라.

* * *

다음 날 저녁,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다녀오셨어요.”

아버지는 으레 그렇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아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를 잘 알고 있는 레오도 익숙하게 침묵을 받아들였다.

레오는 아버지가 산장에서 가지고 내려온 육포들을 찬장에 넣고 식사를 준비했다.

식탁은 이미 반쯤 차려져 있었다. 마치 자기 혼자 먹으려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딱 맞춰 도착한 것만 같았다.

딸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울리는 식사시간이 끝나갈 무렵, 레오가 물었다.

“아버지, 레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요…”

그가 꺼낸 이야기는 북쪽의 거대한 여우에 대한 것이었다. 그 여우는 몸도 크고 몸놀림이 가벼워서 사냥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걸 알렸다.

레오는 당장 다음 약혼관계 시나리오에서 {전쟁} 이벤트를 피해야만 했다.

그쪽은 가망이 없다.

그리고 전쟁을 피하려면 ‘노구화호’라는 거대한 마수를 잡아야 하는데, {검술.2v}와 {합격술}만으로는 턱도 없었다.

그래서 혹시 사냥꾼인 아버지가 방법을 알고 있을까 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 아버지의 사냥 솜씨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 남부에는 노구화호 같은 마수가 거의 없었다. 마수는 희한하게도 북쪽으로 갈수록 개체 수가 많아졌다.

그러니 평생 남쪽에서 살아온 아버지가 마수를 사냥할 방법을 알고 있을 가능성은 작았다.

침묵이 오래 이어지자 레오는 괜한 것을 물어봐서 공연히 머쓱하게 됐다고 생각하는데,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여우는 높이 뛰어오른다.”

오오오! 역시 아버지는 뭔가 다르시다. 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노구화호가 하는 행동을 족집게처럼 맞추셨을까.

그는 흥분해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레오의 아버지는 사실 할 말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이 눈을 밝히며 그를 바라보자 듬성듬성 털이 난 뺨을 쓰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여우가 뛰는 까닭은 사냥감에게 들키지 않으려 하는 습성 때문이다.”

“여우는 사냥감에게 조용히 다가가 높이 뛰어오른 뒤, 주둥이부터 땅에 떨어지면서 사냥감을 문다.”

그의 말투는 뚝뚝 끊어졌으나, 레오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듯이 청강했고, 아버지는 아들의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씩 하나씩 정보를 뱉어냈다.

“사냥감이 눈치를 채면 빠르게 접근해서 주둥이로 물거나, 앞다리를 휘저으며 장난을 친다.”

“그렇게 큰 여우라면 사람을 사냥감이나 장난감으로 볼 거다.”

몇 마디의 문장을 더 뱉어낸 그는 평생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식탁을 치우고 자리를 옮겼다. 아무래도 더는 힌트를 주지 않을 모양이다.

‘기왕이면 본인이 어떻게 잡을지도 설명해주지…’

하지만 꼬치꼬치 묻는 것은 의심을 살 공산이 컸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어제 레나의 말에 화들짝 놀란 상태여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레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들은 이야기를 머릿속에 정리한 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레오의 아버지는 창가 의자에 앉아 밤바람을 쐬었는데, 그의 손에는 손거울이 들려 있었다.

그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그 손거울을 정성껏 닦고 잠이 들었다.

* * *

이후의 전개는 전에 여행을 떠났을 때와 거의 같았다.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나온 레오는 {초기 자금}을 내보이며 레나와 함께 마을을 떠나려 한다는 말을 전했다.

이유도, 거짓말도 지난번과 같았다.

사냥 솜씨가 부쩍 는 아들에게 감탄한 아버지는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경비에 보태 쓰라는 듯 은화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사냥에서 돌아온 레오가 레나에게 함께 마을을 떠나자고 제안한 것도 같았다. 다만 이번에는 오른 왕국의 수도 네비스가 아니라 루테티아로 가자고 한 것이 유일한 차이였다.

레나는 전과 같이 폭발적인 환희를 내비치며 레오를 끌어안았다.

감격에 부르르 떠는 레나,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레오는 다짐했다.

‘사제로 만들어주기 위해 가는 건 아니지만… 이번엔 널 꼭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이젠 왕자를 만날 방법이 있거든.’

소꿉친구인 레나를 공주로 만들어주는 것. 이건 클리어를 노려야 하는 민서와, 레나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레오, 두 사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였다.

물론, 이번에도 레나는 돈이 모이지 않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녀가 루테티아에서 십자교회에 들어갈 교육비를 모으는 동안, 레오는 {추적술}을 이용해 왕자에게 접근할 것이었다.

다시 한번 못된 계획을 세운 레오는 레나에게 보여줄 돈을 엄밀하게 계산했다. 딱 루테티아에 도착하면 떨어질 정도로…

한데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가 깜박한 것이 있었다.

‘국경선을 어떻게 통과하지?’

영주민은 함부로 지역을 이동해서는 안 됐다. 본인이 묶여있는 지역을 합법적으로 벗어나려면 영주에게 신고하고 떠나야 했다.

레오는 지금껏 허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한 번은 억지로 국경을 뚫었고, 다른 한 번은 카트리나에게 받은 증표로 관문을 통과했었다.

레나를 데리고 국경에서 추격전을 벌일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필히 허가를 받고 떠나야 하는데 방법을 몰랐다.

‘사제님께 여쭤보고, 가는 길에 영주성에 들려서 신고를 해보자.’

아직은 모르겠지만, 루테티아로 사제가 되기 위해 떠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이상, 어떤 제도가 마련되어 있을 터였다.

나름의 계획을 마친 레오는 여행 갈 채비를 꾸렸다. 돈을 단단하게 잘 넣어놓고, 옷가지도 몇 벌 챙기고…

‘역시 무기가 없는 게 아쉽네.’

이 빌어먹을 게임은 무기를 주지 않았다.

레나가 부모님을 설득하는 동안 목검이라도 만들어둘까 고민했으나 포기했다.

아무리 레오가 겉치장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라지만, 목검을 차고 돌아다니는 건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레나에게 의심받을만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뭐… 이 몸에다가 {검술.2v}면, 무기 없이도 깡패나 산적들은 내 상대가 못 되니까. 괜찮겠지.’

이젠 작대기 하나만 들어도 그런 놈들은 너덧 명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었다.

칼침 몇 방은 맞겠지만.

그는 레나가 네비스에서 납치당했던 때를 떠올리고는 잠시 분노하다가, 곧 나도 참 많이 컸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며칠 뒤, 두 사람은 데모스 마을을 떠났다.

전날 밤에 마을에서 작은 송별회가 있던 것도, 레슬리 수도사님과 레나의 부모님이 레나에게 돈을 건네준 것도 이전과 같았다.

사제님께 축복을 받은 것도 같았는데, 이번에는 사제가 되기 위해 루테티아로 떠난다는, 사제님이 써주신 증명서가 손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 수레를 함께 몰고 왔던 한스가 두 사람을 슬그머니 뒤따라온 것도 같았다.

“숙소는 내가 잡을 거야! 어디보자… 저기가 숙소 맞지?”

“아닌데. 거긴 그냥 술집이야.”

“어? 숙소는 술집 위에 붙어있지 않아? 어디서 읽었는데, 용병 아저씨들이 숙소 로비에서 막 술도 마시고 그런다던데?”

“숙소가 겸업하는 식당에서 술을 팔기는 하지만, 저건 그냥 술집이야. 숙소 아래의 식당은 좀 더 조용하다구. 이쪽으로 와.”

그는 엉덩이가 펑퍼짐한 주인장이 있는 숙소로 레나를 이끌었고, 트윈 방을 잡자마자 말했다.

“레나,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딜?”

“수레에 깜박 두고 온 게 있어서 빨리 다녀오려고.”

“으이그! 멍충이.”

“문 잘 걸어두고 있어.”

“안 알려줘도 그럴 거거든!”

안 알려주면 안 걸어둔다. 레오는 그녀의 허세에 피식 웃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는 한스가 뒤따라오는 걸 알고 있었다.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놈이 우리의 숙소를 미리 확인해놨을 거라 예상한 것이 맞았다.

한스는 숙소를 확인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한데 “야! 한스! 너 이리 와봐!”라며 놈을 불러세우려던 순간,

레오는 망설였다.

‘근데 내가 쟤를 때려서 얻을 게 뭐가 있지?’

일단 기분은 좋을 거다. 우리를 팔아넘겼던 놈이고, 레나를 납치당하게 한 일등 공신이니까.

하지만…

‘…쟤는 전에 한 번 죽였어.’

당시 ‘창녀와 관계하면서 레나를 떠올리면 된다.’라는 말에 욱해서 놈을 죽여버렸었다.

레오는 잠시 멀뚱히 서서 나름 철학적인 고민을 해야만 했다.

카시아와 카트리나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레오와 한 번씩은 원한을 맺었었다.

그런데 카트리나의 경우엔 그녀를 한 번 죽여 복수하고, 지난 시나리오에서 큰 도움을 받으면서 앙금이 깨끗이 사라졌다.

처음 레나 아이나르가 그녀에게 죽었을 때, 비록 슬펐을지언정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기에 분노가 금방 사그라들었는지도 모른다.

반면 카시아에 대한 심경은 매우 복잡했다.

도움을 받고, 원한이 생겼다가, 또 도움을 받았다.

심지어 한 인물이 반복해서 한 것도 아니고, 회차를 거듭하며 완전히 다시 만나는 관계에서 그런 일들이 있었다.

레오는 아직 카시아에 대한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심정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것을 깨달은 레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멀리 사라지려 하는 한스를 보았다.

그럼 저놈은 어찌해야 하나…

머리 아프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저 새끼는 뭣하나 도와준 것도 없고, 레나를 납치당하게 한 데다가, 지금 우리가 숙소를 잡으러 가는데 뒤따라왔다. 그것만으로도 두들겨 맞을 자격은 충분하지 않은가?

어차피 ‘민간인 살해 카운트’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의 진행을 위해 죽일 생각도 없었다. 한스 아주머니가 아들을 잃고 몸져누운 모습도 충격이었고.

그는 걸음을 서둘러 한스를 따라잡았다.

“야! 한스! 너 이리 와봐.”

“어어? 레, 레오, 오늘 밤 날씨가 참 상쾌… 악!”

레오는 이만하면 정말 많이 봐주는 거라 생각하며, 그동안의 울분을 담아 한스를 때려주었다.

턱과 뺨을 쳐준 정도로는 모자라서 놈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들기도 했다.

어딜 따라오냐고, 또 따라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을 넣었다.

엉망이 된 한스는 절뚝거리며 달아났다. 그가 낮게 욕하면서 가는 것을 본 레오는 쫓아가서 다시 혼쭐을 내주었다.

한스의 말마따나, 그날 밤은 하늘이 높아 상쾌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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